194화
손 회장이 스마트폰을 살펴보다가 카메라를 보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카메라 기능도 있으면 비디오 기능도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다음 버전에서는 비디오 기능을 추가할 거예요.”
“다음 버전은 언제 출시할 예정인가?”
“글쎄요? 아직 구체적인 일정을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1년 후가 될 거예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1년은 너무 짧아.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할 거야.”
“전략적이라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스마트폰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해야지. 다른 핸드폰 기종이라면 괜찮지만 스마트폰은 지금까지 없던 핸드폰이고 혁신 그 자체야. 더구나 다른 핸드폰 회사에서는 판매하고 싶어도 하지 못해. 내가 자네라면 판매할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판매할 거야. 잘 생각해 봐. 이 스마트폰이 출시되면 다른 핸드폰 회사들은 어떻게 할까?”
“당연히 자신들도 스마트폰을 만들려고 하겠죠. 하지만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그렇지. 가장 중요한 핸드폰 OS가 있어야 하는데 단시간에 개발하기도 어렵고 개발 자체가 어려워. 그러니 스마트폰 개발은 꿈도 못 꾸고 그림의 떡이지. 일부 회사는 자네가 말한 것처럼 윈도폰으로 개발하려고 할 거야. 그럼 모델을 오션 스마트폰으로 할 것이고 또 다른 핸드폰 회사들도 오션폰을 모델로 하드웨어적으로 개발할 준비를 할 거야.”
내 생각에도 당연히 그런 식으로 진행할 것 같았다.
“그렇죠. 하지만 윈도폰은 실패로 끝날 거예요.”
“윈도폰이 실패로 끝날지 아닐지는 나도 잘 몰라. 하지만 자네가 2년 뒤에는 스마트폰 OS를 다른 회사에서도 사용하게 할 계획이라며?”
“네. 맞아요.”
“또 스마트폰 출시하면서 2년 뒤에는 OS를 특허료를 받고 사용하게 할 거라고 발표도 할 거라며?”
“네. 그래서 스마트폰 OS 개발의 꿈을 꾸지 않도록 하려고요. 그래도 일부에서는 개발하겠지만 개발이 쉽지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리니 개발 실패를 하면 다시 개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효과도 있고 중간에 개발 포기를 하게 만들려는 의도이죠. 미리 발표하지 않으면 죽자사자 개발하려고 할 테니까요.”
“그러니까 대부분의 회사들은 2년 뒤를 믿고 하드웨어적으로 오션폰을 모델로 해서 개발하려고 할 거야. 근데 1년 뒤에 자네가 버전업을 한 후에 출시하면 다른 회사에서는 버전업한 핸드폰을 다시 모델로 삼을 테고 버전업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름 연구를 하게 될 거야. 그럼 경쟁이 치열해지겠지. 하지만 자네가 2년 뒤에 버전업한 스마트폰을 출시하게 되면 다른 회사들보다 우위에 서게 되는 거지. 2년 뒤 출시를 목표로 오션폰을 모델로 삼아 개발했을 테니까 오션폰이 버전업 해서 나오면 대응할 시간이 부족하게 되어 오션폰이 유리해지지. 또 2년 동안 최대한 많이 판매해야 버전업을 하더라도 갈아타는 사람들이 더 많을 테니까. 물론 2년 뒤부터는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하는 데까지는 최대한 유리한 점을 활용해야지.”
은근히 설득력 있는 말이네. 그럼 2년 뒤에 버전업 해서 출시하면 되나?
“알았어요. 회장님 말씀 참고할게요.”
“그게 좋을 거야. 숨겨 둔 패는 될 수 있으면 늦게 꺼내는 것이 좋아. 최대한 많이 숨겨 둬.”
“알았어요.”
손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게요?”
“볼일 봤으니 가야지.”
“오신 김에 식사나 하고 가시죠?”
“코리아 소프트 뱅코에 들렀다가 바로 일본으로 가야 해. 시간이 없어. 식사는 일본에 오면 그때 하지.”
“알았어요.”
손 회장이 가자 아이노랑 이야기를 하였다.
“아이노 모델 생각 있어?”
“진 생각은 어때?”
“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아예 하지 않을 거면 몰라도 핸드폰 광고를 하기로 한 이상 하나 더 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을 것 같아. 이것도 기회라면 기회야.”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면 모델 하는 게 좋은 건지 나도 모르겠어. 핸드폰은 진이 부탁하니까 한 거지만 일본에서의 모델은 글쎄? 괜히 모델 하겠다고 나섰다가 인기 없으면 실망이 클 것 같아.”
“너튜브 보면 알잖아. 네 영상 인기 많은 거 직접 확인했잖아. 그 정도면 모델로 성공할 수도 있어.”
“난 모델을 계속할 생각도 성공할 생각도 없어. 하게 되더라도 이번만 할 거야.”
“하겠다는 거야?”
“진이 원하면 할게.”
저렇게 말하면 내가 더 부담스럽잖아. 본인 일인데 본인이 선택해야지.
“아이노 마음이 가는 대로 해. 마음이 가면 하고,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을 테고 강요하지도 않아.”
“알았어. 그럼 일본 모델까지만 할게.”
그게 뜻대로 될까? 본인은 그렇게 생각해도 한번 한 이상 두 번 하게 되고 계속하게 될 가능성이 컸다.
더구나 반응이 좋으면 계속 섭외가 들어올 테고 거부하기가 힘들 텐데.
아이노가 무명이기는 하지만 오션에서 받는 모델료도 만만치 않고 손 회장에게 내가 모델료를 많이 받을 것이라 사람이라면 물욕 앞에 약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건데.
아이노도 나 때문에 인생이 바뀌는 건가?
“알았어. 일단은 일본까지만 하자.”
“응. 일본은 언제 촬영하는 건데?”
“그건 나도 몰라. 물어봐야지.”
“한국에 있을 때 했으면 좋겠는데. 핀란드에 돌아갔다가 다시 오려고 하면 끔찍해.”
“내가 말해 볼게.”
“응.”
강성중이 다가왔다.
“사장님! 바쁘십니까?”
“아니. 괜찮아. 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애는 또 왜 그래?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표정이 비장하였다.
“앉아.”
강성중이 내 앞에 앉았다.
“사장님! 커피숍 언제까지 하실 생각입니까?”
“왜?”
“올 초에 강남에 사옥 마련했고 사장님 사무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난 커피숍이 더 편하거든. 사무실에 나가도 특별히 할 일도 없어. 커피숍 그만둘까 봐 그래?”
“저 이번에도 복학하지 않을 겁니다.”
현재 강성중은 2년 동안 복학하지 않고 있었다.
작년에 또 복학하지 않겠다고 하여 올해는 꼭 복학하는 것으로 약속하고 커피숍에서 알바를 계속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근데 올해도 복학하지 않겠다고?
“너 약속이 틀리다. 네 나이도 생각해야지 언제까지 복학을 미룰 거야? 당장 복학 신청하고 8월까지만 알바하고 9월부터 학교 다녀.”
“저 인생의 진로를 결정했습니다.”
“뭐로?”
“너튜버로 나갈 겁니다. 제가 좋은 대학 다니는 것도 아니고 지방대라 대학을 졸업해도 요즘 취직하기도 힘듭니다.”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학벌이 얼마나 중요한데. 대학 다니면서 너튜버 해도 충분하거든. 대학 다니면서 해.”
“꼭 대학을 나와야지만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괜히 비싼 등록금 내고 시간 낭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장님 말씀을 들어보고 영상 조회 수를 보니 제가 갈 길은 너튜버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 일이 제 적성에도 맞고 재미있습니다. 너튜버로 성공할 겁니다. 사장님 말씀처럼 지금 너튜브가 초창기라 자리 잡기가 쉽기에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왜 내가 한 말을 가지고 물고 늘어지냐?
난 대학 다니면서 해도 된다는 의미였는데. 미나도 그렇고 아이노도 그렇고 강성중도 나 때문에 인생이 바뀌는 건가?
나 아니었으면 대학 졸업해서 직장에 취직하여 평범한 삶을 살았을 텐데. 솔직히 한국에서 지방대 나와서 샐러리맨으로 성공하기는 힘들지.
성공은 일류대 출신들이 다 차지하니까.
그걸 아니까 하지 말라고 하기도 그러네. 너튜버도 잘하면 남들 못지않게 성공할 수 있으니까.
자기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게 좋기는 하지. 요즘 보면 영상 올리는 거에 재미를 붙이기는 하였다.
“네 인생이니까 네가 결정하고 책임져야겠지. 다시 한번 신중히 생각해 보고 결정했다면 최선을 다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제 인생에서 사장님을 만난 것이 가장 큰 행운 같습니다. 사장님을 만나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습니다. 만약 사장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저는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이게 잘된 건지 아닌지는 나도 모르겠다.
강성중과 이야기를 끝내고 핸드폰을 들었다.
(손 마시요시입니다.)
“회장님! 저예요.”
(헤어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전화야?)
좋은 소식 전해주려고 하는 건데. 그냥 끊을까 보다.
“아이노 모델 하겠대요.”
(정말?)
“네.”
(빨리 결정했네.)
“제가 힘들게 설득했죠. 대신 모델료는 많이 주셔야 해요.”
(알았어. 섭섭하지 않게 줄게.)
“고맙습니다. 그리고 아이노가 한국에 온 김에 촬영했으면 하는데 가능할까요?”
(가능하지.)
“준비하려면 시간이 부족하지 않아요?”
(내가 말했잖아. 광고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고. 광고 시안은 다 나왔어. 모델 결정을 못 하고 있었던 것뿐이야. 이제 모델이 결정되었으니 나머지는 빨리 진행해야지.)
“다행이네요.”
(그럼 언제 촬영할 수 있겠어?)
“한국에서 광고 촬영도 해야 하니 6월이 좋겠네요.”
(알았어. 정확한 일정은 다시 통화하자고.)
“알겠습니다.”
* * *
오늘은 아이노 야외 촬영이 있는 날이라 커피숍 문을 닫고 모두 충북 음성으로 내려왔다.
다들 오랜만에 야외로 나와서인지 들떠 있고 기분들이 좋아 보였다. 그러고 보면 나도 이렇게 야외로 나온 적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뭐하느라 남들 다 가는 휴가 한 번 가 보지 못했네.
제일 신난 것은 강성중이었다.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촬영 준비를 하는 스텝들을 찍고 아이노를 집중적으로 촬영하고 있었다.
광고 촬영하는 영상을 촬영하여 나중에 너튜브에 올리려고 하는 거다.
사실 여기서 촬영하는 영상은 몇 초 밖에 안 되는데 이걸 촬영하기 위해 온 사람들만 20명이 되었다.
카메라부터 조명까지, 거기에 감독과 스탬들, 오찬식 사장과 우리 일행들. 다행히 인적 없는 야외라 촬영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촬영할 내용은 검을 들고 벌판을 달리다가 길을 잃은 듯 잠시 멈춰 서서 스마트폰으로 길을 찾고 다시 달리는 장면이었다.
나머지 실내 촬영은 며칠 뒤에 세트장에서 하기로 하였다.
긴장한 채 앉아 있는 아이노를 보았다.
게임 속하고 브로마이드에서 보던 의상을 입은 아이노가 너무 예뻤다. 분당에서 출발할 때부터 갈아입고 왔다.
“긴장돼?”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브로마이드 촬영할 때보다 더 긴장돼. 그때는 촬영 장소에 2명만 있었는데 지금은 몇 명이야? 이 사람들이 전부 지켜보는 거잖아.”
“신경 쓰이면 없다고 생각해.”
“그게 마음대로 되나?”
“막상 촬영 시작되면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거야. 내용도 달리는 게 전부이니까 잘할 거야.”
“나도 잘할 거야.”
바다 기획 오찬식 사장이 내 옆으로 왔다.
“모델이 긴장되나 봅니다.”
“그렇죠. 난생처음으로 촬영하는 거니까요. 촬영은 언제부터 시작 하나요?”
“30분 뒤면 가능할 겁니다. 감독이 모델을 보고 무척 흡족해하고 있습니다.”
감독은 CF 쪽에서 알아주는 감독이었다.
처음에는 무명의 모델을 기용한다고 하여 거절하였는데 오션에서 야심 차게 준비하는 핸드폰 광고이고 광고가 전 세계에 방송된다고 하니 욕심이 나는지 맡겠다고 하였다.
자신이 만든 광고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방송된다면 어느 감독이라도 욕심이 날 수밖에는 없을 거다.
감독이 아이노는 사진으로만 봤지 실제 보는 것은 오늘 처음이었다. 사진도 예쁘지만, 실물이 더 예쁘기는 하지.
“만족한다니 다행이네요.”
“모델을 보면 누구나 다 같은 생각을 할 겁니다. 저는 게임을 해 봐서 그런지 모델을 보면 이미지가 엘프 전사로 고정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감독에게 장면을 약간 바꾸자고 건의했더니 감독도 욕심이 이는지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바꿔도 되겠습니까?”
“어떻게요?”
“원래 장면은 달리기만 하는 건데 임팩트를 주기 위해 달리다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장면도 추가하자고 합니다. 그 장면을 밑에서 촬영하면 더 멋있을 거라고 합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다칠 수 있잖아요?”
“그렇게 높은 곳은 아니고 1.5m 정도 높이고 밑에다가 충격 흡수제를 깔아 넘어지더라도 다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실제는 그 정도 높이지만 광고 보는 사람들은 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것으로 보이도록 할 겁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생각해 보니 달리기만 하면 밋밋하기는 하겠다. 엘프 전사이기에 강인한 장면도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았다.
“괜찮네요. 물어볼게요. 다른 건 더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