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이럴 줄 알았다. 한국 공무원들은 아예 일을 하지 않으면 않았지 책임지고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거다. 앞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미다.
떡고물이 있다면 발 벗고 나서겠지만 자신이나 어르신은 이번 외화 은행 인수에 온 국민들의 눈이 쏠려 있기에 아무런 잡음이 생기지 않게 인수를 추진할 생각이라 이들에게 줄 떡고물이 없었다.
“저도 국장님 혼자서 진행하는 것은 부담이 있을 것 같아 조만간에 금감원, 외화 은행 인사들도 만날 겁니다. 어차피 매각 건은 3개 기관이 협의하여 결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진짜 어르신이 외화 은행을 인수할 마음이 있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조만간에 정식으로 인수 제안서를 제출할 계획입니다. 그럼 정부에서도 공식적인 의견을 밝혀야 할 겁니다.”
“인수 대상자가 나오면 심사하고 합당한 자격이 있다면 협상을 시작해야겠지. 다만 시간은 좀 걸릴 수도 있을 거야.”
“당연히 그래야겠죠. 하지만 지금 외화 은행이 심각한 상황이 아닙니까? 시간을 끌다가 외화 은행이 더 어려워지게 되면 오히려 정부가 비판을 받을 수가 있을 겁니다. 이런 일은 속전속결로 끝내는 것이 좋을 겁니다.”
고개를 저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너무 서두르면 졸속으로 처리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가 있어. 순리대로 풀어나가야지.”
“상황이 상황인지라 때로는 예외가 있는 법입니다. 정부에서 올가을쯤에 IMF를 졸업한다는 발표를 할 예정이 아닙니까? 그럼 외화 은행도 깨끗이 마무리되어야 의미가 있을 겁니다. 시한폭탄을 안고 있으면 IMF를 졸업했다는 의미가 퇴색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외화 은행 폭탄이 터진다면 공염불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지. 무슨 말인지 잘 알았고 일단 금감원과 외화 은행 관계자들하고도 만나 이야기해 보게. 그 이후에 정식으로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고 그럼 나도 그때 나서도록 하겠네.”
“알겠습니다.”
* * *
아침에 커피숍에 출근하여 커피를 미시며 스마트폰 테스트를 하고 있었다.
아이노는 배상도와 신상철과 같이 게임을 하고 있었고 강성중은 게임을 촬영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테스트해 보는데 내가 프로그램을 잘 개발했는지 에러를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하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소스를 보면서 확인한 것만 두 번이나 되는데. 거의 완벽하게 개발했다고 할 수 있었다.
“사장님! 그게 뭡니까? 오션팟 새로운 버전입니까?”
어느새 다가온 강성중이 스마트폰을 보며 물었다.
“핸드폰이야.”
내가 농담하는 줄 알고 전혀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게 무슨 핸드폰입니까? 유치원생들도 믿지 않을 겁니다.”
진짜인데. 말해 줘도 안 믿네.
“난 사실대로 말한 거고 믿고 안 믿고는 네 자유이지. 게임 촬영은 다 한 거야?”
“네. 그렇습니다.”
“아이노 동영상 올렸어?”
“네. 그저께 저녁에 올렸는데 반응이 장난이 아닙니다. 올린 지 얼마 안 되어 조회 수는 많지 않지만, 댓글 창이 난리가 났습니다. 댓글들을 보면 다들 믿기 힘들다는 반응이며 저를 무척 부러워합니다. 자기들도 아이노랑 같이 게임해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댓글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노랑 같이 게임 하거나 보고 싶은데 촬영 장소가 어디냐? 한국이냐? 핀란드냐? 한국이라면 당장 달려갈 테니까 제발 어디인지 장소를 알려 달라고 합니다. 근데 어떤 댓글을 보니 아이노가 한국에 있으며 자신이 직접 봤는데 여신을 본 것같이 너무 예뻤다는 글도 있지만 그건 그냥 거짓으로 쓴 것 같습니다. 그 댓글에 아이노를 본 장소가 어디냐고 알려 달라는 댓글들도 아주 많았습니다.”
당연히 부럽겠지. 나라도 그랬을 거다.
순간 어제 오션폰 개발자들이 떠올랐다.
내가 어제 서머위즈 워 게임을 거론했고 직접 아이노를 봤으니까 팀원 중의 한 명이 달았을 수도 있었다.
“어디서 봤다고 답글 달았어?”
“안 달았습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신동환이 들어왔다. 오늘은 왜 또 왔지?
“성중아! 무서운 아저씨 왔다. 얼른 가라.”
내 말에 고개를 돌리다가 신동환을 보고 재빨리 주문대로 달려갔다.
잠시 후 커피 컵을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자주 오시네요.”
“안녕하십니까? 제가 자주 오면 안 되는 겁니까?”
“손님인데 그럴 리가 있나요? 자주 오세요. 앉으세요.”
날 찾아오는 다른 손님들은 내가 커피를 무료로 대접하지만, 신동환은 올 때마다 바로 커피를 돈을 주고 산다.
갈 때는 한 잔 더 주문해 나가고. 그러니 반가운 유료 손님이지.
“네.”
자리에 앉자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다가 테이블에 있는 스마트폰을 보고 물었다.
“저건 뭐에 쓰이는 물건입니까?”
“핸드폰이에요.”
신동환도 내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고 관심 없는지 더 묻지는 않았다.
“어제 재경부 국장을 만났습니다.”
“외화 은행 때문에요?”
“네. 그렇습니다. 재경부 국장은 저도 알고 회장님과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던 자입니다. 미리 운을 띄우려고 만났습니다.”
“어르신은 확실히 결정하신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인수를 결정하셨고 그동안 외화 은행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재경부랑 금감원에서 승인해 줘야 인수가 가능할 텐데 국장 반응은 어떤가요?”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회장님과 친분도 있고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으면 반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회장님 전직과 신용 금고가 은행을 인수한다는 게 조금 걸리나 봅니다. 그래서 오션을 전면에 내세워 여론전을 펼 생각입니다. 오션 이미지가 좋아 오션이 부각하면 정부에서도 부담이 크지 않을 겁니다. 오션이 언론에 노출되면 기자들에게 연락이 많이 올 것이라 고문님이 미리 알고 계시라고 온 겁니다.”
인수 준비를 하는데 미리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사장님이 한 가지 알아야 할 게 외화 은행 인수자금은 오션 자금이 아니라 제 개인 자금이에요.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신동환은 지금까지 오션에서 투자한다고만 생각했었다. 워낙 거액이라 진민재 고문 개인 자산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다.
진성 그룹 계열사 인수도 진민재 고문 개인 자산으로 하기는 했지만, 부채 규모가 크기에 부채를 안고 인수하는 거라 실제 인수 비용은 많이 들지 않았기에 별생각은 없었다.
근데 개인 자산으로 1조 원가량을 투자할 수 있다니 놀랐다.
“고문님 개인 자본이라고요?”
“네.”
“그만한 자본이 있는 겁니까?”
“네.”
“그러면 오션을 내세우기가 좀 곤란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편법이기는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진성 계열사를 인수했던 것처럼 DS 자산 운용사에서 사모 펀드를 조성하여 고문님 개인 자산을 투자하시고 또한 오션 자금 일부도 투자하는 겁니다. 그럼 오션 자본이 투자되었기에 오션을 내세울 수가 있습니다. 아울러 회장님 자금도 사모 펀드에 투자하여 DS 자산 운용이 외화 은행을 인수하는 겁니다.”
그러면 될 것 같았다. 런스타도 사모 펀드 자본이었고 사모 펀드에 투자한 투자자들 전혀 상관하지 않았으니까.
“근데 상대는 재경부와 금감원인데 사모 펀드의 투자 주체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재경부와 금감원이라도 이유 없이 조사할 수는 없습니다. 설령 이상함을 느끼고 조사하여 사실 파악을 한다고 해도 문제 삼지 않을 겁니다. 제가 공무원들과 관계가 많아 잘 아는데 한국 공무원들이 생각보다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문제 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신동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실제 이전 생에서도 런스타가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헐값에 매각한 자들인데 투자 주체가 뭐가 중요할까?
“책임감이 없다는 게 우리 입장에서 더 좋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네요. 알았어요. 그렇게 하기로 하고 인수 의향서는 언제 제출할 건가요?”
“제가 이번 주는 금감원하고 외화 은행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반응을 본 후에 2주 후에 제출할 겁니다.”
한동안 인수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다.
“알았어요.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가 보고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신동환이 가자 핸드폰을 들었다.
(염중섭입니다.)
“안녕하세요?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고문님!)
“다름이 아니오라 이번에 제가 외화 은행을 합작해서 인수하려고 하는데…….”
상황 설명을 하였다.
“그래서 사모 펀드를 조성하면 1억 원 정도만 오션에서 투자했으면 해서요.”
(1억 원 정도로 되겠습니까? 오션을 앞에 내세우려면 금액이 더 높아야 하지 않습니까?)
“사모 펀드가 인수하는 거라 투자한 주체나 투자 규모를 밝히는 것은 아니라서 상관은 없어요. 투자했다는 것이 더 중요하거든요.”
(알겠습니다. 말씀하시면 바로 투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면 언론에서 오션으로 연락이 많이 올 거예요. 그럼 투자 규모는 밝히지 말고 외화 은행 인수에 적극적이라는 것을 기자들에게 어필해 주었으면 해요.”
(알겠습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다 했고 나머지는 신동환이 알아서 하겠지.
전화를 끊자 강성중이 다가왔다.
“사장님! 저분은 왜 또 오신 겁니까? 하던 일 다 끝난 거 아닙니까?”
“그 일은 끝났는데 새로운 일이 또 생겼거든.”
“또 온다는 겁니까?”
“그렇겠지. 왜 무서워?”
“당연하지 않습니까? 저분만 오면 괜히 주눅이 듭니다.”
해코지할 일은 없는데 강성중이 과민 반응을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너무 주눅 들지 마.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으니까. 배고픈데 밥 먹으러 갈까?”
“어디로 가실 겁니까?”
“어제 아이노 감자탕 맛있다고 잘 먹더라. 감자탕 먹으러 갈까?”
“저는 상관없습니다.”
“갈 때 비디오카메라 가지고 가서 아이노 먹는 거 촬영해 봐. 얼마나 맛깔나게 먹는지 영상 올리면 대박일 거야.”
“알겠습니다.”
커피숍을 나온 신동환은 바로 성북동 회장님에게 향하였다.
황규천과 차를 마시며 어제 구재석 재경부 국장과 만난 이야기를 하였다.
“그래서 재경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하지만 금감원이 걱정됩니다.”
“금감원도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최재성 부원장이 깐깐하다고 합니다.”
금감원이 하나의 조직이기는 하지만 여느 조직들과 같이 그 안에는 여러 파벌들이 존재한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최재성 부원장이지만 금감원 안에서 실세도 아니고 파워도 약하다.
실제 실무는 그 아래 직책인 부원장보가 전부 처리하며 부원장보의 파워가 더 강하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부원장보인 오진석의 약점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험으로만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걸 쓸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사채업을 하다 보면 정부 당국인 재경부와 금감원에 대해 항상 예의 주시하며 신경 써야 하기에 초급 간부 때부터 그들의 비리를 수집하였다.
나중에 이들이 고위급이 될 수도 있고 실제 실무를 담당하는 자들이라 약점을 잡아 놓으면 편하였다.
부원장보인 오진석은 중견 간부일 때 치명적인 약점을 잡았고 지금까지 사용할 일이 없어서 자료를 금고에 보관만 하고 있었다.
만약 오진석이 반대하고 나서면 그 자료를 활용할 생각이었다. 그자 외에도 수많은 간부들의 비리 자료도 있었다.
별로 사용하고 싶지 않아 제발 사용하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