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커피숍을 나온 신동환은 바로 성북동으로 향하였다.
“지금 진민재를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그놈이 뭐래?”
“진민재가 하는 말이…….”
나누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하였다.
이야기를 다 들은 황규천이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그놈이 그랬다고? 내가 어리석지 않으면 받아들일 거라고?”
“네. 그렇습니다.”
“거부하면 졸지에 어리석은 노인네가 되는 거네.”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은 아닙니다.”
“그놈은 뭘 그리 자신하는 건데? 뭔가 믿는 구석이 있나?”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그런 거 같습니다. 확신에 차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회장님께 제안한 것도 나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겠지. 합작해 투자하자는 거니까.”
“인수 후에 경영권을 아가씨에 맡긴다고 했으니 인수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넌 아직도 사람을 믿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람 마음이 한결같지는 않아.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게 사람 마음이야.”
신동환 자신도 절대 사람을 믿지 않는다. 근데 자신은 지금 진민재를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지금까지 진민재 고문을 지켜본 바로는 사업 욕심은 있지만, 한편으로는 욕심이 전혀 없는 사람 같았다.
보통 욕심이 가득한 자는 느낌부터 다르다. 근데 진민재 고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 경우는 두 가지다.
진짜 욕심이 없거나 아니면 철저하게 연기를 하는 경우다. 하지만 진민재 고문 입장에서 연기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진민재 고문의 말을 믿었던 거다.
“저도 사람을 믿지 않지만 진민재 고문은 다릅니다. 믿을 만합니다.”
“정말 진민재를 믿고 있다고?”
“네. 제가 본 진민재는 뭐라고 할까? 설명하기가 힘든 인물입니다. 야망이나 욕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욕심이 없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귀찮아하는 것도 보입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하기보다는 남에게 맡기는 것을 선호하고 지켜보는 타입입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러다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심하게 찍혀야 정신을 차리겠지.”
“제가 보기에는 모든 것을 해결할 자신감이 있다는 것처럼 보입니다. 천재가 아닙니까? 제가 생각할 수 없는 모르는 것이 있는 겁니다.”
“그놈 일을 몇 번 해 주더니 그놈에게 반한 거야?”
멋쩍게 웃었다.
“그런가 봅니다.”
“상대를 믿어도 앞일은 모르는 법, 만약을 대비해 지분에서 그놈보다 우위에 서야 해.”
“당연합니다.”
황규천 자신도 미치도록 인수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전 재산을 투자하는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 한번 해 보자. 그전에 자네가 좀 더 외화은행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
힘차게 대답하였다.
“알겠습니다.”
* * *
커피숍에 출근해 커피를 마시며 컴퓨터를 켰다.
오션에 접속해 뉴스를 보는데 안타까운 기사가 보였다. 오늘 새벽에 장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였다.
대한민국 경제계의 큰 별이 떨어졌다.
대략 언제쯤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정확한 날짜는 몰랐다. 인생무상이네. 조문은 가 봐야겠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송파에 있는 병원 장례식장 앞에 왔는데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기자들도 많았고 조문객들도 많았고 따라온 수행원들도 많아 입구 앞은 북새통이었다.
장례식 입구에는 남자들이 서 있어 출입하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근데 들어갈 수 있으려나?
내 얼굴이 한국에 알려진 것도 아닌데.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어 사람을 헤치고 앞으로 나갔다.
입구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남자들이 내 앞을 막았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회장님 조문하러 왔습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오션에서 왔습니다.”
나를 위아래를 한번 쳐다보고서는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오신 것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지금 조문객들이 많이 몰려 안이 매우 혼잡합니다. 마음만 받겠으니 돌아가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내가 젊으니까 별 볼 일 없는 인물이라 생각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실랑이하는 것도 그렇고, 한다고 들여 보내줄 것 같지 않아 일단 뒤로 물러났다.
어떻게 하지? 현도가에 아는 사람은 장 회장과 아들 장서필밖에 없는데. 장서필은 상주라 전화해도 받지 않을 것 같고.
이사들은 몇 명 알지만, 이사는 좀 약한데. 아! 현도 전자 임정균 사장을 알지. 전에 만났으니까.
또 나와 장 회장과의 관계를 잘 아니까.
핸드폰을 꺼내 검색해 보았다.
‘여기 있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계속 갔지만 받지를 않았다. 지금 장례식장 안에 있나? 그래도 전화는 받아야지. 받지를 않아 끊었다.
한쪽 구석에 가서 장례식장 입구를 바라보았다.
뉴스에서 많이 보던 재계와 장계 인물들이 계속 들어가고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보며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있다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신호가 몇 번 울리다가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오션의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뉴스 보고 전화하신 겁니까?)
“네. 제가 지금 장례식장 앞에 왔는데 들어가지를 못하네요.”
(그렇습니까? 조문객들이 많이 와 통제를 하고 있어서 그럽니다. 제가 지금 장례식장에 있으니 바로 나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전화를 끊고 입구 앞으로 가자 잠시 후에 임정균 사장이 나왔다.
“여기입니다.”
임 사장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들어가시지요.”
“네.”
임 사장하고 같이 들어가니까 아까 날 막았던 남자들이 제지하지 않았다.
안에도 사람들이 꽤 많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 것을 보면 장 회장님 가는 길은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장서필이 있나 살펴보았지만 없었다. 온 김에 만나고 갔으면 좋았을 텐데.
웃고 있는 장 회장의 사진을 잠시 바라보았다. 120살까지 살면서 일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제는 일 그만 생각하시고 편히 쉬세요.
향을 피우고 절을 하였다.
절을 하고 나오자 임 시장이 기다리고 있다가 말을 하였다.
“식사하러 가시죠.”
들어오면서 식당을 보니 거기도 사람들이 아주 많았고 혼자서 식사하는 것도 처량할 것 같아 그냥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괜찮아요. 그럼 저는 가 볼게요.”
“알겠습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 *
커피숍으로 돌아와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진민재입니다.”
(나야 손 회장.)
“안녕하세요? 회장님!”
(뉴스 봤어. 큰 별이 졌어.)
“일본에도 기사가 났어요?”
(그럼. 한국 재계 1위 회장이잖아.)
“그렇군요. 저도 방금 조문하고 오는 길이예요.”
(하긴 자네가 장 회장하고 친분이 좀 있지.)
“네. 마음이 울적하네요.”
(그렇겠지. 그나저나 그 스마트폰 언제 개발되는 건가?)
“5월까지는 개발이 완료될 것 같고 10월 1일에 출시할 예정이에요.”
(5월에 개발이 끝난다고?)
“네. 그러니까 회장님도 빨리 준비하셔야죠.”
(내가 누구야? 손정우야. 난 벌써 준비 끝났지.)
“보다폰 인수했어요?”
(그럼! 작년 12월에 스마트폰 보고 일본으로 돌아와 바로 인수팀을 꾸려 장내에서 보다폰 주식을 매수하였고 보다폰과 협상하여 3일 전에 인수 계약했어.)
진짜 행동력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축하드려요.”
(다 자네 덕이지. 주가가 폭락하여 생각보다 저렴하게 인수했어. 신기한 게 뭔지 알아?)
“뭔데요?”
(작년, 그러니까 2000년 1월 초 자산 가치와 지금 자산 가치를 비교하면 자산 가치가 엄청나게 늘어났어. 따로 돈을 번 것도 아닌데 말이야. 자산 가치만 늘어난 게 아니라 작년에는 없던 보다폰까지 생겼다는 거야. 이게 다 자네 조언에 따라 주식을 고가에 매도하여 저가에 매수한 결과지.)
이 이야기는 몇 번이나 하는 거야? 또 생색내기도 뭐했다.
“보다폰을 인수하셨다니 9월까지 준비 잘하시고요.”
(알았어. 빨리 10월 왔으면 좋겠어. 개발 완료되면 연락해 줘. 한국으로 갈 테니까.)
굳이 안 와도 되는데. 오지 말라고 해도 오겠지.
“알았어요. 그리고 보다 폰을 인수했으니 핸드폰 통화 테스트로 부탁할 수도 있어요.”
(말만 해. 무조건 들어줄 테니까.)
“네.”
* * *
“사장님! 이거 보셨습니까?”
“뭐를?”
“제가 지금 서머위즈 워 게임 게시판을 보는데 직접 와서 보십시오.”
자리에서 일어나 강성중한테 갔다.
“뭔데?”
“이것 보십시오.”
게시판을 보다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게시판에는 아이노의 브로마이드를 사고 팔겠다는 글들과 에피소드를 서로 교환하자는 글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같은 에피소드를 두 장 가지고 있으면 소용이 없을 테니 다른 에피소드와 교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기는 하였다.
그나저나 이걸 사고팔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말이기는 한데.
“인기가 많나 보네.”
“그렇습니다. 팔겠다는 글보다는 사겠다는 글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특히 에피소드 7번은 정말 구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게임 많이 하면 당첨될 수 있을 텐데 굳이 돈 주고 사나?”
“이게 당첨 확률이 생각보다 극악합니다. 저도 임 하면서 지금까지 이벤트 응모권을 120장을 받았는데 전부 꽝이었습니다.”
당첨 확률을 1%로 했기에 120장이면 하나 정도는 당첨되어야 하는데.
“네가 운이 없나 보네.”
“저만 그런 게 아닙니다. 당첨 확률이 낮다고 욕하는 글들도 많습니다. 당첨된 어떤 사람들은 300장 받아서 겨우 하나 당첨되었다고 합니다.”
옆에 있는 신상철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당첨 확률이 1% 아니었어?”
“나도 그런 글을 보고 며칠 전에 확인해 봤는데 1%가 아니라 0.3%로 되어 있었어. 내가 계산을 실수했나 봐.”
0.3%니 당첨되는 게이머들이 적지. 그 와중에 당첨되는 게이머들은 진짜 운이 좋은 거네.
“네가 그런 실수도 다 하고 웬일이야?”
“그러게. 나도 왜 그런 실수를 했는지 모르겠어.”
“수정은 한 거야?”
“아직.”
“왜 안 했어?”
“하려다가 생각해 보니 당첨 확률이 낮을수록 아이노 브로마이드 가치가 높아질 것 같아서. 지금이야 이벤트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당첨되는 사람이 적지만 시간이 지나면 당첨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날 거야. 그래서 그냥 놔두었어.”
하긴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근데 에피소드 7은 더 확률이 낮은 거야?”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에피소드 7은 0.1%더라.”
“어떻게 계산을 했길래.”
“나도 잘 모르겠어. 어떻게 확률 계산이 잘못되었는지. 난 제대로 한 것 같은데.”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그것도 수정 안 한 거지?”
“응.”
“이거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다 그런 거지?”
“그렇지.”
“난리가 나겠네. 아무래도 수정하는 게 좋겠어. 물론 무료 이벤트기는 하지만 브로마이드 얻으려고 시간과 노력을 썼는데 확률이 낮으면 그건 사기나 마찬가지니까.”
“그렇겠네. 알았어. 수정할게.”
근데 네이브에서도 잘 알 텐데 왜 수정 요구를 하지 않았지? 신상철과 같은 생각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당첨 확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건가? 모르면 그냥 지나가는 거지.
핸드폰이 울려 받았다.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도련님! 저 진성 금속의 박호열입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다름이 아니오라 4월 5일에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떠나네요.”
(네. 도련님이 지시한 것이니 빨리 처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천호균 씨도 빨리 가서 끝내고 싶어 합니다.)
빨리해서 나쁠 것은 없지. 일찍 매입할수록 저렴하게 매입할 수 있으니까.
“알았어요.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잘 준비하시고요.”
(알겠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