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다.
자기들이 나가는 것이 아니니까 날짜를 그렇게 잡았네. 그렇다고 잘못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연말이라 그냥 시간 보내는 것보다는 검사를 진행하게 하는 것이 잘한 일이지.
“준공 검사는 이상 없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사옥으로 사용하려던 건물이라 설계부터 신경 써서 진행해 왔기에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내년 초에는 이상 없이 사용 승인 허가가 떨어질 겁니다.”
“그래야죠.”
“그리고 준공 검사가 끝나면 앞으로 건물은 어떻게 관리하실 생각입니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직접 관리하는 방식이고 두 번째는 관리 업체를 지정하여 위임하는 겁니다. 요즘은 직접 관리해 신경 쓰는 것보다는 관리 업체에 위임을 많이 합니다. 그게 더 편합니다.”
내가 생각해도 그게 편할 것 같았다.
“위임하는 게 좋겠네요. 혹시 전무님 아시는 믿을 수 있는 관리 업체가 있나요?”
“하는 일이 일이다 보니 아는 관리 업체는 많습니다. 물론 제가 소개해 드리겠지만 고문님이 따로 알아보시고 결정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관리 업체도 전부 규모가 다 틀리기에 이왕이면 규모가 큰 관리 업체를 선정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내년 초에는 준공 검사가 끝나고 1월 중에 사용 허가가 나올 테니 빨리 알아보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알았어요. 그래야겠네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내년 1월에 사용 승인이 나오면 바로 나머지 잔금도 부탁드립니다.”
잔금 때문에 온 건가? 미리 준비하라고 알려 주는 것 같았다.
“물론이죠. 바로 보내드릴게요. 그리고 관리 업체 제일 믿을 만한 한 곳만 소개해 주세요.”
“제가 관리 업체에 말해 고문님께 연락하라고 하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
“네.”
윤성환 전무가 가자 핸드폰을 들었다.
(염중섭입니다.)
“안녕하세요?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고문님!)
“다름이 아니오라 역삼동 사옥이요. 다음 주부터 준공 검사를 한다고 하네요.”
(벌써 말입니까?)
“그러게요. 그래서… 빌딩 관리 업체를 빨리 알아봐야 할 것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제가 믿을 만한 곳을 알아보겠습니다.)
“부탁해요.”
전화를 끊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식인 서비스 등 좋은 것은 네이브에만 알려주고 염 대표에게는 일거리만 주어 염 대표에게 미안했다.
* * *
2000년이 지나고 2001년 새해가 되었다.
늘 그랬듯이 새해 2001년의 키워드를 뭐로 정할지 고심해 보았다.
작년에는 끊임없이 더 나간다는 의미로 전진 또 전진이었고, 그 키워드답게 계속 전진하여 사옥도 인수하였고, 현도 전자 사업부 두 개와 진성 계열사 4개를 인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올해는 TFT-LCD 사업도 인수할 예정이고 스마트폰도 출시할 예정이고 작년에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는 의미로 올해 키워드는 비상이 어울릴 것 같았다.
그래 비상으로 결정하자.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진성 어페럴도 새롭게 시작할 테고 진성 금속도 진성 무역도 진성 리조트도 새로 시작하는 만큼 전부 하늘 높이 비상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역삼동 사옥은 연말부터 준공 검사가 들어갔다.
검사가 14일 정도 걸린다고 하니 1월 10일 이전에 끝이 나고 이상 없으면 승인 허가가 날 것이다.
그럼 바로 인테리어 공사를 들어가고 공사가 끝나면 바로 입주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최상층 45층에 내 전용 사무실도 하나 마련할 예정이라 커피숍을 계속 운영할지 말지 고민이었다.
정리하자니 그동안 정이 들어 섭섭하고 나의 그럴듯한 사무실이 생겼는데 커피숍에 있는 것도 그렇고 결정하기가 힘들었다.
내가 사무실에 나가 특별히 할 일도 없는데 커피숍에서 편하게 있는 것도 좋기는 하였다. 아니면 서로 번갈아 가도 되지 않을까?
커피숍에 출근하여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장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강성중 말에 고개를 돌리니 40대 후반의 남자가 서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남자가 다가오더니 넙죽 고개 숙여 인사하였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안시스 박병관입니다.”
염 대표가 빌딩 관리 업체 여러 곳을 알아봤더니 안시스가 평이 좋고 괜찮다며 나보고 그곳 사장을 직접 만나 보고 최종 결정하라고 하여 커피숍으로 오라고 했었다.
“안녕하세요? 앉으시죠.”
“네.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자 가방에서 자료를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저희 회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보시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네.”
자료를 들어 보았다.
관리 사무 업무를 비롯해 시설 관리 업무, 보안 경비 관리 업무, 미화, 주차 관리 업무까지 다하였다.
한마디로 건물의 모든 관리를 전부 하는 것이다. 맡기면 편하겠네.
“보충 설명을 드리자면 저희 회사는 건물 종합 관리로 시설하자 보수, 유지보수, 인력 관리, 도급 파견 직원 관리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 건물 특성에 맞게 관리 방안을 수립하고 맞춤형으로 건물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여 건물의 자산 가치를 향상하는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순간 파견 노동자들 특히 청소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는 기사가 생각났다. 내 건물에서 일하는데 내가 그 기사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무슨 말인지는 잘 아니 설명하지 않아도 돼요. 대신 몇 가지 물어볼게요. 자료에 보면 안시스 직원들이 파견 나온다고 하였는데 시설 관리나 보안 경비들은 따로 일할 공간이 있는데 미화 관리 직원들 휴식은 어디서 하나요?”
“사실 미화 직원들은 휴식 공간을 마련하기가 힘들어 따로 없습니다. 주로 창고 같은 곳에서 휴식합니다.”
“휴식 공간을 만들어 주면 안 되나요?”
“건물주가 따로 공간을 마련해 주지 않기에 저희가 휴식 공간을 만들려면 사무실 임대료가 들어가게 됩니다. 특히 강남 쪽은 임대료가 높아 사실상 힘듭니다. 관리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한데 휴식 공간 임대까지 하게 되면 회사 운영하기가 벅찹니다. 그렇다고 관리비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입장도 아니라서…….”
회사의 사정이 있을 테니 이해는 갔다. 건물도 큰데 내가 편안하게 쉬도록 휴게실을 만들어 주면 되는 거지.
“이해해요.”
몇 가지 더 물어보고 대답을 들었다.
“알았어요. 시간 내주어 고맙고 연락 드릴게요.”
“저희 안시스를 선택하시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건물 가치를 높이는데 일조할 겁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내 건물을 위해서 일하는데 편히 쉴 수 있는 휴게실은 당연히 만들어 줘야지.
앞으로 계획은 건물에 구내식당도 만들 건데 직원 복지 차원에서 음식 질을 높이고 회사 직원들은 전부 무료로 이용하게 할 생각이었다.
또한, 파견 나오는 관리 직원들도 당연히 무료로 이용하게 해야지.
건물이 커서 많은 회사들이 입주하겠지만 그들에게는 적당한 비용을 받고 이용할 수 있게 할 생각이었다.
다시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택배 기사가 들어왔고 강성중이 택배를 받았다.
“사장님! 택배 왔습니다.”
뭔지 알겠다.
아이노가 게임 모델 사진을 핀란드에서 촬영하고 사진 파일을 이메일로 보내와 네이브에서 브로마이드를 제작하였고 그 샘플을 보내준 거였다.
“성중아 그거 아이노 브로마이드야.”
“네? 정말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궁금해하고 있었습니다.”
강성중이 막 잡아 뜯으려고 하였다. 무식하게 힘으로 하냐? 인간은 도구를 사용해야지.
“조심히 열어. 가위로 해.”
“알겠습니다.”
주방으로 뛰어나 가위를 가지고 상자를 열었다.
7개 에피소드로 촬영하였고 2장씩 보내 총 14장이었다.
브로마이드를 보는 순간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강성중도 배상도도 신상철도 전부 아이노 해바라기라서 나보다 더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진짜 환상적으로 촬영하였고 귀가 뾰족한 귀가 아니라는 것만 빼고는 정말 엘프처럼 너무 예뻤다.
“사장님! 사진 정말 환상적으로 잘 나왔습니다.”
“그러게.”
“저 한 장 가져가도 됩니까?”
“나도.”
강성중에 말에 신상철도 가져가겠다고 하였다. 배상도도 그러고 싶은데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한 장 정도는 가져가도 되겠지.
“한 장만이야. 상철이도 배 대리님도 한 장만 고르세요.”
내 말에 신상철도 배상도도 브로마이드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고르고 있었다.
“사장님! 전부 마음에 들어 고르기가 힘듭니다. 에피소드 전부 7장 가지면 안 됩니까?”
“두 부밖에 안 왔는데.”
“더 보내달라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물어볼게.”
“감사합니다. 브로마이드 커피숍에 붙이겠습니다.”
“한번 붙여 봐.”
“네.”
셋이서 한마음이 되어 커피숍 곳곳에 브로마이드를 붙였다.
“어떻습니까?”
붙일 공간이 넉넉하지 않아 에피소드별로 7장만 붙였다. 붙이고 보니 괜찮았다.
“좋은데.”
“제가 봐도 좋습니다. 아이노 너무 예쁘지 않습니까?”
아이노는 원판이 워낙 좋다 보니 메이크업을 간단히만 하는데 사진 속의 아이노는 풀메이크업을 해서 전혀 색다르고 진짜 예뻤다.
복장도 아이노가 입으니까 정말 잘 어울렸다.
“메이크업의 힘이지.”
“원래 예쁘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아이노 언제 한국에 옵니까?”
“봄에 오는 게 좋겠지.”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그래.
핸드폰을 들었다.
(이주희입니다.)
“안녕하세요?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세요? 고문님! 보낸 브로마이드 받으셨어요?)
“네. 방금 받았어요.”
(너무 예쁘죠? 직원들도 전부 사람이 아니라 진짜 엘프라도 해요.)
“그러네요.”
(직원들이 브로마이드 보고 하는 말이 PC방에 전부 보내자고 해요. PC방에 붙여 놓으면 눈에 확 띄어 관심 없던 사람들도 게임을 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여자인 제가 생각해도 그럴 것 같아요.)
“좋은 생각 같네요. 그렇게 하세요. 이제 브로마이드도 나왔으니 이벤트 시작해야죠.”
(네. 이번 주 금요일부터 시작하려고 해요. 게이머들이 관심 가지게 하려고 이벤트 공지를 하고 그곳에 에피소드 7장의 사진을 올려놓을 거예요.)
“괜찮네요. 다른 국가들도 전부 브로마이드 만든 거죠?”
(네. 전부 사진 파일을 보내 오션 지사별로 만들었어요. 제가 오션 본사에 확인했고요.)
“이벤트에 당첨된 사람들 이상 없이 발송하도록 준비하시고요.”
(그럼요.)
“그리고 브로마이드 3부만 더 보내주실래요?”
나도 집에 붙여 놓을 생각이었다.
(그럴게요.)
전화를 끊었다.
“성중아 보내준대.”
“감사합니다.”
좋아 어쩔 줄 모르는 강성중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그렇게 좋은가?
그때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진성 금속 박호열 사장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도련님!”
“안녕하세요? 어쩐 일로 오셨어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일단 앉으세요.”
“네.”
자리에 앉았다.
“지난번에 도련님이 말씀하신 우즈베키스탄 리튬 광산 말입니다. 알아봤는데 매입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이야? 그건 무조건 매입해야 하는데.
“왜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알아보니 그 땅이 정부 소유입니다. 매입 의사를 타진했더니만 팔지 않겠다고 합니다. 현지 사람들 말로는 우즈베키스탄은 개발하지 않은 땅이 많은데 대부분이 정부 소유라 그냥 두고 있다고 합니다. 그 땅을 매입하려면 정부 쪽에 잘 아는 인사를 통해야만 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