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들어오다가 일어서는 나를 보고서는 미소 지으며 손을 들었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한국에는 언제 들어오셨어요?”
“어제 입국했어.”
배상도와 신상철, 강성중이 손 회장에게 인사하였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영어로 화답하였다.
“만나서 반가워.”
“앉으시죠.”
“그래.”
자리에 앉았다.
“귤차 드릴까요?”
“좋지.”
강성중에게 귤차를 부탁하였다.
“오시려면 연락하고 오시지 그랬어요?”
“자네는 항상 여기에만 있잖아.”
“아니거든요. 저 지금 어디 가려고 했어요. 1분만 늦게 오셨으면 헛수고하실 뻔했다고요.”
“안 했잖아. 그럼 됐지.”
“한국에는 왜 오신 거예요?”
“일이 있으니까 온 거지. 왜 내가 온 게 반갑지 않아?”
“물론 반갑죠. 일은 다 보신 거예요?”
“어제 왔는데 다 봤겠어?”
“그럼 일이나 다 보시고 나중에 오시지 그랬어요.”
“자네하고 나하고 끈끈한 정이 있는데 그러면 섭섭하지.”
손 회장이 원래 능청스러웠나? 오늘은 유난히도 그러네.
강성중이 귤차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맛있게 드십시오. 회장님!”
“고마워.”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이 맛이야. 왜 일본에서 마시는 귤차는 이 맛이 나지 않는 거지?”
“재료가 틀리니까 그렇겠죠. 우리는 제주도 귤을 사용하거든요.”
“일본 귤차도 제주도산이라고 했어.”
“기분 탓이겠죠.”
“그런가?”
다시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 고맙다는 인사하러 온 거야.”
“오션팟 2 매출이 상승해서요?”
“그것도 있지만 자네 조언에 따라 올해 1월에 주식을 매도했잖아. 정말 자네 말처럼 2월부터 버블이 꺼지면서 주가가 무섭게 하락하더라. 무려 90%가 빠졌어.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면 자산의 90%나 손해 볼 뻔했어. 자네 때문에 90억 달러의 손해를 막을 수 있었지. 그러니 고마울 수밖에.”
세상에는 아무리 현명한 조언을 해 주어도 듣는 사람과 듣지 않는 사람이 있다.
특히 자신이 성공했다고 자부하거나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을 믿고 남의 조언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손 회장도 충분히 그럴 위치에 있는 사람인데도 내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따랐다.
내가 이 말을 하더라도 내 말을 믿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믿어서 의외라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손 회장은 타고난 감각이 뛰어난 승부사 기질이 다분하였다. 분석이나 자료에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을 믿고 투자하는 성격이었다.
그게 대부분 투자 성공으로 이어졌다.
“제가 조언을 하기는 했지만, 결정은 회장님이 하신 거예요. 근데 무얼 믿고 제 말을 따른 거였어요?”
“자네는 천재잖아. 천재가 하는 말인데 범재인 내가 따라야지. 천재 앞에서 재롱부릴까?”
대답이 너무 허무하였다.
“천재라고 모든 분야에 걸 다 천재는 아니죠. 자기 전공 분야에서만 천재죠. 그 생각은 너무 위험한데요.”
“아니야. 내가 보기에 자네는 경제를 보는 눈도 천재급이었어. 자네가 말할 때 그냥 단순히 조언하는 수준이 아니라 확신하는 듯한 표정이었어. 그 말은 단순히 자네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믿고 있다는 말이지. 난 자네의 분석에 배팅한 거야. 물론 내가 봐도 버블이 비정상적으로 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손 회장은 내가 보기에도 여러모로 운이 참 좋은 사람 같았다. 이번 생에서는 나를 만난 것도 큰 행운이기도 하지.
“하여튼 회장님은 운이 좋으신 분 같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자네를 알게 되었으니까.”
“이제 슬슬 주식을 다시 매수해야 하지 않아요?”
“할 생각이야. 12월부터 소프트 뱅코 주식을 다시 매수하기 시작했어.”
“보다폰은 언제 매수하시게요?”
“보다폰도 매수해야 하는데 주가가 저렴한 매력적인 주식들이 많아 고민이야. 자네가 한다는 핸드폰 사업 언제 시작하는 거지?”
“어쩌면 내년 하반기에는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보다폰을 내년 상반기까지 인수해야 한다는 건데. 알았어. 고민해 볼게. 그리고 자네 덕분에 소프트 뱅코 주식을 거저 얻게 되어서 고맙다는 인사로 오늘 저녁 살게.”
지금 오후 1시인데 저녁 살 거면 저녁때까지 계속 있겠다는 말인가?
“여기 계속 있으려고요?”
“응. 자네랑 이런저런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아참 어디 간다고 했지? 그럼 자네 볼일 보고 저녁에 만나지.”
이제 손 회장도 스마트폰에 대해 알 때가 되지 않았을까?
내가 핸드폰 개발한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는데 스마트폰을 보더라도 어디 가서 소문낼 만한 분도 아니고 스마트폰을 보게 되면 보다 폰을 더 빨리 인수하려고 하겠지.
아마 다른 주식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당장 보다 폰 주식부터 매수할 거다.
“회장님! 바쁘지 않으면 저랑 같이 가실래요?”
“어디 가는데?”
“오션팟이요. 보여 드릴 게 있어서요.”
“뭘 보여 주겠다는 건데.”
“가 보시면 알아요.”
“그럼 같이 가지. 오션팟에 한번 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손 회장과 같이 오션팟에 도착하여 바로 심 과장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갔다.
보안을 위해 여러 보안 장치를 설치했고 항상 문을 잠그고 있기에 1층에서 전화하고 올라갔다.
4층에 도착하자 심 과장이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세요?”
옆에 있는 손 회장을 보고 어디선가 본 듯한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일본 소프트뱅코 손정우 회장님이세요.”
“아!”
그제야 기억이 났나 보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심용철입니다.”
손 회장이 영어로 화답하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손 회장님은 듣는 것은 좀 알아듣지만, 한국말은 못 하세요. 영어로 해야 해요.”
“알겠습니다. 일단 들어가시죠.”
“그러죠.”
안으로 들어가자 그 넓은 사무실이 난장판이었다. 좀 치우고 일하지. 정신 사나워서 일할 수 있겠나?
안에서 일하던 직원 3명이 나와 손 회장이 들어가자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나도 3명의 직원을 오늘 처음 보는 거다.
“인사해. 진민재 고문님하고 일본 소프트뱅코 손정우 회장님이셔.”
심 과장 말에 직원들이 놀라며 얼른 인사하였다.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부담 갖지 마시고 일하세요. 우린 조용히 이야기만 나눌게요.”
심 과장이 의자 두 개를 가져왔다.
“앉으시죠.”
“네.”
나와 손 회장이 앉았다.
손 회장이 사무실을 둘러보면 나에게 물었다.
“여기가 오션팟 개발하는 곳인가?”
“아니에요. 다른 거 개발하는 곳이에요.”
“자네가 개발한다는 핸드폰 말인가?”
“네. 맞아요. 조금 있으면 회장님이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생전 보지 못한 핸드폰을 보시게 될 거예요.”
“자네 소식 들었어. 현도 전자의 핸드폰 사업부를 인수했다며. 개발이 다 끝나 가는 건가?”
“잘하면 내년 상반기에는 개발이 끝날 것 같기는 해요.”
심 과장이 앞에 앉았다.
“지금 보시겠습니까?”
“당연하죠. 그거 보려고 왔는데요.”
“알겠습니다.”
심 과장이 일어나 저쪽에 있는 책상에 가서 스마트폰 하나를 들고 와서 나에게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이전 생에서 보던 아이폰 디자인이었다. 겉으로만 봐서는 다 개발이 끝난 것같이 보였다.
손 회장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이건 핸드폰이 아니라 새로 개발하는 오션팟인가?”
“아니에요. 이게 오션에서 개발하고 있는 신개념의 핸드폰이에요.”
놀란 눈을 하였다.
“뭐? 이게 핸드폰이라고?”
“네.”
“내가 봐도 되겠나?”
“네.”
핸드폰을 손 회장에게 건넸다.
건네받은 손 회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핸드폰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이게 무슨 핸드폰이야? 버튼도 없고 그냥 얇은 직사각형 모양뿐인데.”
“이리 주세요.”
핸드폰을 받아 전원을 켜자 화면에 여러 앱이 떠올랐다. 손 회장이 놀라면서 아무 말 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이렇게 해서 여기 전화기 모양을 손으로 누르면 화면이 바뀌면서 숫자가 나오죠. 이게 버튼을 대신하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키보드를 화면에 집어넣고 손으로 누르는 거죠. 그러니 버튼이 전부 필요 없는 거예요. 여기 익스플로러를 누르면 인터넷도 접속할 수 있어요. 그리고…….”
한동안 스마트폰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손 회장은 들으면서 계속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회장님이 보시기에 이 핸드폰이 출시되면 어떨 것 같아요?”
대답 대신 허탈한 듯 웃었다.
“역시 자네는 천재야. 누가 이런 핸드폰을 생각이나 할까? 생각하기도 힘들고 설령 생각했다고 해도 개발할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거야.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어.”
그러고 보니 아이폰을 처음 만든 스티븐 잡스도 대단한 인물이네.
“마음에 드세요?”
“그걸 말이라고 해. 이건 핸드폰의 혁명이야. 마치 휴대형 컴퓨터 같아. 이게 출시되면 분명 세계적으로 대 히트할 거야. 내가 장담해.”
“그러니까요. 이걸 일본에서 회장님이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내일부터 보다폰 주식을 매수해서 인수를 빨리해야겠네.”
내 예상이 맞았다. 손 회장의 행동력 하나는 알아주니까.
“네. 빨리 인수해서 이 핸드폰을 판매할 준비를 하세요.”
“알았어. 근데 이 핸드폰이 출시되면 다른 핸드폰 회사에서도 따라서 만들 테니 그전에 최대한 많이 팔아야 할 거야.”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개발하기 힘든 거야?”
“하드웨어적으로는 개발하기가 어렵지는 않아요. 다만 컴퓨터처럼 OS가 필요해서 핸드폰 OS를 단기간에 개발하기가 힘들다는 거예요. 시간을 충분히 가져도 개발하지 못할 수도 있거든요.”
“OS도 필요하다고?”
“네. 회장님이 방금 휴대용 컴퓨터라고 했잖아요. 그럼 당연히 필요하죠.”
“그럼 윈도우를 그대로 사용해도 되지 않아? 아니면 핸드폰에 맞게 수정해도 될 테고.”
아이폰이 처음 출시되고 사성 전자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윈도우 스마트폰을 출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극악한 속도와 여러 문제로 인해 윈도 폰을 포기하고 안드로이드로 방향을 바꾸었다.
윈도우는 PC에 최적화되었지 핸드폰에는 맞지 않았다. 윈도 폰이 나오기는 하지만 결국 폭망하게 된다.
그에 반해 내가 개발한 OS는 핸드폰에 최적화되어 다른 OS가 개발된다고 해도 경쟁 자체가 안 된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요. 윈도우는 PC용이지 핸드폰용은 아니거든요. 제가 개발한 OS는 핸드폰에 최적화되었어요. 윈도우를 대신할 OS가 없는 것처럼 오션 OS는 앞으로 대신할 OS가 없을 거예요.”
“핸드폰 OS를 자네가 개발했다는 건가?”
“네. 기억나세요? 커피숍에 볼 게이트 회장님과 처음 왔을 때요.”
“기억나. 그때 자네가 뭔가를 개발하고 있다고 했었어. 그게 핸드폰 OS를 개발하고 있었던 거였네. 난 그때 오션 같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줄 알았지. 자네는 그전부터 생각을 다 끝내고 준비하고 있었던 거였네.”
“네. 그렇죠. 이 핸드폰에서 가장 중요한 게 OS이거든요. 그래서 OS부터 개발한 거예요.”
“진짜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어. 자네를 만난 것이 내 일생에 가장 큰 행운인 것 같아.”
손 회장에게는 나보다는 알리바비 마윈 회장을 만난 것이 가장 큰 행운일 것이다. 그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