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에릭 슈밋은 서류를 보다가 시계를 보았다. 오전 10시 5분이었다.
오늘 10시에 중국 국제무역촉진 위원회 사람과 약속이 되어 있는데 아직 오지 않았다. 안 오려나?
그때 인터폰이 눌렸다.
“왜?”
(대표님! 지금 중국에서 손님이 왔습니다.)
미간을 찌푸렸다. 약속했으면 시간을 지켜야지. 시작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들어오라고 해.”
(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남자 한 명이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에릭 슈밋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중국 국제무역촉진 위원회 천바오위 국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앉으시죠.”
“감사합니다.”
소파에 앉았다.
“바쁘신가 봅니다.”
“하는 일이 중미 무역 촉진을 위한 일이다 보니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바쁩니다.”
에릭은 속으로 짜증을 내었다.
늦게 왔으면 미안하다고 한마디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아무 말도 없어 늦게 온 것을 돌려 말했는데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지 능청스럽게 웃으며 한술 더 떠 바쁘다고 하였다.
바쁘면 여긴 왜 와? 오지나 말지.
“바쁘시다니 바로 용건으로 들어가시죠. 저를 만나자고 한 이유가 뭡니까?”
“요즘 세계적으로 오션의 인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오션팟도 그렇고요. 제가 알기로는 현재 오션팟을 한국에서 생산하고 있지만, 생산 물량이 많이 부족하여 애로 사항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우리 걱정까지 해 주고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태국에 오션팟 공장을 설립한다는 말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이거였구나. 만나자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공장을 알아보고 있는 것을 보고 태국 정부에서 파격적인 여러 지원을 해 준다고 제안해서 현재 협상 중입니다.”
“태국보다는 중국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현재 중국은 미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들이 중국에 공장을 많이 설립하고 있고 현재도 미래도 계속 공장을 설립하고자 합니다. 그렇기에 인프라도 잘 갖추어져 태국보다는 중국에 공장을 설립하는 것이 오션에 더 이익일 겁니다. 오션팟 공장을 중국에 설립했으면 합니다.”
“우리도 그런 이점 때문에 중국을 후보지로 놓고 검토하였으나 아쉽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유가 뭡니까? 좋은 중국을 마다한 이유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지금 따지러 온 거야? 저자세로 나와도 생각해 볼까 말까 한데 따지듯 말하는 것을 본 어이가 없었다.
“중국은 오션 독자적으로 법인을 설립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건 우리 중국 법 때문에 그런 것이고 다른 기업들도 현지 법인과 합작하여 설립합니다. 형식적인 절차입니다.”
“저는 그렇게 하는 이유를 전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중국이 미국에 법인을 설립해도 미국은 그렇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는 불평등한 조건입니다. 우리가 왜 중국 법인과 이익을 나누어 가져야 합니까? 이익은 오로지 오션이 가져가야 하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그런데도 다른 기업들은 왜 그렇게 하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렇게 하더라도 중국 시장이 크기에 그만한 이익을 가져가기 때문입니다. 중국 현지 공장이 있으며 그만큼 얻는 이익이 많기 때문입니다. 서로 상부상조하는 겁니다.”
자신도 고문도 중국에 오션 공장을 설립할 마음이 전혀 없기에 매정하게 거절할 수도 있지만 오션팟 2부터는 중국에도 수출해야 하기에 굳이 감정 상하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태국과 협상이 상당히 진행되어 이제 결정만 남은 상태라 되돌리기가 힘듭니다. 다음에 공장을 설립하게 된다면 그때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계약한 상태가 아니라면 마음을 돌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미 계약한 상태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익을 위해 신의를 저버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반대로 중국이 그 입장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중국도 신의를 지키기를 원할 겁니다. 다음을 기약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우리 중국도 신의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좋습니다. 다음에는 꼭 중국에 공장을 설립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침부터 사총사가 개발한 너튜브와 티톡에 영상을 올리고 보면서 테스트하고 있었다.
현재까지는 아무 이상이 없고 이전 생에서보다 사용 면에서 더 좋았다. 내가 설명을 해 주기는 했지만, 자기들이 판단하여 더 사용하기에 좋게 개발하였다.
어떤 것은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들도 있었다. 역시 실력 있는 자들이라 거의 완벽하게 개발하였다.
테스트를 많이 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그만해도 해도 될 것 같았다.
인터넷 창을 닫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고문님! 에릭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오늘 오전에 중국에서 온 손님을 만났습니다. 만나자고 한 이유가…….)
만나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하였다.
예상대로 결국은 오션팟 공장을 원했던 거였구나. 근데 중국놈들이 신의를 말하는 것을 보니 어이가 없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세상 모두를 믿어도 중국놈들하고 일본놈들은 믿을 수 있는 족속들이 절대 아니다.
(뭐가 그리 웃기십니까?)
“중국이 신의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이 코미디 같아서요.”
(선뜻 이해하는 것을 보니 정말 신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까?)
지금은 중국이 음흉한 속내를 감추고 힘을 기르고 있기에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사람들이 중국에 대해 잘 모른다.
나중에 힘이 강해졌다고 생각할 때 본 모습을 드러내게 되면 그때나 알게 된다.
“절대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한국은 수천 년 동안 중국 옆에 있으면서 중국이 하는 짓을 직접 보고 겪었거든요. 절대 신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과 행동이 다르거든요. 그 말에 속으면 절대 안 돼요.”
(정말 그렇습니까?)
“네. 말이나 상식이 안 통하는 족속들이에요. 에릭이 경험하지 못해서 모르는 것이고 직접 부딪히면 알게 될 거예요. 아! 지난번에 에릭도 경험했잖아요. MP3 플레이어 중국에서 무단으로 만들어 팔았잖아요.”
(아! 그걸 깜박 잊고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MP3 플레이어를 무단으로 만들어 판 곳이 중국밖에는 없었습니다. 그걸 보니 고문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중국에 진출하지 않으시려는 겁니까?)
“네. 혹시 오션에 대해서는 중국 진출 요구를 하지 않았나요?”
(네. 그런 말은 없었습니다.)
“자기들 필요한 것만 요구한 거네요.”
(그런 셈입니다.)
“태국 공장 빨리 진행하죠.”
(그럴 겁니다. 오션팟뿐만 아니라 핸드폰 공장까지 협상하느라 조금 늦어진 겁니다. 빨리 진행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고요. 너튜브하고 티톡 확인해 봤는데 잘 개발했더라고요. 잘했다고 말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고문님이 매우 흡족했다고 하면 다들 좋아할 겁니다.)
* * *
오션팟 2를 창원 공장에서 생산하기 시작하여 확인하기 위해 공장에 왔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사무실 건물로 걸어가자 건물 현관에 8명 정도가 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공장 정문에서 내가 왔다고 연락한 거였다.
저번에도 그래서 이러지 말라고 했었는데 그때는 백종식 사장에게 말해 저 사람들은 모르겠구나.
현관 앞으로 가자 일렬로 서서 인사를 하였다.
맨 끝에 서 있던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강현서 이사였다. 원래는 창원 공장에서 부장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승진한 자였다.
“안녕하십니까? 고문님!”
인사에 화답하려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십니까?”
저쪽에서 나온 배를 출렁거리며 뛰어오는 신대철 공장장이었다.
“천천히 오세요.”
“아닙니다, 고문님이 오셨는데 어떻게 천천히 옵니까? 제가 공장에 있다가 오느라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가 있어요. 조금 있다가 공장 갈 테니까 가서 기다리고 계세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돌려 강현서 이사에게 말하였다.
“들어가시죠.”
“네.”
강 이사의 안내로 어느 방에 들어갔다.
사무실이 적당한 크기였고 책상하고 소파가 있을 뿐 단순하였지만 묘하게도 잘 꾸며져 있었다.
책상에 명패가 없는 것을 보니 강 이사 방이 아닌데.
“여긴 누구 사무실이에요?”
“고문님 사무실입니다. 고문님이 공장에 내려오시면 계실 곳이 없어서 마련한 겁니다. 고문님 취향을 몰라서 간단하게만 꾸몄습니다. 부족한 점을 말씀하시면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하긴 내가 공장에 오면 내가 있을 곳이 없기는 하였다. 남의 사무실을 차지하고 있어야 하니까.
“좋네요. 이대로 놔두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올 때 현관 앞에서 기다리는 것도 그만하세요. 저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그래도 고문님이 오시는데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건 저희의 작은 성의입니다.”
“그 시간에 일이나 열심히 하세요. 제가 바라는 것은 그거예요.”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대답하는 것을 보면 다음에도 또 그럴 것 같은데.
한동안 공장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년부터는 핸드폰도 출시하기에 매우 바쁠 거예요. 그러니 공장이나 직원 관리 잘해 주시고요.”
“물론입니다. 그게 제 일이기도 합니다.”
“이제 대충 이야기도 끝난 것 같으니 공장 둘러보러 가죠.”
“알겠습니다.”
강현서 이사와 함께 공장으로 향하였다.
1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공장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왔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갑시다.”
오션팟 2 생산 시설 앞에서 만들어지는 오션팟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부분 전 자동으로 생산되며 일부 공정만 직원들이 손으로 작업하고 있었다.
“자동이라 직원들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네요.”
“네. 그렇습니다, 자동으로 생산되기에 생산 시설 한 라인당 직원은 5명 정도면 충분합니다.”
“한 라인당 하루에 얼마나 생산되나요?”
“현재는 교대하지 않고 8시간 정도만 가동하기에 라인당 하루 생산량은 7,000개 정도입니다. 여기 1공장은 생산 시설이 총 5개라 1공장에서만 3만 5천 개가 생산됩니다.”
“4공장까지 합치면 생산라인이 몇 개나 되죠?”
“1공장이 5개, 2공장이 6개, 3공장이 6개, 4공장이 6개 해서 총 23개입니다.”
“현재 4공장까지 전부 생산하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하루에 총 23개 라인에서 16만 개를 생산하고 있는 겁니다.”
“만약 3교대로 생산하게 되면 대략 48만 개가 되겠네요?”
“3교대로 돌리면 대략 55만 개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하루에 16만 개고 3교대이니까 3을 곱하면 48만 개인데.
“어떻게요?”
“생산라인을 가동하는 시간이 줄어들기에 조금 더 생산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군요.”
강현서 이사를 바라보았다.
“내년에 핸드폰을 생산하게 되면 3교대로 생산하게 될 거예요. 미리 알고 계세요. 공장장님도요.”
“네? 3교대로 생산한다고요? 그럼 생산량이 너무 많아지게 됩니다. 내년이지만 일단 판매되는 것을 보고 생산을 늘려도 충분합니다.”
스마트폰을 생산할 거라는 것을 모르니까 그렇겠지. 전 세계에 수출하려면 3교대도 부족할 수도 있는데.
“내년에 다시 이야기하죠. 직원을 충원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까요?”
“직원 충원은 문제가 전혀 없습니다. 이번에도 구인 광고를 냈더니만 지원자가 엄청났습니다.”
그럼 문제는 없겠네.
“알았어요.”
“고문님! 오션팟은 언제까지 생산하는 겁니까?”
“내년 핸드폰 생산하기 전까지요. 핸드폰 생산하면 바쁠 테니까 그전까지는 부지런히 오션팟을 생산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