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내가 나오자 아이노가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
“다 끝났어?”
얼굴을 보니 되게 심심했나 보다. 배상도랑 말이 통하면 대화라도 하면 되는데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그렇겠지.
“아직! 이제 공장 구경 갈 거야. 같이 가자.”
“좋아.”
아이노랑 배상도도 같이 공장 구경에 나섰다.
백종식과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신대철 공장장이 얼른 뛰어왔다.
“공장은 신 공장장이 잘 알기에 같이 가면 좋을 겁니다.”
백종식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러죠.”
내 허락이 떨어지자 공장장이 신이 난 큰 소리로 말하였다.
“공장은 제 손바닥이라 훤히 압니다. 여기는 제1공장으로…….”
설명이 한동안 이어졌고 공장장 안내로 공장을 둘러보았다. 공장이 크다 보니 돌아다니는 데도 시간이 한참이나 걸렸다.
공장은 총 4공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동은 현재 1, 2개 공장만 하고 있었다. 그나마 가동하는 공장 안에서도 가동하지 않는 생산 시설도 있었다.
그래도 보기에는 생산 시설들이 전부 최신이었다. 그러면 뭐해? 제구실도 못 하는데.
“공장이 무척 크네요.”
백종식이 대답하였다.
“네. 그렇습니다. 핸드폰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앞으로 핸드폰 사업이 꽤 유망하다고 판단하여 처음부터 크게 지은 겁니다.
하지만 그룹 현금 유동성 문제로 인해 연구개발에 지원이 부족하다 보니 현재 상황에 이르게 된 겁니다.”
“3, 4공장을 가동하게 되면 직원이 더 필요하지 않나요?”
“아마도 충원해야 할 겁니다.”
“잎으로 오션팟을 생산해야 하니 미리 충원하세요.”
“알겠습니다.”
스마트폰 출시하기 전에 최대한 많이 오션팟을 판매해야 하니까.
공장을 다 둘러보고 서울로 올라왔다. 제대로 된 공장을 소유하게 된 것 같아 대만족이었다.
* * *
전날 다 함께 술 한잔 마셨더니 늦게 일어나 느지막하게 커피숍에 출근하였다.
그전에도 가끔 술 한잔하기는 했지만 내가 술을 좋아하지 않아 간단히 마셨는데 어제는 다들 좀 많이 마셨다.
나만 좀 취한 것 같고 다들 멀쩡한 것 같았다. 다들 술꾼들인가? 아이노도 술을 잘 마셔 놀랐다.
안으로 들어가자 HQ 컨설턴트 장기호 팀장이 와 있었다.
오전에 온다고 하더니 일찍 왔네. 아니구나.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였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언제 오셨어요?”
“조금 전에 왔습니다. 창원 공장은 잘 다녀오신 겁니까?”
“네. 앉아서 이야기하죠.”
“네”
자리에 앉자 강성중이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한 모금 마시자 속이 확 풀리는 것 같았다. 해장하는데 커피만 한 것도 없었다.
“어제 한잔하신 겁니까?”
“티가 많이 나나요?”
“조금 납니다. 어제 공장 시찰하고 통신 단말기 사업부 사람들하고 한잔하신 겁니까?”
“아니에요. 개인적으로 마신 거예요.”
“어제 술 한잔하셔서 평소보다 늦게 나오신다고 하셔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말을 하고서는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현도 전자랑 합의한 계약서 내용입니다. 최대한 고문님에게 유리하도록 합의를 했습니다.”
“네.”
서류를 들어서 보았다.
계약이 서로 원해서 하는 것인 만큼 서로 불리한 조항들이 없기는 하지만 독소 조항 같은 것도 없고 대체로 나에게 유리한 내용이었다.
그렇다고 아주 특별하게 유리한 것은 아니고 자잘한 것들이었다. 이 정도면 문제는 없었다.
“고생하셨네요.”
“아닙니다. 고객의 입장을 대변하고 최대한 고객이 불편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 일입니다.”
“여기서 대금 결제 부분은 수정해야 해요. 어제 현도 전자 사장을 만나서… 그렇게 이야기했고 계약서는 현도 전자에서 수정해서 만들 거예요. 알고 계시라고요.”
“알겠습니다. 참고하겠습니다. 그럼 계약은 언제 진행하실 겁니까?”
“시간 끌 필요 있나요? 다음 주 월요일에 하는 거로 하죠.”
“알겠습니다. 제가 현도 전자 측에 통보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고요. 맥스터 실사는 잘 진행되고 있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맥스터도 협조를 잘해 주어 편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맥스터도 끝까지 마무리 잘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장 팀장이 가자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신상철 자리가 비어 있었다.
“상철이 안 나왔어?”
“네. 탈이 났나 봅니다. 아까 전화 왔는데 오늘은 쉬겠다고 했습니다.”
어쩐지 어제 많이 마신다 했다. 나처럼 취한 것 같으면 그만 마셔야지. 미련하게 마시더니.
신상철이 커피숍으로 나온 이래로 처음으로 결근하였다. 그래 이번 기회에 푹 쉬어라. 너무 일만 해도 몸이 상하니까.
“넌 괜찮아?”
“네. 저는 멀쩡합니다. 사장님은 괜찮으십니까?”
“그냥 그래. 오늘 점심은 따듯한 국물 있는 곳으로 가자.”
“북엇국 먹으러 갈까요?”
“아무 데나.”
핸드폰을 들었다.
(염중섭입니다.)
“안녕하세요?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한국에 들어오신 겁니까?)
“네. 그저께 들어왔어요.”
(가신 일은 잘되신 겁니까?)
“네. 다름이 아니오라 이번 인수를 하다 보니 우리도 건물이 있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대표님이 건물 좀 알아봐 주셨으면 해서요.”
(오션도 이제 사옥이 생기는 겁니까?)
“그건 아니에요. 건물을 매입하면 다 함께 모이겠지만 오션 자금으로 매입하는 것은 아니고 제 개인적으로 매입하는 거예요.”
(오션 고문님이 매입하는 것이니 오션 사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대찬성입니다. 어느 정도 규모의 빌딩을 알아보면 되는 겁니까?)
현재 세금 빼고 핀란드에서 송금받을 금액이 23억 7천만 달러이다. 원화로 계산하면 대략 2조 7천억 원이나 된다.
통신 단말기 사업부 인수하는데 550억 원이 들어가고 맥스터나 TFT-LCD 사업, 진성 무역, 진성 금속을 인수해도 7천억 원이면 떡을 치고도 남는다.
거기다 나머지 진성 그룹 계열사 인수하는데도 충분하여 자금 걱정은 없었다.
“이왕 사는 거 제대로 된 빌딩을 매입해야겠죠. 그러니 자금은 걱정하지 마시고 좋은 빌딩을 알아보면 될 거예요.”
(알겠습니다. 요즘 기업들에서 시세보다 더 저렴하게 빌딩들을 많이 내놓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그래요. 알아보시고 연락 주세요.”
(알겠습니다.)
점심으로 북엇국을 먹고 아이노와 함께 오션팟으로 갔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먼저 심용철 과장 개인 연구실로 향하였다.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일하던 심용철이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다가 나를 보고서는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고문님!”
“안녕하세요?”
옆에 서 있는 아이노에게도 인사하였다.
“아이노 오랜만입니다.”
“안녕하세요?”
“누추하지만 여기 앉으시죠.”
“네. 고마워요.”
의자에 앉자 심 과장이 나에게 물었다.
“아이노는 언제 한국에 오신 겁니까?”
“그저께 왔어요.”
“스마트폰 디자인 때문에 온 겁니까?”
“네. 맞아요. 오션팟 2도 디자인해야 하니까요.”
“디자이너까지 오니까 이제야 제대로 실감이 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뜬구름 잡는 것 같았습니다.”
“심 과장님이 만든 실체가 있는데 뜬구름은 아니죠.”
“그렇기는 하지만 워낙 스마트폰이 특별하지 않습니까?”
“진전은 많이 되었나요?”
“혼자서 하다 보니 조금씩 나아가고는 있습니다.”
“다음 주에 현도 전자 핸드폰 사업부 인수 계약을 할 거예요. 그럼 3명의 연구원이 더 충원될 테니까 현재보다는 나아질 겁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러면 진척 속도가 빨라질 겁니다.”
“그렇겠죠. 그래서 말인데 시간이 촉박하기는 하지만 네 분이 비밀리에 일한 곳을 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그건 가능합니다. 이 건물 맨 위층이 현재 비어 있습니다. 1년 정도 임대하면 될 겁니다.”
오션팟은 5층짜리 건물에 임대해 있었고 4층을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가 2층과 3층까지 사무실을 넓혔다.
5층이 비었으면 거기서 4명만 일하면 보안은 유지될 것 같았다. 4명만 사용하기에 공간도 넓을 테니 불편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다행이네요. 그럼 빨리 임대 계약하시고 연구실로 꾸미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지금 만들어 놓은 샘플 하나만 주실래요? 아이노 디자인하는 데 참고하게요.”
“네.”
책상에 있는 미완의 개발품인 핸드폰을 가져왔다.
“여기 있습니다.”
아이노가 받아 핸드폰을 신기한 듯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진짜 기존 핸드폰하고 너무 다르네. 말로만 들었을 때는 전혀 상상조차 가지 않았는데 실제 보니까 이해가 되네.”
“바탕 화면에 있는 전화기 모양을 손가락으로 눌러봐.”
아이노가 손가락으로 누르자 화면이 바뀌면서 번호가 나오자 놀라며 감탄을 하였다.
“와우! 숫자가 화면으로 나오네. 이러니까 숫자 버튼이 전혀 필요가 없는 거구나.”
숫자를 마구 누르자 화면에 누른 숫자가 나타났다.
“되게 신기하네. 화면 숫자가 커서 실수로 잘못 누를 일도 없고. 너무 좋아. 이 핸드폰이 빨리 개발되어 나왔으면 좋겠어.”
“이렇게 좋은 핸드폰인데 디자인도 예뻐야겠지.”
“당연하지. 내가 디자인 아주 예쁘게 만들게.”
“기대할게.”
“근데 이걸 진이 전부 다 생각했단 말이야?”
“응.”
“역시 천재는 다르네. 누가 이걸 핸드폰이라고 생각하겠어. 진짜 진 대단하네.”
“이제야 알았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 근데 생각보다 더 대단한 것 같아.”
“그 이상이야.”
“잘난 척하지 않아도 알아.”
* * *
심 과장하고 이야기를 마치고 황정화 사장과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아이노를 보니 오션팟 2를 출시할 때가 다가왔다는 것을 느낍니다.”
“당연하죠. 벌써 출시한 지 1년 2개월이나 되었는데요. 2 개발은 잘 진행되고 있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오션팟 1보다 용량이 대폭 늘어났습니다. 이번에는 5기가, 10기가 하드디스크로 출시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제야 원래 아이팟 사양대로 출시할 수 있게 되었네.
“대폭 변화가 생기는 거네요.”
“네. 맞습니다, 용량뿐만 아니라 Soc와 CPU도 성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되고 기존 16MB DRAM에서 32MB로 업그레이드할 겁니다. 아마도 사용자들이 오션팟 2를 사용하게 되면 오션팟 1보다 성능이 많이 향상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겁니다.”
“개발은 거의 다 끝난 거죠?”
“네. 현재 성능 테스트를 하고 있습니다. 디자인만 나오면 디자인에 맞게 하는 과정만 남았습니다.”
“디자인은 나왔어요. 이메일로 보내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션팟 2는 기존 1보다 성능이 훨씬 향상되었기에 판매가 1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하여 생산량이 부족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에 대한 대책 마련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에 제가 현도 전자 핸드폰 공장을 인수하게 되었거든요. 핸드폰 개발하는 동안 거기서 오션팟 생산하면 물량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어제 공장을 가 봤는데 오션팟 공장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크더라고요.”
“알겠습니다. 드디어 핸드폰 공장도 인수하시는 겁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심 과장이 열심인데 저도 미리 준비해야죠.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으니 마지막으로 오션팟 공장 한 곳만 더 매입하는 것으로 하죠.”
“마지막이라면 공장 매입은 더 이상 하지 않는 겁니까?”
“네. 한국에서는 현재 상태를 유지할 것이고 앞으로는 해외 공장을 설립할 예정이에요.”
“어디에다 설립할 겁니까?”
“지금 태국 쪽에 설립하려고 오션 본사에서 태국 정부와 협상하고 있어요.”
“중국이 아니라 태국입니까?”
“네.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보다는 태국이 나아요.”
“알겠습니다. 그럼 공장 한 곳을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왕이면 큰 곳으로 매입하시고요.”
“그래도 됩니까? 개발하는 핸드폰이 출시되면 오션팟 인기가 점점 떨어질 텐데 공장이 크면 나중에 부담되지 않겠습니까?”
이전 생에서 보니 스마트폰이 출시되더라도 최소 10년 동안은 오션팟 인기가 사그라지지는 않는다.
“아뇨. 오션팟은 앞으로 10년 정도 더 생산할 것이고 더 생산하지 않더라도 핸드폰 생산으로 돌리면 되니까 전혀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오션팟 2 출시는 언제 하면 되겠습니까?”
“가능하면 12월 초에 하는 것이 좋겠죠. 12월은 크리스마스 시즌과 연말 시즌이라 선물로 인기가 많을 거예요. 기능할까요?”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무조건 12월 초 출시로 목표를 잡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