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일부러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은 제가 한국에 있는 진성그룹이라는 재벌가에…….”
대충 상황을 설명하였다.
“그래서 어려워진 그룹을 제가 다시 인수하려고 자본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그런 일이 있었네. 어쩐지 젊은 유학생이 돈이 많아 이상하다 싶었어. 그런데 그 귀한 돈으로 노카아에 전부 투자했단 말이야?”
“저로서는 모험이었죠.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강심장인지? 뭘 모르고 한 건지? 아니지. 자넨 천재니까 뭔가 확신하는 게 있었겠지. 천재가 그런 무모한 모험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편한 대로 생각하세요.”
“매도할 생각이었으면 나한테 미리 말하지 그랬어? 전부는 아니어도 우리가 매수할 수도 있는데.”
“그 생각도 해 봤는데 노카아 입장에서는 큰 손실을 볼 거예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왜? 지금 노카아 사정 잘 알잖아.”
“잘 알죠. 지금은 실적을 바탕으로 노카아 주가가 계속 상승하지만, 언제까지 상승할 것 같으세요?”
“자넨 하락한다고 보는 건가?”
“네. 아마도 다음 달부터는 큰 폭으로 하락할 거예요. 요즘 IT 기업들 주가가 어떤지 아시잖아요.”
“물론 주가가 계속 상승만 할 수는 없지만 큰 폭으로 하락할 정도로 실적이 나쁘지 않아. 매출이 계속 상승하고 있고 영업 이익도 증가하고 있어. 자네가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은데.”
“사실 지금 노카아 주가는 정상적인 주가는 아니에요. 버블이 많이 끼어 있어요. 그 버블이 빠지고 정상화로 가는 거예요. 그리고 내후년 2002년부터는 실적이 급속히 안 좋아질 거예요. 그런데 지금 고점에서 주식을 매집하면 손해가 크겠죠.”
“자넨 확신하는 듯 말하네.”
당연하지. 난 미래를 알고 있고 스마트폰이 출시되면 어떻게 될지 뻔히 아니까.
“방금 회장님이 말했잖아요. 자넨 천재니까 뭔가 확신하는 게 있었겠지. 매수할 때처럼 확신하는 게 있어요.”
“그게 뭔가?”
“일단 단기적으로는 다음 달부터 거품이 빠지면서 본격적인 하락을 시작할 테니 지켜보시면 되고 장기적으로는 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요. 뭐냐면 제가 이번에 한국에서 핸드폰 회사를 곧 인수할 거거든요.”
“핸드폰 사업을 하겠다고?”
“네. 근데 제가 개발하고 있는 핸드폰은 기존 핸드폰과 차원이 다른 핸드폰이에요. 그런 핸드폰이 세상에 출시되면 노카아를 비롯해 모든 핸드폰 회사들이 타격을 크게 입을 거예요. 그럼 주가는 당연히 하락하겠죠.”
“무슨 핸드폰이길래?”
“죄송해요. 지금은 자세히 말해 드릴 수는 없어요.”
“기업 비밀이니 이해는 하네. 그래서 지난번에 나한테 통신 장비에 집중하라고 한 거였나?”
“네. 노카아도 저한테는 소중한 회사니까요.”
“천재인 자네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 확신이 들어서겠지. 근데 그 핸드폰이 뭔지 궁금하네.”
“내년이나 내후년에 알게 되실 거예요. 기존 핸드폰은 전부 사장되고 빠르게 신개념 핸드폰으로 시장이 바뀔 거예요.”
“우리도 그 핸드폰을 생산하면 안 되는가?”
처음 스마트폰을 출시하고 1~2년간은 내가 독점적으로 스마트폰을 출시할 생각이었다.
다른 핸드폰 회사들은 스마트폰을 출시하고 싶어도 OS가 없기에 불가능하고 개발에 들어가도 최소 2년 정도 걸리고 그것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기에 가능하다.
그 이후 상황 봐서 스마트폰 OS를 사용료를 받고 내줄 수도 있었다.
만약 다른 OS가 개발된다면 어쩔 수는 없겠지만 단기간에 개발에 성공할 것 같지는 않았다.
설령 안드로이드가 개발되어 나온다고 해도 내가 안드로이드에 대해 잘 알기에 그 방식을 먼저 선점했기에 나에게 특허료 일부를 지급해야 한다.
아이폰 OS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해요. 노카아에서도 생산할 수도 있으니까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듣던 중 반가운 말이네. 그럼 핸드폰 투자 연구비를 대폭 감소해야 하나?”
“그러는 게 좋을 거예요. 그 노력들이 전부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테니까요.”
“그 정도라고? 아쉬워. 그 핸드폰을 노카아에서 생산한다면 세계 시장을 제패할 수 있었을 텐데. 따로 한다니 너무 아쉬워.”
“저도 그래요. 나중에 기회가 있을 거예요. 제가 하는 말 허투루 듣지 마시고 핸드폰 사업을 당장이라도 축소하시고 통신 장비 부문에 더 많은 투자를 하세요.”
“믿지 않을 수도 없고 참 곤란한 상황이네. 알았네. 그나마 미리 알려 주어 고마워.”
“오랜만에 와서 좋지 않은 소식을 알리게 되어 제 마음도 무겁고 죄송하네요.”
“아니야. 기업은 경쟁인데. 경쟁에서 밀려나면 도태되는 거지.”
“그럼 저는 가 볼게요.”
“그래. 저녁에는 뭐 해? 같이 식사나 하자고.”
지난번에 왔을 때 요로마 울리라와 술을 마시고 내가 뻗은 기억이 떠올랐다.
“식사만 하는 거예요. 술은 안 마셔요.”
“알았어. 나도 자네 주량을 아니까 마시자는 소리를 못해.”
진민재가 가자 요로마 울리라는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아는 진민재는 헛소리할 인물은 아니었다.
그렇다는 것은 다 사실이라는 건데 핸드폰이 다 같은 핸드폰이지 도대체 신개념 핸드폰은 뭘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었다.
만약 진짜로 신개념 핸드폰이 출시되면 진민재가 자신하는 것처럼 핸드폰 시장은 초토화될 것이고 그럼 지금 상황에서 핸드폰 연구에 투자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고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알면서 했다가는 손해만 입을 텐데 고민이었다.
골치가 아파졌다.
* * *
노카아에서 나와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아이노! 나 진이야. 잘 지냈어?”
(오 진! 안녕! 나야 잘 지냈지. 진은 잘 지냈어?)
“그럼! 나 지금 어디게?”
(혹시 핀란드에 온 거야?)
“응. 어제 왔어. 오늘 저녁 어때?”
(어떡하지? 나 지금 스웨덴에 출장 왔는데. 이번 주 토요일에 돌아가니까 토요일 주말에 보자.)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디자이너가 무슨 출장이야?
“출장도 다녀?”
(그럼! 스웨덴하고 노르웨이에는 오션 지사가 없이 영업 직원 몇 명만 있어 대부분의 업무는 핀란드에서 담당하거든. 영업 판촉 활동으로 디자인할 게 있어서 왔어.)
“디자인해서 이메일로 보내 주면 되는 거잖아.”
(그렇지만 원하는 바를 정확히 디자인하려면 직접 보고 해야지. 오션팟도 디자인하러 한국에 갔었잖아.)
생각해 보니 그러네.
“알았어. 핀란드에 도착하면 연락해.”
(그럴게.)
생각난 김에 오션폰도 아이노에게 디자인을 맡겨야겠다.
근데 지금 맡겨야 하나? 아니지. 성중이도 아이노 보고 싶다고 했는데 디자인 핑계 대고 한국으로 출장 오라고 하면 되겠다.
* * *
핀란드 국가 연금인 Kansaneläkelaitos (KELA) 운영팀장인 라우리 틸노넨은 조금 전에 한 증권사의 전화를 받았다.
노카아 지분 30%를 인수할 의향이 있냐는 전화였다.
노카아는 지금 핀란드의 국민 기업이고 핀란드의 많은 국민들이 노카아 관련 업종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런 기업의 주식을 국가 연금에서 모른 척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
현재 국가 연금에서는 연금을 불리기 위해 여러 곳에 투자하고 있으면 주식에도 투자하고 있기에 노카아에 투자해도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결정할 수 없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국장실로 향하였다.
“어서 오게. 무슨 일이야?”
“급하게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뭔데?”
“방금 얀손 증권사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전화 받은 내용을 이야기하였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노카아 주식에 투자했으면 합니다.”
“30%면 꽤 큰데 그럴만한 물량이 있다고?”
“저도 그 점이 이상하여 물어보니 노카아 지분 30%를 소유하던 대주주가 지분을 처리하고자 한다고 합니다. 그대로 시장에 풀릴 경우 혼란이 예상되어 증권사에서 인수할 곳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30% 지분을 소유한 대주주가 왜 처분한다는 거야?”
“그게 대주주가 핀란드 국민이 아니라 핀란드에 유학 왔던 학생이라고 합니다.”
“뭐? 유학생이 석유 재벌이라도 돼?”
“92년도에 매수했다고 합니다. 그때는 노카아의 파산설이 퍼질 때라 한주에 0.8 마르카였다고 합니다.”
“돈 꽤 많이 벌었겠네.”
“그렇습니다. 노카아는 핀란드의 자존심인데 외국인이 대주주라는 것이 국민들에게 알려지면 좋을 것이 없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인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그럼 다음 달에 인수하는 거로 하지.”
“그게 대주주가 조만간에 핀란드를 떠날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전에 처리했으면 한다고 합니다. 아니면 시장에서 전부 매도를 하겠다고 합니다. 인수하려면 지금 해야 합니다.”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알았어. 인수 계획서 작성에서 올려.”
“알겠습니다.”
* * *
어제저녁 증권사에서 내 노카아 지분 인수할 곳이 나타났다고 하여 오늘 아침에 증권사로 향하였다.
증권사 안으로 들어가자 루페가 의자에 앉아 주식 전광판을 보고 있었다. 그 앞으로 갔다.
“루페!”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미소 지었다.
“진 왔어.”
“뭘 그리 열심히 봐요?”
“노카아 주식 보는데 계속 상승이야. 괜히 팔았나 싶어.”
돈도 많이 벌었다면서 욕심은 끝이 없네.
“전부 매도하신 거예요?”
“응. 어제부로 전부 매도했어.”
“잘했어요. 다음 달부터 하락할 거예요. 원래 주식은 발목에 사서 어깨에 파는 거예요. 너무 욕심부리지 마세요.”
“하긴 자네 빼고 나만큼 투자 수익 얻은 사람은 핀란드에 없을 거야. 근데 있던 주식을 매도했더니 뭔가 허전해. 소유한 주식이 있어야 전광판 볼 맛이 나는 데 없으니 재미가 없어. 진이 주식 좀 추천해 줄 수 있어?”
IT 버불 붕괴 이후 언제부터 주식이 다시 상승하는지 모르는데. 또 종목도 모르고.
“제가 핀란드에 오래 떠나 있어서 핀란드 주식은 잘 모르겠고요. 대신 미국 나스닥에 있는 오션 주식을 매수하세요. 오션도 마찬가지로 5년 이상 장기로 투자하셔야 해요.”
“오션이면 자네 회사잖아? 좋은 소스가 있는 거야?”
“앞으로 오션은 노카아보다 더 많이 성장할 기업이에요. 그러니 장기 투자로는 오션만 한 주식이 없어요.”
“알았어. 내가 다른 사람 말은 안 믿어도 진 말은 믿어. 그렇게 할게. 근데 핀란드에서 미국 나스닥에 투자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한번 알아보세요. 안 되면 미국 가서 계좌 오픈하고 투자하시던가요.”
“알았어.”
“저 볼일이 있어서 가 볼게요.”
“그래. 어서 가.”
미실라 노우자이넨 자리를 보니 없어 그때 여직원에게 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약속했는데 미실라 노우자이넨이 자리에 없네요.”
“지금 회의실에 계세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고마워요.”
여직원을 따라 회의실로 들어가자 미실라 노우자이넨이 한 남자와 같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네. 안녕하세요?”
“서로 인사하시죠.”
남자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KELA 운영팀장 라우리 틸노넨입니다.”
KELA이 뭐 하는 회사이지?
“안녕하세요? 진민재라고 합니다.”
인사를 나누고 앉자 미실라가 말하였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KELA은 핀란드 국가 연금을 관리하는 곳입니다.”
아! 매수자가 연금 공단이구나. 연금 공단이면 30%를 전부 인수할 수 있겠네. 근데 손실이 클 텐데.
아니지. 장기 투자할 테니까 나중에 스마트폰을 생산하게 되면 이전 생처럼 폭락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테니까 손해는 많이 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