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DS 자산 운용 사장 신동환은 진성 무역에 도착하여 사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장실 안에는 남자 두 명이 앉아 있다가 자신이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십시오. 진성 무역 사장 천호식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진성그룹 회장 비서실장 박찬기입니다.”
오늘은 본격적인 협상에 앞서 만나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라 혼자 왔는데 상대는 두 명이었다.
회장 비서실장까지 왔다는 것은 그만큼 진성그룹이 급하다는 건데. 오늘 일이 잘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DS 자산 운용 사장 신동환입니다.”
“앉으시죠.”
“네.”
모두가 소파에 앉았다.
“제가 진성그룹과는 인연이 많은가 봅니다.”
신동환의 말에 비서실장이 화답하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진성 어페럴에 이어 진성 무역까지 인수하시겠다니. 인수할 만한 기업들이 많을 텐데 진성 계열사를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요즘 형편이 어려워 매물로 나온 알짜 기업들이 많이 있기는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진성 계열사는 그들 기업보다 매력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 회장님께서 진성그룹 선대 회장님인 진규촌 회장님과 동향이십니다. 진성그룹이 이대로 무너지는 것을 보고 너무나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시어 결단을 내리신 겁니다. 인수해 경영 정상화를 이룬다면 언제든지 진성에 다시 돌려드릴 의향이 있으십니다.”
비서실장 박찬기는 자신이 품었던 의혹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게 정말입니까?”
“물론이지요. 그렇지 않다면 굳이 진성 계열사를 인수하려고 하겠습니까? 예전에 진규촌 회장님에게 받은 은혜를 갚으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회장님은 진성그룹이 하루라도 빨리 경영 정상화를 이뤄 다시 찾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어디 있습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회장님의 이런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두 분 우정이 무척 돈독한 것을 보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잡음 없이 인수 절차를 깔끔하게 마무리했으면 합니다.”
“물론입니다. 그럼 인수가는 얼마를 생각하고 계시는 겁니까?”
“우리는 후려치지도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더 주지도 않을 겁니다. 정확한 시가를 책정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겁니다. 진성 어페럴처럼 실사를 통해 결정하겠습니다.”
비서실장 박찬기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문제는 진성 무역이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달 말에 돌아오는 어음을 막을 형편이 안 된다는 거다.
부도가 난 후에 매각하면 매각 대금을 충분히 받기가 힘들게 된다. 물론 계획대로 부도 유예를 신청하여 시간을 벌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아니지! 어차피 실사하면 다 드러날 테고 부도나면 저절로 알 텐데.
그러면 미리 말해 양해를 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이번 달 말에 돌아오는 어음이 9억 원인데…….”
상황을 설명하였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매각을 진행했으면 합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그 문제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인수를 빨리 진행할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가 어음 금액을 미리 변제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로서는 한숨 돌리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신동환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진성이 급할수록 협상에서 자신들에게는 더 유리할 테니까.
“제가 보기에는 급한 것은 진성 무역뿐만 아닌 것 같습니다. 진성 금속도 위험하지 않습니까?”
“진성 무역만 매각하면 상황이 나아질 겁니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진성 금속도 이번에 같이 매각하는 겁니다.”
“네? 진성 금속도 인수하시겠다는 겁니까?”
“네. 앞서 말했지만, 우리 회장님께서는 진성이 이대로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수해서 경영 정상화를 이룰 테니 나중에 찾아가면 되지 않습니까? 잠시 맡긴다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어려울 때 물건을 잠시 전당포에 맡겼다가 형편이 나아지면 찾아가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로 생각하시면 좋을 겁니다.”
“그건 제가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회장님께 보고 후 검토하여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게 진성에게 좋을지 잘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힘들 때는 짐을 잠시 내려놓는 것도 도움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룹으로 돌아온 비서실장 박찬기는 회장실로 바로 달려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회장이 물었다.
“만나 봤어?”
“네.”
“어떻게 됐어?”
“이야기는 잘되었습니다. 그런데 DS 자산 운용에서 제안을 하나 더 했습니다. 뭐나면…….”
나누었던 이야기를 자세히 전부 하였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이야기를 다 들은 진동훈은 잠시 생각을 하였다.
황규천 어르신이 사채업자라 그 말은 100% 믿기는 힘들지만 왜 진성 계열사를 인수하려는 의도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물론 손해 보지는 않으려고 할 테니 나중에 그만한 대가를 받고 넘길 것이다.
근데 진성 금속까지 넘기면 남는 계열사가 진성 화장품과 유통 두 개만 남게 되어 기형적인 구조가 되어 버린다.
더는 그룹이라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품 안에 품고 있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다. 진성 금속도 화장품도 오래갈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매각하자니 하나둘 품 안에서 떠나가고 결국은 전부 떠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쉽게 결정하기가 힘들었다.
“자네 생각은 어때?”
“제 생각에는 이번 기회에 매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냥 둔다고 회생하는 것도 아니고 매각하여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알았어. 언제 협상하기로 했어?”
“3일 뒤에 본격적인 매각 협상을 하기로 했습니다.”
“알았어. 나가 봐.”
“네.”
비서실장이 나가자 인터폰을 눌렀다.
(네. 회장님!)
“전미정 감사한테 연락해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전미정이 들어왔다.
“무슨 일인데 오라고 해?”
“앉아 봐.”
소파에 앉았다.
“방금 비서실장이 진성 무역 매각 건으로 DS 자산 운용사 사람을 만나고 왔는데 그쪽에서 하는 말이…….”
상황 설명을 하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해서.”
“뭘 고민해? 당연히 매각해야지.”
“하지만 매각하면 남는 게 화장품하고 유통밖에 없는데.”
“짐이 무거우면 잠시 내려놓으라고 했잖아. 무거워 어깨가 부서지는데 당신은 미련하게 그걸 끝까지 지고 있겠다고? 다시 돌려준다고 하잖아. 위기를 벗어나면 다시 찾을 수 있는데 무조건 넘겨야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위기를 벗어나 다시 찾을 수 있을지 장담하기가 힘들기에 자신이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왜 못 찾아? 당신은 그게 문제야. 매사에 부정적인 생각만 하니 일이 이렇게 된 거잖아? 긍정적으로 생각하란 말이야.”
긍정적으로 생각해 모든 일이 긍정적으로만 풀린다면 세상에 망하는 기업이 생길 리가 없지. 답답하였다.
“긍정이랑 망상은 엄연히 다른 거야. 현실을 직시해야지.”
“가지고 있으면 나아져? 나아지면 왜 매각하자고 그러겠어? 상황만 더 나빠지니까 더 악화하기 전에 매각하자는 거지.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내 말대로 해.”
“알았어.”
전미정이 일어나 나가자 비서실장을 호출하였다.
“부르셨습니까?”
“자네가 DS 자산 운용에 연락하여 인수가 아닌 투자를 해 주면 어떻겠냐고 물어봐. 아무리 생각해도 매각보다는 투자가 좋을 것 같아.”
“그게 좋지만 그렇게 해 줄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연락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해.”
“네.”
회장실을 나온 비서실장은 전화기를 들었다.
(신동환입니다.)
“진성 비서실장 박찬기입니다. 혹시 인수 말고 진성그룹에 투자하실 수는 있습니까?”
(그건 곤란합니다.)
“다시 돌려줄 거면 인수나 투자나 비슷한 것이 아닙니까?”
(이런 말 드려 죄송하지만 저는 진성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투자했다가 괜히 투자금만 날리면 우리로서는 손해가 크기에 모험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인수하여 경영 정상화를 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판단입니다. 비서실장님도 지금 진성 어페럴이 어떤지 잘 알지 않습니까? 우리가 경영 정상화를 할 테니 나중에 찾아가는 것이 좋을 겁니다.)
“정말 안 되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
* * *
두드리던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오션 플레이 스토어 개발이 끝났다.
개발한 코코아 톡 앱을 올리는 과정까지만 테스트하였고 실제 테스트 과정이 남기는 했지만, 소스 상으로는 두 번이나 확인하여 전혀 이상이 없었고 스마트폰이 개발되면 그때 직접 테스트하면 된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기지개를 켜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장기호 팀장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현도 전자 통신 단말기 사업 실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던 차였다.
“안녕하세요? 실사는 잘 진행되고 있나요?”
(네. 그렇습니다. 궁금하실 것 같아 중간보고 하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현도 전자 측에서 매우 협조적으로 나와 예상보다 실사가 빨리 끝날 것 같습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어느 정도 진행되었나요?”
(현재 80%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장 회장이 실사하는데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하더니 진짜 빨리 진행되었네. 그럼 나야 좋지. 나머지도 예상보다 빨리 진행될 것 같았다.
“지금까지 실사하는 동안 문제는 없었나요?”
(네. 없었습니다. 현재 실사가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현재까지 진행된 결과를 보면 인수 가격은 대략 1,500억 원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예상한 금액이었다.
“그렇군요. 금액이 변동될 가능성은 있나요?”
(현재까지 보면 변동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미리 알고 준비하라고 알려 드리는 겁니다.)
“알았어요. 마무리 잘하시고요.”
(알겠습니다. 실사가 다 끝나면 정식으로 실사 보고서를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수고하시고요.”
(네.)
아무리 늦어도 한 달 안에 통신 단말기 사업 인수가 끝날 것 같았다. 핀란드에 갈 시간이 점점 다가오네.
또 핸드폰이 울려 받았다.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DS 자산 운용 신동환입니다.)
“안녕하세요?”
(어제 진성그룹과 첫 번째로 접촉하였고 제가 진성 금속도 인수하겠다는 의향을 내비쳤습니다.)
“반응은 어떤가요?”
(어제 예상외로 회장 비서실장까지 나온 것을 보면 매우 급한 것 같습니다. 잘하면 매각할 것 같습니다. 어제 나누었던 이야기를 보고 드리면…….)
상황 설명을 하였다.
근데 다시 돌려줄 거라고 말하면 어떻게 하나? 하긴 나한테 돌려줄 거니까 거짓말은 아니지. 그렇게 하면 매각에 더 적극적일 테고.
머리 한번 잘 썼네. 이런 작은 것도 협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한 수단이다. 황규희 말대로 실력은 있나 보네.
제발 매각해라. 하나씩 인수하는 것보다 나로서는 두 개씩 인수하는 것이 좋으니까.
“다행이네요. 이번에 꼭 무역과 금속 인수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비서실장에게 전화가 왔는데… 그래서 거절했습니다.)
하긴 매각하는 것보다는 투자받는 것이 진성 측에서는 더 좋기는 하겠지.
“투자 거절했다고 매각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아니겠죠?”
(진성이 그럴 상황이 아닙니다.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닙니다. 모레부터 본격적인 인수 협상을 벌이기로 하였습니다.)
“알았어요. 끝까지 잘 협상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