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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의 홀로서기-154화 (154/261)

154화

어떻게 해야 하나? 한동안 고민하다가 어르신이 생각났다.

어르신이 진성 어페럴을 인수할 때 DS 자산 운용사에서 사모 펀드를 조성하여 인수한 적이 있기에 나 또한 DS 자산 운용을 이용하면 좋을 것 같았다.

다른 운용사도 있겠지만 이왕이면 진성 어페럴을 인수했던 곳이라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고 어르신이 관리하는 회사라 나에게 뒤통수 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아는 사람에게 사기당하는 경우가 많지만, 돈도 많은 어르신이 고향 형님 손자에게 사기 칠 인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르신을 절대 믿는 것은 아니지만.

어르신에게 전화해야 하나? 황규희에게 해야 하나? DS 자산 운용에 전화해야 하나? 이왕이면 편한 상대가 낫겠지.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오랜만에 전화해서 부탁하면 삐지려나? 내가 본 황규희는 만만한 여자가 아닌데. 웬만한 남자보다 당돌하고 대찬 면이 있었다.

“규희야! 나 민재야.”

(오빠! 오랜만이네. 그동안 전화도 하지 않고 너무해. 나 잊고 있었지?)

“잊고 있기는? 그동안 바빴어.”

(바쁘다면서 오늘은 웬일로 전화했어?)

“저녁 식사나 같이하자고.”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 오빠가 밥을 같이 먹자고 하게.)

“싫으면 관두고.”

(알았어. 언제 볼까?)

“네가 편한 시간 잡아.”

(그럼 이번 주 금요일 저녁에 보자.)

“알았어. 내가 장소 정해서 연락해 줄게.”

(그래.)

어디서 밥을 먹지? 아! 예전에 HQ 컨설턴트 정하나 실장하고 식사했던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거기가 분위기도 좋았고 스테이크도 맛있었으니까.

황규희를 만나기 전에 진성 어페럴 어떤지 확인부터 하는 게 좋겠지. 핸드폰을 들었다.

(박도진입니다.)

“진민재예요.”

(네. 더 하실 말씀이 남으신 겁니까?)

“그게 아니라 진성 어페럴 요즘 어떤지 확인 좀 해 주셨으면 해서요.”

(언제까지 말입니까?)

“이번 주 금요일 오후 3시까지요.”

(시간이 촉박하여 자세히 알아볼 수는 없습니다.)

“상관없어요. 대략적으로만 알아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 * *

금요일 아침에 출근하자 박도진이 미리 와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일찍 왔네요.”

멋쩍게 머리를 긁으며 대답하였다.

“사실은 커피를 마시러 왔습니다. 지난번 왔을 때 마신 커피가 이상하게도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드디어 박도진도 우리 커피숍 커피에 맛들렸나 보네.

그전에 왔을 때는 커피 안 마셨나? 기억을 떠올리니 마시기는 했지만 조금만 마시다가 갔다.

“이제야 우리 커피 맛을 아신 거예요?”

“그전에 마실 때는 커피 맛이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근데 지난번에 와서 커피를 마시는데 맛이 너무 좋았습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박도진 같은 입맛의 사람이 많아야 커피숍 장사가 잘될 텐데. 잘돼도 문제기는 하지.

“큰일 났네요. 한번 맛들면 다른 곳에서 커피 못 마셔요. 제가 그러거든요.”

“저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

“알아는 보셨어요?”

“네. 시간이 없어서 자세히는 못 알아봤습니다.”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서류를 집어 읽어 보다가 놀랐다.

인수 후 몇 개월이 지났을 때 흑자로 전환했다는 보고서를 본 기억이 있는데 1년이 지난 지금은 흑자 규모가 엄청 늘었다.

황규희가 진정 능력자네.

이런 회사를 작은아버지는 어떻게 경영했길래? 답답하였다.

“흑자가 많이 늘었네요.”

“저도 조사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2년도 안 돼서 빠르게 경영 정상화를 이루고 흑자 규모를 늘리다니 신임 대표가 꽤 능력이 있나 봅니다. 경험도 없는 젊은 여성이 대표로 취임한다고 하여 솔직히 얼마 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제 판단이 잘못되었습니다.”

“진성 에페럴의 화려한 변신이네요.”

“네. 맞습니다. 제가 알아보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직원들도 대표를 꽤 신임하고 있었습니다. 사모 펀드에 회사가 넘어간 후에 직원들은 사모 펀드가 회사를 재매각하기 위해 빠른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할 것이라고 다들 예상했는데 실제 구조조정은 15%에서 그쳤고 부서 이동으로 최소화한 것을 보고 신임 대표를 믿기 시작한 겁니다. 그 후 내수보다는 수출로 방향을 잡은 것이 적중했습니다. 환율 차이로 질 좋고 저렴한 국내 제품이 해외 시장에서 인기를 끌어 흑자를 달성하고 흑자 규모를 더 키운 겁니다.”

진성 어페럴이 잘되어 좋기는 하지만 그런 만큼 내가 인수할 때는 인수 가격이 높아지게 되어 나한테는 손해였다.

좋아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주로 어디에다가 수출하나요?”

“수출하는 국가가 중국을 비롯해 러시아와 인도 등입니다. 이것도 전략적으로 택한 것 같습니다. 시장은 크지만, 아직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지 못한 국가를 대상으로 하여 고가의 브랜드 제품과 싸구려 제품 사이의 틈새시장을 뚫은 겁니다. 보기에는 이도 저도 아니어서 성공 가능성이 낮았지만 그들 국가의 중산층을 마음을 잡은 겁니다. 올해도 계속 수출 물량이 증가하고 있답니다.”

지금이야 이런 전략이 먹혀도 오래가지 않을 텐데. 그때는 수출보다는 내수 시장에 치중해야 할 것 같은데.

“알았어요. 수고했어요.”

“네.”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것을 제지하였다.

“급한 일 없으면 커피 천천히 마시고 가세요.”

“네. 그러겠습니다.”

* * *

강남에 있는 약속 장소에 도착하였다.

한번 와 본 적이 있다고 직원이 묻기 전에 먼저 선수 쳤다.

“진민재로 예약했습니다.”

“네. 이쪽으로 오시죠.”

직원을 따라가자 내가 원한 대로 창가 쪽 자리를 주었다.

“고맙습니다. 주문은 일행 오면 시킬게요.”

“네.”

직원이 가자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길가에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반짝였고 하얀색과 빨간 불빛을 내는 수많은 차들이 끊임없이 줄지어 가고 있었다.

한동안 야경을 구경하고 있는데 인기척을 느껴 고개를 돌렸다.

황규희가 내 앞에 앉고 있었다.

오늘은 의상이 오피스룩이라 그런지 성숙하게 보였다. 지난번 청바지에 티를 입고 있을 때는 영락없는 청순한 여대생처럼 보였는데.

“뭘 넋을 보고 봐?”

“강남 도심의 야경.”

황규희도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기 야경 좋네.”

“저걸 보면 누가 IMF 시기라고 생각하겠어?”

“그렇지. 원래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진 않은 곳에서부터 곪아 터지는 거거든. 눈에 보일 때는 이미 늦은 거고. 세상에는 밝음과 어두움이 동시에 공존하니까. 밝은 것을 보면 세상이 밝은 것 같고 어두운 곳을 보면 세상에 어두워지는 법이야. 그러니 사람은 어느 쪽을 보고 사는가에 따라 그 인생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알 수가 있어.”

“넌 그런 걸 어떻게 알아?”

“할아버지한테 배웠어.”

“별걸 다 배웠네.”

“오빠는 모를 거야. 내가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에게 뭘 배웠는지. 이건 기본이고 사람 관상 보는 법도 배웠어.”

“관상도 배웠다고?”

“응. 나도 웬만큼 봐. 할아버지한테 돈을 빌리러 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관상을 배우면서 실전을 익혔어. 할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나를 후계자로 생각하신 것 같아.”

어린 나이 때부터 별걸 다 배웠네.

“내 관상은 어떤데?”

“왜 궁금해?”

“당연하지.”

“오빠는 관상을 믿어?”

“안 믿어.”

“그러면서 왜 물어?”

“재미있잖아. 난 어떤데?”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오빠 관상은 봐도 잘 모르겠어. 신기한 관상이야.”

“나쁘지만 않으면 되지.”

“여기 처음 와 보는데 되게 좋네. 여긴 어떻게 알았어?”

“나도 여기는 두 번째 오는 거야. 예전에 누구랑 같이 왔거든.”

“여자지?”

“여자는 맞는데 일 때문에 만난 분이야. 배고프지 주문할까? 여기 스테이크 되게 맛있다.”

“알았어. 주문해.”

직원을 불러 주문하였다.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식사를 맛있게 하고 후식으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어때 음식 괜찮지?”

“응. 고기가 연한 게 너무 맛있어. 여기 자주 와야겠어.”

“맛있게 먹었다니 다행이네. 요즘 소문을 들어보니 어페럴 잘나간다며?”

“아직도 멀었어. 조금 나아진 것뿐이야.”

“그래도 망하는 회사 살리고 대단해. 능력 있네.”

“그 정도로 능력 운운하는 것은 나에게는 실례야. 진짜 능력 있다고 인정받으려면 세계적인 의류 회사로 거듭나야지.”

와 진짜 야망이 크네. 정말로 세계적인 의류 회사로 만들 생각인가? 그렇게 되면 나에게 매각하려고 할까?

“재미있어?”

“응. 회사가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것을 보니 재미도 있고 보람도 느껴.”

“정말 세계적인 의류 회사로 만들 생각이야?”

피식 웃었다.

“왜 내가 계속 소유하고 있을까 봐 걱정돼?”

“그게 아니라 네 꿈이 큰 거 같아서.”

“내가 이 일을 하기 전까지는 할아버지 일이 적성에 맞는 줄 알았거든. 근데 이 일을 해 보니 이것도 내 적성에 맞는 거야. 그래서 요즘 할아버지 일을 맡아야 하나? 고민이야.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 오빠한테 넘길 테니까. 내가 사업할 거면 계속할 사업체를 인수하거나 설립할 거야. 지금은 경영 수업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내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하는 거야. 그래서 여기에 내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거든. 그래서 나도 바빠.”

다행이다.

“회사 소식 듣고 잘나가니까 그게 걱정돼서 날 만나자고 한 거지?”

“아니야. 사실 내가 진성 무역을 인수하려고 하거든. 근데 내가 전면에 나설 수가 없어서 진성 어페럴 인수한 것처럼 DS 자산 운용에서 사모 펀드를 조성해서 인수할까 해서.”

“진성 무역만?”

“응. 지금 위태위태하다고 하네. 파산하기 전에 인수하려고. 도와줄 수 있지?”

“어려운 것도 아닌데. 내가 DS 자산 운용 사장보고 오빠 찾아가라고 할 테니까 이야기해 봐.”

“고마워.”

“근데 인수 자금은 있어?”

“응.”

“그럼 진성 무역뿐만 아니라 이번 기회에 다른 기업들도 인수하지? 할 때 같이하는 게 좋잖아.”

그럴까? 몇 개월만 있으면 2조 원이 넘는 돈이 생기는데 할 수 있을 때 하면 좋겠지. 근데 진성에서 매각하려고 할까?

현재 진성에 남은 계열사가 진성 무역을 비롯해 금속, 화장품, 유통 4개인데 진성 무역을 매각하면 3개 계열사만 남기에 위험하지 않으면 매각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니지! 남은 3개 계열사도 지금 좋은 상황이 아니기에 언제 부도가 나서 파산할지 모르는데 인수할 곳이 있다면 매각하는 것이 더 이익이니까 매각할 수도 있겠지.

이번 기회에 진성 무역과 함께 더 인수할 수 있으면 인수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생각해 볼게.”

황규희랑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 박도진이 준 자료를 보고 있었다.

진성 무역 다음으로 위험한 곳이 진성 금속과 진성 화장품이었다.

진성 화장품은 석구 형이 비자금으로 20억 원 넘게 빼돌린 것 때문에 어려워진 것 같았다. 그 돈 채워 넣었나 모르겠네.

만약 진성 화장품을 인수하게 된다면 그 돈 전부 받아내야지. 안 주면 검찰에 고발한다고 하면 토해 낼 것이다.

* * *

진민재와 헤어진 황규희는 집으로 돌아오자 할아버지 서재로 향하였다.

“할아버지 다녀왔어요.”

“늦었네? 또 야근한 거야? 일도 중요하지만, 몸도 생각해야지. 잠시 맡았다가 적당한 수수료 받고 넘겨주면 되는 건데 뭘 그리 열심히 일해?”

“일하다 온 거 아니에요. 민재 오빠 만나서 저녁 같이 먹었어요.”

“뭐? 그놈을 만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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