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MP3 원천 기술을 개발할 때부터 심 과장은 시작하면 끝장을 보려는 근성이 있다는 것을 난 보았다.
연구자나 개발자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자세였다.
역시 심 과장에게 맡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에도 든든하였다.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고요. 그리고 제가 현도 전자의 핸드폰 사업부를 인수하려고 해요.”
“정말입니까?”
“네. 핸드폰이 개발되면 생산할 곳이 필요하잖아요.”
“그렇기는 합니다. 언제 인수하는 겁니까?”
“몇 개월 정도 걸릴 거예요. 미리 알고 계시라고 말해 주는 거예요.”
“현도 전자를 인수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현도 전자에서 직접 핸드폰을 생산하니 그만한 생산 노하우가 있을 겁니다.”
“생산 노하우뿐만 아니라 핸드폰 기술도 있죠. 그래서 인수하게 되면 연구원 중에 실력이 있는 몇 명을 뽑아서 극비리에 개발을 추진하려고요. 그때 심 과장님이 프로젝트팀장을 맡아서 연구를 주도했으면 해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지 놀라는 모습이었다.
“네? 제가 팀장을 맡는다고요?”
“네. 심 과장님이 그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현도 전자에는 저보다 더 뛰어난 기술자들이 많을 겁니다.”
당연히 있겠지. 하지만 난 젊은 연구원들을 중심으로 프로젝트팀을 만들 생각이었다.
심 과장이 나이가 많지 않아 팀원들을 이끌려면 나이 많은 사람들은 불편해할 것 같고 스마트폰은 기존 상식과 핸드폰과는 전혀 다르기에 젊은이들만의 감각과 개성, 사고방식이 더 맞을 것 같았다.
“있을 수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심 과장님이 실력도 있고 제가 만들려는 핸드폰에 대한 이해력도 뛰어나요. 지금 만들려는 핸드폰은 처음 출시되는 거라 특별한 기술이 많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나중에 다른 핸드폰 회사들이 우리와 같은 핸드폰을 따라 만들 거예요. 그때부터 진정한 기술 싸움이 들어갈 거예요. 그럼 우리는 그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핸드폰을 출시해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어요. 핸드폰을 개발하고서는 그다음 단계 준비로 제가 말하는 기술들을 개발해야 하고요. 앞으로 할 일이 많을 거예요.”
“제가 그런 막중한 임무를 맡아서 잘할지 모르겠습니다.”
“잘할 거예요. MP3도 개발했잖아요.”
“그거랑 이거랑 같습니까? 전혀 다릅니다.”
“다를 것 없어요.”
“고문님께서 저를 믿고 맡겨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런 정신으로 하면 돼요.”
“고문님! 근데 개발하고 나서 개발할 것이 비디오 추가 말고 개발할 것이 많이 있습니까?”
“네. 많이 있어요. 지금 이야기해 줄 수도 있지만 지금 개발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프고 복잡할 텐데 그것까지 들으면 더 머리만 복잡하고 아플 거예요. 미리 그런 고통을 겪을 필요는 없을 거예요.”
“많다고요? 저는 당장 생각나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고문님은 그런 것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거야 앞으로 나올 기술들을 직접 보고 사용했으니까.
“심 과장님도 시간 날 때 뭐가 있으면 좋을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개발하는 핸드폰 보안 유지 꼭 하시고요.”
“물론입니다. 여기 연구실은 다른 사람들은 들어오지 못합니다. 지금 개발하는 핸드폰은 회사 내에서 사장님만 알고 있습니다.”
“알았어요. 저는 온 김에 황 사장님 만나보고 갈게요.”
“알겠습니다.”
황정화 사장과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차를 마시던 황 사장이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물었다.
“심 과장이 만든 핸드폰 보셨습니까?”
“네. 잘 만들었더라고요.”
“심 과장 실력이 아주 뛰어납니다. 제가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본 결과 자기 전공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도 뛰어납니다. 그래서 제가 심 과장을 믿고 회사를 설립한 겁니다. 심 과장 없었으면 저는 계속 직장 다니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 거 같더라고요. 제가 말하는 것을 단번에 파악하고 이해하더라고요.”
“믿고 맡기시면 분명 좋은 결과를 얻을 겁니다.”
“저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하려는 것을 설명하자 놀라는 모습이었다.
“통신 사업부라고 하지만 그 규모가 무척 큰데 그걸 인수하시겠다는 겁니까?”
“네.”
“가면 갈수록 회사가 커집니다. 어디까지 커질지 기대가 됩니다.”
이번 인수는 오션이 아니라 내 개인적으로 하는 건데 지금 말할 필요는 없겠지.
* * *
다음 날 아침에 커피숍에 출근하여 커피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스마트폰을 출시하고 나면 무엇보다 앱이 가장 중요하다. 스마트폰을 구매하고 사용할 일이 없다면 누가 비싸게 스마트폰을 구매할까?
스마트폰을 구매해야만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바로 앱 개발이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물론 출시하고 오션 플레이어를 만들어 놓으면 여러 업체에서 앱을 개발하고 등록하겠지만 그 시간이 1년 정도 걸릴 것이기에 그동안 기본적인 앱이 있어야 한다.
뭐가 좋을까? 간단한 게임도 필요하고 그밖에 필요한 것들을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적었더니 몇 가지가 안 되었다. 나머지는 생각날 때마다 적으면 되겠지.
게임 개발하고 있는 신상철을 바라보았다.
“상철아!”
“어. 왜?”
“잠시 시간 낼 수 있어.”
“어.”
신상철이 내 앞으로 와서 앉았다.
“서머위즈 워 버전 2는 언제 개발이 끝나?”
“6월까지는 가야 할 것 같아. 그 후에 2개월 정도 테스트하면 9월부터는 서비스가 가능할 거야.”
“그럼 2년 만에 버전 2 출시하는 거네.”
“그렇지. 라니지 2는 개발이 끝난 거야?”
라니지 2는 이미 개발이 끝나고 테스트까지 끝난 상태이다.
마찬가지로 2000년 9월 1일 출시 2년이 되는 날에 버전 2를 출시할 예정이었다.
“응. 테스트까지 다 끝났어.”
“벌써?”
“거기는 개발자가 3명이잖아. 혼자 개발하는 너보다는 당연히 빠르지.”
“지금 뭐 하고 있어?”
“다른 게임 구상하고 있다고 하더라.”
“나도 분발해야겠네.”
신상철에게 앱 게임을 맡기려고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신상철보다는 네이브 송재영 팀장과 팀원들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해. 꼭 2년에 맞혀 출시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알았어. 더 할 말 없으면 가 볼게.”
“그래.”
신상철이 자기 자리로 가는 것을 보고 핸드폰을 들었다.
(이주희입니다.)
“안녕하세요?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세요? 어쩐 일이세요?)
“송재영 팀장과 팀원들 요즘 뭐하나요?”
(여전히 새로운 게임 개발하려고 구상하고 있어요.)
하긴 새로운 게임 구상이 바로 되는 건 아니니까. 그럼 시간은 있을 것 같았다.
“제가 그 팀원들 잠시 일을 시켜도 될까요?”
(저는 상관없는데 당사자인 송 팀장하고 상의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제가 물어볼까요?)
“아니에요. 제가 내일 가서 이야기할게요.”
(그러세요. 근데 무슨 일을 시키려고 하는 거예요?)
“필요해서 간단한 게임 개발을 시키려고요.”
(알았어요. 내일 오세요.)
“네. 내일 봐요.”
전화를 끊는데 HQ 컨설턴트 장기호 팀장이 들어오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시니까? 고문님!”
“안녕하세요? 앉으시죠.”
“네.”
자리에 앉았다.
“요즘 오션이 잘나가나 봅니다. 3곳을 한꺼번에 인수하시게요.”
오션이 아니라 내 개인적으로 인수한다는 것을 지금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실사하는데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닐 테니까.
“계속 발전해야죠.”
“그렇기는 합니다. 정체된 기업은 이미 죽은 기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계속 나가야 회사가 성장하는 겁니다.”
“알아보셨어요?”
“네. 고문님 전화 받고 여러 루트를 통해 알아봤습니다. 세계 시장 메모리 점유율 5위였던 현도 전자가 작년에 반도체 빅딜. 즉, 점유율 4위인 LU 반도체를 합병하면서 현도 전자가 휘청거리기 시작한 겁니다. 반도체 산업이 워낙 많이 돈이 들어가는 사업이고 현도 전자가 그동안 여기저기 벌인 사업이 너무 많아서 심한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겁니다. 이런 공격적인 투자는 호경기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IMF 위기를 맞아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겁니다. 이 위기를 벗어나고자 반도체 사업만 제외하고 나머지 사업을 분리 또는 매각한다는 방침을 이미 그룹 내에서 정했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언론에 기사까지 나왔지만,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는데 고문님이 인수하신다니 현도 전자에서 본격적으로 분리, 매각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 시작을 고문님이 하시는 겁니다. 근데 저 개인적으로는 다른 유망한 사업도 많은데 고문님이 인수하시려는 맥스터하고 통신부문 사업과 TFT-LCD 사업은 앞으로도 힘든 길을 걸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3곳을 포기하고 다른 사업을 인수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오션이 인터넷 기업이라 인터넷과 연관된 사업들이 현도 전자에 많습니다. ADSL 사업도 있고 통신 시스템 사업도 있고 컴퓨터 사업, 모니터 사업, 게임 사업 등 이런 사업부를 인수하면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겁니다.”
장기호 팀장이나 남들이 보기에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3개 사업은 내가 하려는 사업에 연관되고 도움이 되는 사업이라 지금은 별 매력이 없겠지만 나중에는 달라질 것이다.
“무슨 말인지 저도 잘 알아요. 하지만 다 계획이 있어요.”
“고문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알겠습니다. 그럼 실사 의뢰 계약부터 진행하시겠습니까?”
“그러죠.”
장 팀장이 계약서를 꺼내 나에게 건네어 읽어 보았다.
이미 장 팀장과 디지털 카스트 인수 작업을 한번 했기에 계약서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계약하면 언제부터 실사 들어가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3곳을 동시에 진행하는 거라 인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현재 회사에 다른 일도 진행하고 있어 3곳을 동시에 진행하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고문님이 동시에 3곳을 진행하기를 원하시면 다른 곳에서 인원을 충원해야 합니다. 만약 동시에 진행하지 않아도 된다면 비용이 더 저렴해질 수 있습니다. 꼭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겁니까?”
내가 당장 급한 거는 아니다. 올해나 내년 상반기까지만 인수하면 되기에 굳이 꼭 동시에 진행할 이유는 없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에요.”
“그럼 순차적으로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일단은 스마트폰을 개발해야 하니 제일 먼저 통신 사업부부터 인수해야겠지.
“그렇게 해요. 대신 통신 사업을 제일 먼저 진행해 주세요.”
“그다음은 어느 사업을 합니까?”
“다음은 맥스터하고 TFT-LCD 사업순으로 하시고요. 이렇게 하면 바로 진행할 수 있나요?”
“네. 그렇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가능합니다.”
“그럼 제가 현도 전자에 연락해 놓을 테니 다음 주 월요일부터 진행하는 거로 하죠.”
“알겠습니다.”
“현도 전자에서 최대한 협조를 한다고 하니 최대한 빨리 인수하는 것으로 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계약서를 다시 수정해서 가져오겠습니다. 그 외에 계약서상에 다른 문제는 없는 겁니까?”
“네. 없어요. 언제 오실 건가요?”
“내일 오후쯤에 오겠습니다.”
내일은 네이브와 오션에 갈 건데.
“제가 내일 일이 있어서 오시려면 내일 오전 10쯤 오셔야 하는데 가능할까요?”
“알겠습니다. 내일 오전 10시까지 오겠습니다.”
“그래요.”
“감사합니다.”
장 팀장이 갔다. 이렇게 전진 또 전진을 위해 하나씩 진행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