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알면서도 왜 그런 핸드폰을 만들려는 겁니까?”
“누가 벽돌폰을 만든다고 했나요? 제가 생각하는 핸드폰은 작은 핸드폰이에요.”
심 과장이 입을 열었다.
“사진 카메라는 가능하지만, 비디오카메라까지 추가하는 것은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합니다. 지금 사성전자에서 내년 2000년도에 새로운 핸드폰을 출시할 예정인데 세계 최초로 사진 카메라 기능을 추가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사진은 가능하지만, 비디오는 힘듭니다. 비디오카메라만 해도 크지 않습니까?”
사성 전자에서 세계 최초로 카메라 기능을 추가한 핸드폰을 내년에 출시한다고? 그럼 그 이후로 나오는 핸드폰들은 전부 카메라를 추가하겠네.
근데 비디오는 현재로서 추가하기가 기술적으로 힘든가? 스마트 폰에 비디오 기능이 언제 추가되었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비디오는 추가하기가 힘든가요?”
“네. 제가 다시 한번 확인해 보겠지만 제가 알기로는 힘듭니다.”
아이폰이 처음 출시될 때 비디오 기능이 있었던가? 난 사성 전자 핸드폰만 사용하여 잘 모르겠다.
지금 비디오 기능을 추가하지 못한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 나중에 가능해지면 그때 해야지.
“비디오를 추가할 수 있을지 한번 알아보세요.”
“알겠습니다.”
순간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2002년도에 사성 전자에서 세계 최초로 영상 녹화와 재생이 가능한 애니콜 핸드폰을 출시한 기억이 떠올랐다.
왜냐하면, 그때 한국이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기록하여 한국인 직장 동료가 핸드폰으로 월드컵 영상을 보면서 자랑하면서 나보고 핸드폰을 바꾸라고 한 것이 기억났다.
2002년은 앞으로 3년 후이고 내가 3년 안에 스마트폰을 출시할 예정이니 비디오 기능 추가는 문제가 안 될 것 같았다.
사성 전자도 했는데 못 할 거는 없지.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1~2년 후에는 가능할 수도 있었다.
심 과장이 앞으로 스마트폰을 개발하려면 지금의 핸드폰에서 빠져나와 개념이 바뀌어야 앞으로 스마트폰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제가 생각하는 핸드폰은 대략 가로 60mm, 세로 115mm, 두께 12mm인 직사각형의 핸드폰이에요. 즉, 담뱃갑보다 약간 길고 두께는 훨씬 얇은 핸드폰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이해가 가지 않는지 갸우뚱거리다가 주머니에서 자기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지금 핸드폰이 이런데 그게 가능합니까? 크기야 지금보다 조금 줄이면 가능하겠지만 두께는 줄이기가 불가능합니다. 현재 제 핸드폰만 해도 두께가 30mm 정도 됩니다. 폴더를 열더라도 12mm 넘습니다. 두께를 줄이려면 폴더폰은 힘듭니다.”
심 과장의 핸드폰은 사성 전자 폴더폰이었다.
“제가 생각하는 핸드폰은 이런 게 아니에요. 전체가 평면이고 버튼을 누르는 게 아니라 터치스크린을 이용하는 거예요. 혹시 면세점에서 물건을 산 적이 있어요?”
“네. 있습니다.”
“그때 거기서 계산할 때 화면을 터치해서 계산하지 않았나요?”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원리에요. 버튼을 누르는 게 아니라 컴퓨터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우스가 아니라 손가락으로 눌러 실행시키는 원리이죠.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한동안 자세히 설명을 하였다.
“그렇기에 하드웨어적으로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전부 제어하는 거예요. 그렇기에 가능한 거죠.”
내 설명이 다 끝나자 황 사장과 심 과장은 충격을 받았는지 멍하니 입을 벌리고 나를 바라만 보았다.
그럴 만하지. 지금 이 시기에 그런 발상을 한다는 게 황당하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걸 테니까.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 황 사장이 정신을 추스르고 입을 열었다.
“고문님! 이런 걸 어떻게 생각하신 겁니까? 마치 SF 영화에서나 나올만한 핸드폰입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심용철 과장도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이건 고문님 같은 천재가 아니라면 절대 생각하지 못할 겁니다. 고문님 말씀을 들으니 제 핸드폰이 구석기 유물같이 느껴집니다.”
황 사장이 물었다.
“고문님 그게 기술적으로 가능한 겁니까?”
“가능하죠. 버튼 대신 터치스크린으로 하는 거니까요. 지금도 터치스크린을 사용하는 곳도 많잖아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핸드폰은 단순히 터치만으로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사용하기 쉽고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작동하게끔 하고 멀티 작업도 가능하다는 거예요.”
심 과장이 내 말에 공감하였다.
“제가 생각하기에 충분히 가능합니다. 다만 윈도우가 핸드폰에서 작동할지가 관건인 것 같습니다.”
“핸드폰에서 윈도우를 사용하지 않아요. 윈도우는 PC 전용이지 핸드폰 전용은 아니에요. 별도의 핸드폰 전용 OS가 필요해요.”
“그럼 핸드폰 전용 OS를 개발해야 하는 게 아닙니까?”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심 과장이 그런 나를 보며 경악하였다.
“이미 개발했다는 겁니까?”
“네. 개발 끝난 지 좀 되었어요.”
“쉽지가 않았을 텐데 그걸 개발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오션팟 OS도 개발했잖아요.”
“오션팟 OS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유치원생하고 대학생 정도 차이가 날 겁니다. 그럼 OS도 있으면 바로 개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죠.”
“제가 당장 개발하겠습니다.”
심 과장이 핸드폰 전문가가 되었다니 지금부터 개발을 시작해도 될 것 같았다.
“할 수 있겠어요?”
“영혼까지 갈아 넣겠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프로젝트는 저보다 더 실력 좋은 분들이 개발해야 하지만 저한테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절대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영혼까지 갈아 넣게 하는 악덕 사업주 같네.
“시간은 많으니까 무리하지는 마세요.”
“감사합니다.”
한동안 스마트폰 개발 이야기를 나누고 나왔다.
심 과장이 이제 개발을 시작할 테니 개발에 성공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 * *
진민재 고문이 가자 황용화 사장과 심용철 과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거냐?”
“형 난 오늘부터 진민재 고문을 내 우상으로 섬길 거야. 나보다 나이가 적기는 하지만 내가 오를 수준이 절대 아니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더구나 불가능한 것이라면 망상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 텐데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천재라서 그런가? 오션팟만 해도 놀랄 정도인데 핸드폰은 그걸 아득히 뛰어넘네.”
“아니야. 이건 단순히 머리가 좋은 천재라서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독창성이나 창의력이 뛰어난 거야. 보통은 두 가지를 다 갖기 힘든데 진 고문은 두 가지를 전부 가진 것 같아. 보통 사람들은 뛰어난 창의력이 있어도 그걸 실제 구현하기가 힘들어. 구현하는 것은 다른 사람 몫이지. 하지만 진 고문은 자신이 상상한 것을 실제 구현할 능력이 있는 거야. 그러니까 무서운 거지. 진 고문 말을 들어보니 핸드폰 OS 수준이 컴퓨터 OS 수준과 맞먹을 정도야. 그걸 혼자서 이미 개발했다니 이 정도면 내가 우상으로 삼기에 자격이 충분해.”
“근데 개발할 수 있겠어?”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어. 쉽게 설명하면 컴퓨터를 조립하는 것과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하다고 볼 수 있어. 이건 핸드폰 OS가 80%를 차지하는 거야. 컴퓨터도 OS가 없으면 조립해도 사용할 수가 없잖아.”
“그런 거 같다. 열심히 해 봐.”
“알았어. 형. 내 인생의 가장 역작을 꼭 만들고 말 거야.”
말하는 심용철 과장의 얼굴에 비장함이 가득 서려 있었다.
* * *
오션팟을 나오고 분당으로 와서 전셋집을 계약했던 부동산 중개소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전세 만기 때문에 오십 겁니까?”
날 기억하나 보네.
“절 기억하세요?”
“그럼요. 키도 크고 잘생겨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내년 1월에 만기거든요. 그래서 집을 살까 해서요.”
“집을 사시겠다고요? 몇 평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미국에서 넓은 집에 며칠 묵었더니 큰 집이 좋아졌다.
“48평이면 좋겠어요.”
“혼자 사시지 않습니까?”
“맞아요. 나중을 생각해서요.”
“그렇기는 합니다. IMF 이후로 집값이 많이 내렸는데 요즘 조금씩 상승하는 추세입니다. 시기는 잘 선택하신 것 같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매물 확인 좀 하겠습니다.”
“네.”
잠시 기다리자 서류 여러 장을 가지고 내 앞에 앉았다.
“분당에 48평짜리 아파트가 많아 매물은 여러 개가 있습니다. 먼저 이것부터 보시고 집을 보러 가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동안 제가 집주인에게 연락해 약속을 잡겠습니다.”
“네.”
중개인이 준 서류를 받아 보았다. 총 6집이었다.
내가 사는 단지 안에도 있고 대부분 근처 아파트였다. 다 같은 48평이고 1기 신도시라 지은 지도 거의 비슷한 시기이고 층만 달랐다.
15층 최상층이 있네. 이왕이면 높은 곳이 좋겠지. 일단 이 집을 찍었다.
“두 집 빼고 연락이 됐습니다. 먼저 연락된 곳 보시고 두 집은 내일 보시면 될 겁니다.”
“그러죠.”
“가시지요.”
“네.”
집을 다 보고 나왔다.
“오늘은 이것으로 끝인데 어떠셨습니까?”
네 집을 보았는데 다들 비슷하였고 내일 두 집 더 보더라도 오늘 본 집하고 비슷할 것 같아 15층짜리로 마음을 정했다.
“15층 집이 괜찮네요. 그 집으로 계약할게요.”
“내일 더 안 보십니까?”
“봐도 비슷할 것 같아서요.”
“하긴 최상층 집이 잘 나오지 않아서 있을 때 잡는 것이 좋기는 합니다. 계약은 언제 가능하십니까?”
“저는 아무 때나 괜찮아요. 연락 주시면 바로 올게요.”
“알겠습니다. 제가 주인에게 연락해 날짜 잡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네.”
커피숍으로 돌아오자 반가운 손님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서영이었다.
지난번에 학교로 찾아갔을 때 이곳을 알려 주었지만 한 번도 오지 않았는데 연락도 없이 웬일이지?
근데 표정을 보니 어두웠다. 무슨 일이 있나? 그 앞으로 갔다.
“서영아!”
커피를 마시다가 고개를 돌렸다.
“오빠!”
“어떻게 왔어?”
“오빠 보고 싶어서.”
앞에 앉았다.
“연락하고 오지. 많이 기다렸어?”
“아니야.”
강성중이 다가와 커피를 내려놓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눈빛으로 누구냐고 물었다.
무시하고 커피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여기서 오빠가 작업하는 거야?”
“응. 대부분 여기 있는데 오늘은 일이 있어서 나갔다 온 거야. 학교 갔다 온 거야?”
“졸업반이라 수업이 거의 없어. 집에 있다가 나왔어.”
“소설 연재하는 건 잘돼?”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 나름대로 인지도가 생겼어.”
서영이는 내가 추천해 준 대로 다옴에서 여성향 소설을 연재하고 있는데 인기가 있는 작가 중의 한 명이었다.
쓴 글도 읽어 보았는데 재능이 있었다. 이대로만 쭉 성장하면 스타 작가가 될 것 같았다.
“열심히 해. 내가 봐도 넌 재능이 있어.”
“고마워. 나도 내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은 것 같아 좋아.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 가서 글만 쓰고 싶어.”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아니라고 하지만 얼굴에는 맞아! 라고 하고 있었다. 작은 집 문제 같은데.
“오빠인데 뭘 숨겨? 오빠한테는 말해도 돼.”
“나 집에 있기가 싫어.”
“왜?”
“요즘 엄마하고 아빠하고 맨 날 싸워. 또 석구 오빠가 무슨 사고를 쳤는지 엄마, 아빠한테 혼나고 싸워. 희영 언니도 동민 오빠도 서로 싸우고. 집에 있으면 편히 쉬는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불안해.”
석구 형이 혼났다는 것을 보니 비자금 빼돌린 것이 들통났나 보네. 그러길래 적당히 빼돌렸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