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곧이어 경매가 시작되려는지 직원들이 테이블을 돌며 설명서가 있는 파베르제 달걀 사진 자료와 탁구채 같은 번호판을 주었다.
이런 자료는 들어올 때 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단상에는 직원 두 명이 유리관 안에 든 파베르제 달걀을 가지고 나왔고 사회자 뒷면 화면에는 커다란 파베르제 달걀 사진이 올라왔다.
“지금부터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경매 작품은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1889년 작품인 파베르제 달걀이며 사라졌던 6개의 파베르제 달걀 중의 하나입니다. 1889년 작 파베르제 달걀은 초창기 작품으로 일명 Necessaire egg로 불리며 황금으로 모형을 만들었고, 달걀 중앙에 다이아몬드와 루비, 사파이어 등 보석으로 띠를 만들어 디자인이 독창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으면 달걀을 열면 흑진주가 있어 마치 산통을 겪고 다시 부활하려는 의미를 잘 나타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경매 시초가는 2,000만 달러이며 50만 달러 단위로 시작하겠습니다. 2,050만 있습니까?”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여러 사람들이 번호판을 들었다.
“시작부터 열기로 가득합니다. 다음 2,100만 있으십니까?”
마찬가지로 여러 사람들이 번호판을 들었다.
“다음 2,150만 있으십니까?”
그렇게 계속 금액이 올라 2,600만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번호판을 계속 들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빌 매드슨도 계속 번호판을 들었다.
“2,650만 있습니까?”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자 10명 정도가 번호판을 들었다.
그때 한 중년 여성이 소리쳤다.
“3,000만.”
그러자 빌 메드슨의 인상이 구겨지며 소리쳤다.
“3,100만.”
중년 여성이 빌 매드슨을 바라보고서는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소리쳤다.
“3,600만.”
와! 순식간에 500만 달러가 올랐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빌 매드슨이 더 부를까 궁금하다는 듯 모든 시선이 빌 매드슨에 향하였다.
빌 매드슨이 그런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얼굴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복잡한 감정이 보였다.
“네. 3,600만 달러 나왔습니다. 다른 분 더 없습니까? 없으면 3,600만 달러에 낙찰됩니다. 더 없습니까?”
사회자가 좌중을 둘러보다가 다시 외쳤다.
“10초를 세겠습니다. 10, 9, 8, 7…….”
숫자가 점점 줄어들자 빌 매드슨의 얼굴이 더 복잡하게 변화였고 다른 사람들은 긴장한 채 빌 매드슨을 바라보고 있었다.
“5, 4, 3, 2, 1.”
사회자가 숫자를 다 셀 동안 빌 매드슨은 번호판을 들지 못하였다.
“네. 1889년 작품 파베르제 달걀은 3,600만 달러에 낙찰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내심 빌 매드슨이 한 번 더 부르기를 바랐지만 입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한 번 더 불렀다면 최소 4,000만 달러는 넘었을 텐데 아쉬웠다.
빌 매드슨이 날 보며 멋쩍게 웃었다.
“내 것이 아닌가 봅니다.”
“다음에도 기회가 있을 겁니다.”
“와이프 볼 면목이 없게 되었습니다. 3,000만 달러면 될 줄 알았는데 저 여성분은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붙었다가 지면 상처가 더 큽니다. 초반에 포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맞는 말 같았다. 괜히 붙었다가 감정 조절하지 못하고 폭주할 수도 있고 이기지 못하면 자괴감이 들 것 같았다.
근데 저 여자는 누구지? 빌 매드슨처럼 고민하는 것도 하나도 없이 시종일관 편안한 얼굴이었다. 남편이 돈이 많은가?
처음부터 상대가 안 되었다. 잘 판단한 거지.
빌 매드슨이 일어났다.
“가시게요?”
“네. 집에 가서 와인 한잔해야겠습니다.”
자존심 상했나 보네.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편안할 텐데.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다음에 만나 와인 한잔합시다.”
“네.”
빌 매드슨이 나가자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가는 사람도 많았지만 가지 않고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많았다.
자 사람들은 경매가 목적이 아니라 친선이 목적인 것 같았다.
대기실에 들어가자 사람이 많았고 경매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따라온 수행원들로 보였다.
음료와 다과도 구비되어 있고 시설도 괜찮았다. 커피를 마시던 배상도가 나를 보고 일어났다.
“끝났어요. 가죠.”
“네.”
나가는데 수잔이 들어왔다.
어디 있다가 지금 나타난 거야?
“수잔!”
“가시려고요?”
“네. 끝났으니까요.”
“직접 참가하니 어떤 것 같아요?”
“세상에 돈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더라고요.”
“많아요. 제가 여기서 일하다 보니 돈 많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제대로 실감해요. 근데 저는 돈이 없으니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크기는 해요.”
“그럴 것 같네요. 낙찰된 여자는 뭐 하는 여자예요?”
“죄송해요. 그건 알려드릴 수 없어요.”
“이해해요.”
“정산은 입금되면 3일 안에 어카운트로 보내드릴 거예요. 바로 한국으로 가시는 거예요?”
“아뇨. 실리콘 밸리에 들려다가 갈 거예요.”
“박물관에 기탁 하신 파베르제 달걀도 나중에라도 마음 변하시면 꼭 연락 주세요.”
“네. 그럴게요. 고마웠어요.”
* * *
그날 저녁 오페라를 보고 다음 날 뉴욕에서 출발하여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다.
공항에서 나와 핸드폰을 들었다.
(에릭 슈밋입니다.)
“안녕하세요?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언제 오시는 겁니까?)
“지금 도착해서 공항에서 나왔어요.”
(네? 너무하십니다.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공항에 나갔을 텐데요.)
“그래서 연락 안 했어요. 바쁜데 왜 나와요? 저는 렌트카 빌리면 되거든요.”
(그래도 고문님이 오시는데 마중은 가야 하지 않습니까?)
나한테는 그게 더 부담이다. 에릭은 열심히 일해서 내 재산을 불려주면 되는 거다. 내가 에릭에게 바라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집 주소나 알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저녁때 퇴근하고 집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주소가… 입니다. 관리인에게는 지금 연락하겠습니다.)
내가 앞으로 미국과 한국을 자주 왔다 갔다 할 텐데 그때마다 호텔에서 지낼 수 없기에 에릭에게 집을 하나 구해달라고 부탁했었다.
또 집을 비우는 동안 집을 관리할 관리인으로 한국 사람을 구해달라고 하였다.
“그래요. 저녁 같이해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렌트카를 빌려 내 집으로 향하였다.
와! 집이 너무 좋았다.
영화에서 보는 대저택은 아니었지만, 꽤 큰 이층집이었고 옆에는 별채로 보이는 집도 있었으며 정원도 넓었고 무엇보다 해변 언덕에 지어진 집이라 바다가 훤히 보였다.
이 언덕에 이 집뿐만 아니라 여러 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지금 IT 버블로 인해 주가가 많이 상승하자 갑부들이 늘어나 요즘 실리콘밸리 쪽 집값이 많이 상승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본격적인 상승이 아니라서 그런지 이 집이 200만 달러밖에 하지 않았다.
앞으로 꽤 많이 오를 텐데. 에릭이 잘 골랐네.
집 안에는 아직 들어가지 않았지만 무뚝뚝한 배상도도 집이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성중이 왔으면 되게 좋아했겠어요.”
“그럴 것 같습니다. 미나도 오면 좋아했을 겁니다. 여기에 서서 바다를 보니 제가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 같이 올 걸 그랬나?
엄마랑 내 동생 서희랑 같이 여기에 앉아 바다를 보는 상상을 해 보았다. 얼굴은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남동생도 있었다.
그럴 날이 올까? 내 욕심인가?
“그러게요. 미나도 아주 좋아했을 것 같네요. 다음에는 같이 오죠.”
“이런 집 많이 비쌉니까?”
“200만 달러라도 하네요.”
“생각보다 비싸지 않습니다. 저는 꽤 비쌀 줄 알았습니다.”
“미국 집값이 그리 비싸지는 않아요.”
“바다를 보니 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습니다.”
나도 그랬다. 드넓은 바다를 보니 모든 잡다한 생각들이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는 것 같았다.
“여기서 바다를 보며 바비큐 하면 아주 좋을 것 같네요.”
“오셨습니까?”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중년 남녀가 서 있었다. 부부인가?
“안녕하십니까? 저희가 이 집 관리를 맡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저희가 잘 부탁드려야죠. 집 안에는 안 들어가십니까?”
“들어가야죠.”
집 안으로 들어오자 다시 한번 놀랐다.
전주인이 집에 꽤 공을 들였는지 안에 인테리어가 꽤 고급스럽게 잘 꾸며져 있었다. 가전제품과 가구들도 새로 구매해서 전부 새것이었다.
에릭이 준비하느라 고생 많이 했겠네.
한동안 집 안을 둘러보았다.
방은 1층에 2개, 2층에 6개 해서 총 8개였고, 화장실은 10개였다. 별채는 보지 못했지만, 방이 3개가 있다고 하였다.
이 층에 있는 내 방이 25평 정도로 컸다. 방이 얼마나 큰지 킹사이즈 침대가 작아 보일 정도였다.
화장실도 컸고 고급스럽게 잘 꾸며져 있었다.
방 밖에 작은 발코니가 있었고 바다 전망이었다. 발코니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면 너무 좋을 것 같았다.
이런 거는 부부끼리 해야 하는데.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집안을 다 둘러보고 거실 소파에 앉자 아줌마가 차를 가져다주었다.
“차 드세요.”
“네. 고맙습니다.”
“오늘 저녁은 김치찌개를 하려는데 괜찮으세요?”
난 괜찮은데 오늘 에릭하고 저녁 같이 먹기로 했는데. 에릭한테는 좀 매울 수가 있을 텐데. 몰라 그냥 먹으라고 해야지.
“네. 저는 아무거나 잘 먹어요. 그리고 저녁에 손님 한 명 올 거예요. 같이 식사할 거니까 알고 계세요.”
“알았어요.”
* * *
매워서 헉헉거리며 물을 연신 마시면서도 맛있는지 잘 먹는 에릭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배상도도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식사하면서 힐끔 에릭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드세요.”
“저는 처음으로 먹는 스프인데 묘하게도 맛있습니다. 좀 덜 매웠으며 더 좋았을 겁니다.”
“매워서 맛있는 거예요.”
“고문님은 하나도 맵지 않습니까? 물 마시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김치를 매일 먹어서 그런지 하나도 맵지 않아요.”
“저도 자주 먹으면 매운맛에 적응됩니까?”
“그렇겠죠.”
“더 먹어도 됩니까?”
밥은 반만 먹었는데 김치찌개는 다 먹었다. 그러니 맵지.
“그럼요.”
주방에 있는 아줌마를 부르려다 보니 나도 배상도도 거의 다 먹었다.
“아줌마! 여기 김치찌개 3그릇 더 주세요.”
“네.”
자신이 만든 김치찌개가 잘 팔리자 기분이 좋은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김치찌개를 더 갖다 주었다.
“여기 있어요. 많으니까 드시고 더 드세요.”
“네.”
아줌마 음식 솜씨가 좋은지 김치찌개뿐만 아니라 다른 반찬들도 맛있었다. 잡채도 불고기도 맛있었다.
다들 배불리 식사하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아직도 매운지 물을 마시는 에릭에게 물었다.
“잘 먹었어요?”
“네. 얼마 만에 이렇게 잘 먹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배가 부릅니다.”
물도 그렇게 많이 마셨으니 배가 더 부르지.
“소화도 시킬 겸 밖에 나가 산책할래요?”
“좋습니다.”
에릭과 함께 마당 정원에 나와 천천히 걸었다.
“고문님 오션팟 인기가 날이 갈수록 뜨겁습니다. 며칠 전에 400만 개가 넘게 팔렸습니다. 4개월 조금 넘어서 그 정도 판매면 대박입니다. 이 정도 추세라면 올해 한 해 동안 1,000만 개가 넘게 판매될 것 같습니다.”
나도 예상보다 뜨거운 반응에 놀랐다. 이전 생에서도 초반부터 이처럼 반응이 폭발적이지는 않았는데.
왜 그런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그때는 아이팟이 나오기 전부터 MP3 플레이어가 대중화되어 MP3 플레이어가 많이 팔렸지만, 지금은 오션팟도 MP3 플레이어도 처음이라 그만큼 많이 팔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