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레이컴 양중일 사장은 매출 보고서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이 야심 차게 기획하여 출시한 MP3 CD 플레이어 매출이 가면 갈수록 떨어지고 있었다.
출시 초반만 해도 PC 통신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며 매출이 상승하여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고 눈앞에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줄 알았다.
하지만 잠시 꿈을 꾼 것처럼 그놈의 오션팟이 출시되면서 매출이 급속히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거의 매출도 없었고 판매처에서는 계속 반품을 하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회사가 망할 것 같았다.
이제 MP3 CD 플레이어를 버리고 다른 상품을 개발해야 하는 데 문제는 시간이 너무 없었다.
이렇게 빨리 무너질 줄은 몰랐다.
원래 다음 상품으로 MP3 플레이어를 출시할 생각이었는데 워낙 오션팟이 인기가 많아 출시하더라도 경쟁 자체가 되지 않을 것 같아 MP3 플레이어도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뭐가 좋을까?’
깊은 고민에 빠졌다.
MP3 플레이어 전 세계 점유율 1~2위를 하던 레이콤이 이전 생과는 다르게 MP3 플레이어를 전혀 출시하지 못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 * *
중국 헝도 전자 장저칭 사장은 보고서를 보며 심각한 고민에 휩싸였다.
MP3 플레이어가 특허권 위반으로 미국에 수출한 4,000만 달러 치의 MP3 플레이어를 가져오는 대신 1,250만 달러를 주고 오션과 합의를 하였다.
가져오기만 하면 중국 내에서 판매하여 손실을 메꿀 수 있다고 판단하였지만, 현실은 중국인들은 고가품인 MP3 플레이어를 구매할 여력이 안 되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특허권이 약한 국가에 일부 수출을 했지만, 판매가 저조하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이대로 손해를 보면 회사가 파산할 정도로 타격이 크기에 고민이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합의하지 않고 포기할 걸 하는 후회가 뒤늦게 들었다.
MP3 플레이어를 제조해 팔자고 한 리우지빈 이사는 회사를 그만두고 멀리 떠나가 어디 있는지도 몰라 책임을 묻기도 힘들었다.
‘애초부터 그놈 말을 듣는 게 아니었는데.’
욕심에 눈이 먼 중국 전자 회사는 6개월 뒤에 결국 파산하게 된다.
* * *
“사장님 가시면 언제 오시는 겁니까?”
파베르제 달걀 경매에 참석하지 않으려다가 미국을 떠난 지 1년이 넘어 오션에도 한번 가 봐야 할 것 같아 겸사겸사 갈 겸 참석하기로 하였다.
내일 미국 뉴욕으로 배상도와 함께 떠나기로 하였다.
부러운 듯 바라보는 강성중을 보며 대답하였다.
“글쎄? 10일에서 15일 정도 있다가 올 거야.”
“일본에 갔을 때가 좋았습니다.”
어이가 없어 웃었다.
강성중 말은 일본에 다 함께 가서 좋았다는 의미였고 미국에도 다 같이 갔으면 한다는 의미였다.
“일본하고는 경우가 다르지. 난 일 때문에 가는 건데.”
“상도 형은 좋겠습니다. 미국도 가보고요.”
강성중 말에 배상도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너도 나중에 갈 일이 있겠지.”
“선물 기대하겠습니다. 선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고 합니다.”
강성중을 무시하고 미나를 바라보았다.
“미나는 열심히 연습하고.”
“네.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사장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서 꼭 성공할게요.”
“그래.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네.”
“이제 밥 먹으러 가자.”
* * *
다음 날 뉴욕발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도착하였다.
수속을 마치고 나오자 수잔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에 나온다는 것을 굳이 나올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진짜 나왔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나오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제가 한국에 갔을 때 나오셨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나와야죠. 바로 호텔로 가실 거죠?”
“네.”
“제가 호텔까지 모셔다드릴게요.”
“고마워요.”
수잔 덕분에 편안하게 호텔로 왔다.
얼굴도 예쁜데 마음씨도 예뻤다. 저런 여자랑 결혼하는 남자는 행운아일 거다.
“고마워요.”
“경매가 오후 4시니까 제가 내일 2시쯤에 올게요.”
경매가 4시인데 왜 2시에 온다고 하지?
“번거롭게 뭘 와요? 택시 타고 가도 되는데요.”
“그래도 와야죠, 소더비의 귀한 고객인데요.”
“제가 아침 일찍부터 뉴욕 관광을 나갈 계획이라 그곳에서 바로 가려고요. 호텔로 왔다 가면 번거로워서요.”
“그렇기는 하네요. 알았어요. 아무리 늦어도 3시 30분까지는 오셔야 해요.”
“네. 그럴게요.”
다음 날 아침에 배상도와 함께 뉴욕 시내 관광을 나왔다.
뉴욕 시내를 걷다 보니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뉴욕에 가족들과 함께 여행 온 적이 있었는데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었다. 그때가 지금보다 더 행복했었다.
가족들이 보고 싶네.
“배 대리님! 뉴욕 처음이시죠?”
“네. 그렇습니다.”
“뉴욕은 딱 두 가지만 보면 돼요. 자유의 여신상과 뮤지컬이요.”
“네? 뮤지컬 말입니까?”
“네. 뮤지컬이라고 하면 시시하게 느껴지겠지만 뉴욕 뮤지컬은 차원이 달라요. 한번 보면 웅장함에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지금 자유의 여신상 보러 가고 저녁에는 뮤지컬 보여 줄게요.”
“저는 뮤지컬을 지금까지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심지어 연극도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안 봐도 됩니다.”
“아니에요. 한 번도 안 봤으니 꼭 봐야죠. 기대해도 좋아요.”
“영어로 하지 않습니까?”
아! 영어로 해서 못 알아들으니까 그런 거였구나.
“못 알아들어도 분위기를 보는 것도 좋아요.”
“알겠습니다.”
조금 걷다 보니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보였다.
2년 뒤에 테러로 무너지는데. 그걸 막을 수 없을까? 내가 테러가 일어날 거라고 제보하면 막을 수 있을까?
테러를 막으려면 여객기 납치부터 막아야 하는데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여객기를 납치해서 충돌한다는 것뿐이었다.
그럼 제보해도 너무 막연하여 막기도 힘들 텐데. 또 테러가 일어날 거라는 것을 안 이유도 말해야 하는데.
결국은 지켜봐야 하나?
“배 대리님! 군대에서 테러 진압 훈련도 받았죠?”
“네. 707에 근무할 때 받았습니다.”
“항공기 납치 테러는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네? 항공기 납치 테러 말입니까?”
“아니에요.”
자유의 여신상도 보고 센트럴 파크에 가서 마차 타고 구경도 하다가 시간이 되어 소더비로 향하였다.
택시가 소더비 본사 앞에서 멈춰 내렸다. 소더비가 건물 전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본사 건물이 무척 컸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니 막상 어디로 갈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수잔하고 같이 올걸. 근데 로비에 사람들이 꽤 많네.
안내데스크가 보여 그 앞으로 가자 어여쁜 여직원이 상냥하게 물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파베르제 달걀 경매에 참석하러 왔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요?”
“혹시 초대장 있으십니까?”
“네.”
안주머니에서 초대장을 꺼내 건넸다.
초대장을 보던 직원이 상냥하게 말하였다.
“저쪽 엘리베이터를 타고 25층에서 내리시면 직원이 있을 겁니다.”
엘리베이터가 한 곳에만 있는 게 아니라 얼핏 보이는 것만 해도 세 곳이었다. 용도가 다 다른가?
“고마워요.”
직원이 안내해 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니 여기는 20층 이상만 사용하는 엘리베이터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5층에서 내리자 정장을 입은 남자 직원이 물었다.
“초대권 보여 주시겠습니까?”
초대권을 보여 주었다.
“확인됐습니다. 이쪽으로 가셔 다이아몬드 실로 들어가시면 되는데 같이 오신 분은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배상도를 말하는 거다.
“대기실은 어디에 있나요?”
“이쪽으로 가면 있습니다.”
“네.”
“배 대리님은 저쪽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하네요.”
“알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배상도 대리는 내가 파베르제 달걀의 주인이라는 것을 안다.
기탁 하러 박물관에 같이 가서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같이 온 거였다.
“네. 갔다 올게요.”
복도를 따라 걸어가다가 다이아몬드 실이 보여 그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홀에 4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원형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대략 80여 명이 있었다.
경매 시작하려면 아직 50분이나 남았는데 다들 왜 일찍 왔지? 나야 시간이 남아서 일찍 온 거지만.
빈 테이블에 앉을까 하다가 나 혼자라서 혼자 앉아 있는 어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앞에 앉았다.
와인을 마시던 남자가 내가 앉자 나를 바라보며 인사하였다.
“Hello.”
나도 인사하였다.
“Hello.”
“만나서 반갑습니다. 빌 매드슨이라고 하오.”
“반갑습니다. 진민재라고 합니다.”
“진민재라면 혹시 오션의 그 진민재인가요?”
날 아나 보네.
“네. 맞습니다.”
“여기서 오션의 진민재를 보다니 여길 오길 잘한 것 같습니다.”
내가 미국에서 그렇게 유명한 인물은 아닌데. 웬 오바야?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
“와인 한잔하시겠습니까?”
“네. 좋습니다.”
남자가 손을 들자 웨이터가 오더니 와인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드시지요.”
“감사합니다.”
“저는 노우스 투자회사 CEO입니다.”
노우스 투자회사라면 미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투자회사로 사모 투자도 하는 대형 투자회사이다.
이런 사람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았다.
아! 이제야 수잔이 왜 일찍 오겠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다른 테이블도 보니 서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서로 아는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모르는 사람들끼리 서로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며 인맥을 다지는 자리였다.
꼭 경매가 전부는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일찍 많이 온 것 같았다.
“저도 여기서 투자회사 CEO를 만나다니 잘 온 거 같습니다.”
“요즘 잘나가는 오션을 보면서 진작에 오션을 알았으면 투자했을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을 자주 합니다.”
말이 그렇지 오션 같은 신생 회사에 투자하는 회사는 아니었다.
“앞으로 투자받을 일이 있으면 연락하겠습니다. 그때 잘 부탁합니다.”
“기다릴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우리는 오션의 무한한 가치와 잠재력을 믿기에 지금이라도 투자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투자받을 상황은 아닙니다.”
“그렇겠죠. 요즘 오션이 IT 산업의 선두 주자가 아닙니까? 주가도 많이 상승했습니다. 어디까지 상승할지 궁금합니다.”
맞다. 1대 3으로 주식 분할을 했는데도 IT 열풍에 힘입어 벌써 90달러가 되었다. 분할하지 않았다면 주가가 270달러였다.
내년 초까지 더 상승할 테고 증권사에서는 목표 주가를 150달러까지 책정하고 있었고 거품이 꺼지더라도 오션은 그리 많이 하락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저도 궁금합니다.”
“고문께서는 파베르제 달걀에 관심이 많으신 겁니까?”
“조금 있습니다. 사실 저는 경매가 오늘 처음이라 구경하러 온 겁니다.”
“그러시군요. 누구나 처음은 있는 법입니다. 꼭 경매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구경하는 재미도 솔솔 합니다. 덤으로 유명한 골동품도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있습니다.”
“대표님은 파베르제 달걀에 관심이 많으신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아내에게 선물할 거라 낙찰받고 싶은데 사람들이 많이 참석한 것을 보니 경쟁이 치열할 것 같습니다.”
내가 진작 알았으면 개인적으로 연락했을 텐데. 아쉽다.
“행운이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왠지 행운이 저에게 올 것만 같습니다.”
마이크 소리가 들려왔다.
“신사 숙녀 여러분 10분 후에 경매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많이 와 빈 테이블을 다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