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의 홀로서기-134화 (134/261)

134화

두 개의 서류에다가 이름과 간단한 신상 정보를 쓰고 서명하였다.

“다 했어요.”

서류를 받아 보는 수잔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성함이 진민재였네요. 근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같은데요?”

어디서 들었는지 생각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경매 신청까지 했는데 내 신분을 숨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오션 아세요?”

그제야 생각이 났는지 놀라며 입을 벌렸다.

“아! 오션 창업자였네요. 한국에 계셔서 전혀 생각지 못했어요. 어쩐지 한국에서 파베르제 달걀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오션의 창업자였군요. 한국에는 왜 계시는 거예요?”

“사업 때문에 왔어요. 물건 주인의 신분은 공개하지 않는 거죠?”

“물론이죠. 우리는 물건 소유자랑 출처는 절대 비밀을 지키거든요.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행이네요. 이걸 어떻게 가져가실 건가요?”

“우리가 올 때 특수 포장재를 가져왔어요. 그 안에 담아서 내일 아침에 돌아갈 거예요.”

“바로 간다고요?”

“이 비싼 것을 갖고 있기에는 부담이 되죠. 빨리 돌아가야죠.”

그 마음 내가 잘 알지.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오늘 밤 잠 못 자겠네요.”

“여기에 파베르제 달걀이 있다는 것은 우리 셋밖에 몰라요. 그래도 혹시 몰라 한국의 보안 업체에 의뢰했어요. 조금 있으면 보안 요원들이 올 거고 내일 공항까지 지켜 줄 거예요.”

“철저하시네요.”

“그럼요. 이런 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어요.”

“그럼 저는 가도 되는 거죠.”

“네. 미국 돌아가면 연락 드릴게요.”

“알았어요.”

* * *

미국으로 돌아간 지 10일 되어 전화가 와서 통화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정밀 감정 결과가 나왔어요. 1889년 작품 파베르제 달걀이 맞아요. 축하드려요.)

“고맙습니다.”

(경매일도 잡혔어요. 7월 10일 토요일 4시예요.)

“생각보다 더 늦게 잡혔네요. 더 앞당길 수는 없나요?”

(많은 VIP 참석을 위한 거예요. 그러니 이해 바랄게요.)

경매가를 높이기 위한 거라는데 따라야지.

(알았어요.)

“혹시 경매 당일에 참석하실 건가요?”

(제가 참석해도 되나요?)

“물론이죠. 파베르제 달걀 경매에는 초대된 VIP만 참석하는데 우리가 명단에 추가해 줄 수 있거든요.”

(글쎄요?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하는 건 아니죠?)

“네.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참석 여부를 알려 주셔야 해요.”

(알았어요.)

“그리고 선입금은 1,700만 달러로 결재가 났는데 한국으로 보내 드리면 되나요?”

“미국에 제 어카운트가 있거든요. 거기로 보내주세요.”

(알았어요. 이메일로 어카운트 보내주세요.)

“언제쯤 입금이 되나요?”

(어카운트 보내주시면 3일 안에 입금될 거예요.)

“네. 그리고 경매 사실을 언론에 알려도 되나요?”

(우리가 발표하기는 하겠지만 이왕이면 우리가 발표하기 전까지는 알리지 않았으면 해요.)

“언제 발표하실 예정인데요?”

(경매 한 달 전에 발표할 거예요.)

“알았어요.”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 하나도 빨리 처리해야지. 집에 보관하고 있으니 마음이 불안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이트에 들어가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번호를 누르면서 커피숍 밖으로 나갔다.

강성중이 내가 통화하는 것을 다 듣기에 비밀리에 하려는 거다.

(국립중앙박물관입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박물관에 기탁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요.”

(기증이나 기탁 관련 업무는 학예팀에서 맡고 있습니다. 제가 전화를 돌려 드릴 텐데 또 전화하실 일이 있으면 학예팀으로 하시면 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생각보다 친절하네. 기탁한다고 해서 그런가?

음악 소리가 들리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예팀 양순길 과장입니다.)

“안녕하세요? 기탁 때문에 전화 드렸어요. 박물관에 기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기탁을 하고 싶다고 해서 전부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박물관에서 검증한 이후에 기탁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합니다. 검증 전에 간단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기탁 하시고자 하는 것이 어떤 물건입니까?)

“혹시 러시아의 파베르제 달걀 아세요?”

(압니다.)

“1891년 작품인 파베르제 달걀이에요.”

(네? 파베르제 달걀을 기탁하시겠다고요?)

(네. 그 정도면 기탁으로는 충분하지 않나요?)

갑자기 목소리가 싸늘하게 변하였다.

(장난 전화하시면 안 됩니다.)

한마디 하고는 끊었다.

내가 장난 전화한다고 생각하나 보네. 이해는 갔다.

젊은 놈이 희귀한, 그것도 서양 것을 기탁한다고 하니 장난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그냥 끊으면 어떡해?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지.

커피숍으로 들어와 홈페이지에서 학예팀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다시 걸고 밖으로 나갔다. 이것도 번거롭네.

이번에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예팀 박민정입니다.)

“안녕하세요? 방금 전 양 과장이라는 분하고 통화하다가 전화가 끊겨서요. 바꿔 주시겠어요?”

(잠시만요.)

(여보세요.)

“전화가 끊겼네요.”

(제가 한가하게 장난 전화에 응대할 수 없습니다. 어린 분도 아닌 것 같은데 이러시면 안 됩니다.)

“장난이 아니라 진짜예요.”

(정말 왜 그러십니까? 파베르제 달걀은 한국에 있지도 않습니다.)

답답하네. 이걸 어떻게 증명해야 하나? 스마트폰이 있으면 코코아 톡으로 사진 찍어 바로 보내면 되는데.

“이메일 주소 좀 알려주시면 바로 사진 보내드릴 테니 확인하시고 연락 주세요.”

(좋습니다, 이메일 주소는 [email protected]입니다.)

오션 사용하네.

“알았습니다.”

전화를 끊고 소더비에 보냈던 사진을 다운받아 보냈다. 사진 보면 믿겠지.

이메일을 보내고 프로그램 개발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학예팀 양순길 과장입니다. 방금 이메일 확인했는데 그 사진이 진짜입니까?)

일어서서 다시 커피숍으로 나갔다.

“네. 사진 보셨잖아요. 제가 거실 테이블에 놓고 직접 찍은 거예요.”

(사진 속의 물건이 정말 파베르제 달걀이라는 겁니까?)

“네. 얼마 전에 감정도 받았어요.”

(어디서 말입니까?)

“미국 소더비 회사에서요.”

(파베르제 달걀이 왜 한국에 있는 겁니까? 어디서 나신 겁니까?)

“기탁하는데 그것까지 설명해야 하나요?”

(아니겠지만 장물일 경우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장물이면 박물관에 기탁하겠어요? 온 동네방네 소문이 다 나는데요.”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는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제가 직접 그것을 볼 수 있겠습니까?)

기탁하려면 한 번은 봐야지.

“좋습니다.”

(어디 계십니까? 제가 지금 가겠습니다.)

이제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나 보네.

“제가 박물관으로 가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박물관에서 감정도 해야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가 갈게요.”

(알겠습니다. 언제 오실 겁니까?)

“내일 오전에 갈게요.”

(꼭 오시는 겁니다.)

“알았어요.”

전화를 끊고 안으로 들어오자 강성중이 이상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사장님! 여자랑 통화하신 겁니까?”

“아니거든.”

“근데 왜 나가서 통화를 하십니까? 그런 적 한 번도 없지 않았습니까?”

“중요한 일이라 그래.”

“하긴 여자랑 통화하는 게 중요한 일이기는 합니다.”

“마음대로 생각해.”

* * *

다음 날 오전에 집을 나와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하였다.

차를 주차하고 배상도는 차 안에서 대기하고 난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현관 앞에 한 남자가 서 있다가 나를 보고 다가왔다.

“혹시 기탁하러 오신 분입니까?”

“네. 맞아요. 양 과장님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대답하고서는 고개를 숙였다.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장난 전화인 줄 알았습니다.”

“이해해요.”

“안으로 들어가시죠.”

“네.”

양 과장을 따라 어느 회의실 같은 곳에 들어왔다.

“커피 드시겠습니까?”

“녹차 있으며 주십시오.”

“네.”

나가더니 녹차를 들고 들어왔다.

“여기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가지고 오셨습니까?”

“네.”

가방에서 옷 뭉치를 꺼내자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포장재가 없어서요.”

“아! 알겠습니다.”

옷 뭉치에서 파베르제 달걀을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이거예요.”

양 과장의 눈이 매의 눈으로 돌변하더니 직접 만지지는 않고 파베르제 달걀을 무섭게 살펴보았다.

5분 정도 살피더니 물었다.

“이걸 어디서 나신 겁니까?”

“예전에 구매했는데 아무리 봐도 파베르제 달걀 같아서 감정을 의뢰했더니 파베르제 달걀이 확실하다고 하더라고요. 보시기에 진품 같나요?”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지난번 소더비 감정사 웨슬리가 써 준 감정서를 주머니에서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게 소더비 감정사가 써 준 감정서예요. 공신력은 있을 거예요.”

감정서를 들고 보는 복잡한 눈으로 보는 양 과장이었다.

“감정받으신 지는 얼마 안 되었네요.”

“네.”

“기탁은 어떻게 생각하신 겁니까?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보관하기가 힘들어 박물관에 기탁하려고 하는 거예요. 이걸 집에다 두고 지낸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마 불안해서 살 수가 없을 거예요.”

내 말에 피식 웃었다.

“제가 생각해도 그럴 겁니다. 어디 나가지도 못할 것 같습니다. 박물관에 기탁하시면 안전하게 보관하니 잘 생각하신 겁니다. 근데 기탁이 아니라 기증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칼만 안 들었지 날강도네. 수백억짜리를 거저먹으려고 하다니.

“제가 성인군자는 아니거든요. 평범한 소인배라서 통 큰 결정을 못 해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감정사를 데리고 오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양 과장이 나가더니 30분 후에 한 나이 지긋한 분과 같이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분은 최태현 감정사입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인사를 하면서도 눈은 파베르제 달걀에 향하고 있었다.

“앉아서 편히 감정하세요.”

“알겠소.”

감정사가 앉아서 감정하기 시작하였고 한동안 감정하다가 감정이 끝났는지 안경을 벗었다.

양 과장이 얼른 물었다.

“어떻습니까?”

“내가 서양 물건 특히 파베르제 달걀은 처음 보는 거라 확실하게 말할 수 없지만 보기에는 진품 같기는 해요. 시간을 가지고 좀 더 과학적으로 면밀히 감정할 필요가 있소.”

“이미 소더비 경매 회사의 감정사가 일차로 감정했고, 소더비 회사에서 정밀 감정을 해서 진품 판정을 받았어요. 굳이 면밀히 감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이걸 소더비 회사에서 감정했다는 말이오?”

“이 작품은 감정사가 일차로 감정했고, 정밀 감정은 이 작품이 아니라 다른 작품이에요.”

양 과장이 놀라며 물었다.

“이 작품 말고 또 있다는 겁니까?”

“네. 두 개가 있었거든요. 하나는 여기 있고, 하나는 지금 소더비 회사에 있어요.”

“왜 소더비에 있는 겁니까?”

될 수 있으면 경매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할 상황이네.

“경매하려고요.”

“아! 두 작품 다 기탁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너무 아쉽습니다.”

“두 개 다 경매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시면 마음이 편할 거예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맞아요. 모든 게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그래도 하나는 국민들이 국내 박물관에서 볼 수 있게 된 거잖아요.”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기탁 절차를 마치고 박물관에서 나왔다.

감정을 또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박물관 규칙이 있어서 감정을 다시 한다고 하였다.

감정이 끝나면 정식으로 전시한다고 하였다. 기탁자의 신분은 비밀로 해 달라고 하자 비밀로 해 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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