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다음 날 아침 커피숍에 출근하니 여느 때와 같이 신상철은 게임 개발을 하고 있었고 강성중은 옆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이제야 정상으로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온 것 같았다. 역시 사람은 익숙한 게 편하고 좋아.
강성중이 일어나 인사하였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좋은 아침! 어제 몇 시까지 있었어?”
“7시까지 있었습니다.”
몇 시간 있을 거 그냥 들어가지.
“일찍 갔네?”
“네. 그렇습니다. 커피 드릴까요?”
“좋지.”
강성중이 준 커피를 들고 내 전용석에 앉았다.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고 커피를 마시자 이거였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일본 가서 대박 맞았고 미나도 잘되었으니 보람은 있었다.
이메일을 확인하니 소더비에서 온 메일이 있어 얼른 클릭하였다.
내가 보낸 파베르제 달걀 사진을 보고 관심이 있다며 새벽이라도 꼭 전화를 달라는 이메일이었다.
자기들이 보기에도 진짜라고 생각되나 보네. 근데 지금 미국은 밤 12시인데 전화해도 될까?
새벽에라도 전화해 달라고 했으니 상관없겠지. 핸드폰을 들었다.
(수잔입니다.)
“안녕하세요? 파베르제 달걀 때문에 전화 드렸습니다. 밤늦게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네요.”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에요. 전화 기다리고 있었어요. 보내주신 물건 어디서 구한 건가요?)
“그건 알려드릴 수는 없고 우연히 구한 거예요. 진품이 맞나요?”
(사진으로는 확실히 대답할 수는 없지만, 진품일 가능성이 커요. 정확한 것은 실물 감정이 필요한데 가능할까요?)
“제가 한국에 있거든요. 미국 가기가 좀 그런데요.”
(걱정하지 마세요. 허락하시면 우리가 갈게요.)
오겠다는데 오라고 해야지. 나도 빨리 처리하는 것이 좋으니까.
“그럼 오세요.”
(고마워요. 그럼 내일 오후에 출발할게요.)
급하긴 한가 보네. 하긴 파베르제 달걀이 흔한 것도 아니고 사라진 몇 개의 달걀 중에서 두 개가 새로 나타난 거니까.
가격도 비쌀 테니 소더비에서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겠지.
“그러세요.”
(연락처 좀 알려 줄 수 있나요?)
“네. 제 핸드폰이 011-XXX-XXXX입니다.”
(고마워요. 저는 수잔이라고 하고 출발 시각은 이메일로 보내드릴게요.)
“알았어요.”
전화를 끊자 핸드폰이 울렸다.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오현서 대표입니다.)
“안녕하세요?”
(그게 정말입니까?)
뜬금없이 정말이라고 하면 나보고 어떡하라고? 미나가 일본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나 보네.
“미나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정말 미나가 일본에서 인기가 많은 겁니까?)
“네. 아주 인기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벌써 팬층이 생긴 것 같더라고요.”
(미나가 말을 했지만 저는 도무지 믿기지 않아 주주님께 확인 전화한 겁니다. 사실이라니 놀랐습니다.)
“저도 예상 밖이지만 사실이에요. 저팬 오션에 들어가면 미나가 행사한 동영상이 있을 거예요. 직접 확인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근데 그 동영상 한국 오션에도 올리면 안 되는 겁니까? 올리면 미나 인기에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그러네. 미나가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으면 좋은 거니까.
“알았어요. 한국 오션에도 올리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주주님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미나가 잘되면 저한테도 좋은 거죠. 미나 트리이닝은 잘 진행되고 있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워낙 실력이 뛰어난지라 트레이닝 기간도 단축될 것 같습니다.)
“그럼 미리 데뷔 준비를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도 생각 중입니다. 일단 미나에게 곡을 써 줄 작곡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세요.”
전화를 끊자 강성중이 다가왔다. 이놈은 내가 통화하는 내용은 다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수잔하고 통화한 것은 영어라 못 알아들었을 거다.
“사장님! 미나 데뷔하는 겁니까?”
“데뷔가 금세 되냐? 지금부터 준비해도 1년은 걸릴걸.”
“그래도 그게 어디입니까? 데뷔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것이 아닙니까? 와! 1년 뒤에는 TV에서 미나를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
작곡가를 알아보고 그때부터 작곡을 시작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만들어진 곡이 있다면 데뷔 시간이 단축될 수도 있을 텐데.
오현서 대표가 잘 알아서 하겠지.
가만! 내가 이전 생에서 인기 많았던 곡을 알려 주면 되지 않을까? 근데 난 한국 노래는 잘 모르는데. 팝송은 좀 알지만.
내가 아는 한국 노래를 떠올려 봤지만 없었다. 아깝네. 한국 노래도 알아둘걸.
그렇다고 팝송을 알려 줄 수는 없지 않나? 아닌가? 한 곡 정도는 팝송을 발매해도 되지 않을까?
그걸 미국에서 발매하면 되는 거잖아? 오션에서 홍보하면 될 것 같은데. 이것도 생각해 봐야겠다.
아! 곡만 사용하고 가사만 바꿔도 되지 않을까?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번안곡들이 있으니까. 2000년대 이후에 나온 팝송 중에 유명한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 * *
오늘 소더비에서 사람이 오기에 배상도와 함께 김포 공항에 나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캐리어를 끌고 나오고 있지만 정작 나는 수잔 얼굴을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종이에 이름 써서 들고 있기 뭐해 그냥 왔다.
어떻게 알아보지? 내가 나온다고 했으니 나를 찾을 테니 앞에서 두리번거리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물어보면 되겠지.
30분 정도 기다리자 이십 대 중반의 예쁜 여자하고 오십 대 초반의 남자가 나오더니 그 자리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순간 저 사람들이라는 감이 와서 그 앞으로 갔다.
멀리서도 예뻤지만 가까이 가서 보니 아이노 다음으로 보는 예쁜 여자였다. 진짜 예쁘네.
“혹시 소더비에서 오신 분입니까?”
여자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였다.
“네. 맞아요. 제가 수잔이에요.”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웨슬리입니다.”
손을 잡았다.
“반갑습니다.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수잔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거 갖고 오셨나요?”
오늘 만나서 바로 감정을 하기로 하여 가지고 왔다.
“네.”
“빨리 보고 싶네요. 호텔로 가죠.”
“그러죠. 갑시다.”
두 사람이 예약한 호텔로 와서 체크인하고 객실에 같이 들어왔다.
객실 의자에 셋이 앉았다.
“볼까요?”
“그러죠.”
들고 온 가방에서 두꺼운 옷으로 둘러싼 파베르제 달걀을 꺼냈다.
그걸 본 수잔이 웃었다.
“옷으로 싼 거예요?”
파베르제 달걀이 파손되지 않게 하려면 특수 포장을 해야 하는데 마땅한 것이 없어 고민하다가 옷이 제일 좋을 것 같아서 옷에 꽁꽁 싸매고 왔다.
싸매고 보니 두꺼운 옷이 최고였다.
“이만한 포장재도 없어요. 웬만한 충격을 받아도 안전하거든요.”
“이런 고가의 물품을 옷으로 감싼 것은 처음 봐요. 제가 보기에도 임시로는 가장 좋은 방법이네요.”
“그렇죠.”
옷을 풀어 파베르제 달걀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 놓았다.
두 사람의 눈이 반짝거렸다.
웨슬리가 흥분한 채 물었다.
“감정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세요.”
내 말이 떨어지지 무섭게 가방에서 장갑을 꺼내 끼고서는 여러 장비를 이용하여 신중히 감정하기 시작하였다.
두 개 감정하는 데 무슨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한 시간이나 되어서야 끝났다. 감정하는 동안이나 끝나서나 남자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어쩌면 저게 프로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선입견을 가지거나 흥분하면 감정의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을 테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관건일 것 같았다.
감정이 끝났지만, 수잔은 긴장한 채 남자에게 묻지 않고 가만히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나야 진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덤덤하였다.
드디어 남자의 입이 열렸다.
“두 개 다 진품입니다.”
남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잔이 탄성을 내질렀다.
“와우! 웨슬리! 언제적 작품인가요?”
“1889년과 1891년에 제작된 파베르제 달걀이야.”
“오 마이 갓! 잃어버린 6개 중에서 두 개를 찾았으니 이제 4개만 남았네요.”
“그렇지. 4개도 어딘가에 있을 거야. 나머지도 빨리 찾아 햇빛을 봐야 하는데.”
말을 하고서는 나를 바라보았다.
“고맙소. 덕분에 귀한 파베르제 달걀을 구경하였소.”
수잔이 물었다.
“이걸 어디서 나신 건가요?”
“비밀입니다. 그렇다고 장물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알아요. 지금까지 사라졌던 1889년과 1891년 작품이니까요. 혹시 이게 전부인가요?”
내가 또 가지고 있는 줄 아나 보네.
“네. 이게 전부입니다.”
“아쉽네요. 이 두 개 다 경매로 내놓으실 거죠?”
“아뇨. 하나만 내놓을 거예요.”
눈을 동그랗게 떴는데 너무 예뻤다. 아이노 다음으로 이런 감정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왜요? 두 개 다 내놓으시면 더 높은 가격으로 받으실 수 있어요. 우리가 받아 드릴게요.”
“두 개 다 보관하기에는 부담되어 하나는 기념으로 가지고 있으려고요.”
“정말 안 되겠어요?”
“죄송해요.”
“할 수 없죠. 그럼 어느 것을 경매로 내놓으실 거예요?”
서로 디자인이 다르기는 하지만 둘 다 마음에 들어 어느 것을 선택할지는 몰랐다.
“이왕이면 비싸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좋을 테니 수잔이 보기에 비싸게 받을 수 있는 것을 선택하세요.”
수잔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어떤 것이 좋을까요?”
“1889년 작품이 더 오래된 거라 조금 더 비싸게 받을 수 있을 거야.”
“알았어요.”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이거로 할게요.”
“그러세요. 근데 경매하면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경매는 워낙 변수가 많아 최종 낙찰가가 얼마일지는 저도 잘 몰라요. 다만 파베르제 달걀이 경매로 나오는 경우는 희귀하여 많은 부호들의 관심을 끌 수는 있을 거예요. 일단 경매 시초가는 최소 2,000만 달러로 시작할 수는 있을 테고 문제는 고객들끼리 경쟁이 붙어야 가격이 급격히 올라갈 수 있어요. 파베르제 달걀이 희귀하고 경매에 거의 나오지 않으니 제 예상으로는 어느 정도 경쟁이 있을 것 같기는 해요.”
2,000만 달러면 최소 200억 원은 되는 거네.
이전 생에서는 500억 원이었는데. 그때랑 지금은 시차가 30년이나 나니까 금액 차이가 생기겠지.
경쟁이 많이 붙어야 하는데. 그래야 그 돈으로 IT 주식을 사고 내년 초에 팔면 최소 100% 이상 이익을 볼 수 있는데.
“언제쯤 경매할 수 있을까요?”
“최소 2달 정도는 걸려요.”
주식을 매수하려면 빨리해야 그만큼 이익을 더 얻는데. 2개월 후면 곤란한데.
“그렇게 오래 걸려요?”
“네. 홍보도 해야 하고 여러 준비 과정이 있어요. 지금 임시로 감정을 했지만, 그만큼 신용이 중요하기에 회사에서 확인차 다시 정밀 감정을 해야 하거든요. 또 이번 경매는 VIP만을 대상으로 이루어질 거예요. 그렇기에 미리 시간을 넉넉히 잡아야 바쁜 VIP들이 참석할 수 있거든요. 왜 돈이 급하신가요? 급하시면 우리 회사에서 일부를 선입금으로 줄 수는 있어요.”
“얼마를요?”
“1,500만 달러는 가능할 것 같아요.”
1,500만 달러라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해 주세요. 이왕이면 최대로 받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알았어요. 회사에 말해볼게요. 그 리고 이걸 우리가 가져가야 하는데 인수서에 서명해 주셔야 해요.”
“그러죠.”
수전이 가방에서 두 개의 서류를 꺼내고는 제품명에다가 1889년 작품 파베르제 달걀이라고 썼다.
그러고는 디지털카메라로 파베르제 달걀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하나는 경매 신청서이고 하나는 물건 인수서예요. 서류 읽어 보시고 이상 없으면 서명해 주세요.”
“네.”
서류를 들어 읽어 보았다.
대부분 일반적인 내용이었고 고가의 경우에는 수수료가 낮아진다고 하더니 경매 수수료는 낙찰가에 5%였다.
이 정도면 만족스러웠다.
“이상은 없네요.”
“여길 자세히 보시면 경매 신청을 했다가 취소하시면 위약금이 발생해요. 위약 금액은 회사에서 경매 준비하는 과정에 들어간 모든 비용이 포함돼요. 그러니 신중하게 생각하시고 서명해야 해요.”
그거야 당연하지.
“알았어요. 근데 물건을 미국으로 가지고 가다 보면 훼손되거나 분실될 경우는 어떻게 하나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보험 처리가 될 거예요. 임시지만 지금 감정을 했기에 진품으로 인정받아 최소 2,000만 달러는 보험금 처리가 가능해요.”
“물건 인수서에는 그런 내용이 없는데요.”
“보험은 회사 내부적으로 처리하는 거라 내용이 없지만, 회사에서 모든 책임을 진다는 내용이 있잖아요.”
“알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