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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의 홀로서기-129화 (129/261)

129화

다음 날 아침 일찍 손병수가 와서 신상철, 강성중, 미나가 도쿄 관광을 나갔고 나와 배상도는 거실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배 대리님도 같이 관광 가시지 그랬어요?”

“아닙니다. 저는 그다지 일본 관광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고문님하고 같이 가겠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왜요?”

“저의 할아버지께서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일본이 싫습니다.”

잘못을 반성하고 사과할 줄 아는 용기가 진정한 용기이고 과거사를 정리하고 다시 한일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데 일본은 그걸 무시하고 있었다.

“그랬군요. 배 대리님은 훌륭하신 할아버지를 두셨네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독립운동 하느라 자식들을 돌보지 않아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고생만 하였고 배운 것이 하나도 없어서 평생 어렵게 살았습니다. 남편으로서 부모로서는 좋은 분이 아니었습니다. 고생만 시킨 무능력한 가장이었습니다.”

지난번 분식집에 떡국 먹으러 갔을 때 훌륭하신 할아버지를 본받아서 그런지 참 좋으신 분 같았는데.

“그런 분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저도 한때 그런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특전사를 지원해 갔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나라에서는 그런 생각을 한다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생한다고 누가 알아주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배 대리는 생각이 달라졌을까? 군대 생활 때 무슨 일이 있었나? 궁금해 물어보려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배 대리가 일어나 현관으로 나갔다.

“고문님 통역분이 오셨습니다.”

“나가죠.”

“네.”

밖으로 나가자 30대 중반의 여자가 서 있었다. 난 남자가 올 줄 알았는데.

“안녕하세요? 오늘 통역으로 온 오선영이에요.”

“안녕하세요? 진민재입니다. 오늘 잘 부탁드려요.”

택시를 타고 골동품 거리로 다시 왔다.

어제 가 보지 않은 한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사장님! 혹시 여기에 러시아 마트료시카 인형 있나요?”

“죄송합니다. 그건 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골동품 거리에 있는 상점을 다 돌아보았지만 내가 찾는 마트료시카 인형은 없었다.

일부 상점에 마트료시카 인형이 있는 곳도 있었지만, 세트로 되어 있는 것도 없었고 크기도 작았다.

파베르제 달걀이 들어갈 정도로 크기가 커야 했다.

내가 실망하는 빛을 내보이자 오순영이 물었다.

“고문님이 찾으시는 물건이 꼭 여기에만 있는 건가요?”

“다른 곳에도 있을까요?”

“마트료시카 인형이라면 러시아 기념품 판매하는 곳에 많지 않나요?”

“저는 제작한 지 오래된 골동품을 찾고 있어요. 그런 곳에 있는 것은 최근에 제작된 거잖아요.”

“그러면 골동품 가게에 가야겠네요. 여기 말고 다른 골동품 거리가 있는데 거기로 가 보시겠어요?”

“골동품 거리가 또 있어요?”

“네. 여기처럼 큰 곳은 아니지만, 도쿄에 두 곳이 더 있어요.”

다행이다. 이곳에 없으면 그곳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가죠.”

“네.”

택시를 타고 이동하였다.

오선영 말처럼 여기에 골동품 가게들이 있지만, 규모가 작고 띄엄띄엄 있었다.

그 일본 사람이 도쿄 골동품 가게에서 구매했다고 했으니 여기도 도쿄 골동품 가게가 맞으니까 제발 이곳에 있어야 하는데.

제일 가까운 가게에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찾으시는 게 있습니까?”

“우리는 러시아 마트료시카 인형을 찾고 있어요. 있나요?”

“마침 하나가 있는데 이리로 오세요.”

주인을 따라가니 뒤쪽 진열장에 하나가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오순영이 나를 바라보자 고개를 저었다. 내가 찾는 게 아니었다.

“이거 말고는 없는 거죠?”

“그렇습니다. 어떤 마트료시카 인형을 찾으시는 겁니까?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제가 알아봐 드릴 수 있습니다.”

골동품 가게 사장들끼리는 잘 알 테니 어쩌면 이 사람을 통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세트로 된 마트료시카 인형은 없나요? 예를 들어 왕자와 공주 인형이라던가요.”

“글쎄요? 제가 지금까지 세트로 된 것은 보지 못했어요. 꼭 세트로 된 것이 필요한가요?”

“네. 선물로 줄 건데 하나씩 보관하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요.”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한번 알아볼게요.”

“감사합니다.”

주인이 전화기를 들고 어딘가에 전화하였다.

“난데 러시아 마트료시카 인형 세트로 되어 있는 거 본 적 있어? 없다고? 알았어.”

전화를 끊고 여러 번 통화하였다.

다른 곳과는 다르게 주인이 여러 곳에 전화해 알아봐 주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게 진정한 서비스인데.

“한곳에 있다고 하는데 찾는 것이 맞을지는 모르겠네요.”

정말 있다고? 내가 찾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어디에 있나요?”

“나가서 왼쪽으로 50m 가다 보면 오른쪽에 우코 상점이 있을 거요. 거기예요.”

“감사합니다.”

상점을 나와 빠르게 걸어갔다.

50m 걸어가자 오선영이 손을 들어 한 상점을 가리키었다.

“저기가 우코 상점이에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70이 넘은 노인이 앉아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러시아 마트료시카 인형 세트가 이곳에 있다고 해서 왔어요.”

“전화로 찾는다는 분이셨구먼. 저쪽 선반 위에 있는데 대신 꺼낼 줄 수 있겠소? 내가 키가 안 닿아서.”

“제가 꺼낼게요. 어디 있습니까?”

노인이 일어나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구석에 있는 선반 위를 가리키었다.

“저거요.”

보니 왕자와 공주 세트가 맞았고 다른 인형보다 컸다. 내가 찾던 마트료시카 인형 세트였다.

조심스레 두 개를 꺼내 살펴보자 주인이 물었다.

“이게 맞소?”

“맞습니다.”

“이게 다른 러시아 마트료시카 인형보다 크기가 커서 잘 안 나갔는데 이제야 주인을 찾는구먼. 앞으로 갑시다.”

“네.”

앞쪽으로 이동하였다.

“어르신 이건 얼마입니까?”

“이게 보기에는 그래도 러일전쟁 때 전리품으로 획득한 대략 100년 정도 된 물건이라 좀 가격이 나가오. 오랫동안 나가지 않고 있던 거라 제값을 다 받을 수는 없고 하나에 10만 엔씩 받겠소.”

아! 이게 러일전쟁 때 전리품으로 일본에 들어왔던 거였구나. 어쩐지 이게 일본에 있어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10만 엔이면 하나에 백만 원이고 두 개에 2백만 원이다.

마트료시카 인형치고는 가격이 비싸기는 하지만 안에 들어 있는 가치를 생각하면 거저나 마찬가지였다.

“알겠습니다. 사겠습니다.”

내 말에 노인의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가 감돌았다.

“좋은 마트료시카 인형을 구매하시는 거요.”

“그런 것 같습니다.”

미리 준비한 현금을 꺼내 건넸다.

“고맙소. 미리 말하지만 환불은 안되오.”

“환불할 일은 없습니다. 근데 왜 높은 곳에 보관하셨던 겁니까? 잘 보이지 않으면 손님들이 사지 않을 텐데요.”

“처음부터 거기에 있던 것은 아니오. 잘 보이는 곳에 놓았지만 보시다시피 다른 인형보다 크기가 크고 보통 러시아 마트료시카 인형은 최소 7개 정도의 인형이 안에 들어있는데 이건 3개밖에 안 되어 팔리지 않았소. 그러다 보니 자리만 차지하여 점점 뒤로 밀리다가 구석진 곳으로 가게 된 것이오.”

그랬구나. 하긴 파베르제 달걀이 인형 속에 들어가려면 안에 들어가는 인형이 작아질 수 없으니 안에 인형이 3개밖에 없었던 거겠지.

“감사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환불은 절대 안 되오.”

내가 환불할까 봐 계속 안 된다고 하시네. 환불 안 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알았습니다. 환불 안 합니다.”

마트료시카 인형을 상자에 담아 주어서 가지고 나왔다. 세상 다 가진 기분이라 크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바로 민박집을 가서 확인하고 싶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오선영이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꽤 찾으시던 물건 같네요. 그렇게 좋으세요?”

“네. 너무 기분이 좋네요.”

“다행이네요. 그럼 더 다니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네. 어디 가서 밥이나 먹죠.”

“그래요.”

“그전에 여기 알려 준 곳에 가서 거기 있던 마트료시카 인형도 사죠. 고마운데 하나 정도는 사 줘야죠.”

“그래요.”

처음 방문했던 가게로 들어가자 주인이 물었다.

“원하시던 것을 찾았습니까?”

들고 있는 상자를 들어 보였다.

“덕분에 찾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찾았다니 다행입니다.”

“고마워서 답례로 아까 본 마트료시카 인형 사러 왔습니다.”

“굳이 그러시지 않아도 되는데요.”

“아닙니다. 주십시오.”

“그래요 그럼.”

마트료시카 인형을 사고 나왔다.

저녁 약속은 7시라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서 점심을 먹고 바로 민박집으로 왔다.

내 방에 들어와 먼저 공주 마트료시카 인형을 상자에서 꺼내서 살펴보다가 안에 있는 인형을 하나 꺼냈다.

꺼내 인형에서 하나를 더 꺼냈다.

다른 두 인형보다 묵직한 게 무게감이 있었다. 이 안에 그 유명한 파베르제 달걀이 들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번에는 왕자 인형을 꺼내 살펴보니 마찬가지로 무게감이 있었다. 역시나 여기에도 파베르제 달걀이 있었다.

인형을 깨서 실물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일본에서 할 수는 없었다. 한국 가서 확인해야겠지.

근데 누가 무슨 이유로 파베르제 달걀을 이 안에 넣은 걸까? 알 수는 없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손에 있다는 거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골동품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가지고 있을 이유가 있을까?

팔까? 누구한테? 이런 골동품은 비밀리에 판다고 하는데 난 아는 루트가 없으니, 아니면 경매로 팔아야 하나?

한동안 마트료시카 인형을 보며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5시 40분 되었다. 이제 나가야겠지.

택시를 타고 약속 장소에 도착하였다.

이곳 식당에 3번째 오는 거고 오랜만에 오네. 배상도와 안으로 들어가자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에 두 번 다 겨울에 와서 앙상한 가지만 보았는데 지금은 4월 봄이라 꽃도 피었고 나무에 나뭇잎들이 무성하여 보기에도 운치가 있었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라 시간이 남아 잠시 정원 구경을 하기로 하였다.

정원을 걷는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안 보였다. 이때쯤이면 저녁 식사를 하러 사람들이 많이 올 텐데.

한갓지어 좋기는 하였다.

갑자기 저쪽에서 한국말 소리가 들려 그쪽으로 가니 신상철과 강성중, 미나가 연못 앞에 있었다.

손병수는 어디 갔지?

날 본 미나가 소리치며 나에게 뛰어왔다.

“사장님! 오셨어요?”

“언제 왔어?”

“아까요. 정원이 너무 예뻐 구경하고 있어요.”

“도쿄 구경은 잘하고 온 거야?”

“네. 몇 군데 다녔어요. 어디에 갔냐면…….”

미나가 다닌 곳을 설명하는데 내가 다 가 봤던 곳이었다. 하긴 손병수가 안내해 주었으니까 같은 곳을 갔겠지.

“좋았어?”

“네. 시내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비슷했는데 관광지는 전혀 다르더라고요. 좋았어요.”

신상철과 강성중도 나에게 다가왔다.

“사장님은 어디 갔다가 오시는 겁니까? 같이 관광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일이 있어서. 난 다 가 본 곳이야. 손병수는 어디 갔어?”

“우리들이 정원 구경하겠다고 하니 천천히 구경하라면서 나중에 온다고 했습니다.”

“정원은 다 구경했어?”

“네. 여기 정원 꾸미느라 돈깨나 많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았다.

“그렇겠지. 다 봤으면 가자. 미리 가서 기다려야지.”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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