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방금 우편으로 온 일본 비자가 붙어 있는 여권을 계속 보며 싱글벙글인 강성중이었다.
“그렇게 좋냐?”
“네. 그렇습니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가는 외국 여행이 아닙니까? 여권도 처음 발급받은 것이고요.”
“여행이 아니라 일하러 가는 거야.”
“일이어도 저한테는 여행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은 괜찮다고 하지만 신상철은 커피숍에 처박혀 너무 일만 해서 머리도 식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가는 김에 커피숍 문 닫고 전부 가기로 하였다.
나야 중간중간 일을 보느라 밖에 나가지만 신상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커피숍에서 일만 하는 것이 보기에 안 좋았다.
사람이 어떻게 일만 하고 살아? 쉴 때는 쉬고 분위기 전환도 해야지.
“잡일은 네가 다 한다고 했다.”
“압니다. 제가 다 할 겁니다. 이제 비자도 받았는데 언제 일본 갑니까?”
“연락해 봐야지. 갈 거면 빨리 가는 게 좋겠지?”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저는 내일이라도 갔으면 좋겠습니다.”
“전화해 볼게.”
핸드폰을 들었다.
(손 마시요시입니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진민재입니다.”
(그래. 언제 올 거야?)
“오늘 비자가 나왔어요. 언제 가면 좋을까요?”
(내일은 힘들 테고 모레 오는 건 어때?)
“모레 가면 행사 준비는 이상 없는 건가요?”
(행사 준비는 3, 4일 정도 걸리는데 미리 와서 기다리는 것이 좋지. 할 것 없으면 관광을 해도 좋고.)
“알았어요. 모레 갈게요.”
(알았어.)
전화를 끊고 다시 번호를 눌렀다.
(소나무 엔터테인먼트 오현서 대표입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주주님! 어쩐 일로 전화 주셨습니까?)
“일본 모레 가려고 하는데 미나 문제없을까요?”
(물론입니다. 미나가 일본에서 인기가 있다는데 문제가 있어도 무조건 가야죠. 나중에 미나는 일본에 진출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확실히 눈도장 찍고 오면 좋을 겁니다.)
하긴 나중에 미나가 국내에서 활동하는 것도 좋지만 일본에서 활동하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외화를 벌어들여야지.
“알았어요. 모레 출발하는 것으로 할게요.”
(알겠습니다. 저도 함께 가야 하는데 주주님에게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오션팟 때문에 가는 거니까 제가 가는 게 맞아요. 미나 잘 데리고 갔다가 올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강성중이 물었다.
“사장님 모레 출발하는 겁니까?”
“그래. 나 요 앞 여행사에 가서 비행기표 끊고 올게.”
“다녀오십시오.”
* * *
비행기에서 내린 후부터 시골 촌놈이 서울에 처음 올라와 모든 게 신기한 듯 주변을 살피듯이 연신 공항 내부를 둘러보는 강성중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신상철도 강성중 못지않았고 미나도 모든 게 신기하다는 얼굴이었다. 셋 다 외국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하였다.
다만 배상도는 해외여행이 처음이 아닌지 날 경호하기 위해서인지 내 옆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나도 처음 외국 나갔을 때 그런 것 같기도 하여 이해가 갔다. 그것도 한 번이지 두 번째부터는 별 감흥이 없었다.
뒤처져 있는 강성중에게 소리쳤다.
“빨리 와.”
“알겠습니다.”
뛰어오는 강성중을 보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무사히 입국 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아는 얼굴 둘이 있었다. 저팬 오션 대표 고진욱과 손병수였다.
“어서 오십시오? 고문님!”
“오랜만에 보네요. 바쁘실 텐데 안 나오셔도 되는데요.”
“고문님이 오시는데 아무리 바빠도 나와야죠.”
“제가 조만간에 사무실로 찾아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지난번에도 안내해 주었는데 이번에도 손병수가 일본에 있는 동안 안내해 주기로 하였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일행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차로 향하였다.
고진욱은 바로 회사로 돌아갔고 우리는 손병수의 차를 타고 숙소로 향하였다.
나 혼자였으면 고진욱 집에 머물겠는데 일행이 총 5명이라 다른 숙소를 구했다. 재일 한국인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민박집으로 주인은 따로 사는 곳이었다.
대신 식사는 직접 해 먹거나 사 먹어야 해서 그게 좀 불편하였다.
도쿄 외곽에 있는 한 주택 앞에 차가 멈췄다.
“여기입니다.”
나무로 지어진 아담한 이층집이었다. 고진욱 집보다는 작았고 여긴 마당이 없었다.
손병수가 열쇠를 미리 받아왔는지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일본 집들은 이렇게 생겼구나!”
강성중이 집 안을 둘러보자 신상철도 미나도 따라 집 안을 다니며 둘러보자 나와 배상도, 손병수는 거실 소파에 앉았다.
“오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오늘 스케줄은 없는 건가요?”
“네. 나흘 뒤부터 홍보 행사가 있으니 사흘 동안은 일정이 없습니다.”
“우리가 행사 준비할 거는 없나요?”
“네. 특별히 없습니다. 행사 당일 설명해 드리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40분이었다.
“나가서 점심부터 먹죠. 그다음은 간단히 도쿄 시내 구경이나 하다가 저녁 먹고 들어오면 될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지난번에 왔을 때 도쿄의 웬만한 곳은 다 다녔기에 점심을 먹고 도쿄 골동품 거리에 왔다.
관광지만 다니다가 골동품 거리에 오니 뭔가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와! 저게 일본군 갑옷인가 봐요?”
한 상점 진열장에 있는 고대 갑옷을 보고 미나가 소리쳤다. 다들 그 앞으로 갔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 장수가 입던 갑옷처럼 생겼다.
“그러네. 근데 저건 투구야? 가면이야? 장식은 왜 이렇게 크고? 전투할 때는 불편할 텐데.”
손병수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
“지금 보는 갑옷은 에도 시대 때 귀족 가문에서 가보로 내려온 화려한 장식용 갑옷입니다. 일본도 집단전이 확립된 무로마치 후기에서 아즈치모모야마 시대까지의 갑옷은 대부분이 실전용이었습니다. 하지만 큰 변란이 없었던 수백 년 동안 실전용이 모조리 소모되고 없어져 현재 전해 내려오는 실전용 갑옷은 거의 없습니다. 저쪽 상점에는 일본검만 다루는 곳도 있습니다. 그쪽으로 가시죠.”
“네.”
이동하는데 자꾸 머릿속이 간질거렸다. 뭔가 있는데 기억이 날 듯 말 듯 사람 답답하게 만들었다.
뭐지? 이런 적이 없었는데. 내가 골동품하고는 전혀 연관된 적이 없는데.
상점 진열장에 여러 종류의 일본 검들이 있었다. 보기에도 날이 날카로운데 아무나 살 수 있는 건가?
“이게 진짜 일본 전통 검들입니까?”
강성중 물음에 손병수가 웃으며 대답하였다.
“이건 전부 다 가짜입니다. 검은 철로 만들어 아무리 잘 보관해도 오랜 시간 지나면 부식되어 검으로서 생명을 유지하기 힘듭니다. 지금 보는 검들은 새것같이 보이지 않습니까? 일본 전통 검을 모방하여 19세기 이후에 만든 검들입니다. 다만 일본 검들은 이런 종류가 있었다고 참고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상철이 형! 게임 아이템에 참고해도 되겠다.”
“그러네.”
“제가 사진 찍겠습니다.”
강성중이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게임 아이템으로 사용해도 좋지만, 일본도는 전투력을 약하게 만들어.”
내 말에 강성중이 대답하였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 서머위즈 워에서 환두대도가 제일 강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저쪽은 여러 나라의 잡동사니 골동품들을 파는 상점들입니다. 그림부터 도자기며 목각인형 등 볼거리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전부 고가의 골동품은 아닙니다. 진짜 고가의 골동품은 진열하지 않고 따로 판매한다고 합니다.”
손병수의 말에 계속 간질거리던 기억이 드디어 떠올랐다. 아 그래서였구나. 대박인데.
떠오른 기억은 이전 생에서 신문에 난 기사였다.
어떤 일본 남성이 도쿄 골동품 가게에서 러시아의 전통 목제 인형인 마트료시카 왕자, 공주 인형 세트를 2,000년대 초에 구매하여 집에서 30년 가까이 보관하다가 어느 날 어린 손자가 가지고 놀다가 인형이 부서졌는데 그 안에서 파베르제 달걀이 나와 놀랐다고 하였다.
다른 세트를 깨 보니 그 안에서도 또 다른 파베르제 달걀 나왔다고 하였다.
파베르제 황실 달걀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달걀로 러시아 황실에서 지금까지 총 50개가 제작되었으며 각종 보석으로 치장하여 그 예술적 아름다움과 희소성으로 수많은 부호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때 일부가 분실되면서 그 가치가 꽤 높았다.
내가 알기로 현재 6개가 행방불명이었는데 2027년에 마트료시카 인형에서 두 개를 찾아 4개가 행방불명인 상태였다.
그 두 개를 감정한 결과 1889년과 1891년에 제작된 파베르제 달걀이었고 하나에 500억 원씩 두 개에 1,000억에 팔렸다고 하였다.
대박! 그걸 내가 먼저 찾으면 1,000억 원을 버는 거잖아. 무조건 찾아야 한다.
“손병수 씨! 이곳에 러시아 전통 목제 인형 마트료시카 판매하는 곳이 있을까요?”
“있을 겁니다. 구매하시려는 겁니까?”
“네. 선물로 사 갈려고요.”
“저쪽에 잡동사니 파는 곳에 있을 겁니다.”
“가죠.”
“네.”
손병수가 말한 골동품 가게 앞에 오니 정말로 여러 가지 잡동사니들이 많았다. 안으로 들어갔다.
일본어를 몰라 손병수에게 부탁하였다.
“사장님! 여기에 러시아 마트료시카 인형 있습니까?”
“하나 있습니다. 저쪽에 있습니다.”
주인이 가리킨 진열장 앞으로 가니 하나가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파베르제 달걀이 들어가야 하기에 이것보다 더 커야 했다.
“세트로 되어 있는 것은 없습니까? 예를 들어 왕자와 공주 세트 같은 거 말입니다.”
“우리 가게에 있는 것은 그게 전부입니다. 다른 가게에 가 보시면 있을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가게를 나와 다른 가게를 들렀지만, 그곳에서도 없었다.
근데 나 혼자면 이곳저곳을 막 다니겠는데 일행들이 있어서 내 멋대로 다닐 수가 없었다. 갑자기 내가 조급하게 굴자 다들 이상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사장님! 중요한 거 찾는 겁니까?”
지금 말고 내일 혼자 와서 찾아봐야겠다.
“아니야. 천천히 구경해.”
“알겠습니다.”
골동품 가게를 구경하고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민박집 방이 4개라 하나는 미나가 하나는 내가, 하나는 배상도, 가장 큰방은 강성중과 신상철 둘이서 사용하기로 하였다.
씻고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몇 군데 더 둘러보았지만, 그곳에서도 없었다. 아직 상점에 나오지 않은 건가? 지금이 1999년이라 2000대 초나 별 차이가 안 나는데.
아니지! 골동품 상점을 다 둘러본 것이 아니라서 아직은 모르지. 돈이 한두 푼도 아닌데 무조건 찾아야지.
내일도 도쿄 관광을 하기로 했는데 난 빠져야겠다. 근데 나도 통역이 필요한데. 핸드폰을 들었다.
(테츠야입니다.)
“대표님! 진민재입니다. 부탁이 하나 있어서 전화했어요.”
(말씀하십시오.)
“내일 개인적으로 볼일이 있어서 그런데 통역할 사람 좀 부탁할게요.”
(차는 안 필요합니까?)
“시내라 택시 타고 다니는 게 더 편해요.”
(알겠습니다. 내일 몇 시까지 숙소로 가면 됩니까?)
“10시까지 오면 될 거예요.”
(알겠습니다. 10시까지 보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전화를 끊자 다시 핸드폰 벨이 울렸다.
“진민재입니다.”
(나 손이야.)
“네. 회장님!”
(도쿄 관광은 잘했어?)
“네. 잘했습니다.”
(내일도 관광할 거지?)
“네.”
(그럼 저녁이나 같이할까? 같이 온 친구들도 같이. 일본에 왔는데 내가 식사 대접은 해야지.)
따로 움직이더라도 저녁에 만나면 되니까.
“좋습니다.”
(그럼 지난번에 갔던 그 식당에서 7시에 보기로 하지.)
“알겠습니다. 내일 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