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커피숍에 출근하여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즐기는데 강성중이 팝업창을 띄우고 광고 송을 반복적으로 듣고 있었다.
오션에서 팝업창 광고를 한 지 이틀이나 지났고 내일이 드디어 오션팟 출시 날이었다.
“성중아 몇 번이나 듣냐? 지겹지도 않아?”
“지겹기는요? 들을수록 귀에 쏙 들어오면서 은근히 중독성이 있습니다. 저는 미나가 예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와 이렇게 예쁜 줄은 몰랐습니다.”
팝업창에 넣을 사진을 찍느라 전문가의 풀메이크업을 받아서 그런지 나도 팝업창 사진을 볼 때마다 예쁘다는 생각을 하였다.
“미나 원판이 원래 예뻐. 자기가 안 꾸며서 그렇지 꾸미면 배우 못지않아.”
“그런 것 같습니다.”
“미나가 예쁘냐? 홍이나가 예쁘냐?”
“그거야 당연히 홍이나가 더 예쁘죠.”
“미나한테 그대로 말한다.”
“사장님 봐주십시오. 미나한테 저 죽습니다.”
“미녀 손에 죽는 것도 영광이야.”
“사장님! 미나 이렇게 예쁜데 차라리 TV CF 광고를 하면 더 좋지 않습니까?”
오션팟의 주 고객들은 젊은 층이다.
젊은 층이기에 인터넷을 많이 하고 오션도 많이 방문하기에 오션 광고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판단이었다.
나중에 상황 봐서 하게 되면 하겠지만 지금은 괜히 비싸게 돈 들여 TV CF 광고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네가 광고비 낼래? 알아보니 엄청 비싸더라.”
“사장님 돈도 많으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쓸 땐 써야죠.”
“아직 쓸 때가 안 되었으니까. 오션 팝업 광고만으로도 충분해. 사람들 반응도 좋고.”
“이렇게 얼굴을 알리게 되어 미나가 가수로 데뷔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오션팟이 인기가 많아질수록 미나의 얼굴이 널리 알려질 테니까.”
“미나가 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알고 보니 미나 아빠가 하던 가게가 망해 집안이 조금 어려운가 봅니다.”
그런 자세한 사정은 몰랐다.
그런 이유로 미나가 커피숍 망할지도 모른다고 나보다 더 걱정한 것이었고 날 찾아온 손님들에게 돈을 받으라고 한 거였구나.
“진짜?”
“네. 저도 얼마 전에 미나랑 이야기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겁니다. 그전까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미나는 잘될 거야. 실력이 있으니까.”
“미나 실력은 제가 봐도 뛰어나기는 합니다.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핸드폰이 울렸다.
“진민재입니다.”
(나야 손이야.)
손정우 회장이었다. 왜 또 전화야?
“안녕하세요? 회장님!”
(내일 오션팟 출시하는 거 알지?)
“그럼요. 제가 제일 잘 알죠. 오션팟은 다 받은 거죠?”
(그럼. 이미 일본 전역에 판매할 준비까지 다 끝냈는데. 자네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이요?”
(아직 출시 전이기는 하지만 미국 언론에서 오션팟 칭송이 자자하다고 하네. 세계 최초의 MP3 플레이어에다 미래지향적인 디자인과 성능, 가격 면에서 완벽하다는 평이야. 출시하면 확실히 인기를 끌 것 같아. 다만 일본에서는 어떤 반응일지 모르겠지만.)
에릭이 오션팟 공개시연에 참석한 기자들에게 오션팟을 선물로 주었는데 그걸 사용해 본 기자들이 호평한다고 하였다.
근데 문제는 MP3 플레이어 기능보다는 기사를 저장하는 휴대용 저장 장치가 주 메인이고 덤으로 음악을 듣는다고 한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었다. 아무려면 어때? 판매만 잘되면 되는 거지.
내 기억으로는 일본에서 아이폰의 인기가 엄청났고 아이팟도 마찬가지였기에 분명 인기가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도 인기가 있을 거예요. 오션팟의 기능도 좋지만, 일본 여성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이잖아요.”
(그렇기는 해. 우리 회사 직원들 보니까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알았어. 일본에는 언제 올 거야?)
“글쎄요? 갈 일이 있으면 가겠죠.”
(바로 옆인데 한번 와.)
“알았어요.”
전화를 끊었다.
* * *
미국 LA에 위치한 한 베스트바이 스토어 매장에 제인은 남자 친구와 함께 MP3 CD 플레이어를 구매하기 위해 왔다.
직원에게 물어 MP3 CD 플레이어가 진열된 곳에 와서 어느 것을 살까?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 진열대에 사람들 여러 명이 모여 있었고 그중에 어떤 사람들이 하는 말이 들렸다.
“이게 오션에서 새로 출시한다는 MP3 플레이어란 말이야?”
“그래. 작은 게 디자인이 예쁘지?”
“그러네.”
“작아도 여기에 노래가 500곡이나 들어간대.”
“정말?
“나도 놀랐다니까. 하드 디스크를 사용해서 그렇다나 봐. 나 음악 듣는 거 무척 좋아하잖아. 500곡이면 처음부터 이걸 다 듣는 데 얼마나 걸릴까?”
“한 곡당 최소 4분을 잡으면… 아, 몰라! 살 거면 빨리 사고 나가자. 배고프다.”
“알았어.”
제인은 그 말을 듣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이 사려는 MP3 CD 플레이어는 600메가 공시디에 150곡이 들어간다. 그런데 그것보다 350곡이 더 들어간다고?
진열장에 있는 것을 보니 크기도 MP3 CD 플레이어보다 훨씬 작았다. 가격도 20달러가 더 저렴하였다.
옆에 손님이 제품을 하나 들고 가자 그 옆으로 가서 제품을 자세히 보았다.
크기도 작고 디자인도 세련된 것이 첫눈에 마음에 들었고 제품 설명을 읽다가 이거다 싶었다.
얼른 상자 하나를 집었다.
“마이크! 나 이거로 살래.”
* * *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 전자 상가 거리를 걷던 대학생 사우리는 한 가게 진열장에 위에 있는 광고 사진을 보고 진열장 앞으로 갔다.
예쁜 여성이 작은 뭔가를 들고 있었고 귀에는 이어폰이 있었다.
광고 사진에 나와 있는 설명을 보니 음악을 들을 수 있는 MP3 플레이어였다. 근데 저 작은 곳에 무려 500곡이나 노래가 들어간다고?
자신의 손에 들린 CD 플레이어를 보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 CD인데 노래가 12곡이 수록되어 있었고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노래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저 플레이어는 500여 곡이 들어가고 자신이 원하는 곡만 넣을 수 있고 크기도 휴대하기에 작아 좋았고 디자인도 너무 예뻤다.
너무 비교가 되었다.
점원에게 물었다.
“이게 얼마예요?”
* * *
오션팟 출시한 지 일주일이 되어 오늘 오션팟에 왔다.
오션팟의 반응이 좋은지 황정화 사장의 입가에는 웃음꽃이 가시지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고문님!”
“기분이 좋아 보시네요.”
“이런 기분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고생하고 힘들었던 것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기분입니다. 매일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표정도 밝고 기분이 좋아 보였지만 왠지 그 속에는 쓸쓸함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오션팟의 반응이 좋아 기쁘기는 하지만 자신은 엠피고로 한번 실패를 맛보았고 이제 오션팟은 비록 스톡옵션을 받기는 했지만,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저도 궁금한데 매출 보고서를 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책상에서 매출 보고서를 가지고 와 나에게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보고서를 보았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매출과 일본 매출 보고서도 함께 있었다.
말로는 이미 들었지만, 구체적인 숫자로 보니 오션팟 출시가 성공적이라는 것을 실감하였다.
미국 매출이 예상처럼 압도적으로 제일 많았고 그다음은 일본, 제일 꼴찌가 한국이었다.
“한국이 제일 적네요.”
“네. 그렇습니다. 일본이 한국 인구보다 2배가 넘기에 산술적으로는 매출이 2배가 조금 넘어야 하지만 실제 매출은 3배 정도 차이가 납니다. 아마도 한국은 지금 IMF 시기라 그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엠피고하고는 비교 불가의 매출이기는 합니다.”
엠피고는 작년 12월부터 남은 재고를 원가 수준의 떨이 세일 하여 대부분 팔아치웠고 생산은 예전부터 중단했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매년 오션팟을 버전업하여 출시하면서 앞으로 몇 년 동안은 계속 성장해 나갈 거예요.”
“저는 이번에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같은 기술로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우물 안 개구리였습니다. 고문님을 만나서 우물 밖으로 나온 기분입니다. 앞으로도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저도 한곳에 정체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고 싶습니다.”
“이번 경험으로 사장님도 많이 깨달았다고 하시니 앞으로는 스스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거예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잘하실 거예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황 사장이 입을 열었다.
“고문님! 지금 3개국에만 출시를 했는데도 이런 반응인데 앞으로 더 많은 국가에 출시하면 생산 물량이 따라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미리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원가 절감을 위해 공장을 해외에 마련해야 하나? 나중에 스마트 폰도 생산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데.
“그렇죠. 해외 공장 설립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찬성입니다. 주변 지인들 말로는 중국에 공장을 세웠는데 노동력이 저렴하여 생산 제조 원가가 많이 절감된다고 합니다. 우리도 중국에 진출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다행히도 찬성이네. 하지만 중국에다가는 공장을 세우지 않을 거다. 어디에 세울까? 난 개인적으로 미얀마가 좋은데.
이걸 누구랑 상의해야 하지? 그나마 염 대표가 해외 경험이 많아 제일 좋을 것 같았다.
“아뇨. 중국에는 세우지 않을 거예요. 해외 공장 설립은 제가 좀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할게요. 일단 국내에서 공장 한곳을 더 인수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사장실에서 나왔다.
“심 과장은 어디 있나요?”
“개인 연구실에 있습니다.”
“온 김에 보고 갔으면 해서요.”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황 사장의 안내를 받아 개인 연구실에 들어갔다.
말이 연구실이지 작은 사무실이었고 책상에는 핸드폰 부속품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심용철은 우리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그 뒤로 가자 그제야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고문님! 언제 오셨습니까?”
“방금요. 뭘 열심히 보시는 거예요?”
“핸드폰입니다. 고문님 뜻에 따라 핸드폰 전문가가 되려고 일일이 분해해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잘되나요?”
“지금까지는 잘되고 있습니다.”
역시 내가 심 과장을 잘 선택한 것 같았다. 심 과장 손에서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이 만들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저는 심 과장님만 믿고 있을게요.”
* * *
망고사 CEO인 스티븐 잡스는 책상에 놓여 있는 오션팟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 망고는 심각한 위기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
망고에서 쫓겨났던 자신이 1997년도에 다시 망고로 돌아왔지만 자신 앞에 놓인 것은 10억 달러 적자라는 커다란 짐 덩이뿐이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이전 CEO들이 주로 하였던 최대한 많은 제품을 개발하고 문어발처럼 여러 사업에 진출하는 경영 방식을 탈피하여 현재 망고에 꼭 필요한 사업만을 남기고 전부 정리하고 직원 3,000명을 해고하였다.
그 덕분에 1년 만에 3억 달러 흑자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건 일시적인 현상이고 앞으로 망고가 계속 흑자를 내려면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였다.
오션팟을 들어서 돌리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게 MP3 플레이어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획기적인 것이었다.
이런 획기적인 상품을 개발하려고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노력했던가?
수많은 제품을 찾아다니며 보고 활용할 가치가 있는지 수많은 고민을 하였다. 또한, 사내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어 직원들의 아이디어도 이용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아직 그럴듯한 아이디어가 없었는데 오션팟을 보는 순간 이거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럼 뭐해? 내 것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