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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의 홀로서기-121화 (121/261)

121화

작은아버지를 만나고 나서 진성 그룹 상황이 궁금하여 박도진을 불렀다.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요새는 바쁜가요?”

“늘 그렇습니다.”

대답하고서는 서류 봉투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지난번에 보고한 것과 특별히 다른 것은 없습니다.”

서류 봉투에서 서류를 꺼내 읽어 보았다.

지난번에 받은 내용과 달라진 게 별로 없었다.

남은 계열사 진성 금속, 진성 화장품, 진성 유통, 진성 무역 중에 환율 차이로 인해 그나마 진성 무역이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나머지 계열사들은 계속 적자이며 겨우 버티고 있었다.

작년에 대규모 구조조정을 한 덕분에 적자 규모가 작년보다는 줄어들고 있어서 한숨을 돌릴 정도이기는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지는 모른다.

“언제까지 버틸까요?”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보기에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지만 어디서 문제가 하나 터지면 급속히 무너질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지금은 태풍이 강하게 불다가 잠시 멈춘 상태예요. 다시 태풍이 불면 쓰러질 거예요. 문제는 언제 태풍이 부는가겠죠.”

“태풍이 불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하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겠지만 지금 하는 것을 보면 참담합니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작은아버지의 무능함과 작은엄마의 횡포는 넘어가더라도 문제는 장남인 진석구가 현재 진성 화장품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공금을 빼돌려 개인 비자금을 만들고 있다는 거다.

그 어려운 회사 사정 속에서 규모가 무려 20억 원이나 되고 지금도 계속 빼돌리고 있었다.

철저히 준비해도 부족한데 이러니 회사가 회생할 수 있을까? 더구나 작은아버지와 작은 엄마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작은 집 식구가 진성을 말아먹으려고 아예 작정한 것 같았다.

석구 형은 저러고 있고, 희영 누나는 놀면서 돈을 헤프게 쓰고 있고, 동민이는 학교 다니면서 공부는 안 하고 술만 마시면서 사고만 치고 있고, 그 집에서 제대로 된 사람은 진서영밖에 없었다.

콩가루 집안도 아니고 뭐냐?

“답답하네요.”

내 말에 박도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진성 그룹을 보면서 기업을 세우는 데 수십 년이 걸리지만 망하는 데는 한순간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왜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저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족한 것 없이 살아왔을 텐데 앞으로 어떻게 하려는지 보고만 있어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게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마치 내일은 없고 오늘만 살아가는 사람들 같아요.”

“진성 어페럴을 보면서 느낀 점이 없나 봅니다.”

진성 어페럴를 인수한 어르신은 손녀인 황규희에게 진성 어페럴을 맡겼는데 황규희가 능력이 있는지 빠르게 경영 정상화를 시켜 요즘은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고 한다.

박도진의 보고를 받고 나도 놀랐다.

난 인수하고 나서 바로 칼바람이 불 줄 알았는데 찻잔 속에 태풍으로 끝이 났다. 의외였다.

기존에는 주로 내수 시장 위주였는데 황규희는 내수 시장을 줄이고 남은 인력을 수출에 주력한 결과였다.

품질 좋고 환율 차이로 가격까지 저렴하자 외국에서 인기가 있어 수출이 잘되고 있다고 하였다.

“그렇게 말이에요. 진성 어페럴을 보고 배우면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텐데요. 알았어요. 계속 지켜봐 주시고 변동 사항이 있으면 바로 알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박도진이 가고 다시 서류를 보다가 오랜만에 황규희랑 통화하려고 핸드폰을 들었다.

신호음이 여러 번 울리다가 받았다.

(여보세요.)

“나야 민재야.”

매우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재 오빠! 얼마 만이야? 내가 오빠 전화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자주 좀 하지.)

저게 진짜 마음일까? 황규희랑 이야기하다 보면 가끔 속마음이 진짜일까? 하는 의심이 든다.

“네가 하면 되지.”

(오빠는 여자 마음을 너무 몰라.)

“요즘 회사 잘나가고 있다며?”

(말도 마. 힘들어 죽겠어. 괜히 회사를 맡는다고 했나 봐. 그래도 하루하루 나아지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기는 해. 쓰러져 가는 회사를 살리는 보람은 있어.)

“네가 능력자인가 보네.”

(사채업보다 더 적성에 맞는 것 같기도 해. 한번 회사에 놀러 와.)

“내가 왜?”

(이 고생을 누구 때문에 하는 건데. 나중에 오빠한테 주려고 하는 거잖아. 그럼 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이 말도 진심인지 헷갈렸다.

진짜 나에게 주기 위해서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이유가 어떻든 간에 한번 정도 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알았어. 시간 나면 갈게.”

(언제?)

“글쎄?”

(내일 오후에 와. 퇴근하고 같이 밥 먹자.)

“알았어.”

다음 날 오후에 진성 어페럴로 향하였다.

건물 뒤편에 있는 주차장에 들어가니 여러 명의 사람들이 탑차에 옷들을 싣고 있었다. 배상도가 방해되지 않도록 떨어진 곳에 차를 주차하였다.

차에서 내려 건물로 걸어가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민재야!”

뒤를 돌아보니 놀란 눈을 한 김윤석이 옷을 들고 서 있었다. 여기에서 날 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겠지.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 보는 거였다.

이전 생과 같이 작은 엄마 도움으로 진성 어페럴에 입사했고 과거와는 다르게 계속 다니고 있었다.

김윤석이 계속 다닐 것으로 생각은 했지만 나도 만날 줄은 몰랐다.

녀석이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와! 이게 몇 년 만에 보는 거야?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볼일이 있어서. 너 여기 다녀?”

“응. 네 소식은 뉴스에서 들었어. 출세했더라. 하긴 넌 그만한 능력이 있으니까 당연하겠지. 정말 반갑다.”

넌 다시 만나 반가울 수도 있겠지만 난 하나도 반갑지 않았고 보지 않았으면 했었다.

“진심이야?”

“당연하지. 우리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대로 헤어질 수 없잖아. 지금은 내가 일하느라 곤란하고 저녁에 소주 한잔하자. 유학 가서 성공한 널 다시 보니 그동안 네가 어떻게 지냈는지도 궁금해.”

나랑 너랑은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이미 끝난 관계야.

이제 너랑은 다시 이어지고 싶지 않아. 그래도 미운 정 고운 정이 있으니 잘못을 돌이킬 한 번의 기회는 줄게.

“윤석아! 너 나한테 미안한 일 한 적 없어?”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너한테 미안한 일 한 게 뭐가 있다고? 혹시 내가 기억하지 못한 실수라도 있어?”

마지막 기회를 차 버린 것은 너다.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난 네가 한 일을 다 알고 있어.”

“내가 뭘 했다는 거야?”

“작은엄마! 이래도 몰라?”

양심에 찔리는지 뜨끔하는 김윤석이었다.

“작은엄마가 뭐?”

“꼭 내 입으로 말해야겠어? 그냥 미안하다고 할 수는 없니?”

“네가 오해하는 것 같은데. 난 뭘 말하는지 모르겠어.”

“네가 작은엄마 스파이 노릇한 거 다 알고 있어. 너도 사정이 있어서 그랬겠지! 하며 그동안 모른 척했어. 널 보면 그때의 더러운 기억이 떠올라 기분이 좋지 않아. 넌 친구를 팔아먹었고 난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한 거야. 인제 와서 널 원망하거나 탓하지는 않을게. 너와 나의 인연은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끝났어. 앞으로 서로 모르는 남남처럼 지내자. 이게 너한테 내가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아량이야.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듣겠지.”

김윤석은 어렸을 때 한 잘못을 군대 가서 깨달았었다.

철부지 때는 뭣도 모르고 돈을 준다고 하니 신이 나서 민재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는 스파이 짓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민재는 자신을 곁에 두었다니?

차라리 그때 말을 했으면 그 짓을 계속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원망도 들었지만, 민재에게 너무 미안하여 고개를 제대로 들 수가 없었었다.

녀석의 얼굴이 갑자기 시뻘게졌다.

“미안해.”

“그 말 일찍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늦게 들었네.”

할 말이 없는지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김윤석을 뒤로한 채 건물로 들어갔다.

왜 그랬냐고? 따지고 묻고 싶었지만, 막상 보니 지난 일이고 녀석에게 미련도 남지 않아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끝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황규희를 만났지만, 기분이 별로라 급한 일이 생겼다고 밥은 다음에 먹자고 하고 잠깐 있다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작은아버지하고 관계를 끝내고 김윤석하고도 끝냈네. 이제는 더는 엮일 일이 없겠지.

* * *

오늘은 장 회장을 만나러 현도 사옥에 왔다.

한동안 연락도 없어서 잊고 지냈는데 어제 갑자기 전화하더니 오늘 오라고 하였다. 급한 일이 있나 싶어서 왔다.

비서실 안으로 들어가자 이아름 비서가 맞아주었다.

“어서 오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그러네요. 회장님 기다리세요. 들어가시면 돼요.”

“네. 고마워요.”

안으로 들어가자 장 회장이 소파에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앞으로 가서 큰 소리로 인사하였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내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왜 소리를 질러? 나 귀 안 먹었어.”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요.”

“왔으면 앉아.”

왠지 장 회장은 나만 보면 괜히 심술부리는 것 같았다. 못마땅하면 부르지나 말지. 불러놓고서 뭐 하는 거야?

소파에 앉았다.

“무슨 일 있으세요?”

“연락받았어?”

“무슨 연락이요?”

“어제 청와대에서 연락 왔는데 진 박사 연구 자료 찾는 거 중단한다고 하네.”

난 연락 받지 못했다. 이런 거는 나한테 제일 먼저 알려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국정원은 뭐 하는 곳이야?

자기들 필요할 때만 와서 물어보고 내가 CIA에서도 찾고 있다는 것도 알려 주었으면 도리상 연락해 줘야지.

이걸 남한테 들어야 하나?

“찾기가 힘든가 보네요.”

“그런가 봐. 그걸 반드시 찾아야 하는데. 이대로 놓치기에는 너무 아쉬워. 자네 뭐 생각나는 거 없어?”

몇 번이나 물어봐. 있으면 내가 벌써 찾았지.

“없어요.”

“이대로 포기할 거야?”

나도 찾고 싶지만, 정보기관에서도 찾지 못한 걸 내가 어떻게 찾아? 찾으면 좋지만 찾지 못해도 난 아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장 회장 입장에서는 절대 놓치고 싶지 않겠지. 현도 자동차가 세계적인 자동차가 될 기회일 테니.

“국정원뿐만 아니라 CIA에서도 찾고 있는데 못 찾고 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네요”

“CIA에서도 찾고 있었다고?”

“네.”

“국가에서 포기했으니 나라도 사람을 고용해서 찾으려고 하는데 자네가 도와주었으면 해.”

“제가 어떻게요?”

“자네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든가 나중에 도움을 요청하면 도움을 주었으면 해.”

“그 정도는 할게요. 근데 이 정도 찾았는데 찾지 못했으면 없는 것이 아닐까요? 아빠가 폐기했을 수도 있어요. 회장님도 이제 미련을 버리시는 게 좋지 않아요?”

“아니야. 분명 있어. 진 박사가 그걸 개발하고서 나한테 전화해서 흥분하면서 인류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나. 그런데 그걸 폐기했다고? 아니야. 어딘가에 있어.”

찾다가 못 찾으면 포기하겠지. 내가 신경 쓸 일도 아닌데.

“알아서 하세요.”

“그리고 며칠 전에 베트남에서 연락이 왔는데 금강산에 있는 해금강 호텔 반값에 넘기겠다고 인수하라는데 어떻게 할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베트남도 급했나 보네. 하긴 사용도 하지 않는 호텔을 소유하고 있어 봤자 손해이겠지. 반값이라도 파는 게 남는 것일 거다.

“북한에서 군부대 이전한다고 해요?”

“아니. 거부했어.”

하긴 군부대 이전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지.

“회장님 생각은 어떠신데요?”

“난 인수했으면 해. 고성에서 숙소를 정해서 왔다 갔다 할 수도 있지만, 까다로운 입국 절차를 겪어야 하기에 번거로워. 그렇다고 북한의 다른 숙소를 사용하기에는 시설이 열악하고. 마침 베트남에서도 저렴하게 매각한다고 하니 자꾸 마음이 끌려. 인수해서 인테리어만 다시 하면 고급 호텔로 변모할 수 있거든.”

“그러면 하세요.”

“하라고?”

“네.”

“군부대는 어떻게 하고?”

“이전할 수 없다는데 어떡해요? 대신 군부대로 가는 길을 확실히 막으면 되기는 해요. 관광객들이 아무 생각 없이 산책하다가 다가갈 수 있으니 가지 못하도록 원천봉쇄하면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 거예요. 북한에 맡기지 말고 현도에서 직접 이중으로 장애물을 설치하세요. 관광객 접근을 차단한다고 하는데 북한에서도 막지는 않을 거예요. 또 관광객에게 교육할 때 주변에 군부대가 있으니 접근하지 말라고 확실히 주지시키고요.”

이러면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

일부로 작정하고 넘어가는 것은 막지 못하겠지만 실수로 넘어가는 것은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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