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토요일 오전 코리아 오션 사무실에서 나하고 염 대표, 키아이 엔터테인먼트의 주호식 사장과 이기현 이사, KG 음향 김대철 사장이 모여 앉아 있었다.
우리가 사과를 받는 자리라 나와 염 대표는 느긋하게 찻잔을 들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나자 키아이 엔터테인먼트의 주호식 사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선 이 자리를 마련해 준 것에 감사드리며 녹음실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드립니다.”
말을 하고서는 옆에 풀이 죽은 채 앉아있는 이기현 이사를 팔꿈치로 툭 치자 이기현 이사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지시를 내린 것은 저입니다. 일정에 쫓기다 보니 급한 마음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오션에 피해를 주어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KG 음향 김대철 사장이 입을 열었다.
“아무리 친분이 있다고 하여도 이미 계약한 상황에서 약속을 어긴 점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속마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과하는데 받지 않을 수도 없는 법, 대인배답게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이미 지나간 일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으나 이번 일을 교훈 삼아 다시는 같은 잘못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과하시니 저도 깨끗이 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너그럽게 사과를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자세로 일관하는 저들을 보며 내가 오션의 창업자가 아니라 일반인이거나 별 볼 일 없는 회사의 대표였다면 지금 같은 모습을 보여 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이겠지만 전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들은 지금까지 남들보다는 자신들이 더 편하게 자신들 위주로 살아온 사람들이라 남의 사정을 절대 이해하지도 봐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상대가 자신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기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는 것뿐이지 상대가 자신들보다 더 낮았다면 절대 사과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은 이 사회에서는 억울하면 출세해야 한다. 나도 이런 일을 또 당하지 않으려면 감히 쳐다보지 못할 만큼 저 높이 올라가야 한다.
염 대표가 입을 열었다.
“사과도 했고 사과도 받았고 이제 오션의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한 배상을 이야기하도록 하죠. 우리가 꼭 배상을 받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깨끗이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절차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KG 음향은 우리가 지급한 돈에 두 배인 24만 원을 지급하시고 또한 KG 음향과 키아이 엔터테인먼트에서 우리에게 손해를 입힌 배상을 하셨으면 합니다.”
주호식 사장이 굳은 얼굴을 한 채 물었다.
“얼마를 배상해야 하는 겁니까?”
염 대표가 대답하려는 것을 내가 막았다.
사실 배상이라고 해봤자 푼돈밖에 받을 수밖에 없고 거액을 요구하면 두 회사가 반발할 수도 있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 오션 이미지에 타격을 받을 수 있었다.
배상이라는 명목으로 굳이 푼돈을 받을 이유는 없었다.
“금액은 우리가 정할 수는 없고 두 회사가 잘못을 뉘우친다는 의미로 알아서 결정하십시오. 다만 우리에게 배상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두 회사가 기부하는 형식으로 했으면 합니다. 그러는 것이 두 회사에게도 좋을 겁니다.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는데 이만한 것이 없을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우리를 생각해 준 결정에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합의한 사실을 언론에 알려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세요. 이제 이야기도 다 끝난 건 같은데 이만 끝내죠. 화기애애한 자리는 아니지 않습니까?”
“알겠습니다.”
다 가고 염 대표와 둘만 남았다.
“저는 손해 배상 금액을 조금 높게 부를 생각이었습니다. 한번 된통 당해 봐야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을 테니까요. 우리가 좀 높게 불러도 빨리 마무리하는 것이 좋기에 받아들였을 겁니다. 시간 끌어 봤자 손해 보는 것은 자기들이니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너무 과한 면이 있을 것 같아서 서로 좋게 끝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실제 우리가 피해입은 것은 크지 않기에 남들이 보기에는 좋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저도 고문님 선택이 잘한 것 같습니다. 깨끗이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이번 일로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어떨지는 모르죠. 그리고 작은아버지한테 또 전화가 왔나요?”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매일 옵니다.”
“그냥 무시하세요.”
“직원들에게 그렇게 말해 놓았습니다. 계속 반응이 없으면 더는 안 할 겁니다.”
과연 그럴까? 그럴 것 같았으면 아예 처음부터 연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화로 안 되면 찾아올 수도 있어요. 만약에 찾아오면 상대하지 말고 내보내세요.”
“제가 생각하기에 무조건 피하는 것이 능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차라리 한번 만나서 깨끗이 정리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미련을 가지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그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만나서 매정하게 확실히 끊으면 더는 미련을 가지지 않을 테니까.
“생각해 볼게요.”
이야기를 마치고 오션에서 나와 차에 탔다.
“어디로 가실 겁니까?”
“커피숍으로 가요.”
“알겠습니다.”
차가 출발하자 오늘 합의한 상황을 서하연 기자에게 알려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핸드폰을 들었다.
(서하연 기자입니다.)
“안녕하세요?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세요? 고문님이 어쩐 일로 전화 주셨어요?)
“지금…….”
상황 설명을 하였다.
“그래서 서 기자님에게 알려드리는 거예요.”
(생각해 주어 고마워요.)
“기자님이 기사를 잘 써 주어 제가 더 고맙지요.”
다른 것보다 오션팟 광고를 해 준 게 제일 고마웠다.
(아니에요. 저도 고문님 때문에 3개나 기사를 쓸 수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이번 것까지 하면 4개나 되네요.)
3개라면 갑질 사건, 오션팟, 내 개인 인터뷰를 말하는 것 같았다.
“도움이 되었다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다음에도 기삿거리가 있으면 서하연 기자님에게 제일 먼저 알려드릴게요.”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저야 무조건 감사할 뿐이에요.”
(알았어요. 다음에 통화해요.)
“네.”
서하연 기자에게 들은 말인데 나를 찾고자 분당에 있는 커피숍을 전부 찾아다녔다고 하였다.
그런 집념의 기자이고 나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는데 이 정도는 해 주어야지.
* * *
커피숍에 오자 홍이나가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고 그 옆에 강성중이 앉아 훈수를 두고 있었다.
화요일에 여기 처음 오고 오늘 토요일까지 5일 동안 계속 나오고 있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하는데 늦게 배운 게임이 날 새는 줄 모르고 있었다.
이제 갑질 사건이 마무리되었으니 다음 주부터는 스케줄이 있으면 오지 않겠지. 그나마 손님이 없어서 홍이나가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거겠지.
내 전용석에 앉자 홍이나가 게임하면서 나를 보고 물었다.
“간 일은 잘 해결된 거예요?”
“응. 오늘 언론에 서로 합의했다는 기사가 나갈 거야. 그럼 다음 주부터는 일할 수 있을 거야.”
홍이나가 나보다 2살이 어리기에 말을 놓기로 하였다.
내 말에 미간을 찡그리면 혼잣말을 하는데 그 모습마저도 예뻐 보였다.
‘그동안 즐거웠는데. 이제 끝이네.’
“이제 제자리를 찾는 거지. 네 자리는 이곳이 아니거든.”
“가끔 놀러 와도 돼요?”
홍이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잠잘 시간도 없을 만큼 스케줄이 무척 타이트하여 이동하면서 자기도 하고 밥도 먹는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는데 연예인들도 참 고생이 많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동안 잘 쉬었지.
“그래. 근데 올 시간이나 있어?”
“없기는 해요. 앨범 발표하면 더욱더 바빠져서 시간이 없거든요. 그래도 시간 나면 놀러 올게요.”
“알아서 해.”
* * *
집에 돌아와 쉬는데 핸드폰이 울려 받았다.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에릭 슈밋입니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오라 고문님이 말씀한 대로 인터넷 쇼핑몰에 공문을 보냈더니 신기하게도 바로 제품을 내렸습니다.)
당연하겠지. 자기들이 소송 대상이 되는데 굳이 푼돈 벌고자 판매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다행이네요.”
(효과가 이렇게 좋을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로우스 인터내셔날이라는 무역회사에서 시중에 판매하려고 중국의 MP3 플레이어를 대량으로 수입했다는 것을 알아내어 공문을 보냈습니다. 다행히도 이 회사는 물건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시중에 풀지는 않았습니다. 공문을 받은 이 회사에서 문제의 심각함을 인식하고 수입한 제품 전량을 다시 되돌려 보내겠다고 연락이 왔었는데 순간 좋은 생각이 들어 제가 잠시 보류하라고 했습니다. 그 물량이 무려 4,000만 달러나 된다고 합니다. 중국 측에다가는 경각심을 주기 위해 전량 폐기할 것이라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그 말을 들으면 식겁할 겁니다. 그리고 제가 법원에 특허권 위반으로 그 물량에 대해 가압류 신청을 다음 주 월요일에 할 겁니다. 그럼 수출한 중국 업체는 판매도 못 하고 제품도 다시 찾을 수 없게 되어 큰 손해를 보게 될 테니 분명 연락이 올 겁니다. 그때 특허권 위반에 대한 배상을 받을 생각입니다.)
아주 좋은 생각 같았다. 4,000만 달러를 그냥 포기하는 것보다는 배상 금액이 더 낮을 테니 협상에 응할 것 같았다.
제품을 찾더라도 이제 미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에는 팔지 못하겠지만 중국 내나 다른 후진국에서는 판매할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기발한 생각이네요. 물량이 꽤 되네요.”
(네. 로우스 인터내셔날에서 미국과 캐나다 전역을 대상으로 판매할 생각으로 많이 수입했나 봅니다.)
“우리로서는 다행이네요. 그럼 특허권 위반도 미국 법원에 소송할 건가요?”
(그건 생각 중입니다. 소송하면 시간도 길어지고 비용도 나가기에 일단은 협상부터 할 겁니다. 가압류하고 나면 중국 업체에서 분명 연락이 올 겁니다. 그때 협상해 보고 협상이 불발되면 어쩔 수 없이 법원에 소송할 겁니다.)
“협상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더 좋겠네요.”
(그렇습니다. 우리도 그렇지만 중국 업체도 그럴 겁니다. 아니면 4,000만 달러의 제품을 포기해야 하니까요. 문제는 중국이 우리 예상과는 다르게 포기하는 경우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금액이 커서 포기할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래도 포기한다면 그때는 소송해서 그 제품을 우리 소유로 하고 부속품을 빼서 우리가 사용하면 되거든요.”
(그 부속품을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겁니까?)
“어떤 부속품을 사용했는지 확인해 봐야겠지만 내장 메모리는 확실히 사용할 수 있어요. 그 외 배터리 등 다른 부속품은 확인해 봐야 하고요. 우리가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곳에 판매할 수는 있을 거예요.”
(그럼 우리는 어떤 것이든지 이익이 되는 거네요?)
“그렇죠. 근데 로우스 인터내셔날에서 쉽게 협조해 준다고 하나요?”
(그렇습니다. 로우스 인터내셔날에서 제품 대금을 전액 결제한 것은 아니지만 계약금으로 600만 달러를 지급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돌려주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에 돌려받으려면 우리에게 협조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렇겠네요. 알았어요. 월요일에 꼭 가압류 신청하시고요.”
(알겠습니다. 또 전화 드리겠습니다.)
난 중국의 불법 제품 판매만 막을 생각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배상받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