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오자마자 사람 민망하게 비행기를 높이 태우냐?
근데 학교 교정 이야기는 칭찬이야? 아니면 꽁해서 비꼬는 거야? 헷갈리네.
손정우 회장 개인에 대한 평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업가로서는 투자의 귀재라고 불릴 만큼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집념도 무척 강하고 행동력을 보면 남들이 전혀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저돌적이었다. 그러니까 새벽에 출발하여 바로 한국에 왔겠지.
어떻게 보면 사업가로서 투자자로서 본받을 만한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칭찬하니 민망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저를 너무 좋게만 보시네요. 저는 그 정도 인물은 아니에요. 알고 보면 무척 속물이거든요. 저의 본모습을 알게 되면 실망하실 수 있어요.”
“자네가 속물이면 난 더 속물이야.”
자신을 낮추고 남을 띄워 주는 재주도 뛰어났다. 이런 것도 사업하는데 본받을 만한 점인데 난 성격상 그렇지 못하였다.
왠지 손 회장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것도 손 회장의 능력일 것이다.
“회장님! 지금 미국 나스닥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IT 바람이 서서히 불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나도 그렇게 느껴. 아직 연초이기는 하지만 작년 초중반과는 다르게 투자자나 사람들이 IT 사업에 관한 관심들이 무척 많아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IT 사업하는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겠지. 투자도 활성화되고 IT 사업에 진출하는 벤처 기업들도 많아질 테고. 한마디로 IT 사업의 전성기가 도래할 것 같아.”
현장에서 직접 뛰는 손 회장이라 누구보다 변화되는 사업 환경을 제일 많이 느꼈을 거라 제대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1년 정도 강하게 IT 열풍이 불고 꺼질 거라는 것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내가 힌트를 주면 깨달을까?
“맞습니다. 90년대 후반기부터 인터넷이며 IT 산업들이 부쩍 성장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생기고 점점 사양 산업으로 되어 가는 굴뚝 산업의 대안으로 IT 산업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IT 산업은 아직 증명된 사업이 아니고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산업으로 옥석이 제대로 가려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한번 열풍이 불면 모든 IT 산업이 열풍에 휩싸일 것이고 열풍이 끝나면 잔뜩 낀 버블이 급속히 꺼지면서 한동안 옥석 가리기가 시작될 겁니다. 90년대 초반에 일본 부동산도 한번 겪지 않았습니까?”
“자네는 일본 부동산 버블처럼 IT 버블이 생긴다고 판단하는 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조만간에 시작되고 짧은 시간에 급속히 끼고 짧은 시간에 급속히 빠질 겁니다.”
동의하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일본 부동산하고는 달라. 발생한 원인도 성격도 주변 상황도.”
“다르지만 버블이 낀다는 것은 같을 겁니다. 제가 누군지? 어떤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천재가 괜히 천재겠습니까? 회장님은 투자에 있어서 남다른 감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천재가 판단하는 것을 한번 믿어 보시는 것도 좋을 겁니다. 천재인 저의 식견에 판단에 투자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회장님 인생에 가장 큰 투자일 수도 있을 겁니다.”
손 회장은 앞에 앉아 있는 젊은 친구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현재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면 진민재의 말처럼 IT 산업 열풍이 불리라는 것은 자신도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버블이 끼고 버블이 꺼진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IT 산업은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에 버블이 낀다고 하여도 급속히 빠지기보다는 서서히 빠질 것이고 기간도 금세 끝나 제자리를 잡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왜 저렇게 판단하고 있을까?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무시하고 지나갈 수도 있겠지만 상대는 천재이고 너무 자신 있게 말하는 모습을 보니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깊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었다.
“어떻게 투자하라는 건가?”
“지금도 소프트 뱅코 주가가 많이 올랐지만 봄부터 지금과는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무섭게 주가가 상승할 겁니다. 소프트 뱅코는 일본의 대표적인 IT 기업이 아니잖습니까? 그런 만큼 버블이 어느 기업보다 강하게 낀다는 말이죠. 세상에는 주식이며 부동산이며 영원히 계속 올라가는 것은 없습니다. 올라가면 내려가기도 하고 다시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서서히 오르거나 하락하는 겁니다. 즉 강하게 버블이 낀 만큼 강하게 폭락한다는 말입니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보유한 소프트 뱅코 주식을 대량매도하십시오.”
“뭐라고? 주식을 대량 매도하면 경영권 위협을 받는데 소프트 뱅코를 포기하라는 말인가?”
“최소한의 주식만 남기라는 겁니다. 매도한다고 포기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매도한 후에 내년 4월 이후부터 다시 매도한 만큼 다시 매수하면 됩니다. 제 예상으로는 내년 봄부터 소프트 뱅코 주가가 90%가량 폭락할 겁니다. 그러니 비쌀 때 매도하고 폭락하면 다시 매수하라는 겁니다. 그 차익이 엄청날 겁니다.”
“그 정도로 폭락한다고?”
실제로 거품이 꺼지면 소프트 뱅코 주식이 90% 폭락하게 된다.
“일본 부동산도 그렇게 폭락하지 않았습니까?”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자네 오션도 그렇게 할 건가?”
“아닙니다. 오션은 상장한 주식 수가 적기에 굳이 그렇게 할 필요도 없고 오션은 소프트 뱅코와는 다르게 대폭락하지 않을 것이고 폭락한다고 해도 금세 회복할 겁니다.”
“소프트 뱅코가 오션보다 못하다는 것 같아 좀 자존심 상하는 말이네.”
“오션은 앞으로 꾸준히 성장할 겁니다. 지금은 제 말을 믿기 힘드시겠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소프트 뱅코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심하게 IT 버블이 낀다는 것을 실감하실 겁니다. 그럼 제 말을 허투루 듣지 마시고 잘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알겠네. 자네 말처럼 먼저 IT 버블이 끼는지 확인하고 자네 말이 맞는다면 신중히 고민해 보겠네.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하고 오션팟에 대해 이야기하세.”
“그러지요.”
한동안 오션팟에 대해 이야기하고 갔다.
내 말대로 따를지 모르겠지만 난 할 만큼 했고 투자 감이 높은 손 회장이라면 곧 있을 IT 버블을 직접 보게 된다면 정상적이 아니라고 판단할 것이다.
잘 판단하겠지.
“바빠?”
어느새 다가온 신상철의 말에 생각에 빠져나왔다.
“아니. 왜? 할 말 있어?”
“응.”
“앉아.”
신상철이 내 눈치를 보며 앞에 앉았다.
“말해.”
“서머위즈 워도 런칭했고 지금까지 나온 버그들도 다 잡았으니 저번에 네가 말한 게임을 개발했으면 하는데 네 생각은 어때?”
이 말이 언제 나오나 했었다.
근데 롤은 지금 컴퓨터 사양으로는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운그레이드하면 가능은 하겠지만 진정한 롤을 구현하기에는 부족하였다.
내 생각으로는 좀 더 있다가 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서머위즈 워 버전2는 생각하고 있지 않은 거야?”
“글쎄? 나도 버전2를 개발할까? 다른 것을 개발할까? 고민 많이 했는데 서머위즈 워는 지금 런칭했기에 다른 게임을 개발하고 싶어서 말하는 거야.”
“너 지금 서머위즈 워 인기라는 말 들었잖아. 내 생각에는 인기가 있는 게임을 놔두고 굳이 다른 걸 개발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송재영 팀장과 팀원들은 벌써 라니지2 개발 들어갔다고 해.”
“송 선배가 벌써 라니지2 개발 들어갔다고?”
“그래!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지. 인기가 있으니까 계속 유지하려면 당연하지. 너도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거야. 시간이 지나 서머위즈 워 인기가 떨어질 때 그때 개발해도 늦지 않아. 솔직히 현 컴퓨터 사양으로는 무리라 온전히 구현하기가 힘들어. 너도 완벽하게 개발하기를 원하잖아. 그 게임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잖아. 잠시 뒤로 미루는 것뿐이야.”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그 게임 다른 사람 줄 거는 아니지?”
그게 걱정이 되었나? 그래서 서두르는 거야?
“당연하지. 그건 네 거야. 다른 사람 안 줘. 다른 사람 줄까 봐 그런 거야?”
“아니야. 알았어. 서머위즈 워2부터 개발할게. 근데 난 원래부터 서머위즈 워2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거든. 서머위즈 워도 무사히 개발이 끝날지도 몰랐으니까.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할지 모르겠어. 혹시 도움 줄 만한 아이디어가 있어? 네가 게임 아이디어는 좋은 것 같아서.”
아! 어떻게 개발할지를 몰라서 그랬던 거였구나. 근데 나도 게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성중이 있잖아. 내가 보기에 성중이한테 도움받으면 될 거야. 당장 개발하기보다는 한동안은 성중이하고 상의해서 방향성부터 먼저 잡는 게 좋을 거야.”
“알았어. 그렇게 할게. 너도 아이디어가 있으면 알려주고.”
“알았어.”
* * *
오늘은 미나의 녹음이 있는 날이라 같이 가려고 평소보다 일찍 커피숍에 출근하였다.
“오셨습니까?”
강성중 인사에 화답하였다.
“안녕! 미나는 아직 안 나왔어?”
“나왔습니다. 창고 안에서 연습하고 있습니다.”
연습을 그렇게 많이 하고서 아직도 할 연습이 남았나?
“미나 그만하고 나오라고 하고 커피 부탁해.”
“알겠습니다.”
배상도와 커피를 마시고 있자 미나가 나오면서 인사하였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기분이 어때?”
“너무 설레요.”
“처음이니까 그래. 뭐든지 처음은 다 그런 거지. 자꾸 하다 보면 적응될 거야.”
“또 이런 날이 올까요?”
내가 너 가수 꼭 데뷔시켜 줄게.
미나는 충분히 데뷔할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실력이 있기에 조금만 뒤를 받쳐 주면 알아서 잘할 것이다.
“당연하지. 이제 시작이야.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말씀도 있잖아. 꿈을 크게 가져.”
“저도 제발 그랬으면 좋겠어요.”
“준비 다 되었으면 출발할까?”
“네.”
“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나야! 화이팅!”
강성중에 응원에 미나가 환한 미소로 답하였다.
* * *
녹음실에 도착하여 담당자와 마주하고 있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혹시 시간을 잘못 알고 오신 게 아닙니까? 제가 받은 일정에는 오션이 오후 4시로 되어 있습니다.”
10시 녹음이라고 하여 왔더니만 녹음이 오후 4시에 있다고 하였다. 한두 시간 차이도 아니고 무려 6시간이라니? 말이 안 되었다.
“아니에요. 어제도 확인했는데 분명 오전 10시라고 했어요. 다시 한번 확인해 보세요. 뭔가 착오가 있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 * *
녹음실 담당자인 김순철은 일정표를 들고 부장에게 갔다.
“부장님! 오늘 일정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부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맞아.”
어제만 해도 분명 오전 10시가 맞았고 반주도 자신이 직접 세팅까지 했었다. 근데 오늘 받은 일정표에는 4시로 되어 있고 오전 일정은 전부 비어 있었다.
“네? 어제 일정표에서는 오션이 오전 10시로 되어 있었습니다.”
“나도 알아. 일정이 갑자기 바뀌었어.”
“오전 일정은 아무것도 없는데요.”
“곧 올 거야.”
“누가 말입니까?”
“홍이나. 어제저녁에 급하게 녹음할 게 있다고 사장님한테 연락이 왔나 봐.”
“홍이나는 왜 자꾸 그러는 겁니까? 급하긴 뭐가 급하다는 겁니까?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인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계속 받아주니 그러는 겁니다.”
“내가 힘이 있어? 사장님 지시야.”
“그럼 오션은 어떻게 합니까? 지금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정이 바뀌었으면 미리 연락이라고 해 주었다면 일찍 오지 않았을 겁니다.”
“나도 몰라. 적당히 잘 꾸며 말해.”
“뭐라고 합니까? 새치기당했다고 말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기계에 문제가 있어 오후에나 가능하다고 해. 그럼 별말이 없을 거야.”
“알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알았어.”
* * *
담당자가 확인하러 나가자 핸드폰을 들었다.
(황정화입니다.)
“안녕하세요? 진민재예요.”
(고문님! 안녕하십니까? 녹음실에는 도착하신 겁니까?)
“네. 근데 녹음이 오후 4시라고 하네요.”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가 어제도 확인했는데 오전 10시라고 했습니다. 10시 맞습니다.)
“그러니까요. 뭔가 착오가 있나 보네요. 담당자가 확인하러 갔으니 무슨 말이 있겠죠.”
(제가 지금 계약서 확인했는데 10시가 맞습니다.)
녹음실 계약을 한 당사자인 황정화 사장이 10시라고 하고 계약서에도 10시라고 되어 있으니 10시가 맞겠지.
“알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