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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의 홀로서기-98화 (98/261)

98화

강남에 있는 동신 빌딩 앞에 고급 승용차가 멈추자 서 있던 여러 명의 남자 중의 40대 중반의 남자가 재빨리 다가가 차 뒷문을 열었다.

그 안에서 짧은 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내리자 모두가 구십 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였다.

차에서 내린 황규희는 인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도도하게 현관 안으로 들어가자 그 뒤를 남자들이 따랐다.

DS(동신) 자산운용사 사장실에 황규희가 다리를 꼬고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 옆에는 차 문을 열어 주었던 신동환이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아 있었다.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황규희의 작은 입이 열렸다.

“알아보라는 것은 알아봤어요?”

“물론입니다.”

대답하고서는 테이블에 있던 서류철을 바로 건넸다.

“여기 조사한 자료입니다.”

서류철을 받아 안에 있는 자료를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엉망이네요.”

“네. 그렇습니다. 이대로 놔두면 다음 달인 9월에는 부도가 날 겁니다.”

“9월에 돌아오는 어음이 얼마인가요?”

“23억 원입니다. 10월에는 16억 원이고, 12월에는 10억 원입니다.”

“자재 업체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원단 업체와 부자재 업체입니다.”

“그쪽 업체들도 진성 어페럴이 부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겠죠?”

“물론입니다. 지금 그 업체들도 비상 상황입니다. 진성 어페럴이 부도가 나면 그 업체들도 연쇄 부도가 발생할 겁니다.”

“그렇군요.”

황규희가 무심한 얼굴로 서류철을 내려놓고 찻잔을 들어 마시자 신동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가씨! 정말 진성 어페럴을 인수하실 생각입니까?”

“네.”

“인수해도 이익 볼 것이 없습니다.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거야 모르는 일이죠. 진성 어페럴 품질은 좋잖아요. 저도 가끔 사서 입었거든요. 현재 내수 경기가 죽었기에 국내보다는 수출로 돌파구를 찾아야 해요. 환율 차이로 인해 가격 경쟁력도 있고 품질도 좋기에 기사회생할 수 있어요. 또 인수하자마자 대폭적인 구조조정도 해야 하겠지요. 대수술해야만 살아날 수가 있어요.”

“하지만 모험이잖습니까? 수출이 잘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회장님도 허락하신 겁니까?”

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할아버지 옆에서 일을 배우고 있고 앞으로 동신 금융의 주인이 될 사람이지만 직원들은 자신을 못 미덥게 생각하고 할아버지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이번 건을 멋지게 성공하여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고 싶었다.

“해 보지도 않고 미리 단정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진성 어페럴에 인수 제안서 보내세요.”

“얼마에 인수하실 겁니까?”

“부채가 많으니 최대한 적은 금액으로 인수해야죠.”

“알겠습니다. 인수하여 계속 가지고 계실 겁니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계속 소유할 생각은 없어요. 인수한 후에 정상화하여 더 비싼 가격으로 매각할 계획이에요. 일한 대가는 넉넉히 받아야죠.”

“알겠습니다.”

“그리고 동신 금융에서 인수한다는 것은 비밀로 해야 해요.”

“물론입니다. DS 자산운용사에서 사모 펀드를 조성하여 인수하는 것으로 할 겁니다. 투자자가 누군지는 모를 겁니다.”

“좋아요. 또 진성 어페럴에서 어음 받은 업체들 접촉해서 대폭 할인해서 어음들 우리가 인수하시고요. 어차피 우리가 진성 어페럴을 인수하면 어음을 우리가 결제해야 하니까요. 부도나면 휴짓조각이 된다는 것을 잘 알 테니 업체들은 헐값에라도 넘길 거예요. 그럼 우리는 여기서도 이중으로 이익을 볼 수가 있어요. 인수는 소문나지 않게 비밀리에 진행하시고요”

“알겠습니다.”

차를 마시려다가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

“진성 리조트 임시 주총 건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그건 내일 임시 주총 개최 건의서를 보낼 예정입니다.”

마저 차를 마셨다.

* * *

진성 어페럴 김성한 사장은 결재 서류들을 보면 인상을 심하게 구겼다.

돈 들어올 곳은 없는데 돈 나갈 곳은 왜 이리도 많은지? 이번 달 직원 월급도 못 주게 생겼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지 머리가 아팠다.

그룹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나? 그룹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라 안 좋은 소리만 듣고 도움받기는 힘들 것 같았다.

짜증이 나서 보던 결재 서류를 옆으로 밀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비서실장이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사장님!”

정신도 사나운데 비서실장까지 이러니 짜증이 더 몰려왔다. 신경질적으로 말이 나왔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사장님! 조금 전에 진성 어페럴 인수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뭐? 정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어디서?”

“DS 자산운용사에서 조성한 사모 펀드입니다.”

하필 사모 펀드라니? 미간을 찌푸렸다.

자금을 빵빵하게 지원해 준다면 몰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회사가 정상적으로 회생하기는 불가능하였다.

그렇기에 예전부터 그룹에서 진성 어페럴을 매각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며 여러 기업에 매각 의향을 물었지만 전부 고개를 저었다.

회사가 매각되면 자신은 자리를 물러나야 하지만 그래도 직원들은 남아 있기에 매각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사모 펀드라면 인정사정이 없기에 많은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야 할지 모른다. 매각하더라도 그것만은 막고 싶었는데.

그래도 부도가 나서 회사가 파산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인수 제안서 있어?”

“네. 여기 있습니다.”

제안서를 받아 보았다.

정확한 인수 금액은 없지만, 하나같이 진성 어페럴에는 불리한 조건들이었다. 당연한 거겠지.

자기들은 손해를 보지 않고 최대한 이익을 보려고 할 테니까.

이건 자기가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그룹에 들어갈게.”

“알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 * *

진성 어페럴 김성한 사장은 바로 그룹 진동훈 회장에게 달려갔다.

자신이 회장실 안으로 들어가자 회장이 도움을 요청하러 왔다고 생각하는지 자신을 보자마자 인상부터 썼다.

“무슨 일이야?”

“회장님! DS 자산운용사에서 조성한 사모 펀드에서 인수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마치 하늘에서 동아줄이라도 내려온 것처럼 놀라며 반가워하는 얼굴이었다.

“뭐? 정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제안서를 받자마자 온 겁니다.”

말을 마치고서는 제안서를 건넸다.

“제안서입니다.”

제안서를 받아 보고서는 만족한 미소를 짓는 회장이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더니 이런 제안이 오다니 아직은 하늘이 진성을 버리지 않았나 봐.”

“하지만 아직 인수 금액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요구한 조건들이 우리에게 불리합니다.”

“불리하면 거절이라도 하게?”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협상 과정에서 최대한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그러다가 인수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건데?”

“이러다가 헐값에 매각할 수도 있습니다.”

“나도 알아. 하지만 부도나서 파산하면 아무것도 건질 수 없어. 조금이라도 건지는 것이 좋지 않겠어?”

“그렇기는 하지만 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그럴 시간과 여유가 있나? 배에 물이 차서 언제 침몰하나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가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해? 이번 매각마저 놓치면 다시 기회가 없어. 당장 연락해서 협상하자고 하고 될 수 있으면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다 하겠다고 해.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지만, 상황이 이런 걸 어떡해? 위기를 벗어나야 기회가 생기는 법이야. 나중에 위기에서 벗어나면 다시 찾아올 수 있어.”

머리로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하지만, 회장님 말처럼 자신들은 여유가 없었다. 온 기회마저 놓칠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그래. 협상은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지어. 그럴수록 우리에게 더 유리하니까.”

“알겠습니다.”

“가 봐.”

“네.”

김성한 사장이 나가자 진동훈 회장은 앓던 이 하나가 빠진 것처럼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 * *

진성 리조트 홍창호 사장은 급히 들어오는 비서실장을 보며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장님!”

“무슨 일인데 그래?”

“방금 대주주로부터 임시 주주 총회를 소집하라는 요구가 들어왔습니다.”

“어느 주주가?”

“황규천 주주입니다.”

“뭐? 진짜야?”

“네.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황규천 대주주는 진성 리조트 지분이 30%나 있지만, 지금까지 정기 주총이나 임시 주총에 거의 참석하지도 않았고 자기 의견을 한 번도 낸 적이 없는 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임시 주주 총회를 요구하다니?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 이상하였다.

“임시 주총 의제가 뭔데?”

“진성 그룹에서 진성 리조트 계열사 분리입니다.”

“뭐?”

진성 리조트 계열사 분리는 얼마 전까지 자신도 원하던 거라 반가워해야 하지만 도련님을 만나고부터는 그 생각을 접었다.

“갑자기 왜?”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임시 주총이 열리면 무슨 말이 있을 겁니다.”

“의제가 그것뿐이야?”

“네. 그렇습니다.”

이것도 이상하였다.

계열사를 독립시키겠다는 것은 진성 리조트를 가지겠다는 말인데. 그럴 능력도 충분히 있는 분이었다.

그러면 대표부터 자기 사람으로 바꾸는 것이 정상인데 자신을 그대로 놔둔다고? 황규천 주주가 자신을 잘 본 것인가?

그래도 자신은 진성 그룹 가의 사람이었다.

“임시 주총 당일에 대표 해임 건을 건의하려나?”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에 의제에 포함되지 않은 것을 보면 건의하지는 않을 겁니다.”

“정말 그럴까?”

“사장님이 지금까지 진성 리조트를 잘 이끌어왔고 독립하면 오히려 사장님이 더 필요할 겁니다.

대신 이사들을 자기 사람으로 앉힐 가능성이 큽니다.”

“가결될까?”

“제 생각으로는 가결될 겁니다. 지금 진성 그룹이 매우 위태하다는 소문이 나서 주주들 대부분은 알고 있을 겁니다. 진성 그룹에서 나름대로 준비를 하겠지만 주주들은 진성 그룹과 같이 침몰하기보다는 독립해 각자도생하기를 바랄 겁니다. 진성 리조트는 독립하면 충분히 자립할 수 있습니다.”

자신도 같은 생각이지만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도련님이 진성을 다시 찾는데 이게 더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이 안 되었다.

“우리가 대주주의 임시 주총 요구를 거부할 수는 없으니 일정을 잡아. 그리고 황규천 어르신께 연락해 속뜻이 뭔지도 알아보고. 또 그룹에도 알려 주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어제 진성 어페럴 인수 제안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이게 뭔가 싶었다. 자신이 바라던 소식이 한꺼번에 두 개나 들어왔지만 어떻게 된 건지 영문을 모르겠다.

진성 어페럴 인수 제안이 들어왔다면 자신이 제일 기뻐해야 하였다. 매각되면 더는 진성 어페럴에 지원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이것도 도련님을 만나고부터는 법정 관리로 가는 것이 나중을 위해 더 좋은데.

“어디서 인수하겠다고 한 거야?”

“DS 자산운용사에서 조성한 사모 펀드라고 합니다. 근데 인수 조건이 꽤 불리하다고 합니다. 어쩌면 헐값에 넘길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룹에서는 어떻게 하기로 했대?”

“어제 협상하자고 연락했다고 합니다.

조만간에 만나기로 했나 봅니다. 급하게 진행하는 것을 보면 당장 급한 불을 끄겠다는 것 같습니다.”

“알았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자세히 알아보고.”

“알겠습니다.”

비서실장이 나가자 도련님에게 연락하기 위해 전화기를 들었다가 아무래도 직접 가서 말씀드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다시 내려놓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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