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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의 홀로서기-92화 (92/261)

92화

오션 자본으로 진성을 인수할 생각은 없었다. 2000년도에 노카아 주식을 매도하여 내 돈으로 인수할 생각이었다.

노카아를 어떻게 할까? 그동안 많이 고민했었다.

내가 노카아 대주주이기에 스마트 폰을 노카아에서 생산하여 노카아의 영광을 계속 이어 갈 생각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진성 그룹 인수 자금도 필요하고 한국에서 핸드폰 업체를 인수할 곳이 현도 전자를 비롯해 몇 개 기업이 있기에 그 기업들을 인수하여 독자적으로 오션을 키워나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하였다.

내가 스마트폰을 출시하고 OS를 공개하여 특허료를 받을 것이기에 요로마 울리라에게 강하게 권유는 하겠지만 노카아에서 스마트폰을 생산할지 말지 결정은 노카아에게 맡길 것이다.

“자본은 충분하니 자본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다만 지금은 힘들고 2년 후가 될 거예요.”

“그리 말씀하시니 믿겠습니다. 저는 왜 보려고 하신 겁니까?”

“홍 사장님의 도움이 필요해서요. 홍 사장님도 아시겠지만 지금 진성 그룹 내에는 믿을 만한 분들이 거의 없어요.”

홍 사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하다가 진성이 이렇게 되었는지 참담합니다. 진규촌 회장님이 계실 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입니다.

죄송합니다.”

“그게 홍 사장님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홍 사장님과 같이 진성을 위하는 분들이 더 계실까요?”

“대부분 떨려 나갔지만 몇 분은 남아 계십니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분들과 만났으면 하는데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제가 연락하여 자리를 한번 마련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현직에 있는 분들이 아니어도 능력이 있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분들도 만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내가 그 생각을 왜 못했지? 난 현직에 있는 사람만 생각했었다.

진성을 인수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나중에 진성을 인수해도 그분들의 도움이 필요하였다.

“그러네요. 그분들도 만나 볼게요. 그전에 명단부터 작성해서 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제가 진짜 믿을 수 있고 능력 있는 분들로만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부탁해요.”

“저도 진성이 예전의 진성의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합니다. 지금 진성은 복마전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비밀리에 진행했으면 해요. 혹시나 작은아버지나 작은엄마가 알게 되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거든요.”

“저도 잘 압니다. 근데 진성 건설의 윤동수 전무는 믿을 만합니까? 제가 알기로는 믿을 만한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맞아요. 하지만 제가 윤동수 전무의 목줄을 잡고 있거든요. 살기 위해서는 비밀을 지킬 거예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진성 리조트는 상황이 어떤가요? 요즘 IMF라 다들 어려워 놀러 가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을 텐데요.”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

그나마 IMF 이전에 쌓아 놓은 현금이 좀 있어서 버티고는 있지만, 자꾸 그룹에서 과한 요구를 해 와 난감한 상황입니다.”

이래서 진성 리조트가 계열사 중에 가장 마지막까지 버틴 거였구나. 무리한 요구가 없었더라면 진성 리조트는 살아남았을 텐데.

하나라도 살리지.

“요구를 거절하기도 힘들겠네요.”

“그렇기는 하지만 이제는 도련님도 만났고 뜻도 아니 그룹에 끌려다니지 않고 따로 갈 생각입니다.”

“그러다가 해임당할 수도 있지 않아요?”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겁니다.”

“왜요?”

“진성 리조트 대주주 한 분이 계시는데 그분 지분이 30%입니다. 그 우호지분까지 하면 50%가 넘을 겁니다. 그렇기에 그룹에서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얼마 전에는 대주주를 설득하여 진성에서 독립할 생각까지도 했었습니다.”

개인이 30% 지분을 가지고 있다면 대단한 건데.

“그분이 홍 사장님 편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분도 지금 진성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 겁니다. 그렇기에 저를 내치고 다른 자를 사장 자리에 앉히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할 겁니다. 그분이 진규촌 회장님과 같은 동향 출신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친구처럼 오랜 시간 지내 온 사이이며 명동에서 알아주는 큰 손입니다.

그래서인지 진성 리조트 창립할 때부터 출자하였고 지금까지 조금씩 주식을 매집하여 30%나 된 겁니다. 그러니 진동훈 회장도 그분을 무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채업자라는 말이네. 할아버지가 황해도 출신이니 그 사람도 이북 출신이겠네.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나에게 준 전화번호만 있는 황금 명함의 주인이 그 사람이 아닐까?

황규천! 할아버지 이름과 비슷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친구라고 했으니까 맞을 것 같은데. 이 사람도 한번 만나야 하나?

할아버지가 한 번은 도와줄 테니 도움이 필요하다면 찾아가라고 했는데 지금 도움받을 일이 없으니까 나중에 갈까?

근데 할아버지보다 나이가 어리다고는 하지만 연세가 있어 돌아가시면 도움을 못 받는 거잖아.

그 전에 도움받아야 하나? 사람 앞일은 모르니까 도움받지 않더라도 한번 찾아가서 인사는 해도 되지 않을까?

어떤 분인지 알아둬서 나쁠 것은 없을 것 같았다.

“그분 성함이 황규천인가요?”

“네. 맞습니다. 그 어르신을 아시는 겁니까?”

“아는 것은 아니고 할아버지가 예전에 한번 말씀하신 적이 있어서 기억하는 거예요. 그분은 어떤 분인가요?”

“저도 그 어르신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10년 전 주주총회에서 딱 한 번 본 것이 전부이며 기업만을 상대하는 큰손이라는 것밖에 모릅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현금 동원 능력이 대한민국에서 5번째 정도 된다고 합니다.”

사채업자치고 꽤 크게 하나 보네. 이러면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그렇군요.”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홍창호 사장을 만난 것이 매우 잘한 것 같았다. 덕분에 도움받을 분들도 생기게 되었다.

차에 탄 후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보았다.

그동안 고이 간직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전화하게 되었네.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몇 번 가다가 끊기고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진민재라고 하는데 황금 명함을 보고 전화 드리는 겁니다. 황규천 어르신과 통화하고 싶습니다.”

(지금 잠깐 나가셨는데 연락처 알려주시면 전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제 핸드폰 번호가 011-XXX… 이고 저는 진성 진규촌 회장님 손자입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시동 걸고 출발하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진민재입니다.”

(방금 통화한 사람인데요. 잠시만요.)

“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진규촌 회장님 손자인 진민재입니다.”

(자네가 진민재라고?)

“네. 맞습니다.”

(언제 전화 오나 기다렸는데 이제야 오네. 내일 찾아오게. 주소는 내 비서가 알려줄 거야.)

자기 할 말만 하고 비서에게 전화기를 넘겼다. 뭐야? 난 가겠다고 대답하지 않았는데.

(여보세요.)

“네.”

(주소 알려 드릴게요. 적으실 수 있나요?)

“외우면 됩니다.”

“여기가 성북동… 이에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었다.

회사 사무실이 아니라 집 주소 같은데.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내일 가야 하나?

* * *

안기부 최문기 국장은 서류를 보면서 자신에게 왜 이 지시가 내려왔는지 이해가 갔고 또한 놀라고 있었다.

진 박사님의 연구 자료가 미국에 넘어간 것이 아니었단 말이야? 그 당시 이 건을 현장에서 담당한 것이 자신이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흔적도 없어서 미국에서 빼간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이 아니라고? 그렇다면 그때 더 조사했다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건은 승승장구하던 자신의 경력에 오점을 커다랗게 남겼고 그동안 가슴속 깊이 묻어 두고 두고두고 아쉬워했던 사건이었다.

이제 다시 명예 회복할 기회가 온 건가? 한국에 있는 이상 반드시 찾아 명예를 다시 회복할 것이다.

굳게 다짐하며 인터폰을 눌렀다.

(네. 국장님!)

“손석진 팀장 당장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잠시 후 노크 소리가 들리고 손석진 팀장이 들어왔다.

손석진 팀장은 자신의 휘하에 있는 자들 중의 가장 능력이 뛰어났기에 보기에도 믿음직스러웠다.

“부르셨습니까?”

“앉아.”

“네.”

손석진이 소파에 앉자 자신도 일어나 소파로 가서 앉았다.

“새로운 오더가 내려왔어.”

“어떤 겁니까?”

들고 왔던 서류를 건넸다.

“직접 보게.”

“네.”

서류를 받아 보는 손 팀장의 얼굴이 미세하게 변하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손 팀장인데 보기에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다 보고서는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국장님! 이게 전부 사실입니까?”

“그래. 내가 필드에 있을 때 담당하던 건이었어.”

“놀랐습니다. 이런 천재 과학자가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85년도에 수소 내연 자동차를 개발했다뇨?”

“하지만 연구 자료가 없어졌으니 닭 쫓던 개 신세였지. 그때 내가 국운이 달린 문제라 그걸 찾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말을 하면서도 아쉬운 감정이 가득하였다.

“미국에서 가져간 것이 확실히 아니라는 겁니까?”

“확실해. 미국이 가져갔다면 그 자료를 찾으려고 진 박사 아들에게 접근하지는 않겠지. 지금까지 찾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고 할 수 있어.”

“그게 어디 있을까요?”

“모르지. 이제 우리가 찾아야지. 그것만 찾으면 대한민국의 위치가 달라질 수 있어.”

“국장님! 보기에는 냄새가 지독히 나는데 진 박사님의 교통사고는 수상한 점은 없는 겁니까?”

“보기에는 그럴 수도 있는데 조사한 바로는 전혀 없어.”

“혹시 미국에서 한 것이 아닙니까?”

“아니야. 사고 이후 미국도 꽤 당황하는 듯했어. 미국이 진 박사에게 무척 공을 들였거든. 지독히 운이 나빴던 사고야. 자네가 팀원들을 꾸려 이 건을 맡아야겠어.”

“알겠습니다. 기존에 조사했던 자료는 어디 있는 겁니까?”

“기밀실에 보관되어 있어. 내가 찾아다 줄게.”

“진 박사님 아들을 만나도 되는 겁니까? 아들에게 단서가 있을지 모릅니다.”

“만나도 상관은 없지만, 단서는 없을 거야. 본인도 답답해하고 있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인가 봅니다. 아들은 오션을 개발하여 설립까지 하고요.”

“부전자전이니까.”

* * *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오후 늦게 황규천 어르신을 보러 가기 위해 성북동에 왔다.

차에서 내려 주소를 확인하고 맞는 것을 확인하고 담 쪽에 붙여 주차하고 내렸다.

무슨 집 담이 이리도 높냐? 지킬 게 많은가? 도둑도 사다리가 없으면 올라가기 힘들겠네. 대문으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저는 진민재라고 합니다.”

문이 열려 안으로 들어갔다.

정원도 꽤 넓었고 잔디밭에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보기 좋게 어우러져 있었다. 관리하는 것만 해도 힘들겠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아줌마가 맞아주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회장님은 잠시 후에 나오실 거예요. 소파에 앉아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네.”

“차는 뭐로 드릴까요?”

“얼음물 있으면 주세요.”

“네.”

소파에 앉아 거실을 둘러보았다.

미술에 관심이 많은지 벽에 커다란 그림들이 많이 걸려 있었다.

난 그림에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지만 보기에는 비싼 것 같은데 거실에 걸 정도면 비싸지 않거나 가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줌마가 준 얼음물을 마시며 그림 감상을 하고 있는데 황규천으로 보이는 노인과 20대 초중반의 예쁜 여성이 나왔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진민재입니다.”

내 인사에 대꾸도 하지 않고 소파에 앉는 황규천이었다. 머쓱해서 나도 따라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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