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황정화 사장은 속으로 놀랐다.
진민재 고문은 디자인이며 하드 디스크 사용을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에 맞게 진행까지 하여 준비까지 마치다니 그동안 자신은 너무 태만했다는 생각이 들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이러면서 하늘이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하늘만 원망했었는데, 성공하는 자는 역시나 남들과는 달랐다.
소비자와 시장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제대로 꿰뚫고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 조건을 충족시키고 추진력 또한 빨랐다.
이러니 실패하려고 해도 실패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나이는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리지만 배울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은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에 다시 자신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자신이 뭘 하겠다고 했는지 한심하였고 매각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진 고문님을 따라가기에는 아직도 먼 것 같습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나한테 뭘 배우겠다고?
“오션팟이 개발되면 수출 물량이 부족할 테니 생산 시설도 미리 확충해야 할 겁니다.”
“그럼 공장을 더 확충해야 하는데 현재 공장은 작아 확충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미국만 해도 물량이 엄청날 텐데 현재 공장으로는 감당하기 힘들다.
“새로 인수할 공장을 찾아보세요. 미래를 생각하면 큰 공장이 좋을 거예요.”
“매입 비용이 많이 들어갈 겁니다.”
“지금 IMF로 인해 망하는 공장들이 많아 매물이 많을 거예요. 생각보다 저렴하게 구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기는 합니다. 알겠습니다.”
한동안 사업 이야기를 하였다.
“대충 이야기는 끝난 것 같은데요.”
“필요하면 제가 연락하겠습니다.”
“그러세요. 그리고 MP3 플레이어 샘플 하나만 주세요.”
“알겠습니다. 나가실 때 드리겠습니다.”
“그럼 전 가 볼게요.”
진민재 고문이 가자 심용철은 얼른 사장실로 왔다.
“형 계약은 한 거야?”
“응. 했어.”
“난 오래 걸리기에 뭔가 잘못되었는지 알고 걱정했잖아. 다행이네.”
“사업 이야기하느라 그랬어. 듣는데 역시 진민재더라.”
“뭐라고 했는데?”
“그게 뭐냐면…….”
전부 이야기하였다.
“대단하지 않아?”
“그러네. 어떻게 하드 디스크를 사용할 생각을 했지? 발상의 전환인가? 거기다 MP3 플레이어 기능뿐만 아니라 휴대용 저장 장치 기능까지 한다니 이걸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그러니까. 역시 준비된 자는 성공하는 게 맞나 봐. 하나를 갖고 두 가지 기능을 사용할 수 있으니 나 같아도 당장 구매할 거야. 진짜 매각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가 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러네, 그럼 나는 오션팟 개발에만 전념하면 되는 거야?”
“당연하지. 빨리 개발해야 전 세계에 수출하겠지.”
“알았어. 내가 최대한 빨리 개발할게. 근데 인수 자금은 언제 준다고 해?”
“3~4일 걸린대. 늦어도 일주일 안에는 들어올 거야.”
“빨리 받았으면 좋겠다.”
“빨리 받으면 뭐하게?”
“우리 집 아직도 전세잖아. 부모님 여태 고생하며 자식 키워 주셨는데 이제 효도해야지. 부모님 집 사드리고 나도 집 하나 사려고.”
“하긴 요즘 집값이 많이 내렸더라. 이럴 때 사야지.”
“맞아. 이래서 돈이 돈을 버는 건가 봐.”
* * *
디지털 카스트를 나와 아니지! 이제는 디지털 카스트가 아니라 오션팟이지. 오션팟을 나와 네이브 사무실로 향하였다.
디자인하려면 손으로 그리기도 하지만 제대로 된 디자인 작업을 하려면 컴퓨터와 장비가 있어야 하기에 장비가 전부 구비되어 있는 네이브에서 작업하기 위해서였다.
이주희 대표는 아침부터 일이 있어 회사에 없다고 하여 바로 디자인실로 들어갔다.
강민희가 일하다가 내가 들어온 것을 보고 일어났다.
“고문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이 대표한테 이야기 들었죠?”
“네. 들었어요.”
“일주일만 신세 질게요.”
“아니에요. 제 것도 아니고 회사 건데 얼마든지 사용하세요. 이분이세요?”
“네. 일주일 정도 같이 지낼 텐데 인사하세요.”
* * *
임주원은 화장실에 갔다가 들어오다가 진민재 고문과 함께 디자인실로 들어가는 여성을 보고 그대로 멈췄다.
외국인인데 누구지? 세상에 저런 예쁜 여자가 있다니? 수많은 외화를 보았지만, 저 여성보다 예쁜 외국 배우는 보지 못하였다.
급하게 개발실로 뛰어 들어갔다.
“팀장님!”
송재영은 급하게 뛰어 들어오는 임주원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웬 호들갑이야? 화장실에서 뱀이라도 나왔어?”
“뱀이 아니라 엘프가 나왔어요.”
임주원 말에 이상현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주원이 화장실에서 꿈꾸다 왔나 봐요.”
“진짜라니까.”
송재영이 혀를 찼다.
“너 판타지 소설 많이 봐서 그런 거야? 게임 개발하느라 스트레스받아서 그런 거야? 헛소리 그만하고 나가서 잠깐 산책이나 하고 와.”
“왜 내 말을 믿지 않는 거예요? 방금 진민재 고문하고 엘프가 디자인실에 들어갔다니까요. 제 말을 못 믿겠으면 팀장님이 디자인실에 가 보세요.”
“진민재 고문이 왔다고?”
“네.”
“인사하러 가 볼까?”
“빨리 가요. 저도 다시 한번 엘프 보게요.”
송재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일어났다.
“가 보자.”
“아이노! 여기 화면을 좀 더 늘렸으면 하는데.”
“가로? 세로?”
“둘 다 조금씩만.”
“너무 늘리면 전체 균형이 맞지 않아 보기가 좋지 않아. 최소한만 늘려 볼게.”
“알았어.”
아이노가 오션팟 화면을 조금 늘렸다.
“이게 최대야. 근데 난 늘리기 전이 더 좋은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좌우 상하 대칭이 뭔가 안 맞는 것 같기는 하였다.
“그럼 다시 원상 복귀해.”
“진은 옆에서 가만히 있어. 내가 디자인 다 하고 나면 그때 보든가 해. 옆에 붙어 자꾸 뭐라고 하면 내가 제대로 디자인할 수 없잖아.
내가 어련히 할까?”
“알았어.”
의자를 움직여 조금 떨어지는데 노크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며 송재영과 그 팀원들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고문님!”
“안녕하세요? 여긴 어떻게 왔어요?”
“고문님이 오셨다고 해서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개발은 잘되고 있나요?”
“네. 그렇습니다.”
말은 하면서도 3명 다 시선은 아이노의 뒷모습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이노가 들어오는 것을 봤나 보네.
그래서 온 거고. 인사는 핑계고. 핀란드에서는 덜했는데 한국에서는 아이노랑 같이 다니기 너무 피곤하네.
* * *
일을 끝내고 집으로 저녁까지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노가 씻으러 간 사이에 난 핸드폰을 들었다.
(에릭 슈밋입니다.)
“안녕하세요? 진민재예요.”
(안녕하십니까? 고문님!)
“오늘 인수 계약했어요.”
(축하드립니다. 특허권까지 다 인수한 겁니까?)
“물론이죠. 이제 MP3 원천 기술은 100% 오션의 소유예요.”
(언제쯤 MP3 플레이어를 볼 수 있는 겁니까?)
“이르면 내년 초에 시제품을 볼 수 있을 거예요.”
(빨리 봤으면 합니다.)
“기다리시면 보게 될 거예요. 내년 봄에는 출시가 가능할 것 같으니 미리 준비하시고요.”
(알겠습니다. 이상 없이 미리 준비해 놓겠습니다.)
“인수 대금도 빨리 보내주시고요. 그리고 저번에 말한 네이브의 게임도 가을에는 출시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것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법인을 새로 설립해야 하는 겁니까?)
“글쎄요? 형식은 네이브에서 개발한 게임을 오션과 협력하여 런칭하는 건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제 생각에는 게임을 런칭하는 건데 새로 법인을 설립하면 가성비 면에서 좋지 않을 겁니다. 오션 내에 게임 사업부를 만들어 런칭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에릭은 이 게임이 얼마나 인기를 끌지 모르기에 하는 말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까지 동시에 런칭할 거라 생각보다 규모가 커질 텐데.
에밀 말처럼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지 않고 사업부로 하면 그만큼 오션 규모가 커지는 장점이 있기는 하다.
일단 사업부로 시작하고 나중에 생각하자.
“일단은 그렇게 시작하고 나중에 상황 보죠.”
(알겠습니다.)
* * *
아이노와 함께한 10일이 금세 지나갔다.
짧은 10일 안에 디자인하기에는 벅찬 일정이었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디자인이었고 단순한 디자인이라 오션팟 디자인이 마음에 들게 나왔다.
나뿐만 아니라 황정화 사장도 심용철도 꽤 마음에 들어 했고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하였다.
아이노가 가기 싫은지 걸어가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게 핀란드에서도 예쁘다는 말을 가끔 듣지만, 한국에서는 보는 남성마다 놀라며 자신을 엘프처럼 떠받들었으니 기분이 매우 좋았을 것이다.
거기다 음식들도 하나 같이 전부 맛있다고 하고 알바생들과 같이 노래방도 다니고 술도 마시며 밤늦게까지 즐기는 그런 추억은 한국에서만 가능하니 한국을 떠나기 싫었을 것이다.
다만 일정이 짧아 관광지 같은 곳을 다니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경복궁과 롯데 월드를 간 것이 전부였다.
떠나기 전날 떠나기 싫다고 할 정도였으니 한국이 꽤 마음에 들었나 보다. 다음에 또 오고 싶다고 하였다.
뒤를 돌아 날 보는 아이노에게 손을 들어 흔들었다.
아쉬운 표정을 한 채 손을 흔들며 안으로 들어가자 아이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원래 아이노가 없었던 것처럼 신기루처럼 눈앞에서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잘 가! 아이노. 다음에 또 보자.
뒤를 돌아 주차장으로 향하였다.
* * *
커피숍 안으로 들어가자 강성중이 물었다.
“사장님! 아이노 누나 잘 갔습니까?”
“그래.”
“언제 또 옵니까?”
“모르지.”
“벌써 보고 싶습니다.”
“사진이나 봐.”
기념으로 아이노와 같이 사진을 찍었는데 그때 둘이 찍은 사진을 지갑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강성중이었다.
갑자기 강성중이 신상철에게 소리쳤다.
“상철이 형! 게임 속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 아이노 누나 얼굴로 하자. 지금 생각해 보니 이미지가 딱 맞는 것 같아요.”
신상철도 마음에 드는 표정이었다.
“그럴까? 근데 다시 디자인해야 하잖아.”
“디자인이야 언제든지 바뀌는 거죠.”
날 바라보았다.
“사장님! 강민희 디자이너한테 연락해 오라고 해 주세요. 아이노 누나 얼굴로 캐릭터 변경하게요.”
내가 생각해도 꽤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근데 아이노 허락도 없이 해도 되나?
“아이노한테 먼저 허락받아야지. 도착하면 연락한다고 했으니 물어볼게.”
“꼭 물어보세요.”
“알았어.”
* * *
소 떼를 몰고 방북하고 돌아온 장 회장은 다음 날 방북 보고하기 위해 청와대에 들어왔다.
대기실에서 대기하는 동안 생각을 정리하였다.
간 일은 잘되었다. 북한에서도 자신히 성대히 환영해 주었고 자신이 생각한 금강산 관광 개발도 성공적으로 합의를 하였다.
다만 육로 관광과 숙소 문제, 군부대 이전과 관광지 구역 등 여러 가지 더 합의할 것이 있어서 다시 방북하기로 하였다.
원래는 이런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직접 금강산에 가서 확인해 보니 진민재가 조언해 준 것들이 전부 맞았다.
자신은 처음에 북한에 관광객이 묵을 숙소가 없기에 호텔을 건설해도 3년 정도 시간이 필요하기에 그동안 크루즈를 구매해 이동하고 그곳에서 숙박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진민재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관광객의 인원이 한정되고 비용이 더 증가하여 수익 면에서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북한에 가서 금강산 주변이 아니더라도 관광객이 임시로 숙박할 만한 곳을 알아봐 달라고 요구하였다.
또 북한에서 지정한 관광 구역 근처에 정말 군부대가 있어서 향후 관광객들과 마찰이 생길 수 있고 북한에서도 관광객들이 군사 구역 근처에 있다면 불안할 테니 서로를 위해 군사 기지를 다른 곳으로 이전을 검토하거나 아니면 관광 구역을 새로 정하자고 요구했었다.
그러면서 관광 지역을 1차로 외금강뿐만 아니라 내금강, 신금강까지 확대해야 진정한 금강산 관광이 될 것이라며 확대 요구도 하였다.
그렇게 되어야만 앞으로 진정한 금강산 관광이 될 것이며 더 많은 국내 관광객들이 올 것이고 이울러 외국인 관광객들까지도 올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게 진행한 후 2차로는 원산까지 총 100km가 되는 관광특구를 확대하여 해수욕장 개발 및 스키장 건설까지 하자고 제안하였다.
이에 북한은 긍정적으로 검토를 해 보겠다며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나저나 그놈은 금강산에 가 보지도 않았는데 그걸 다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천재라서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한 건가?
볼수록 탐이 나는 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