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산삼차야. 이건 나만 마시는 건데 비서가 자네를 잘 봤나 보네. 이걸 주게.”
이게 산삼차라고? 몸 생각은 진짜 많이 하네. 산삼차면 한잔에 얼마나 되나?
내가 제일 비싼 거 달라고 했더니만 장 회장만 마시는 산삼 차를 주다니. 나 때문에 혼나는 거 아니야?
“무슨 차를 마실 거냐고 물어서 회장님과 같은 차를 달라고 했더니만 그랬나 보네요.”
“둘이 친해? 변명도 해 주고.”
“아니에요. 제가 오늘 두 번째 방문한 건데 어떻게 친해요?”
“됐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아빠에 대해 생각나는 것은 있어?”
“아무리 생각해도 없어요. 아빠가 저한테 뭐를 맡기거나 중요한 말을 한 적이 없어요. 그 당시 아빠 얼굴도 거의 못 봤으니까요.”
“확실해?”
“네.”
내 말에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장 회장이었다.
“지금은 생각나지 않아도 나중에 갑자기 생각날 수 있을 거야. 그런 경우가 많이 있잖아. 그러니까 한동안은 잊고 마음 편히 가져.”
기억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기억나지 않다가 갑자기 기억나는 경우가 있긴 하였다. 하지만 난 들은 것이 없는데 기억날 일이 있을까?
아니면 내가 들었는데 어렸을 때라 기억을 못 하는 걸까? 나도 수소 자동차 놓치기 정말 아까운데.
“네. 그럴게요.”
“그리고 내가 다음 주에 소 떼 방북 때문에 청와대 들어갈 건데 같이 들어갈래?”
“네? 제가 왜요?”
“나랑 같이 북한 가는 건 어때?”
“제가 왜요?”
“자네도 사업하니까 혹시 알아? 사업에 도움이 될지.”
내 사업은 인터넷 사업이라 북한하고는 전혀 연관이 없다. 하지만 북한은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호기심이 들기는 하였다.
한번 가 볼까? 아니야. 내가 가서 뭘 할 게 있다고? 나중에 금강산 관광 사업이 시작되면 그때나 가 볼까? 지금은 아니었다.
아! 개성 공단이 있었지.
앞으로 아이팟하고 스마트폰을 개성 공단에서 생산하는 것은 어떨까? 아니다. 10년 정도밖에 존속하지 못하는데 굳이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제가 하는 사업이 북한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어요. 생각해 주시는 것은 고마우나 전 가고 싶지 않아요.”
“자네 2월에 김도중 대통령을 만났다며? 자네 이야기를 하니까 아시던데.”
대통령에게 내 이야기를 한 거야? 손 회장도 그렇고 장 회장도 그렇고 내 의사는 물어보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거야?
“네. 소프트 뱅코 손 회장과 MSS 볼 게이트랑 같이 간 적이 있어요. 그때 전 자리에만 앉아 있던 엑스트라였어요.”
“나중에 만나 이야기하기로 했다며? 이번 기회에 들어가서 만나는 것은 어때?”
“특별한 일도 없고 대통령님도 바쁘실 텐데 저를 만나서 뭐해요?”
“아쉬워하실 거야.”
“다음에 기회가 있을 거예요.”
장주용 회장은 진 박사의 연구자료가 아니어도 진민재는 앞으로 크게 될 것 같은 인재라 놓치고 싶지 않아 어떻게 해서든지 엮고 싶은데 자기 손에 든 패가 하나도 없었다.
아쉬운 것은 자신이었다. 그래서 이번 북한 방문에 같이 가려고 했는데 그것도 힘들게 되었다.
현도 그룹과 뭔가 연관되는 사업이 있어야 하는데 하필 인터넷 사업이라.
또 알아보니 진성가 사람이지만 진성 그룹하고는 연을 끊은 것 같아 진성과 연관시킬 수도 없었다.
“뭐가 다 거절이야?”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왜 신경질인데?
“저랑 상관이 없으니까요.”
“자네는 인터넷 사업 말고 다른 사업 할 생각은 없어?”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할 계획은 있어요.”
관심이 있는지 몸을 앞으로 세우는 장 회장이었다.
“무슨 사업? 내가 도와줄 일이 있을까?”
왜 내 사업 관심이 많은 거지? 현도 그룹에 도움받을 일이 있을까? 현도 전자가 있기는 하였다.
현도 전자는 아마도 2000년이 지나고 초쯤에 해체가 되어 하이닉스 등 30여 개의 자회사로 분리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중에서 통신 단말기 사업부인 현도 큐리텔이 나중에 팬텍에 인수되게 된다.
그러고 보면 한국 핸드폰 제조 업체가 파란만장한 역사가 있는 것 같았다.
멕슨 전자에 근무하던 두 사람이 나와 한 명은 톨슨 전자, 한 명은 펜텍을 설립하여 3개 회사가 경쟁하면서 한때는 잘나가다가 결국은 사성전자에 밀려 전부 몰락하게 된다.
가장 먼저 몰락하는 톨슨 전자를 인수할 생각이었는데 장 회장의 도움을 받으면 현도 큐리텔을 인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덩치가 커서 당장 인수할 돈은 없고 2000년이 되어야 가능한데.
아닌가? 장 회장 도움을 받으면 가능할까? 미리 인수해서 기존처럼 핸드폰을 생산해 판매하면서 비밀리에 스마트폰을 개발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현도 전자 안에 나중에 하이닉스가 되는 반도체 사업부도 있으니 도움받을 수 있고. 또 아이팟에 들어갈 하드 디스크도 공급받을 수 있잖아.
생각해 볼 문제이네.
“있기는 하지만 당장은 힘들 것 같습니다.”
“뭔지나 말해 봐. 혹시 알아? 내가 도움을 줄지.”
“저는 앞으로 핸드폰 사업을 할 생각이라 현도 전자에 있는 통신 단말기 사업부가 탐이 나기는 합니다.”
“핸드폰 사업을 하겠다고? 지금은 경쟁이 심해 쉽지 않을 텐데.”
“저도 압니다. 그래서 지금이 아니라 몇 년 후에 시작할 계획입니다.”
“왜 몇 년 후야?”
“지금은 자금도 부족하고 말씀처럼 경쟁이 심해 들어갈 타이밍은 아닌 것 같다는 판단입니다. 몇 년 후쯤이면 춘추전국 시대 같은 핸드폰 업체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될 것입니다. 그때 경쟁에서 밀려난 업체를 인수해서 시작할 생각입니다.”
“내 생각으로는 그때가 되면 이미 시장 판세가 결정되기에 더 힘들 것 같은데. 차라리 핸드폰에 관심이 있다면 지금 시작하는 게 더 좋을 거야.”
“저도 잘 압니다. 그만큼 자신 있으니까 하겠다는 겁니다.”
장 회장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어리석은 결정 같지만, 저놈은 자신하는 것이 믿는 것이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빠를 닮아서 천재라 뭔가 있는 건가? 그게 뭐지? 사람 궁금하게만 하는 저놈을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자금이 부족하면 현도랑 합작할 생각은 없어?”
합작은 거절할 생각이지만 지금 딱 부러지게 거절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해 보고 오늘 점심 나하고 같이하자고.”
같이 먹다가는 체할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선약이 있어서 가 봐야 합니다.”
미간을 심하게 찌푸리는 장 회장이었다.
* * *
송재영 팀장과 그 팀원들이 며칠 전부터 출근하였다고 하여 오늘은 네이브에 방문하기로 하여 왔다.
결국, 아이너트는 4월 말로 파산 신청을 했다.
1년 정도만 더 버텼으면 라니지로 대박을 맞았을 텐데 디지털 카스트나 아이너트나 운도 지지리도 없었다.
그런 기업이 둘이 전부일까? 내가 모르는 기업들이 더 많을 것이다.
미리 연락하고 와서인지 이주희 대표가 나를 맞아 주었다.
“안녕하십니까? 고문님!”
“안녕하세요? 대표님!”
“안으로 들어가시죠.”
“네.”
이주희 대표실 안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바쁘시죠?”
“네. 그렇습니다.”
“대표님은 바쁘신데 나 몰라라 해서 미안하네요.”
“괜찮습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저는 바쁜 것이 더 좋습니다.”
“그럼 이 대표님에게는 일거리를 계속 주어야겠네요.”
“이미 주시지 않았습니까?”
“잘하고 있나요?”
“네. 아주 열심입니다. 따로 개발실을 마련해 주었는데 한번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모를 정도로 개발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송재영 팀장 말로는 9월에 서비스하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돈값을 하는 건가? 라니지 인수 가격을 얼마로 줄지 많이 고민하였다.
아직 개발이 끝난 것도 아니고 시장 반응이 어떨지도 모르는데 너무 많은 금액을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헐값으로 책정할 수도 없어 고심 끝에 총 3억 원을 주었다.
3명이라 한 사람당 1억 원씩 가졌다.
자신들이 생각한 금액보다 큰 금액인지 무척 고마워했고 좋아했다. IMF 시기에 1억 원이면 큰돈이기는 하니까.
“너무 무리하는 것도 안 좋은데요. 쉬면서 하라고 하세요.”
“본인들이 원하는 거라 제가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는 하죠.”
“저도 개발하고 있는 게임을 보기는 했지만, 게임 사업이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겁니까?”
“저를 한번 믿어 봐요.”
“저는 게임하면 고스톱밖에 몰라서요. 저는 그게 제일 재미있습니다.”
“네이브는 언제쯤 정식으로 서비스하나요?”
“지금 예상으로는 7월 1일 오픈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는 이상 없이 진행되고 없습니다.”
“기대되네요.”
이주희 대표랑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개발실로 향하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3명 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 뒤에 서서 개발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10분 정도 흐르자 송재영이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다가 놀라며 일어났다.
“고문님 언제 오셨습니까?”
“조금 전에요.”
“말씀하시지 그랬습니까?”
“일하는 데 방해될까 봐서요. 저도 개발하다 보면 집중이 깨지면 안 되는 순간이 있거든요.”
팀원 두 명도 우리 대화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원은 오늘 처음 본다.
“이분들이 팀원인가 보네요.”
“네. 그렇습니다.”
대답하고서는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뭐해? 인사해야지. 진민재 고문님이셔.”
“안녕하십니까? 임주원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상현입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일하는데 방해한 게 아닌가?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송재영이 옆에 있는 의자를 가져왔다.
“앉으십시오.”
“네.”
의자에 앉았다.
“개발실은 마음에 드나요?”
“물론입니다. 모든 게 최신이라 아주 마음에 듭니다. 팀원들도 마음에 들어 합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요.
저도 개발자라 누구보다 개발자의 마음을 잘 알아요. 개발 환경이 좋아야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거예요.”
“열심히 하라는 말로 알아듣겠습니다.”
“그런 의미는 아니에요. 뭐 더 필요한 것은 없나요?”
“없습니다.”
“나중에라도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이 대표에게 말해요.”
“알겠습니다.”
“이 대표에게 듣기로는 9월에 서비스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던데 개발이 많이 진척되었나 보네요.”
“네. 그렇습니다. 현재 90%가량 개발되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그러죠.”
임주원이 게임을 실행하여 게임 하면서 설명을 하였다.
난 라니지 게임을 한 번도 한 적은 없지만, 옆에서 하는 것을 몇 번 본 적은 있었다. 이게 이렇게 재미있는 건가?
보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이 게임 하나로 24년 동안 14조 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그 안에는 현질과 사행성을 조장한 뽑기 같은 것도 존재할 것이다.
난 절대 현질 하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임에 현질로 1억 이상을 쓴다는 것을 들으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게임이 좋아도 그렇지 게임은 게임일 뿐이고 가상의 세계일 뿐이다. 거기에 그런 거액을 쓴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낭비 같았다.
돈이 안 되더라도 정액제로만 할 것이고 게임으로만 레벨을 높이도록 할 것이다.
설명이 끝났다.
“설명 듣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네요. 제가 보기에는 분명 인기를 많이 끌 것 같아요.”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본인들이 개발한 건데 자신을 가져야죠. 자신을 믿고 나머지도 마무리 잘했으면 좋겠어요.”
“알겠습니다. 고문님도 믿어 주시는데 우리가 믿지 못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열심히 하겠습니다.”
“든든하네요. 제가 계속 있으면 방해만 될 테니 그만 가 볼게요.”
“자주 오십시오.”
“그럴게요.”
인사를 하고 나왔다.
진민재가 나가자 임주원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와! 팀장님! 진민재 포스가 장난이 아닌데요. 게임 하면서 설명하는데 긴장돼서 손에 다 땀이 났습니다.”
“저는 포스보다도 팀장님 말처럼 배우 뺨치게 잘생긴 것이 부러웠습니다.”
“내가 그랬잖아. 오죽하면 자존감이 높은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겠어? 오르지 못할 나무는 애초부터 쳐다보지 않는 게 좋아. 쳐다보았자 마음만 아프잖아.”
“그렇기는 합니다. 우리가 쳐다볼 그릇은 절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라니지 인수 가격으로 3억을 줄 정도로 통도 큽니다. 제가 라니지를 개발하고 있지만, 저 같았으면 절대 그러지 못할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잡담 그만하고 개발이나 하자.”
팀원들이 큰소리로 대답하였다.
“네. 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