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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의 홀로서기-83화 (83/261)

83화

말을 마치고는 커피 컵을 들어 마시는 황정화 사장이었다. 눈을 보니 진짜 생각이 많은 것 같았다.

“힘드시겠네요.”

“그렇습니다. 개발만 하면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꿈인가 봅니다. 현실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습니다. 제가 잘못한 건지? 시기를 잘못 만나 건지? 하루에도 여러 번 곱씹어 봅니다. 이제는 더는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사장님에게 이런 말씀 드리는 제가 참 한심하고 답답합니다.”

출시한 지 이제 2개월이 지났는데 이 정도로 심각했나?

이전 생에서도 그랬는지? 이번 생에서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이라며 지금 인수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힘드신 것을 잘 알겠습니다. 저를 만나려고 여기까지 오신 것을 보면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잠시 망설이다가 뭔가를 결심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 디지털 카스트에 투자를 해 주십시오. 오직 오션만이 디지털 카스트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염치 불고하고 찾아와 말씀드리는 겁니다.”

“황 사장님! 오션에서 투자하면 디지털 카스트가 회생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회생할 수 있습니다. 지난번에도 오션에서 투자하여 MP3를 개발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도 그럴 겁니다.”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회생 못 할 수도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자금이 부족하여 발생하는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운영 자금만 풍족하면 소비가 회복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요? 무작정 기다린다고 소비가 회복될까요? 언제가 될지 모르는데 그때까지 마냥 기다리며 손해를 감수해야 할까요? 지금은 감상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접근해야만 하는 시기입니다.”

“현실적인 접근이라면 무엇을 뜻하는 겁니까?”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투자를 받아 지금의 상황을 벗어난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또다시 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그때마다 투자를 받아 해결하시겠습니까? 한번은 가능해도 두 번은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사장님이 보시기에 디지털 카스트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겁니까? 그게 무엇입니까?”

“저만의 견해일 수도 있기에 제가 말씀드리기보다는 황 사장님이 직접 찾으셔야 합니다.”

황정화 사장은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MP3 플레이어 가격과 출시 시기, 현재 한국의 경제 상황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았지만, 어느 것이라고 콕 찍어 말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단기간에 해결할 방법이 없었고 모든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하나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오해하거나 기분 나쁘게 듣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 오션은 디지털 카스트에 투자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대신 인수할 의향은 있습니다.”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였다.

“네? 우리 디지털 카스트를 인수하시겠다고요? 너무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갑작스러운 저의 인수 제안에 당황스러울 수 있을 겁니다. 저도 갑작스럽게 이런 제안을 하는 겁니다. 화를 내시기보다는 좀 더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어쩌면 매각도 여러 방법 중의 하나일 겁니다. 매각한다면 더는 이런 일로 스트레스받지 않고 걱정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요. 제가 디지털 카스트를 인수한다고 해도 누구보다 황 사장님이 고생하여 MP3 기술을 개발한 것을 알기에 황 사장님을 모른 척하지는 않을 겁니다. 인수 대금은 황 사장님이 그동안 고생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도록 만족할 만큼 지급할 겁니다. 직원들 또한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 속에서 일할 수 있게 되고 급여도 현행보다 더 인상해 줄 겁니다. 오션이 디지털 카스트를 인수해도 지분과 나머지 50%의 특허를 인수하는 거지 경영은 황 사장님이 지금처럼 하시면 되고 스톡옵션으로 일부 지분도 드릴 겁니다. 즉, 황 사장님은 자금 걱정을 하지 않고 직원들과 계속 함께하실 수 있는 겁니다. 이 정도면 나쁜 제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정은 오로지 황 사장님의 몫이겠지만 어떤 것이 현재로서 최선인지 잘 판단하셨으면 합니다.”

“정말 매각해도 제가 디지털 카스트와 계속 함께할 수 있는 겁니까?”

“네.”

“약속하실 수 있는 겁니까?”

“네.”

“알겠습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리자면 사람은 인생이라는 머나먼 길을 가다 보면 수많은 갈림길이 나옵니다. 그럼 그 앞에서 어디로 갈지? 우리는 고민하고 선택해야만 합니다. 저라면 쉽고 편한 길을 선택할 겁니다. 굳이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알겠습니다.”

* * *

황정화가 회사로 돌아오자 심용철이 궁금한 얼굴을 한 채 사장실로 들어왔다.

“형 잘 갔다 온 거야?”

“응.”

황정화의 얼굴이 밝지 않은 것을 보아 이야기가 잘 안 된 것 같아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투자 안 하겠대?”

“그래.”

“그까짓 투자 안 받으면 어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는데 방법이 있겠지. 형 너무 신경 쓰지 마.”

“용철아!”

“왜?”

“회사 매각하는 건 어떻게 생각해?”

“회사를 왜 매각해? 힘들어도 끝까지 버텨야지. 버티나 보면 해가 환하게 뜰 거야.”

“끝까지 버틴다고 해가 뜰까? 해가 뜨기 전에 먼저 무너지면 버틴 보람도 없는 게 아닌가? 그럴 바에는 매각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왜 그런 생각을 해? 형이 힘드니까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야. 마음 약하게 먹지 마.”

“그게 오션의 진민재를 만났는데 투자는 못 하겠지만 인수 제안을 하더라. 조건도 좋아.”

“진민재가 인수 제안을 했다고?”

“그래.”

“조건이 뭐라고 하는데?”

“인수 조건이…….”

진민재가 했던 말을 그대로 하였다.

“그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계속 직원들과 할 수 있고 너도 MP3 개발하면서 고생한 거 보상받을 수 있잖아. 이대로 회사가 무너지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게 되는 거야. 사라지기 전에 보상이라도 받고 싶다는 유혹이 들어. 그 돈으로 마누라하고 애들에게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

“나도 조건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근데 정말 이 방법밖에 없을까?”

“현실적으로 판단해 보면 우리가 MP3 플레이어로 대박 맞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 같아. 크게 먹지도 못할 텐데 헛된 희망을 걸었다가 쪽박 찰 수도 있어. 그 정도 조건이면 난 만족해. 굵고 짧게 사는 것보다 가늘고 길게 살고 싶어. 용철아! 우리 어렵고 힘든 길 말고 쉽고 편한 길 가자.”

심용철도 어떤 것이 현명한 결정인지 잘 모르겠다.

이대로 계속 간다고 해도 회사 사정이 나아질 것 같지도 않고 그동안 고생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자신도 점점 지쳐 가고 있었다.

이제는 고생하지 않고 달콤한 열매를 맛보고 싶었다.

“근데 진민재은 우리 상황을 알면서도 인수하겠다는 거야? 모르고 인수하겠다는 거야?”

“자세히는 몰라도 대충은 알고 있어.”

“그런데도 인수하겠대?”

“그래. 오션은 큰 기업이니 자신이 있는 거겠지. 자본이 충분하면 가능은 해.”

“나도 이대로 우리가 개발한 MP3가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건 싫어. 신중히 고민해 볼게.”

“그래. 우리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자.”

“알았어.”

* * *

유아영 검사는 어떻게 할지 고민에 싸여 있었다.

유일한 단서인 공중전화 기록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하기에는 찜찜하였다.

천재인 박사가 세계를 깜짝 놀랄만한 기술을 개발하고서는 교통사고로 사망하였고 연구자료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건 누가 봐도 수상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교통사고는 의심할 만한 정황이 전혀 없고 정부에서도 연구자료를 찾고자 노력했다고는 하지만 너무 쉽게 포기한 것 같아 의심스러웠다.

분명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방법이 없으니. 어디서부터 조사를 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공중전화가 가장 유력한 열쇠인 것 같은데 확인할 수 없으니.

“김 수사관님!”

김도형은 유아영 검사가 자기를 부르자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며칠 동안 잠잠했었는데 설마 그 사건에 아직도 미련이 남은 건가? 아니겠지.

대답하며 앞으로 갔다.

“네.”

“아무래도 이대로 있기에는 국민들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요. 김 수사관님이 교통사고를 조사했다는 경찰관과 휴게소 주인을 만나 놓친 것이 있는지 다시 확인 좀 해 주세요.”

“검사님 마음은 알겠는데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아무런 증거도 없고 시간도 너무 지났고 저 혼자 힘으로는 힘듭니다. 하실 만큼 하셨으니 이만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저도 알아요. 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 다해보고 도저히 방법이 없을 때 그때 포기해야지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이대로 포기하면 검사로서 직무 유기예요. 할 수 있는 만큼은 해 봐야죠.”

“알겠습니다. 내일 오전에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해요. 그리고 진민재가 운영한다는 커피숍 주소 좀 알려 주세요.”

“그건 왜입니까?”

“한번 만나 보려고요.”

“제가 만났기에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에요, 진민재가 뭔가 숨기는 것이 있을 수가 있어요. 지금으로서는 진민재가 유일한 키일 수도 있어요.”

“알겠습니다. 주소가…….”

* * *

지난번 만나고 한동안 연락이 없던 현도 장 회장이 직접 전화를 하더니 뭐가 급한지 오늘 오라고 하여 현도 사옥에 또 왔다.

아마도 아빠의 연구자료 때문인 것 같은데 난 기억나는 것도 없는데. 나도 누구보다 더 찾고 싶어요.

비서실 안으로 들어가자 저번에 나를 맞아 주었던 예쁜 비서가 일어나더니 인사하였다.

“안녕하세요?”

그날은 대충 보았는데 오늘 보니 보조개가 쏙 들어가는 것이 꼭 인기 배우인 음영희를 많이 닮았다.

“안녕하세요?”

“회장님이 기다리십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고마워요.”

“차는 뭐로 드릴까요?”

“여기 있는 것 중에서 제일 비싼 거로 주세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 모습이 귀엽고 예뻤다.

“네. 그럴게요.”

안으로 들어가자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장 회장이 서류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나이도 있는데 은퇴해서 쉬면서 말년을 보내지 저리 열심히 할까? 죽으면 다 놓고 가는 것을.

“안녕하세요?”

내 인사에 고개를 들었다.

“왔어? 앉아.”

“네.”

소파에 앉자 장 회장도 와서 앉았다.

“연세도 생각하셔야죠.”

“내 나이가 어때서? 나 아직 안 죽었어. 아직도 팔팔해.”

몸은 안 그래도 성격은 그런 것 같았다.

“그러니까 더 조심해야죠. 남은 인생 편히 지내시는 것도 좋지 않아요? 저의 할아버지도 은퇴해서 남은 인생 즐기시다가 가셨거든요.”

“사람마다 다 다른 거야. 난 일할 때가 가장 행복해. 집에서 쉬면 좀이 쑤셔 가만히 있기 힘들어.”

노크 소리가 들리고 비서가 들어와 차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맛있게 드세요.”

“네. 고마워요.”

비서가 나가자 장 회장이 혀를 찼다.

“둘이 영화 찍어? 자네 여기 연애하러 와?”

“뭐가요?”

“관두자.”

한마디 내뱉고는 찻잔을 들어 마시길래 나도 따라 찻잔을 들어 마셨다.

근데 차 맛이 처음 맛보는 맛이었다.

“이게 무슨 차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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