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의 홀로서기-82화 (82/261)

82화

진민재를 만나고 돌아온 김도형은 바로 유아영 검사에게 향했다.

“다녀왔습니다.”

“진민재는 만나 본 거예요?”

“네. 그렇습니다.”

“뭐라고 해요?”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로 물어보는 유아영 검사의 눈을 똑바로 볼 수가 없어 고개를 숙였다.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우리가 건들 사건이 아니라는 겁니다.”

예쁜 얼굴이 일그러졌다.

“답답하게 하지 말고 속 시원하게 말해 보세요.”

“그게 진민재를 만났는데 하는 말이…….”

진민재에게 들었던 내용을 그대로 설명하였다.

“와! 대박이네요. 물로 가는 자동차라니 만화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요?”

“정확히는 물이 아니라 수소입니다. 저도 듣고서 무척 놀랐습니다. 진짜 그렇게만 된다면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이 올라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손에 대한민국이 선진국에 올라설지 말지 달려 있다는 말이네요.”

김도형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정말 계속하시려는 겁니까?”

“어깨가 무겁지 않으세요? 이걸 알면서도 포기한다고요? 몰랐으면 몰라도 알았는데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워요.”

“안기부에서도 철저하게 조사했지만,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또 거대한 세력이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감당할 만한 일이 절대 아닙니다.”

고개를 저었다.

“제 생각에는 거대한 세력이 관련되어 있지 않을 것 같아요. 있다면 정부나 미국일 텐데 양쪽 다 그 연구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하잖아요. 그럼 거대 세력은 아닐 거예요. 아마도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또 안기부에서는 진 박사님이 휴게소에서 누군가에 공중전화를 했다는 것도 모르잖아요. 우리에게는 히든카드가 하나 생긴 거예요.”

“히든카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평범한 패일 수도 있습니다.”

“패를 까기 전까지는 누구도 모르는 거죠. 그럼 이렇게 해요. 일단 공중전화를 건 상대가 누군지부터 알아내고 그 후에 어떻게 할지 판단하도록 해요.”

“13년 전이고 공중전화라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짐작이 아니라 확인부터 하는 것이 순서겠죠.”

“알겠습니다. 제가 확인해 볼 테니 만약 확인이 불가능하면 검사님도 여기서 그만두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약속은 나중에 하고 먼저 확인부터 해 주세요.”

김도형은 유아영 검사가 쉽게 단념할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이건 자신들이 감당할 만한 것이 절대 아닌데.

“알겠습니다. 내일 확인해 보겠습니다.”

다음 날 김도형 수사관은 출근하지 않고 바로 양평 전화국으로 갔지만 원하는 정보를 확인하지는 못하였다.

자료 보존 기간이 지나 폐기되어 알 수가 없다고 하였다. 유아영 검사는 아쉽겠지만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건은 여기서 마무리했으면 하는 심정으로 동부지검으로 향했다.

* * *

현도 그룹 장주용 회장은 비서실장이 들어왔지만, 시선은 계속 서류에 향해 있었다.

이런 일이 많은지 괘념치 않고 비서실장이 보고하였다.

“회장님! 지시하신 진민재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비서실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벌써 알아봤다고?”

“특별히 알아볼 것도 없었습니다. 진민재 꽤 유명 인사입니다.”

“뭐라고?”

“회장님 혹시 오션을 아십니까?”

“바다 아니야?”

“인터넷 사이트 오션 말입니다.”

“난 인터넷을 하지 않으니 모르지. 그게 왜?”

“진민재가 오션이라는 검색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또 나스닥에 상장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 봤자 그게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게 아닙니다. 지금 오션은…….”

상황 설명을 해 주었다.

“프로그램 하나가 그 정도야?”

“네. 그렇습니다, MSS도 컴퓨터 OS 하나로 세계적인 대기업이 되지 않았습니까? 앞으로 세계는 IT 산업이 이끈다는 말도 있습니다.”

“결론은 호랑이 새끼라는 건가? 하긴 호랑이한테 호랑이가 태어나겠지. 그럼 오션은 앞으로 계속 성장한다는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무섭게 성장할 것이라고 합니다.”

“알았어. 나가 봐.”

“네.”

장 회장은 비서실장의 말을 듣고 무척 놀랐다. 첫인상이 보통 인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 조사하라고 지시를 내렸는데 생각보다 거물이었다.

언제 미국으로 돌아갈지 모르겠지만 진민재하고는 계속 연락하며 친밀하게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놈을 어떻게 끌어들일까? 장 회장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 * *

디지털 카스트 황정화 사장과 심용철은 사장실에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황정화가 매출 보고서를 흔들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항변하고 있었다.

“이게 말이 돼? 왜 매출이 저조하냔 말이야? 3월이야 출시된 첫 달이라 사람들이 MP3 플레이어를 몰라서 그랬다 쳐도 4월은 매출이 더 신장해야 하잖아? 근데 3월 매출보다 더 줄었어.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지?”

심용철이 죄인이 된 듯한 얼굴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형! 나도 도무지 이해가 안 가 답답한 마음이야. 나도 이렇게 매출이 나오지 않을 줄 전혀 생각지도 못했어.”

“그러니까 이유가 뭐냐고?”

“내가 알아보니까 3월은 우리가 신문 광고를 해서 소비자들이 구매했지만 4월은 경기가 안 좋으니까 사람들이 지갑을 열지 않은 거야. 한 끼 밥 먹기도 힘든데 MP3 플레이어를 고가의 사치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 하필 IMF 시기라 더 그런 것 같아.”

“어떻게 해야 하지? 신문 광고를 또 낼까?”

“광고 낼 돈은 있어?”

황정화가 아무 말을 못 하자 다시 입을 열었다.

“신문 광고해서 매출이 늘어도 광고비 빼면 남는 것도 없어. 해 봤자 신문사만 좋은 일 시키는 거야. 근데 운영비 얼마나 남은 거야?”

“5월은 버틸 것 같은데 6월은 힘들 것 같아. 5월 매출이 많이 늘어나면 괜찮기는 할 텐데. 지금 상황을 보면 기대하기도 힘들고.”

“어떻게 할 생각이야?”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다.”

“형이 사장인데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어? 나나 직원들은 형만 바라보고 있는데 무슨 대책이라도 마련해야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나라고 가만히 있었겠어? 은행 가서는 대출을 알아봤고 다른 기업들 찾아다니며 투자받으려고 노력했어.”

감정이 북받치는지 목소리가 커졌다.

“다들 어렵다고 하는데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고?”

“우리가 너무 운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하필 어려운 IMF 시기에 MP3 플레이어를 출시했으니. 그렇다고 출시하지 않고 IMF가 끝나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고. 이렇게 지지리도 운이 없을 수가 있을까?”

말을 하고서는 뭔가 생각난 듯 말하였다.

“형 오션에 다시 말해 보는 건 어때? 오션 코리아도 서비스 시작했으니까 지금쯤이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을까? 내가 보기에는 우리가 기댈 곳은 오션밖에 없는 것 같아. 특허도 50%나 소유하고 있기에 이대로 MP3 플레이어가 사라지면 오션도 손해잖아.”

황정화 사장도 그동안 여러 기업들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디지털 카스트가 살려면 오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미국 나스닥에 있는 오션 주가를 보면 계속 상승 중이라 자금 사정이 좋을 것 같았다

“연락해 볼까? 민폐가 아닐까?”

“당연히 해야지. 우리가 당장 죽게 생겼는데 남 생각까지 할 여유가 있어? 싫다고 해도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늘어져야 하는 상황이야. 지금은 자존심 생각하지 마. 형은 형수님하고 애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심용철의 말이 폐부를 찔러오는 것같이 아팠다.

마누라와 아이들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뿐이고 제대로 가장 노릇을 하지 못하는 자신이 죽도록 미웠다.

그래 하자. 그깟 자존심 다 버리고 매달려 보자.

“알았어. 할게.”

전화기를 들어 황정화에게 건네는 심용철이었다.

“지금 당장 해.”

* * *

오늘은 아침부터 웹디자이너 강민희가 와서 게임 캐릭터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게임 개발자인 신상철도 대주주인 나도 아닌 강성중이 신상철이 개발하는 게임에 대해 잘 알기에 주도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었다.

신상철과 툭하면 개발하는 게임에 관해 이야기하고 직접 테스트도 하더니 어느새 게임을 꿰뚫고 있었다.

“이 NPC 투카츠는 유저들이 산토크라크 대륙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만나는 역할을 하며 유저들의 길잡이가 되는 순진하고 열정 있는 청년이라 이런 이미지로 디자인해야 해요. 그렇기에 금발로 하지만 너무 잘생긴 얼굴로 하면 순진하고 열정보다는 기생 오라버니 이미지가 떠올라 별로예요.”

근데 말하면서 날 왜 보는 거야? 날 기생 오라버니로 생각하는 거야?

“성중아! 너 나한테 불만이 있냐?”

“없습니다.”

“근데 왜 날 바라보며 기생 오라버니에 힘을 주고 말해?”

“그만큼 사장님이 잘생겼다는 겁니다. 이 오징어는 부럽습니다.”

“알았어. 계속해?”

“네.”

성중이가 다시 강민희를 바라보았다.

“제가 하는 말 무슨 말인지 이해하셨죠?”

“네. 사장님처럼 잘생기게 하지 말라는 거잖아요.”

“맞아요. 거기다가 딱 보면 순진하다는 이미지가 떠오르게 해야죠. 이 게임에서 잘생긴 이미지는 전혀 필요 없어요. 얼굴 보고 게임 하는 게 아니잖아요. 더구나 유저 대부분이 남자라 여자만 예쁜 이미지로 하면 되거든요.”

저놈 은근히 날 디스하는 것 같은데.

“알았어요. 제가 지금 대충 그릴 테니 한번 봐주세요.”

“네.”

강민희가 그리는 그림을 보는데 핸드폰이 울려 일어나 뒤로 갔다.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디지털 카스트 황정화입니다.)

그동안 아빠 일과 게임에 신경 쓰느라 디지털 카스트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네. MP3는 잘 팔리나?

“안녕하세요? 그렇지 않아도 MP3 플레이어 출시하고 반응이 어떤지 궁금하던 참이었어요. 어때요?”

(세상일이 생각같이 안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매출이 저조한가 보네. 당연하겠지. 시기를 잘못 만났으니까.

“출시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조금 더 지켜봐야죠. 밥이 익으려면 뜸을 들여야 하니까요.”

(한번 뵀으면 하는데 시간 괜찮으십니까?)

급한가? 좀 더 버틸 정도는 될 것 같은데.

“저는 상관없습니다. 언제 괜찮으십니까?”

(저도 상관이 없습니다. 내일 어떠십니까?)

“좋습니다. 제가 내일 오전에 찾아가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찾아갈 테니 장소만 알려 주십시오.)

“분당인데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제가 먼저 뵙자고 했는데 당연히 제가 가야죠.)

“여기가…….”

전화를 끊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물에 빠진 사람처럼 다급한 것 같은데 내일 인수 제안을 해야 하나? 아니면 더 막다른 골목에 몰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내일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결정하자.

다음 날 아침 10시가 되자 황정화 사장이 커피숍에 찾아왔다.

인사를 하고 테이블에 앉았다.

커피를 마시는 황 사장을 유심히 살펴보니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2월에 봤을 때보다 진짜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 보았다. 통통했던 얼굴에 살이 빠져 광대뼈가 유난히 튀어나와 보였다.

“살이 많이 빠지셨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스트레스가 심하다 보니 강제로 다이어트한 기분입니다.”

말하고서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전에는 살을 빼려고 안 해 본 거 없이 노력했지만, 살이 빠지지 않더니만 요즘은 하는 것도 없는데도 살이 쭉쭉 빠집니다.”

“MP3 플레이어 판매가 부진합니까?”

“네.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는 MP3 플레이어가 세계 최초라 인기가 있을 것 같은데 소비자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가격을 최대한 낮추었는데도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비싸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비싸다고 생각하겠지. 더구나 IMF 시기에는.

“가격을 더 낮출 수는 없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내장 메모리 용량이 어떻게 됩니까?”

“128mb, 256mb 두 가지입니다. 용량을 더 낮출 생각도 했지만, MP3 플레어 특성상 수십 곡은 들어가야 할 것 같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2001년에 나오는 망고의 아이팟은 MP3 플레이어 최초로 내장 메모리가 아니라 하드 디스크를 사용하여 5기가, 10기가 두 종류를 출시하였다.

128mb, 256mb는 5기가, 10기가에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MP3 플레이어의 후발주자인 망고의 아이팟이 성공한 원인은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었다.

수천 곡을 넣을 수 있는 용량 차이, 또 100달러 정도의 저렴한 가격, 심플한 디자인이었다.

“틀린 판단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생각이 참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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