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혹시라도 뭔가가 생각나면 나한테 즉시 알려 주겠나? 자네 혼자 찾는 것보다 내가 도움이 많이 될 거야.”
나도 현도 같은 대기업 장 회장과 친분이 생기면 나쁠 것은 없다. 다만 아쉽게도 장 회장이 몇 년 못산다는 것이다.
그동안이라도 도움을 받으면 좋은 거지.
아빠 연구자료 때문이라도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겠지만 이왕이면 장 회장에게 나에 대한 첫인상을 강하게 인식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내가 가진 유일한 장점인 미래 지식을 조금 이용해야지.
“알겠습니다. 뭔가 생각나면 제일 먼저 회장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잘 생각했어. 그게 현명한 거지.”
“그리고 언론에서 그러는데 조만간에 소 떼를 몰고 방북하시는 겁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시면 빈손으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 같은데 생각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자넨 북에서 뭘 들고 올 수 있다고 생각하나?”
“왜 없습니까? 저라면 금강산 관광을 할 수 있게 할 겁니다.”
장 회장은 순간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하였다.
금강산 관광 계획은 아직 누구한테 말하지 않고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비록 1989년도에 금강산 관광 개발 의향서까지 체결했지만 이미 폐기되었다고 생각하지 다시 진행할 거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근데 저놈은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천재인 아빠의 머리를 물려받아서 그런가? 이런 인재가 탐이 났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제가 생각하기에 회장님이 대외적으로 발표하신 솟값을 갚기 위한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재 현도가 놓인 어려운 상황을 북한을 이용해 극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했고 그동안 북한이랑 민간 교역이 거의 전무한 상태라 무언가를 지금 논의하기에는 시간도 오래 걸릴 겁니다. 그렇다면 예전에 합의했던 금강산 관광 개발이 가장 현실적일 겁니다.”
저놈 내 머릿속을 보고 있나?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다른 사업도 가능하지 않겠나? 짧은 논의로도 가능한 사업도 많아.”
“물론 가능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전에 금강산 관광을 시작하여 서로 믿음을 다지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조언을 드리자면 금강산 관광 사업을 하시더라도 해상이 아닌 육로 관광으로 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급하게 하지 말고 꼭 육로로 시작하시고 관광지 주변에 민감한 군사시설이 있다면 관광객들의 안전을 위해 꼭 군사시설을 이전하도록 합의해야 관광객들의 안전이 보장될 겁니다. 안 그러면 군사시설로 인한 마찰이 계속 발생하여 힘들게 시작한 사업이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조언 참고하겠네.”
이 정도만 하면 되겠지.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꼭 잘 생각해 보고 연락하게.”
“알겠습니다.”
장주용 회장은 진민재가 가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수많은 인재를 보았지만, 저놈 같은 놈은 없었다. 참 탐이 나는 놈이었다. 자신의 곁에 두고 싶었다.
생각을 그만두고 인터폰을 눌렀다.
(네. 회장님!)
“비서실장 들어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잠시 후 비서실장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방금 나간 놈 봤어?”
“네. 봤습니다.”
“보기에 어때?”
“배우 하면 성공하겠다 싶었습니다.”
“여자들이 좋아할 만큼 잘생기기는 했지. 외모 말고는 어때?”
“걸음걸이도 자신 있게 걷고 얼굴이 밝은 것이 매사에 긍정적인 것 같고 눈동자가 맑은 것이 총명한 자 같았습니다.”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는 어려도 보통 인물이 아닌 것 같아. 그놈 뒷조사 좀 해 봐. 이름은 진민재야.”
“알겠습니다.”
* * *
한도 그룹에서 나와 핸드폰을 들었다.
(동부지검 형사3부 유아영 검사실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진민재라고 하는데 김도형 수사관님과 통화할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김도형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진민재입니다. 전화 주셨다고 해서 연락드리는 겁니다.”
(안녕하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다시 전화 드리려고 했습니다. 잠시 만났으면 하는데 시간 괜찮으십니까?)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진상규 박사님 교통사고 건으로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드디어 수사하려나 보네. 제대로 수사해서 뭔가라도 건져야 할 텐데. 휴게소에서 전화한 곳만이라도 알면 좋을 텐데.
“13년이나 지났는데 물어보게 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제가 분당에 있는데 그쪽으로 오실 수 있습니까?”
(그러죠. 주소 알려 주시면 가겠습니다. 언제쯤 가면 되겠습니까?)
“하루 종일 그곳에 있으니 오전 10시에서 오후 8시 사이에 오시면 됩니다. 주소는…….”
(내일 오전에 찾아뵙겠습니다.)
“그러세요.”
* * *
전화를 끊은 김도형 수사관은 유아영 검사에게 향했다.
“검사님!”
서류를 보던 유아영이 고개를 들었다.
“네.”
“방금 진민재랑 통화했습니다. 내일 보기로 했습니다. 내일 진민재를 만나면 뭔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뭐라고 하지 않나요?”
“13년이나 지난 일로 만나자고 하니 의문을 품기는 했습니다.”
“알았어요. 내일 잘 만나시고요.”
“네.”
* * *
대한 일보 서하연 기자는 분당에 취재가 있어서 나왔다가 신문사로 돌아가는 길에 눈에 띄는 커피숍이 있었다.
어! 저 커피숍은 저번에 왔을 때 불이 꺼진 망한 커피숍이었는데. 지금은 불이 커져 있고 손님으로 보이는 자가 커피 컵을 들고 나왔다.
새로 오픈한 건가? 한번 가 볼까? 걸음을 커피숍으로 돌렸다.
“어서 오십시오.”
알바생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큰소리로 인사하였다.
진민재를 찾으러 커피숍을 다닐 때 대부분 커피숍 사장이나 알바생들이 여자들이라 안에 들어가서 젊은 남자가 아니면 바로 나왔다.
만약 젊은 남자라면 내부를 둘러보면서 진민재 또는 사장을 찾았다.
내부를 둘러보니 다른 곳과는 다르게 컴퓨터가 있고 그 앞에서 뭔가를 하는 남자가 있었다. 순간 촉이 왔다.
주문대 앞으로 갔다.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커피는 오늘 많이 마셨기에 다른 것을 마시려고 메뉴판을 보았다.
“귤차 주세요.”
귤차를 받아 테이블에 앉았다.
등을 지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수가 없었지만, 컴퓨터를 하는 남자가 젊은 남자 같았다. 그렇다면 저자가 진민재?
알바생도 젊은 남자에다가 컴퓨터를 하는 젊은 남자, 순간 흥분이 되었다.
귤차를 마시며 컴퓨터를 하는 젊은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데 이상하여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진민재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미국 신문 기사까지 찾아 확인했는데 사진으로는 진민재는 마른 체형인 것 같았는데 저 남자는 약간 통통한 체형이었다.
외투를 입고 있어서 그런가?
그렇게 지켜보는데 드디어 얼굴을 볼 기회가 생겼다.
한동안 컴퓨터만 하던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성중아! 이것 좀 봐줄래.”
“네.”
알바생이 남자에게로 갔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비록 옆모습이었지만 진민재가 아니었다. 자신은 왜 자꾸 진민재에게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포기할 만도 한데. 귤차를 마저 마시고 나가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알바생에게 물었다.
“사장님은 어디 계신가요?”
알바생이 정색하며 물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방금 마신 귤차가 맛이 좋아 어디서 구매하는지 물어보고 싶어서요.”
“사장님은 외출 중이라 안 계십니다. 납품받는 거라 사장님도 잘 모를 겁니다.”
컴퓨터 하던 남자가 사장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가능성이 있는 건가? 다음에 분당 올 일이 있으면 다시 들러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알았어요. 수고하세요.”
* * *
신상철이 개발하고 있는 게임을 보고 이야기 나누는데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들어왔다.
딱 봐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오늘 오기로 한 김도형 검찰 수사관이었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운동을 많이 했는지 어깨가 쫙 벌어진 다부진 체격이었다.
“김도형 수사관님?”
“네. 맞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이리로 앉으시죠.”
“네.”
구석진 테이블 앞에 앉았다.
“바쁘신데 시간 내달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아빠 일인데 아무리 바빠도 시간 내야죠. 근데 그 사건은 이미 종결되지 않았나요? 다시 조사하는 겁니까?”
“이미 종결된 사건이지만 궁금한 것이 있어서입니다. 다시 조사할지 결정된 것은 아닙니다.”
“그렇군요.”
강성중이 커피를 가져와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제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손님이 오면 알아서 가져온다.
“드시면서 하죠.”
“감사합니다. 근데 커피숍을 직접 운영하시는 겁니까?”
“네.”
“오션 개발자께서 왜 커피숍을 하는 겁니까?”
“그냥 심심풀이 부업입니다.”
“그렇군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물었다.
“아버님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잘 아시는 겁니까?”
“대충은 압니다. 근데 무엇이 궁금하셔서 13년 전 사건을 다시 알아보는 겁니까?”
“아버님이 사고 당시 정부 지원을 받아 매우 중요한 것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네. 알아요.”
“그 연구자료가 사라졌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까?”
“네. 알고 있어요. 그 당시 정부에서도 찾았다고 하는데 찾지를 못했다고 알고 있어요.”
“그 연구자료가 어디에 있을 것 같습니까?”
“글쎄요? 저도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요. 안다면 벌써 찾았겠죠. 그 가치가 어마어마하거든요.”
“아버님이 개발하던 것이 무엇입니까?”
“수소 내연기관 자동차입니다.”
“네? 수소 내연기관 자동차가 뭡니까? 제가 그쪽 분야는 잘 몰라서요.”
“간단히 설명하자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물은 수소 원자 둘과 산소 원자 하나로 구성되어 있어요. 즉, 물을 분해하면 산소와 수소를 얻을 수 있어요. 여기서 나오는 수소를 휘발유처럼 연료로 자동차에 사용한다는 거예요. 수소는 공해가 전혀 없고 물에서 생산하기에 원료 가격이 무척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죠. 한마디로 쉽게 말하면 자동차 연료를 물로 사용한다는 말이에요.”
놀란 눈으로 물었다.
“네? 물로 사용한다고요? 그게 가능한 겁니까?”
“그러니까 대단한 거죠. 아빠가 그걸 개발 완료했는데 연구자료가 사라진 거죠. 찾을 수만 있다면 찾고 싶어요.”
김도형은 진민재의 말을 듣고 너무나 놀랐다.
세상에 물로 가는 자동차라니? 한마디로 말이 안 되는 허황한 말 같았지만 금세 들통날 거짓말을 할 인물은 아니었다.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대박을 넘어서 초초 초대박이었다.
만약 그 기술이 있다면 어려운 IMF도 단숨에 극복하고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기술이 사라졌다니 뭔가 구린 냄새가 진하게 풍겼고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조용히 잠자고 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안기부에서 그 사고를 조사했던 거였구나! 어쩐지 안기부에서 교통사고까지 조사하였다고 하여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이해가 갔다.
안기부에서도 찾지 못했는데 자신의 힘으로 찾을 수 있을까? 찾기는커녕 교통사고에 숨겨져 있는 음모 또한 찾기도 힘들 것 같았다.
이건 맡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유아영 검사가 어떻게 나올지 걱정부터 들었다.
만약 계속 파고들자고 하면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