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의 홀로서기-80화 (80/261)

80화

또한, 소 떼를 몰고 방북하여 북한에서도 뭔가를 얻어낼 생각이었다.

그건 바로 금강산 관광 사업을 하는 것이었다.

1989년도에 자신이 방북했을 때 금강산 관광 개발 의향서까지 체결했으나 그 이후로 남북 관계가 경색되고 북의 핵 개발로 인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부가 햇볕 정책을 시행하니 그 어느 때보다 성사될 가능성이 컸다. 현도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려면 반드시 성사시켜야 하였다.

그나저나 서산 농장에서는 준비를 잘하고 있나? 확인하려고 인터폰을 누르려다가 메모지가 눈에 들어왔다.

손을 인터폰에서 떼고 메모지를 가져와 하나하나 보는데 눈에 띄는 메모지가 있었다.

진상규 박사! 이 이름도 오랜만에 듣네. 진짜 아까운 인재였는데. 근데 아들이 나한테 전화를 했다고? 왜? 나한테 할 말이 있나?

혹시 사라진 연구자료를 가지고 있나? 아닐 텐데.

가능성이 전혀 없기는 하지만 만약 그 연구자료를 찾는다면 현도는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뿐이 아니라 세계로 뻗어 나가는 현도가 될 것이다.

인터폰을 눌렀다.

(네. 회장님!)

“진상규 박사 아들 전화 언제 온 거야?”

(어제 오전 11시쯤에 왔습니다.)

“다른 말은 없었어?”

(네. 전화 부탁한다고만 했습니다.)

잠시 생각을 하였다.

아들을 지금 만나야 하나? 아무래도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연락해서 약속 잡아.”

(알겠습니다.)

* * *

아침에 커피숍에 출근하여 강성중이 준 커피를 마시며 컴퓨터 부팅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상철은 집도 멀면서 나보다 더 일찍 출근한다. 부지런한 것 하나는 장점이네. 또 딴짓하지 않고 게임 개발에도 열심인 것도 장점이기는 하네.

미소를 지으며 인터넷에 접속하여 개발 중이던 프로그램을 다운받으려고 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송재영 팀장입니다.)

“안녕하세요? 아침부터 웬일이세요?”

(다름이 아니오라 회사가 더 어려워져 이번 달까지만 다닐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정도 쉬고 5월 11일 월요일부터 출근하면 어떨까?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회사가 이번 달까지만 하나요?”

(그럴 것 같습니다.)

나야 일찍 입사하면 더 좋지.

“그러세요. 미리 준비해 놓고 있을게요. 필요하신 게 있으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컴퓨터만 있으면 됩니다.)

“알았어요. 최신의 컴퓨터로 준비해 놓을게요.”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변경된 사항을 이주희 대표에게 알려 주려고 하는데 핸드폰이 또 울렸다.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현도 그룹 회장 비서실입니다. 회장님께서 진민재 씨를 만나겠다고 하여 전화 드렸습니다. 회장님이 바쁘신 관계로 오늘 오후 3시 또는 다음 주 화요일 오전 11시에 시간이 되시는 데 언제가 편하시겠습니까? 다른 날을 원하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난 아무 때나 상관없으니 빨리 만나는 것이 더 좋지.

“오늘 오후 3시까지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다행히도 장 회장이 아빠를 기억해서 만나 주네. 드디어 오늘 궁금증이 풀리겠네.

* * *

종로에 있는 현도 그룹 사옥 앞에 왔다.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여기에 와서 장 회장을 만나다니 이전 생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인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회장실 안으로 들어가자 직원들이 많았다. 다 비서들인가? 비서들을 보니 나도 비서가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필요성을 못 느끼는데 나중에 필요하면 구하자.

그중 여직원 한 명이 일어나며 물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제기 진민재입니다. 회장님과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잠시만요.”

여직원이 인터폰을 눌렀다.

“회장님이 들어오시라고 합니다.”

“네. 고마워요.”

내 말에 예쁜 여직원 볼이 토마토처럼 빨개졌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책상 앞에 장 회장이 앉아 있었다. 뉴스에서 나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주름이 많네. 하긴 지금 80이 넘었을 테니. 어느 인터뷰에서 120살까지 일하고 싶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진민재입니다.”

“앉아.”

“네.”

소파에 앉자 장 회장도 소파로 와서 앉았다.

아무 말도 없이 나를 잠시 빤히 쳐다보았다.

“자네가 진짜 진상규 박사 아들이 맞아?”

“네. 맞습니다.”

“하나도 안 닮았는데.”

“제가 엄마를 닮아서 그렇습니다.”

“복을 타고 태어났네. 진 박사를 닮았으면 별로였을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머리는 아빠를 닮았나?”

“전부는 아니고 일부는 닮은 것 같습니다.”

“엄마, 아빠한테 좋은 것만 받고 태어났네. 그러기 힘든데 축복이지. 날 왜 보자고 한 건가?”

“회장님께 물어볼 말이 있어서입니다.”

“이미 13년이나 지났는데 뭘 물어볼 게 있다고?”

“아빠가 연구했던 것이 뭔지 알고 싶습니다. 회장님은 알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알고 계시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내 말에 깊은 회상에 잠기는 듯하였다. 한동안 말이 없어 가만히 기다렸다.

“참 아까운 인물이었지. 그렇게 가서는 안 되는 건데. 국가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손실이 아주 커. 내가 진 박사를 처음 본 것은 17년 전인 1981년도야. 그때 신군부가 정권을 잡아 모두가 벌벌 떨던 시대였지. 기업도 나도 마찬가지였고. 그때 전도환 대통령이 갑자기 날 불러 청와대에 갔어. 그때 처음으로 진 박사를 보았지. 그 당시 오일쇼크가 있은 지 얼마 안 되어 고유가에 고물가에 고금리에 무척 힘든 시기였어. 신군부는 정권을 잡았지만, 정통성도 없고 경제가 힘들어 그 위기를 타개해 나가야 했어. 그 방법 중에 하나가 진 박사였지. 알게 모르게 천재로 알려진 진 박사가 연구하던 게 있었는데 그걸 신군부에서 알게 된 거지. 그래서 나보고 연구 자금을 지원하라고 부른 거였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당시 진 박사가 개발하던 것을 개발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기에 신군부는 절실했어. 나 또한 관심이 많았고. 그렇게 해서 진 박사의 연구가 시작되었지. 진 박사가 기존에 하던 연구라 연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어. 나도 그 연구에 큰 기대를 걸었고. 그러다 85년 봄쯤에 거의 개발이 완료되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결국, 85년 7월에 개발이 완료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마지막으로 테스트해 보겠다고 했는데 8월에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한 거야. 그 일이 있고 난 뒤에 정부에서 급하게 진 박사의 연구자료를 찾았지만, 이상하게도 진 박사가 개발한 연구자료가 감쪽같이 사라진 거지. 나도 자료를 찾았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어. 그때 내가 얼마나 허탈했었는데.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순식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진 거였으니까.”

그래서 아빠가 연구하던 게 뭔데요? 그것부터 이야기해 주지. 그렇다고 말을 끊기도 뭐하고. 듣다 보면 나오겠지.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어. 국운이 달라질 연구자료라 안기부를 총동원해서 찾았지만 없었어. 결국, 정부에서는 미국에서 빼간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마무리했지. 내 생각에도 미국이 가져간 것 같아. 왜냐하면, 그 당시 미국에서 진 박사가 개발하는 것을 알고 미국으로 데려가려고 공을 많이 들였거든.”

미국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나에게 접근하지도 않았고 아빠 연구자료를 지금까지 찾지도 않았을 거다.

“미국은 아니에요.”

“그걸 어떻게 확신해?”

“미국 CIA에서도 아직도 아빠의 연구자료를 찾고 있거든요. 저한테 접촉까지 했어요.”

놀란 눈을 하였다.

“정말?”

“네. 그래서 제가 아빠가 연구하던 게 뭔지 알고 싶어서 회장님을 찾아온 거예요. 그게 뭔가요?”

“그렇다면 한국 어딘가에 있다는 말인데. 어디에 있을까?”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딴소리만 하더니 혼자 생각에 잠기는 장 회장이었다. 뭐야? 짜증 나게.

장주용 회장은 지금까지 진 박사의 연구자료가 미국으로 넘어간 줄 알고 포기하고 있었다.

어쩐지 아직까지 미국에서 개발품을 내놓지 않아 이상하다 싶기는 했다.

하지만 미국은 최신기술이 있다고 해도 바로 공개하지 않고 시간을 두고 공개하기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진 박사의 연구자료가 한국 어딘가에 있고 그걸 찾는다면 지금의 현도 그룹 상황을 단숨에 역전시킬 수 있었다.

지금 현도 그룹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현도 증권 빼고는 전 계열사가 적자였다.

인간은 중요한 것일수록 자신이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자에게 맡기는 것이 인간의 심리이다.

만약 자신이 진 박사였다면 연구자료를 아들에게 맡길 것이다.

그러나 아들은 아빠가 뭘 연구했는지도 모르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마도 아들은 어렸을 때라 듣고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현재로서는 아들을 이용하여 진 박사의 연구자료를 찾는 것이 가장 최선일 것 같았다.

이건 자신에게 찾아온 일생일대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희망이 다시 생긴 것이다.

“진 박사가 개발하던 것은 수소 자동차였어. 신군부는 고유가 시대에 수소 자동차가 개발된다면 고유가를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게 되니까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겠지. 수소 자동차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하고 수소 내연기관 자동차야. 진 박사가 개발한 것은 수소 내연기관 자동차야. 수소 내연기관 자동차는 기존 자동차처럼 연료. 즉, 수소를 산소와 연소시켜 구동력을 얻는 방식이지. 수소 전지 자동차보다는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에 연료만 변경하여 사용할 수 있기에 오래전부터 많이들 연구한 방식이야. 진 박사는 그걸 성공적으로 개발했던 거지.”

드디어 의문이 풀렸다. 아빠가 개발한 것이 수소 내연기관 자동차였구나.

앞으로는 전기 자동차와 수소 잔지 자동차가 대세를 이루지만 지금 시대에는 수소 자동차가 주는 영향력이 아주 클 것이다.

그러니 미국 CIA에서 그토록 찾는 거겠지.

그나저나 진짜 아빠가 대단하시네. 그걸 85년도에 개발했다니. 지금이라도 아빠의 연구자료를 찾는다면 자동차의 혁명이겠는데.

근데 그게 어디 있냐고?

“혹시 자네 진 박사에게 무슨 말 들은 기억이 없는가?”

“글쎄요? 제 기억에는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보게. 분명 자네에게 연구자료가 어디에 있다고 말했거나 힌트를 주었을 거야.”

아빠가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아빠의 연구가 막바지였고 개발이 완료되어 무척 바빴기에 집에도 오지 않는 날이 많아 아빠를 거의 본 적이 없어 나에게 무슨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때는 제가 국민학교 6학년 때라 들었어도 기억이 없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잘 생각해 보게. 내가 생각하기에는 진 박사가 몇 년 동안 고생해서 개발한 것을 폐기하지는 않았을 거야. 만약 누군가가 가져갔다면 벌써 13년이 지났기에 벌써 수소 자동차가 나왔을 거야.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도 진 박사의 연구자료가 어딘가에 꼭꼭 숨겨져 있다는 말이겠지.”

내 생각에도 그렇다.

만약 아빠의 연구물이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무기였다면 개발하고서도 두려워 폐기할 수도 있겠지만 수소 자동차는 인류와 환경에도 도움이 되기에 절대 폐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빠는 그걸 어디에 두었을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