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글쎄요? 지금 개발하고 있는 게임 가치를 정확히 측정하기가 힘듭니다. 오션에서 알아서 양심껏 주십시오.”
“그래도 되겠습니까?”
“인수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입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정확한 금액을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분명하게 말하면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드리겠습니다. 약속합니다.”
송재영은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오션에서 헛소리하지는 않을 테니 목돈이 들어오게 되었다. 팀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고 싶었다.
“그렇다면 감사할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개발하고 있는 게임은 저만의 것이 아닙니다.”
팀원들과 같이 개발하니까 그렇겠지.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하고 팀원 두 명이 같이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팀원들도 함께 갔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같이 와야겠죠. 그 팀원분들도 좋은 조건으로 대우해 주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언제쯤 이직할 수 있겠습니까?”
“당장은 힘듭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회사 사정이 힘듭니다. 힘들다고 바로 이직하면 남아 있는 다른 직원들 사기도 안 좋고 혼자서만 살려고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음 달까지는 회사에 있었으면 합니다. 6월부터 출근했으면 합니다.”
듣기로는 자존심이 강하다고 하였는데 지금 대화를 하다 보니 그런 점을 전혀 느끼지 못하였다.
잘못된 소문이었나? 아니면 자신보다 내가 더 스펙이 좋으니 자존심을 내세울 수 없어서 그런 건가?
“그건 편한 대로 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션으로 출근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솔직히 오션하고 게임하고는 어울리는 조합이 아닙니다. 송재영 씨도 그렇게 생각 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네이브라는 회사로 출근하는 겁니다.”
“제가 생각해도 오션하고 게임이 어울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네이브는 어떤 회사입니까?”
“네이브는 얼마 전에 오션에서 게임 사업에 집중하려고 투자하여 만든 회사입니다. 지분 90%를 오션이 가지고 있기에 오션과 같습니다. 다만 게임 출시하기 전에 먼저 종합 포털 사이트로 오픈하여 이름을 알리게 될 겁니다.”
송재영은 오션이 아니라는 말에, 자본이 부실한 기업에 들어갔다가 또 같은 일을 겪을 수도 있기에 가슴이 철렁하였다.
하지만 오션에서 투자하여 90%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안심이 되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네이브는 앞으로 게임 사업에 집중하시는 겁니까?”
“그렇게 될 겁니다. 종합 포털 사이트와 게임을 이원화하여 운영해 나갈 겁니다. 신상철도 네이브에 있고 현재 게임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상철이는 제가 같이 일하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같이 일할 수 있겠습니다.”
“함께 일할 수는 없을 겁니다. 신상철은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기에 팀이 다릅니다.”
“상관없습니다. 저는 현재 팀원들과 같이 일하면 되니까요.”
신상철이 네이브를 창립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알아서 좋을 게 없고 나중에 알게 된다고 해도 서로 볼일도 거의 없을 테니까 지금 말하지 않는 게 좋았다.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건넸다.
“제 명함입니다. 제가 일이 많아 사무실에 없는 경우가 많으니 필요하시면 핸드폰으로 연락 주세요.”
명함을 받아 보다가 말하였다.
“알겠습니다. 근데 고문님은 미국에는 언제 가시는 겁니까?”
“당분간은 한국에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됐다. 인기 게임인 라니지와 인재를 얻게 되었다.
송재영과 이야기를 끝내고 나와 이주희에게 결과를 알려 주려고 핸드폰을 들었다.
* * *
강성중은 집에서 컴퓨터를 하다가 문뜩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남들은 win 3.1이나 win 95를 사용하는데 자신은 win 98을 사용하기에 자랑하고 싶었다.
PC 통신에 접속하여 글 내용은 적지 않고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win 98 부팅 사진만 올렸다.
(win 98 사용 후기. 무척 좋네요.)
역시나 올라온 글을 보고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win 98 출시되었나요? 전 못 들었는데.
-주작 아님? 출시도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저거 주작 아닌 것 같음. 모니터 사진에 줄이 간 것을 보아 진짜 사진인 것 같음.
-대박!
-다들 순진하네. 주작을 믿게.
-님 미래에서 왔음?
-100% 주작임.
-진짜면 CD 빌려주삼.
-뭐지? 진짜인가?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댓글들 반응을 보니 반은 안 믿고 반은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 * *
대한 일보 서하연 기자는 퇴근하여 씻고 컴퓨터에 앉아 인터넷을 하다가 오랜만에 PC 통신에 접속하였다.
뭐가 있나 확인하다가 ‘win 98 사용 후기. 무척 좋네요.’ 제목을 보고 재빨리 클릭하였다.
내용은 없고 부팅되는 사진만 있었다. 분명 win 98이었다. 아직 출시도 안 되었는데 어떻게?
순간 아이디를 확인해 보니 저번에 글을 올린 아이디였다. 자신이 몇 번이나 쪽지를 보내 아이디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게 진짜라는 건데. MSS 회장이 찾아올 정도라면 미리 win 98을 사용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순간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한동안 분당에 있는 커피숍을 돌아다니며 실컷 고생만 하고 얻은 것 하나도 없이 헛수고만 하다가 이제 겨우 마음잡고 있었다.
놈인지 년인지 모르겠지만 왜 이딴 걸 또 올려서 겨우 꺼져 가는 마음의 불씨를 다시 지피고 있는지 짜증이 몰려왔다.
다시 찾아보아야 하나? 아직 출시도 안 된 저 win 98 시디를 확보해서 사용 후기를 기사로 작성하면 대박일 것 같았다.
미치겠네. 하지만 소득 없이 또 고생만 할 것 같은데. 저 짜증 나는 인간 때문에 내가 웬 고생이야?
구시렁거리며 쪽지를 작성하고 보냈다. 또 씹기만 해 봐라. 나중에 찾게 되면 가만 안 둔다.
* * *
강성중은 쪽지가 왔다는 알림을 보고 순간 뜨끔하였다. 거머리 같은 기자였다.
저 기자는 취재는 안 하고 PC 통신만 하나? 자신이 글을 올릴 때마다 보고 쪽지를 보내니.
다음부터는 절대 글을 올리지 말자. 얼른 쪽지를 삭제하고 올린 글도 삭제하였다.
* * *
다음 날 송재영은 아침에 출근하여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팀원들을 바라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주원아! 상현아!”
자신이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두 사람이었다.
“오셨습니까? 팀장님!”
“우리 커피 한잔할까?”
“좋습니다.”
커피 믹스를 타서 들고 복도 끝으로 나왔다.
복도에 누가 없나? 주변을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 갈 곳 생겼다.”
“네?”
“정말입니까?”
“그래. 어제 만나서 가기로 결정했어. 조건도 훨씬 좋아.”
두 사람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어디입니까?”
“오션이야.”
조금 전보다 더 놀라는 얼굴을 한 채 목소리가 커졌다.
“네? 진짜 우리가 오션을 가는 겁니까?”
“목소리 낮춰. 다른 사람 들을라. 정확히는 오션이 아니고 오션이 투자한 자회사야. 지분이 90%나 있다고 하니까 믿을 만해.”
“팀장님! 우리를 어떻게 알고 스카우트한 겁니까?”
“내 대학 후배가 있는데 그 후배가 내 이야기를 진민재에게 했나 봐. 그래서 연락이 온 거야.”
“네? 진민재라면 오션 개발자가 아닙니까?”
“맞아.”
“그럼 진민재를 직접 만났다는 겁니까?”
“응.”
조금 전보다 더 놀란 얼굴들이었다.
“정말 진민재가 팀장님을 스카우트하려고 직접 나왔단 말입니까?”
어깨를 으쓱하였다.
“그래. 내가 그 정도 되는 인물이야. 알았어? 나를 스카우트하려면 당연히 진민재가 나와야지.”
“팀장님 농담 그만하시고요.”
“나도 놀랐다니까. 전화는 진민재한테 왔지만 다른 사람이 나올 줄 알았어.”
“직접 만나 보니 어떻습니까? 천재라고 하던데. 괴팍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배우를 보는 줄 알았다니까. 키도 크고 아주 잘생겼어. 진민재 앞에 있는데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을 받았어. 신은 정말 불공평한 것 같아. 어떻게 한 인간에게 모든 것을 다 줄 수가 있지? 하나 정도는 주지 말아야지 그래야 평등하지. 내가 보기에 부족한 게 하나도 없어. 완벽 그 자체야.”
“그 정도입니까?”
“그래. 너희들도 나중에 보면 나 같은 심정일 거야. 더구나 성격도 좋고 생각하는 것도 합리적이야. 그러니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지.”
“어떤 조건이길래 그럽니까?”
“뭐냐면…….”
어제 나누었던 이야기를 하였다.
“대박이네요. 우리가 개발한 라니지를 정당한 가격으로 인수하겠다니 그런 기업 한국에는 절대 없을 겁니다.”
“맞습니다. 다들 거저먹으려고 할 겁니다.”
“그러니까 사고가 합리적이라는 거지.”
“근데 팀장님! 라니지를 우리가 개발하고 있기는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현재 회사 소유가 아닙니까? 우리가 합당한 대가를 받아도 되는 겁니까?”
임주원 말에 이상현이 동의한다는 듯 말하였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나도 그게 마음에 걸리거든. 그건 내가 사장을 만나 해결해 볼게. 대신 너희들 이번 달 월급하고 다음 달 월급은 받을 생각 하지 말고.”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월급을 받지 않는 대신 라니지로 협상하려는 겁니까?”
“그래. 얼마 되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퇴직금까지 못 받을 생각도 해야 할 거야.”
임주원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팀장님! 월급보다 더 못 받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손해 아닙니까?”
“그렇기는 한데 진민재가 하는 말이 금액을 확실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만족할 만한 금액이 될 거라고 하더라. 진민재도 프로그래머잖아. 같은 프로그래머인데 프로그램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 텐데 헐값으로 생각하겠어? 내가 보니까 많이 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
“문제는 진민재가 우리 라니지의 가치를 어느 정도로 생각할지가 모르는 것이 아닙니까? 모든 프로그램이 다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가치가 아예 없는 프로그램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었으면 애초부터 우리를 스카우트하지는 않았을 거야. 아니면 우리를 스카우트하더라도 라니지를 인수하겠다고 하지 않았을 테니까. 일단 진민재를 믿어 보자고. 그러니까 너희들도 열심히 해서 빨리 개발 끝내자.”
“알겠습니다. 6월부터 출근할 테니 그전까지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저도입니다.”
“그래. 이제 들어가자.”
“네.”
팀원들이 사무실로 들어가자 송재영은 사장실로 발길을 옮겼다.
사장실로 들어가자 사장이 힘없이 굳은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한 얼굴이었다.
“사장님!”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송 팀장 왔어? 앉아.”
“네.”
소파에 앉았다.
“사장님! 힘내십시오.”
“더 힘낼 것도 없어.”
“사장님이 이러시면 직원들이 불안해하고 동요할 겁니다. 다시 회사를 일으켜야 하지 않습니까?”
“가망이 없어. 있어야 희망을 걸지.”
“그 정도로 심각합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응. 회사가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야. 이번 달일지? 다음 달일지? 아마도 이번 달일 수도 있어. 자네한테 미안해. 데리고 왔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이렇게 끝나게 되어 무척 유감이야.”
“개발하고 있는 라니지는 어떻게 합니까?”
“언제 개발 완료가 되지?”
“4개월 정도 더 하면 개발은 끝나고 2~3개월간 테스트를 거치면 서비스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장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7개월이라? 당장 이번 달도 넘기기 힘든데. 포기해야지. 그동안 송 팀장 고생 많이 했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송 팀장은 내가 조금 챙겨 줄게.”
이번 달은 버티고 다음 달이 고비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사장은 이번 달로 회사를 끝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긴 한 달 더 버틴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 빨리 정리하는 게 사장으로서는 최선이겠다 싶었다.
어쩌면 이야기가 쉽게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직원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미안하지. 급여나 제대로 줄 수 있을지 몰라.”
“사장님! 상황이 힘든데 저를 챙겨 줄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라니지를 저와 팀원들에게 주십시오. 시작해 놓고서 개발을 완료하지 못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습니다. 우리끼리라도 개발 완료하겠습니다.”
모든 것을 다 포기했는지 순순히 허락하는 사장이었다.
“내가 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네. 원한다면 그렇게 해.”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까지야. 더 볼일 없으면 가 봐.”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