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팀장님!”
송재영은 게임 개발하다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모니터에서 소리 난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팀원 임주원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 있었다.
“왜?”
“팀장님 소식 들었습니까?”
“무슨 소식?”
“회사 상황이요.”
“그게 뭐?”
“들리는 말로는 다음 달 말일에 돌아오는 어음 10억을 막지 못할 거라고 합니다. 그럼 부도가 아닙니까?”
자신도 현재 회사 사정이 어떤지 잘 안다. IMF를 맞아 지금 경색으로 인해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렇다고 팀원들에게 불안감을 줄 수는 없었다.
“설마 10억을 막지 못해 부도낼까? 회사에서 가만히 있겠어? 뭔가 조치를 취할 거야. 그러니 동요하지 말고 일이나 해.”
“이번 달 월급도 늦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니면 지급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누가 그래?”
“회사 직원들 전부 다 그럽니다.”
“월급은 제때 줄 거야. 며칠 전에 사장님이 직원 월급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때 주겠다고 했어. 그러니 걱정하지 마.”
“마음은 그렇다 하여도 상황이 어려우면 책임질 수 없을 겁니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하지 않습니까?”
어느새 다가왔는지 팀원 이상현이 맞장구를 쳤다.
“라니지 개발 완료도 이제 몇 개월 남지 않았는데 바로 코앞에서 엎어진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자신도 같은 생각이었다.
넥스에서 사장과 트러블이 생겨 이곳으로 이직하여 팀원들과 라니지를 개발한 지 어언 1년 넘어가고 있었다.
하필 작년에 IMF가 터지는 바람에 회사도 큰 영향을 받아 지금 자금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
지금까지 어렵게 끌고 왔지만 앞으로 이번 달과 다음 달이 고비였다.
이대로 회사가 부도나면 자신과 팀원들은 갈 곳이 없어지게 되면서 라니지 또한 그대로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고민이 많았다.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도 해 봤고 지인을 통해 몇 군데 알아봤지만 다들 형편이 어렵고 작은 회사들이라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다.
안전하게 큰 기업으로 가고 싶지만 큰 기업들은 다들 사업 축소하는 분위기라 갈 곳이 없고 작은 회사는 안심이 되지 않아 갈 만한 곳이 없었다.
옮겼다가 같은 꼴을 당하면 그때는 진짜로 자신도 팀원들도 그대로 무너질 것 같아 신중히 결정해야 하였다.
“나도 생각하고 있어.”
“어떻게 말입니까?”
“회사가 부도나면 다른 곳으로 옮겨야지.”
“옮길 곳은 있습니까?”
“알아보고 있어. 그러니까 너희들은 걱정하지 말고 일이나 해.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우리는 팀장님만 믿겠습니다.”
“그래.”
두 사람이 자리로 돌아가자 송재영은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하지? 갑자기 머리가 아파져 왔다.
* * *
박도진이 왔다.
“의뢰하신 조사 끝났습니다.”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벌써요?”
“자세히는 아니라고 해서 대략적으로 조사만 했습니다. 현재 아이너트는 심각한 자금 부족을 겪고 있으며 이번 달에 돌아오는 어음과 다음 달에 돌아오는 어음을 막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이너트 사장도 이미 부도를 결심한 듯 회사를 정리하는 듯하여 자세히 조사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며 마저 조사를 하겠습니다.”
이번 달에 1차 부도를 맞겠고 다음 달에도 마찬가지일 테니 사장도 회사를 회생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을 보니 그대로 파산할 것 같았다.
“아니에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회생 불가능한 건가요?”
“자세한 회사 내부 상황을 몰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제가 판단하기에는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사장이 먼저 재산을 빼돌리는 것일 겁니다.”
직원들만 불쌍하게 되었네. 이런 일들이 안타깝게도 현재 부지기수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회사가 망하지 않았어도 체불 임금만 해도 엄청나다고 하던데. 망한 회사까지 포함하면 더 늘어날 테고.
“그렇군요. 알았어요.”
“더 필요하신 것은 없습니까?”
“네. 없어요. 하던 일 계속 진행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
박도진이 나가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송재영에게 연락해 스카우트 제안을 하면 될까? 그게 좋겠지.
지금쯤이면 송재영도 회사 사정을 잘 알 테고 자기 살길을 찾으려고 할 테니 의외로 쉽게 스카우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죽 급했으면 게임 회사도 아닌 작은 회사인 온씨 소프트로 이직했을까?
핸드폰을 들었다.
(아이네트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개발부 송재영 팀장 부탁합니다.”
(잠시만요.)
음악 소리가 울리다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재영 팀장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션의 고문 진민재라고 합니다.”
놀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오션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송 팀장님과 만나 스카우트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십니까?”
(저를 스카우트하시겠다는 말입니까?)
“네.”
(저를 어떻게 알고 스카우트하시겠다는 겁니까?)
그냥 알았다고 하지 그건 왜 물어봐?
“혹시 대학 후배인 신상철을 아십니까?”
금세 기억이 안 나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아! 압니다. 다우 정보통신에 다니는 후배가 있습니다.)
“맞아요. 신상철이 송재영 팀장님이 실력 있는 개발자라고 추천해 주었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만나시죠.)
“언제쯤 시간이 됩니까?”
(제가 일을 해야 하기에 퇴근 후가 편한데 괜찮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언제가 좋을까요?”
(저는…….)
만날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상황이 급한지 오늘 저녁에 봤으면 하여 오늘 보기로 하였다. 상대가 급할수록 나에게는 더 유리하니까.
이주희 대표는 미리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네. 이주희입니다.)
“안녕하세요?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세요? 고문님! 요즘 전화 자주 하시네요.)
“그러게요.”
(오늘은 어떤 용건이세요?)
“사실은…….”
상황 설명을 하였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 만나 스카우트 제의할 거예요. 이 대표님은 미리 알고 있어야 할 것 겉아 전화 드린 거예요.”
(네이브 일인데 제가 나갈게요.)
“아니에요. 같은 프로그래머라 제가 나가는 게 더 이야기하기가 편할 거예요.”
(고문님이 고생하시니까 제가 미안해서 그러죠.)
“괜찮아요. 이 일도 결국 저를 위하는 일이잖아요.”
(근데 게임 사업이 큰가요? 고문님은 신상철 고문이 개발하는 게임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것 같아서요.)
“아마도 앞으로 게임이 네이브를 먹여 살리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할 거예요.”
놀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임이 그 정도예요?)
“네. IT 사업에서 게임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거든요. 앞으로 게임 산업이 많이 발전할 거예요.”
(그럼 게임에 신경을 많이 써야겠네요.)
“대표라면 게임도 포털 사이트도 전부 다 신경 써야겠죠.”
(알았어요. 그리고 저번에 말씀하신 디자이너 모레 커피숍으로 보낼게요. 면접 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채용하시면 돼요.)
“대표님은 면접 안 보신 거예요?”
(네. 같이 일할 사람이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요.)
“어떤 분이에요?”
(급하신 것 같아서 오션 웹 디자이너에게 추천해 달라고 했거든요. 고졸이기는 하지만 실력 있는 분이라고 해요.)
“알았어요.”
(오늘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 * *
시간에 맞게 약속 장소인 커피숍에 도착하였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손님들이 많이 있었는데 송재영 얼굴을 몰라 어떻게 해야 하나? 가만히 서서 안을 둘러보는데 한 남자가 나를 보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혹시 진민재 고문님 되십니까?”
“네. 맞아요. 송재영 팀장님?”
“네. 만나서 반갑습니다. 송재영입니다.”
“반갑습니다.”
“저쪽에 앉으시죠.”
“네.”
차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송재영이 물었다.
“진짜 오션 개발자인 진민재 본인이 맞습니까?”
“네. 제가 오션을 개발했습니다.”
“저도 오션을 자주 사용하는데 개발자를 직접 만나다니 영광입니다.”
사람 또 민망하게.
“저도 송재영 씨 실력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저도 영광입니다.”
호탕하게 웃었다.
“과찬이십니다. 게임하고 오션하고 비교가 되겠습니까?”
“프로그램은 달라도 그 분야에서 뛰어난 것은 맞을 겁니다.”
“저를 너무 높게 평가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결과물이 하나도 없습니다.”
알아보니 송재영이 개발한 바람의 국가는 올해 출시한다고 하는데 아직 정식으로 출시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결과물이 없는 거지.
“들리는 말로는 바람의 국가가 곧 출시된다고 하던데요.”
내 말이 끝나자 송재영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바람의 국가는 제가 기획하고 개발을 시작하여 거의 70%가량 개발을 끝냈지만, 부득이하게 회사를 이직하면서 마무리 짓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넥스에서 개발을 완료하고 올해 8월에 정식으로 출시한다고 합니다. 바람의 국가만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꼭 애증의 자식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 마음 이해합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깨끗이 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겁니다.”
“현재 다른 게임을 개발하고 있어서 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이너트에서 다른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아이너트로 이직하고 나서 다시 기획하여 팀원들과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80% 완료가 되어 앞으로 4개월이면 다 개발이 끝납니다.”
“그렇군요. 갑작스러운 제 전화 받고 당황스러웠을 테고 오전에 받아 아직 생각을 결정하지 못했겠지만, 스카우트에 대해서는 긍정적입니까?”
“긍정적이기는 합니다만 조건이 맞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급한 와중에 조건을 따져? 하긴 이직하면 당연히 나은 조건으로 가야지 못한 조건으로 갈 수는 없는 거니까.
“조건은 최대한 좋게 해 줄 생각입니다. 지금 아이너트에서 받으시는 급여보다 최소 50% 높게 드리겠습니다. 또 지금 개발하시는 게임을 가지고 오시면 그에 합당한 가격으로 게임을 인수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지금 개발하고 있는 게임을 인수하시겠다고요?”
송재영은 온씨 소프트로 이직하고 몇 년 뒤에 그만두고 게임 회사를 설립해 게임을 출시한다고 들었던 것 같았다.
그렇기에 라니지 게임을 회사에서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회사 내에서 개발한 것이라면 회사 소유겠지만 다른 곳에서 개발한 것이라 돈을 주고 인수하겠다는 겁니다. 다만 아이너트에서 소유권을 주장할까 봐 그게 염려스럽습니다.”
송재영은 현재 개발하고 있는 게임을 인수하겠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다른 회사로 이직하려고 여러 회사를 알아보았지만, 그 회사 전부 개발하고 있는 게임을 돈 주고 인수하겠다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이직하면 당연히 게임도 같이 오는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오션이 미국 기업이라 생각 자체가 다른가?
그렇게 해 준다면 자신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다만 아이너트가 문제이기는 하지만 다음 달이면 최종 부도가 확정적이라 회사가 파산할 것이기에 문제는 없었다.
그래도 확실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아이너트 사장과 담판 지으면 된다.
“인수 가격을 얼마로 쳐주실 겁니까?”
“얼마를 원하십니까?”
얼마를 불러야 하나? 이직 개발이 완료된 것도 아니고 개발이 완료되더라도 시장 반응이 어떨지 모르기에 많이 부르기도 무리였다.
많이 부른다고 해도 다 줄 것 같지도 않았고 너무 욕심부린다고 스카우트 제안도 취소할 것 같았다.
이보다 더 나은 곳도 없고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 무조건 잡아야 했다. 조금이라도 주면 다행이기에 오션에 일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