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뭘 현실적으로 판단해야 한단 말이야?”
“이 시나리오를 자세히 보니까 네가 지난번에 말한 것처럼 현재 컴퓨터 사양으로는 구현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는 말로만 들었기에 별문제가 없을 것 같았거든. 물론 개발 기간이 2~3년 걸리기에 그동안 컴퓨터가 발전하기는 하겠지만 그게 확실한 것은 아니잖아.”
뭐야? 인제 와서 딴소리하는 거야?
“내가 그래서 사양이 낮아도 사용 가능하게 하고 추후에 업데이트하자고 한 거잖아.”
“맞아. 그래도 되겠지. 나도 그 생각을 했거든.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방법이 뭔데?”
“내가 말했잖아. 내가 개발하고 있는 게임이 있다고. 여기 커피숍에 와서도 계속 그 게임을 개발했거든.”
“그래서?”
“내가 개발하는 게임 먼저 개발하고 그 후에 개발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너한테 말하지 않았지만, 송재영이라는 대학교 선배가 있는데 1년 3개월 전에 넥스에서 아이너트로 이직하면서 같이 가자고 제안했었거든. 그때 그 선배가 우연히 내가 개발하고 있는 게임을 누구한테 듣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었나 봐. 그땐 난 다우 정보통신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거절했어. 그 선배 넥스에서 바람의 국가라는 게임을 개발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거든. 그러니까 내 게임만 듣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면 진짜로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이 게임 먼저 개발하고 싶어.”
머리를 망치로 세게 맞은 듯 큰 충격이었다.
내가 그 생각을 왜 못했지? 하긴 내가 게임에 그다지 관심도 없었고 지나가는 말로 들어서 전혀 기억하지 못하였다.
신상철의 말을 들으니까 비로서 머릿속 깊은 곳에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잘하면 대박이겠는데.
갑자기 신상철이 예뻐 보였다.
난 송재영이나 아이너트 회사를 모르지만, 미국에 있을 때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이 라니지 게임을 열심히 하길래 내가 그렇게 재미있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라니지 게임 히스토리를 이야기해 주었다.
어떤 개발자가 넥스에서 바람의 국가를 개발했는데 사장하고 틀어져 다른 회사로 이직해서 그곳에서 라니지 게임을 개발했는데 그 회사가 또 IMF로 어려워지는 바람에 그와 라니지가 온씨 소프트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 당시 온씨 소프트는 게임 회사도 아니었고 사무용 소프트를 개발하는 작은 회사였다고 하였다.
여기서 말한 그 개발자가 송재영이고 그 회사가 아이너트일 것이다.
그 후 아이네트를 인수한 온씨 소프프가 라니지를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대박을 맞았다고 하였다.
라니지가 올해 가을 11월에 서비스를 시작하니까 아직 송재영과 개발팀이 온씨 소프트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송재영과 개발팀을 스카우트하여 라니지를 서비스하면 이전 생에서 인기가 많았던 게임이라 대박일 것이다.
라니지를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동시에 서비스를 시작하면 진짜 대박을 맞을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오션을 통해 전 세계에 뿌려도 된다.
생각지도 않았던 대박 게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럼 송재영과 개발팀은 어디서 인수를 해야 하나? 오션에서? 아니면 네이브에서?
게임은 오션 이미지가 아니니까 이미지 메이킹 때문에 네이브가 좋으려나?
그러고 보면 송재영이 대단하기는 하였다.
한국 게임 역사상 대표작인 바람의 국가와 라니지 두 개를 전부 개발했으니까.
“알았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네가 개발하는 게임 먼저 개발하고 그 후에 하도록 하자.”
내가 반대할 줄 알았는데 순순히 오케이 하니까 신상철이 의외라는 듯 놀란 얼굴을 하였다.
“정말 그렇게 해도 돼?”
“응. 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주고 싶어. 네가 개발하는 게임도 가능성이 있다며? 그럼 당연히 먼저 해야지.”
“알았어. 고마워.”
“고맙기는.”
“그럼 내가 개발하고 있는 게임 한번 볼래?”
난 게임이 별로라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거절하면 상처받을 것 같았다. 진짜 내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좋아. 한번 보자.”
“알았어.”
“성중이도 같이 보면 어때? 게임은 성중이가 더 잘 알 거야.”
“그렇게 해.”
주문대에서 책을 읽는 강성중을 불렀다.
“성중아 이리 와 봐.”
“네. 사장님!”
강성중과 함께 신상철이 개발하고 있는 게임을 보았다.
“아직 개발이 완료된 것이 아니니까 그 점은 이해하고 봐줘.”
“알았어.”
신상철이 게임을 실행하였다.
첫 화면부터 화면이 별로였다. 디자인을 못 하니 임시로 아무거나 갖다 쓴 거였다.
게임이 시작되었지만, 캐릭터들도 마찬가지였다. 디자인을 못 하니 자기가 대충 만든 것 같은데 그림 실력이 국민 학생보다 못하였다.
“이거 네가 디자인한 거야?”
“응. 디자이너가 없으니 내가 임시로 만든 거야. 테스트는 해 봐야 하니까. 캐릭터야 나중에 정식으로 디자인하면 되니까 게임 내용만 봐줘.”
그래도 노력이 가상하네. 비록 엉터리이지만 혼자서 직접 디자인하여 이 정도 한 게 어디야?
“알았어.”
한동안 게임을 지켜보았다.
“이게 끝이야. 어때?”
“컴퓨터에서 혼자서만 하는 게임이야? 온라인으로 여러 명이 함께할 수는 없어?”
“지금은 혼자서만 하게끔 개발한 거야. 하지만 앞으로는 온라인에서 여러 명이 함께 할 수 있게 개발해야지.”
앞으로는 대세가 온라인 게임이기에 반드시 온라인 게임이어야 한다.
신상철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다시 물어봤다.
“어떤 것 같아?”
“자리 옮겨서 이야기하자.”
“알았어.”
옆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난 게임을 보았지만, 내가 게임을 많이 한 것도 아니고 별로 관심이 없어 좋은지 별로인지 잘 모르겠다.
강성중에게 물었다.
“성중아 네가 보기에는 어때?”
“제가 보기에는 아주 재미있을 것 같아요. 다만 몇 가지 기능을 추가하거나 고치면 더 좋을 것 같았습니다.”
신상철이 호기심을 가지고 물었다.
“어떤 기능?”
“제가 보기에는…….”
둘이 죽이 맞아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난 슬며시 빠져 내 전용 좌석으로 왔다.
신상철이 성중이하고는 편한가 보네. 말도 잘하고. 일단은 신상철이 개발하는 게임 먼저 개발하여 오픈하면 되고.
롤은 그 이후에 개발하면 된다. 먼저 디자이너부터 구해야겠네. 또 아이너트 회사 사정이 어떤지도 알아야 송재영을 쉽게 스카우트하지.
핸드폰을 들었다.
(박도진입니다.)
“안녕하세요?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다름이 아니오라 의뢰할 게 생겨서요.”
(말씀하십시오.)
“아이너트라는 회사가 있는데 그 회사 현재 사정이 어떤지 알아봐 주세요. 급하니까 자세히 알아보지 않아도 되니 대략적이라도 최대한 빨리요.”
(알겠습니다. 알아보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네.”
박도진이 있어서 편하네.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이주희입니다.)
“안녕하세요?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세요? 고문님! 어쩐 일이세요?)
“바쁘시죠?”
(바쁘면 제 존재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전 항상 바쁜 것이 좋아요.)
진짜 특이한 여자네. 워커홀릭인가? 그러고 보니 네이브는 신상철이나 이주희나 정상이 아니네.
스카우트할 송재영도 서울대를 졸업했다고 자존심이 심해 약간 정상은 아닌 것 같다고 하던데. 끼리끼리 모이는 건가?
“신상철이 개발하는 게임 디자인할 웹 디자이너 한 명 채용해야 할 것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생각하시는 특별한 조건은 없으십니까?)
“웹 디자인이 디자인만 잘하면 되죠.”
(그럼 학력은 필요 없다는 말인가요?)
“네.”
(알겠습니다.)
“네.”
전화를 끊고 서류 봉투를 들고 우체국에 가려고 커피숍을 나갔다.
* * *
유아영 검사는 서류를 보다가 멈추고 앉은 자세로 기지개를 켰다. 뭉친 어깨와 목이 좀 풀리는 것 같아 여러 번 반복하였다.
다시 서류를 보려다가 책상에 가득 쌓인 서류를 보니 보기만 해도 질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봐도 봐도 줄지 않고 매일 매일 쌓이는 사건 조사서였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대부분이 벌금형에 처할 정도의 생계형 범죄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시선이 서류 옆에 있는 우편물로 향하였다. 손을 뻗어 우편물들을 하나하나 확인해 보았다.
이번 달 카드값이 50만 원이나 되네.
요즘 매일 야근하느라 돈 쓴 적도 거의 없는데 카드값은 왜 이리 많이 나오는지 짜증을 내며 다음 우편물을 집었다.
서류 봉투인데 발신인 정보는 없었다. 누가 보낸 거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 봉투를 찢어 내용물을 보며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사건 내용은 흔한 교통사고이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아 비밀리에 무언가를 연구하던 천재 과학자의 죽임이라?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할 만한 소재였다.
자세히 읽어 보았지만, 사건 조사서만으로는 수상한 점은 없었다. 다만 사망하기 직전에 휴게소에서 누군가와 통화했다는 점이 좀 이상하였다.
이걸 누가 보낸 거지? 13년이나 지난 일인데 왜 지금에서야? 또 많은 검사 중에 이제 신참인 자신에게 이걸 보냈다는 것이 이상하기는 하였다.
신참이기에 때가 묻지 않았다고 생각한 건가? 나보고 이걸 파헤치라는 건가? 신참인 검사는 자신 말고도 많은데.
“김 수사관님!”
“네. 검사님!”
“이리 와서 이걸 좀 보실래요?”
“네.”
김 수사관이 오자 서류를 건넸다.
“여기요.”
“이게 뭡니까?”
“한번 보세요.”
“네.”
김 수사관이 서류를 다 읽고서는 유아영에게 다시 건넸다.
“어떤 것 같아요?”
“이거 누가 준 겁니까?”
“몰라요, 우편으로 왔어요. 발신인도 없고요.”
“제가 보기에는 별 이상은 없습니다. 다만 천재 과학자의 죽음이기에 그 죽음 뒤에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도 그래요. 뭔가 있으니까 13년이나 지난 것을 보내왔겠죠.”
“제가 생각해도 없다면 보내지 않았을 겁니다. 다만 진짜 사망자가 정부의 지원을 받고 비밀리에 연구했는지? 그 연구자료가 진짜로 감쪽같이 사라졌는지? 진짜 천재 과학자가 맞는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만약 다 맞다면요?”
“그럼 좀 수상하기는 합니다.”
“한번 이 사건 파헤쳐 볼까요?”
“검사님 일도 많은데 이미 종결된 사건을 파헤쳐서 뭐하시게요? 요즘 매일 야근하시는데 힘들지 않으세요?”
“궁금하잖아요. 진짜 사망에 무슨 비밀이 있을지도 모르고 천재 과학자가 개발했다는 연구자료를 찾으면 국가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그렇기는 하지만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오랜 시간이 지나 증거도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더 의욕이 솟는데요. 해결했을 때의 쾌감이 무척 클 것 같아요.”
“정말 하시려고요?”
“안 될까요? 김 수사관님이 도와주셔야 가능해요.”
김도형 수사관은 순간 머리가 아파졌다.
자신은 검찰 수사관 일을 14년이나 하면서 많은 검사들이 거쳐 갔다.
초임 검사들 대부분이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겠다는 듯 초반에는 열심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벽에 부딪히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타성에 젖어 초임 검사가 품었던 초심들이 전부 사라지게 된다.
물론 안 그런 검사들도 있지만 그런 검사들은 위에 찍혀 한직으로만 떠돈다.
유아영 검사도 초임 검사라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오랜 수사관의 감으로 죽음에 진짜 비밀이 숨겨져 있다면 수사를 시작하고 얼마 안 가서 위에서 그만두라는 압력이 내려올 것이다.
만약 압력이 없다면 비밀이 없거나 위와는 관련된 일이 아니라는 거다.
“수사 시작하기 전에 사망자가 진짜 천재 과학자인지 먼저 확인하는 것이 순서일 겁니다. 만약 아니라면 자료의 신빙성이 없는 겁니다.”
“신원이 확실하니까 확인은 금세 되겠네요.”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