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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의 홀로서기-75화 (75/261)

75화

신상철도 관심이 있는지 내가 들고 있는 CD를 보며 물었다.

“그게 Window 98 CD라고?”

“응.”

“볼 게이트도 아는 거야?”

강성중이 대답하였다.

“그럼요. 지난번에 여기 커피숍으로 소프트 뱅코 손정우 회장과 사장님 만나러 왔었다니까요. 그때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를 겁니다. 그 정도면 무척 친한 사이일 겁니다. 그러니 CD도 보내주는 거겠죠.”

“CD 얼른 설치해 봐.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하네.”

나는 사용해 봐서 잘 안다.

“그전에 고맙다고 전화하고.”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전화하려다가 멈칫하였다.

가만! 조금 전에 에릭 전화가 와서 아무 생각 없이 전화하려고 했는데 지금 미국은 새벽 시간인데.

그렇다면 에릭이 새벽까지 일하고 있었던 거였어? 열심히 일하네.

“전화는 퇴근할 때 해야겠다. 설치해 볼까?”

“어서 해 보세요.”

“알았어.”

내 컴퓨터에 CD를 넣고 설치를 하였다.

“나도 설치하면 안 될까?”

“응. 해.”

CD를 꺼내 신상철에게 건넸다.

“여기 있어.”

CD를 받은 신상철이 신난 얼굴로 설치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본 강성중이 나에게 물었다.

“사장님! 저도 CD 빌려줄 수 있습니까? 집 컴퓨터에 설치하게요.”

“알았어. 근데 너뿐이야. 다른 사람 또 빌려주고 하면 안 돼. 볼 게이트가 날 생각해서 CD 보내준 건데 여러 사람에게 빌려주면 내가 뭐가 되겠어?”

“무슨 말인지 잘 압니다. 저만 설치하겠습니다.”

“알았어.”

“감사합니다.”

설치를 끝낸 신상철이 이것저것을 누르며 확인하고 있었다.

“성중아! 비도 오고 나가기 귀찮은데 오늘 점심은 중국집에 시켜 먹자.”

“냄새 많이 날 텐데요.”

“손님도 없잖아. 문 열고 환기하면 돼.”

“알겠습니다.”

“주문받아라. 난 짬뽕.”

* * *

시계를 보니 오후 8시 46분이었다.

나도 곧 퇴근해야 하기에 볼 게이트에게 지금 전화해야겠다. 핸드폰을 들었다.

신호가 몇 번 울리고 볼 게이트가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오션 진민재입니다.”

(오 그래! 오랜만이네.)

“보내주신 CD 오늘 받았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뭘 그거 가지고. 우리가 신제품 출시하기 전에 관계자들이나 VIP에게 먼저 보내주거든. 자네 생각이 나서 명단에 추가했어. 이번뿐만 아니라 앞으로 신제품 출시될 때마다 갈 거야. 그러니까 혹시라도 주소가 바뀌면 업데이트해야 해.)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오션 여전히 잘나가고 있다며? 부러워.)

“전 MSS가 더 부러운데요. 서로 바꿀까요?”

(그건 안 되지. 나 조금 있으면 회의에 들어가야 해.)

“알겠습니다, 다음에 또 전화 드릴게요.”

(그래.)

전화를 끊었다.

“미나야 퇴근할 준비 하자.”

“네. 사장님!”

* * *

박도진에게 부탁한 유아영 검사의 재판이 오늘 있다고 하여 지금 자양동에 있는 동부지원에 왔다.

생각보다 빨리 알아봐 줬고 바로 재판이 있었다.

유아영 검사 재판이 있는 법정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작은 법정이었고 방청객은 10명 정도밖에 없었다.

맨 뒤에 앉아서 재판을 지켜보았다.

공소 사실을 진술하는 유아영을 보니 나에게는 벌써 수십 년이 흘렀지만 유아영에게는 시간이 멈춘 듯 내 기억 속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 검사복을 입은 모습도 잘 어울리고. 여전히 예쁘네.’

만약 내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지 않았다면 우리 둘이 맺어졌을까? 가능성이 반반이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었을까? 지금 와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긋난 인연이고 지금은 서로 남인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재판이 거의 끝나가는지 유아영이 앞에 나와 구형을 내렸다.

“피고인은 피해자의 방 안에 침입하여 소지한 칼로 위협하여 반항을 억제한 후 피해자를 강간하여 상해를 입혔고 피해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정신적인 상해 또한 일으킨 악질 특수 강간 범죄로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10조 제1항에 근거하여 징역 10년 구형을 내려 법의 엄중함을 알리고자 합니다.”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순간 인상을 썼다. 성범죄자답게 인상이 더럽고 뻔뻔하였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저런 놈들은 아예 무기징역을 내려 영원히 사회와 격리해야 하는데.

그래도 초짜 검사치고는 잘하네.

조용히 일어나 법정 밖으로 나왔다.

재판이 다 끝나자 유아영은 방청석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찾았으나 없었다. 잘못 봤나?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닌데. 재판 도중 강한 시선을 느껴 방청석을 보니 웬 젊은 남자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재판 중이라 신경 쓸 수가 없어서 재판에만 집중하였고 재판이 끝나자 방청석을 보았지만, 그 남자는 없었다.

누구지? 처음 보는 사람인데 왠지 익숙한 느낌이었다. 잘생겨서 그런가? 재판 보러 왔을 텐데 왜 나만 쳐다보았지?

“검사님! 뭐하십니까?”

고개를 돌리니 김도형 수사관이었다.

“아니에요. 가죠.”

“네.”

* * *

박도진이 연락도 없이 왔다.

“안녕하십니까?”

“연락도 없이 웬일이세요?”

“지금 양평 경찰서에서 오는 길입니다. 바로 와야 할 것 같아서 급하게 오느라 연락을 못 드렸습니다.”

“사고 조사서 입수한 거예요?”

“네. 그렇습니다. 제가 아는 분이 마침 양평 경찰서에 있어서 쉽게 구했습니다.”

내가 의뢰했지만 이렇게 쉽게 경찰 자료를 입수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경찰들의 보안 의식이 전혀 없는 것 같네.

“근데 경찰이 자료를 외부 사람에게 줘도 되는 건가요?”

“이건 기밀 자료도 아니고 흔한 교통사고이며 남도 아니고 사고자의 아들이 자료를 원한다고 했더니 준 겁니다. 원본은 아니고 복사본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그렇다 하여도 말만 듣고 준다고? 아 몰라! 자료를 받아 읽어보았다.

자료에는 아빠가 밤 11시경에 과속을 하다가 앞차를 추월하기 위해 중앙선을 침범하여 가다가 마주 오던 덤프트럭과 충돌했다는 내용이었다.

사고 목격자의 증언도 전부 일치하였다.

결론은 조사 결과 음주 운전도 아니었고 사망한 차주의 잘못으로 결론이 나 있었다.

조사서를 보면 아빠가 과속했고 중앙선까지 넘었으니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근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아빠는 왜 그 늦은 시간에 양평까지 간 것이고 중앙선까지 침범하면서 과속을 한 것일까? 무엇 때문에?

아빠가 일한 연구소는 경기도 광주에 있었기에 양평까지 갈 이유도 없었다. 그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일반적인 과속 사고네요.”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이상한 점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조사한 내용 말고 특별한 점은 없었다고 하나요?”

“특별한 점은 없었고 제가 혹시나 해서 이 조사서를 직접 작성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께서 말하기에 자신이 보기에도 이상한 점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경찰뿐만 아니라 안기부에서도 나와 철저히 조사하고 사고사로 마무리 지었다고 합니다. 다만 한 가지 기록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게 뭔데요?”

“사고와는 직접적인 연관도 없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라 조사 내용에는 빠진 것이라고 합니다. 사고 조사가 종료되고 휴게소에 갔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고 지점에서 4km 떨어진 곳에 작은 휴게소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 사망자가 공중전화로 통화한 것을 본 휴게소 주인이 말해 주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통화로 인해 과속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고 했습니다.”

“어디랑 통화했는지 확인은 했다고 해요?”

“아닙니다. 사고랑 직접 연관된 것이 아니고 종료된 사고라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것만 확인했어도 왜 아빠가 양평에 갔고 과속을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 텐데.

“혹시 어디랑 통화했는지 알 수가 있을까요?”

“그건 어렵습니다. 이미 13년이나 지났고 공중전화라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글쎄요? 수사 기관에서 적극적으로 수사하면 어쩌면 가능할 수는 있을 겁니다. 근데 그걸 누가 수사를 하겠습니까?”

하긴 무슨 의문점이 있어야 수사할 텐데. 전혀 없으니 나 같아도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점은 또 없다고 하나요?”

“네. 그 외에는 없습니다.”

“통화했다는 사실을 안기부에서도 알고 있다고 하나요?”

“아닙니다. 안기부에서 철수한 후에 알게 된 사실이라 모를 거라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도움이 못 되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하나를 알아도 또 다른 의문이 생기고 또다시 원점이네.

가만히 정리해 보았다.

지금 상황에서 아빠 일을 제대로 알려면 현도 장 회장을 만나 아빠가 무얼 연구했는지 알아보는 것과 누구와 통화를 했는지 알아내는 것인데.

장 회장이야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고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먼저 통화한 것을 알아내야 할 텐데.

방법이 없을까? 누구한테 부탁해야 하나? 유아영에게 부탁할까?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부탁을 들어줄까? 아니겠지.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일단 그렇게 해 보고 안 되면 그때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지.

* * *

아침에 일어나 모니터 앞에 앉아 그동안 준비했던 신상철에게 줄 게임의 시나리오를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 보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시작은 해도 충분할 것 같았다. 시작한 후에 시나리오는 계속 수정해 나가면 되니까.

프린트 버튼을 누르고 욕실로 들어갔다.

씻고 나오자 출력이 다 되어 있었다. 자료를 챙기고 출근할 준비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커피숍 안으로 들어가자 강성중이 큰소리로 인사하여 화답하였다.

“좋은 아침! 성중아! 커피 한잔 부탁할게.”

“네.”

신상철은 벌써 와서 컴퓨터에 앉아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집도 멀면서 나보다 일찍 출근하고. 그래! 열심히 해야지.

신상철이 이제는 커피숍에 완전히 적응한 것 같았다.

강성중하고도 잘 지내고 손님이 있어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하고 다만 미나에게는 아직도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것이 유일한 흠이었다.

신상철은 강성중이 있을 때는 커피나 차, 음료를 그냥 마시지만 미나가 손님이니 돈 내고 사 먹으라고 한소리 하고부터는 미나가 있을 때는 돈을 내고 마신다.

엄밀히 따지면 신상철은 손님이기에 미나 말이 맞기는 하지.

신상철의 어깨를 툭 치자 그제야 내가 온 줄 알 정도로 열심이었다.

“좋은 아침!”

“왔어?”

“응. 시나리오 끝났다. 이리 와서 앉아.”

“응.”

옆 테이블에 앉았다.

“여기 있어. 읽어 봐.”

“빨리 했네.”

“너 기다릴까 봐 우선으로 했지. 이것 때문에 내 할 일을 전혀 못 했어.”

“급하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고마워.”

고맙다는 말도 할 줄 알고? 진짜 많이 발전했네.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시작할 정도는 돼. 앞으로 수정하고 추가할 부분도 많을 거야. 알고는 있어.”

“알았어.”

대답하고서는 시나리오를 들고 유심히 읽기 시작하였고 난 커피를 마시며 지켜보았다.

한참을 보고서는 테이블에 시나리오를 내려놓았다.

“어때? 괜찮아?”

“응. 이걸 꼭 내 손으로 개발하고 싶을 정도로 아주 마음에 들어.”

당연하지. 그 게임이 얼마나 인기 있는 게임인데.

“근데 아무래도 현실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 같아.”

잘 나가다가 이건 또 무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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