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셋이서 점심을 먹고 이주희는 일이 있어서 가고 신상철은 게임 이야기를 더하고 싶다고 하여 커피숍으로 왔다.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지난번에 말씀하신 대작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그게 무척이나 궁금한가 보네. 근데 그전부터 느낀 거지만 친구였는데 서로 존칭어를 사용하다 보니 이상하게 꽤 불편하였다.
“신상철 씨! 우리 서로 동갑이고 같은 고문이고 프로그래머인데 서로 편하게 친구처럼 지내면 어떨까요? 무려 세 가지나 공통점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인연이잖아요.”
“저는 괜찮지만, 고문님이 괜찮겠습니까?”
“괜찮으니까 하자는 거죠. 그럼 서로 합의했으니 이제부터는 말 편하게 하자.”
“어 그래.”
신상철은 불편한가 보네. 지금이야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편할 거다.
“상철아!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임은 스케일이 크다 보니 현재 컴퓨터로는 운영하기가 벅차. 그래서 다운그레이드해서 개발해야 하거든. 네가 궁금하다고 하니 이야기는 해주겠는데 내 생각에는 지금은 다른 게임을 개발하고 그건 나중에 하면 되지 않을까? 해.”
“한번 들어보고 내가 판단해 볼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임은…….”
한동안 게임 내용에 관해 설명하였다.
내 설명을 들으면서 꽤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단순한 게임이 아니니까 그렇겠지.
지금 시대에는 이런 게임을 생각해내지 못할 테니까.
“이게 전부야. 스케일이 너무 크지? 구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기술적으로 해결할 문제도 있고 너 혼자 개발하기에 벅찰 수도 있어.”
나를 보는 눈이 존경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그걸 어떻게 생각해낸 거야? 스토리 하나하나가 디테일하여 절대 단기간에 생각해낸 것이 아닌 것 같아.”
당연하지. 이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스토리 작가들이 얼마나 고생했겠어. 그러니까 괜히 원작자에게 미안해지네.
하지만 아직 게임이 개발된 것이 아니니까 헛수고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테고 다른 스토리를 생각해내겠지.
“개발할 수 있겠어?”
“좀 더 생각해 해봐야겠지만 가능은 할 것 같아. 나 혼자 개발하면 2~3년 정도 걸릴 것 같은데 그때쯤이면 컴퓨터 사양도 많이 발전해 있을 거야. 그럼 서비스를 바로 시작할 수 있겠지. 나 해 볼게.”
본인이 원하는데 하라고 하는 게 좋겠지. 스토리 작가는 내가 대신 하면 되고 디자이너도 있어야 하는데.
디자인도 내가 잘 아니까 디자이너도 내가 대신 담당하면 될 테고. 문제는 없겠네.
갑자기 아이노가 보고 싶어졌다. 잘 지내나?
“정말 혼자서 개발할 수 있겠어? 다른 개발자 붙여 줄 수도 있어.”
“아니야. 나 혼자 하는 게 더 편해.”
“알았어. 해 봐. 하다가 벅차면 언제든지 말하고.”
“고마워.”
말을 하고서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는 신상철이었다. 뭔가 말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할 말 있어? 있으면 해.”
신상철은 진민재를 만난 게 이번이 3번째였다.
신기하게도 3번 다 만나면서 전혀 위화감도 없어서 참 편하였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래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진민재를 보면서 느낀 점은 항상 밝고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고 자신에게는 없는 동경하는 모습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인생을 실패자로 마감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쉽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진민재 옆에 있다면 자신도 영향을 받아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진민재 곁에 껌딱지처럼 달라붙고 싶었다.
맹모삼천지교처럼 또는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는 말처럼 진민재 곁에 있다면 자신이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말을 꺼내고 싶은데 말이 입 밖으로 쉽게 나오지 않았다. 입술을 깨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근데 게임 개발하려면 스토리에 관해 자주 물어볼 수도 있는데 나도 여기서 개발하면 안 될까?”
설마가 날 잡았네.
“너 집에서 여기 출퇴근하려면 멀잖아?”
“아니야 오늘 와 보니까 올 만했어. 여기서 지하철이나 버스 타고 강남역 가서 지하철 타고 가면 괜찮아. 개발하다가 출퇴근하기가 힘들면 이 근처에 원룸 하나 얻으면 되고.”
하긴 내 옆에 두고 개발하는 것을 지켜보면 나도 좋기는 한데.
“너 괜찮겠어? 여기가 한가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들락거려 방해될 수도 있어.”
“일단 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면 되니까.”
“그런 정신으로 뭘 하겠다고?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는 생각이 아니면 애초부터 시작도 하지 말든가.”
“알았어. 여기서 죽을게.”
“진짜 죽으면 안 되지. 남의 장사 망하게 할 일 있어? 죽지 말고 살아남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고마워. 내일부터 나올게.”
“내가 스토리 정리하려면 며칠 걸릴 텐데. 며칠 후에 오지.”
하루라도 빨리 진민재 곁에 있어서 자신도 변하고 싶었다.
“괜찮아. 그동안 다른 게임 개발하면 되니까.”
고집도 있네. 이런 모습 처음이다.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다음 날 오후 2시쯤에 신상철이 왔다.
“컴퓨터는?”
“집에 있는 컴퓨터는 구형이라 어제 새로 주문했어. 오후에 이곳으로 배달해 준대.”
“하긴 게임 개발하려면 신형이 좋긴 하지.”
“나 컴퓨터 오면 어디에다 설치해? 네 옆에다 하면 되나?”
바로 옆에 있으면 신경 쓰이지.
“너 저쪽 창가 끝에 설치해, 좀 떨어져 있는 게 좋아.”
“알았어.”
잠시 후에 컴퓨터가 배달되어 설치하였다.
3시가 다 되자 정미나가 출근했다가 컴퓨터를 하고 있는 신상철을 보고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사장님! 누구예요?”
“친구야. 한동안 여기서 나처럼 일할 거야. 인사시켜 줄게.”
“상철아! 이리 와 봐.”
신상철이 다가왔다.
“서로 인사해. 여기는 알바생 정미나고, 여기는 신상철이야.”
정미나가 먼저 인사하였다.
“안녕하세요?”
근데 신상철의 반응이 좀 이상하였다.
여자랑 인사하는 게 처음은 아닐 텐데. 전 직장에서도 여직원이 있을 테고 어제는 이주희하고도 인사를 나누었는데.
정미나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수줍어하고 있었다. 미나가 예뻐서 그런가?
“뭐해? 인사 안 해?”
정미나를 바라보지 않고 인사하였다.
“안녕하세요?”
참! 갈 길이 멀구나.
* * *
드디어 전면적으로 개편된 오션이 새로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이전 생에서 보던 종합 포털 사이트 모습 그대로였다. 아울러 이메일 무료 서비스까지 시작하였다.
내가 모르는 사이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현재 한국에서 종합 포털 사이트 모습으로 운영되는 사이트는 또띠앙 빼고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조만간에 한메일닷도 사이트 개편이 끝나면 종합 포털 사이트로 서비스 시작할 테고 2중대인 네이브도 종합 포털 사이트로 오픈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한국 인터넷 시정은 종합 포털 사이트 간의 경쟁이 치열하게 시작될 것이다.
네이브 이주희 대표가 가끔 커피숍에 와서 보고서를 주고 가곤 하는데 보고서를 보면 능력이 뛰어난 건지 하루빨리 서비스를 시작하려는 욕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진행 속도가 무섭게 빨랐다.
신상철의 성격 때문에 직접 말로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서를 주는 방법을 선택한 이주희였다.
생각해 보면 참 잘한 선택 같았다. 신상철도 그다지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이주희도 건네기만 하면 되기에 스트레스 안 받고 편하고.
하지만 신상철은 네이브에 별 관심이 없는지 보고서를 대충 보고 게임 개발에만 집중하여 내가 대신 보고서를 자세히 보고 이주희하고 논의한다.
완전 주객이 전도되었다.
이주희를 선택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진짜 능력 있고 야망이 큰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말하는 것을 보면 오션을 누르고 한국에서 제일가는 포털 사이트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무척 강했다.
꼭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초반이야 당연히 밀리겠지만 이건 장기적인 마라톤 경기와 같기에 승부를 섣불리 예측할 수는 없었다.
염중섭이나 이주희도 스톡옵션을 받았기에 성공할수록 자신들의 부도 늘어나게 되는 것이라 더욱 열심히 하는 이유도 있었다.
메뉴 하나하나를 클릭하여 들어가 보며 달라진 오션 사이트를 불러보고 있었다.
아직 부족한 면도 있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그건 앞으로 하나씩 보완하고 채워 나가면 되는 거지.
이번에는 뉴스를 보기 시작하였다.
정치면에서는 대통령이 런던 정상 회담에 참석하여 각국 정상들과 IMF 지원 협력에 합의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경제면을 보자 뉴코어 그룹이 법원에 신청한 화의 신청이 기각되어 파산 준비를 해야 한다는 암울한 기사도 있었다.
다음 기사에는 뒤로 물러나 있던 현도 그룹 장주용 명예회장이 현도 건설 대표이사로 경영 일선에 복귀한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현도 장주용 회장도 한번 만나보고 아빠가 뭘 연구 개발하고 있었는지 물어봐야 하는데.
어떻게 만나나? 찾아가면 만나주려나? 한 번은 만나야 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염중섭입니다.)
“안녕하세요?”
(오션 사이트 개편한 거 보셨습니까?)
“네. 지금 보고 있어요. 괜찮네요.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오늘 첫날이라 아직 구체적인 반응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오션을 방문한 유저들의 반응을 보면 아주 좋습니다. 특히 무료 이메일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 제대로 먹힌 것 같습니다.)
“그렇겠죠. 한메일닷을 빼고는 유료였으니까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올해 안으로 오션 일일 방문 페이지뷰 1,000만을 넘기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제는 검색만 하는 것이 아니라서 불가능한 수치는 아니었다.
“제가 보기에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페이지뷰가 많을수록 광고 단가도 높아져 매출이 증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올해 흑자를 기록하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아! 그리고 하나 더 메뉴를 추가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네? 어떤 것을 말입니까?)
“작가나 작가 지망생이 소설을 써서 올릴 수 있는 공간이요. 그럼 그 소설을 읽으려고 많은 독자들이 방문하게 되면 페이지뷰 수가 급증하는 효과를 볼 수가 있어요. PC 통신에도 소설을 올리잖아요. 충분히 가능성이 있으니 한번 검토해 보세요.”
(좋은 생각 같습니다. 일단은 오션에서 시작해 보고 반응이 좋으면 따로 전문적인 소설 사이트로 전환해도 될 것 같습니다. 검토해 보겠습니다.)
“그래요.”
(다음에 또 전화 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보니 오션 일본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네.
일본이 먼저 시작은 했지만, 본사에서 파견 나가는 잭 필렌스 이사의 비자 수속이 늦어져 예상보다 늦게 일본에 도착하는 바람에 일이 지체되고 있었다.
알아서 잘하겠지.
전화를 끊자 게임 개발을 하던 신상철이 그제야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오션 사이트 새로 개편한 거야?”
어제도 말하고 아침에도 말했는데 정말 모르는 거야? 내 말을 한 귀로 흘려들었나? 다른 사람 같았으면 짜증이 났을 거다.
“그래. 너도 한번 들어가서 봐. 앞으로 네이브도 이런 식으로 할 거니까.”
“알았어.”
인터넷에 접속하는 신상철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