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 은근히 부담되네.
“저보고 더 열심히 하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어깨가 무거워진 만큼 타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사장님과 약속이 있는데 어디 계십니까?”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택건을 따라 사장실로 들어갔다.
“사장님! 진민재 개발자님 오셨습니다.”
책상에 앉아 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한메일닷 사장 이재영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안녕하세요? 오션 고문 진민재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앉으시죠.”
“네.”
소파에 앉자 이택건이 물었다.
“커피 드시겠습니까?”
커피숍에서 매일 커피를 마시다 보니 다른 곳에서는 마시는 커피가 맛이 없었다. 우리 커피숍 커피 진짜 맛이 있는데.
“차 있으면 주십시오.”
“녹차 괜찮습니까?”
“네. 좋습니다.”
이택건이 일어나 나갔다.
“오션의 개발자인 진민재 고문님을 직접 만나 뵙다니 꿈만 같습니다.”
이택건도 그러더니 이재영도 그러네. 사람 민망하게. 초반부터 날 띄워 주려는 작전인가?
“제가 이렇게 유명한지 몰랐습니다.”
“프로그래머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고 부러워하는 분입니다. 다른 유명한 분들도 많이 있지만, 외국 사람들이다 보니 친밀성이 떨어집니다. 한국 분이 이렇게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들도 진민재 고문님과 같이 성공하고픈 욕망이 샘솟는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여 미국인이 되었지만, 원래는 한국인이 아닙니까?”
“저도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문이 열리고 이택건이 종이컵에 든 녹차 석 잔 가지고 들어왔다.
“여기 있습니다. 드십시오.”
“감사합니다.”
종이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우리도 프로그래머라 오션이 어떤 프로그램인지 잘 압니다. 정말 대단하신 것을 개발하셨습니다. 어떻게 개발하신 겁니까?”
이런 질문을 하도 많이 받아 모범답안을 하나 만들었다. 자세히는 아니어도 대략적으로 개념 정도는 설명해 주었다.
“오션은…….”
누가 프로그래머 아니랄까 봐 내 설명을 들으면서 눈빛이 반짝거렸고 때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지 감탄을 터트렸다.
한동안 설명을 하였다. 이러려고 온 게 아니었는데.
“이상입니다.”
“와! 모를 때는 막연하게 대단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설명을 들으니 더욱더 대단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개념을 적용하시다니 생각지도 못했고 우리는 시도조차 하지 못할 방식입니다. 역시 천재라 가능한 가 봅니다.”
“제가 적용한 방식이 처음이라 낯설어서 그럴 겁니다. 앞으로는 이런 방식을 적용한 프로그램들이 조금씩 나올 겁니다. 그런 프로그램들을 자주 접하다 보면 금세 적응될 겁니다.”
“당장이라도 개념을 이용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픈 마음이 듭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직접 한번 해 보면 이해가 훨씬 쉬울 겁니다. 실패한다고 해도 상심하지 말고 계속 도전해 보면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당장부터 해 보겠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사업 이야기를 해 볼까요?”
“좋습니다. 우리 한메일닷에서 오션을 사용해도 됩니까?”
질문하고서는 둘 다 긴장한 채 내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용해도 좋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어떤 조건입니까?”
“우리 오션이 한메일닷에 투자 제안을 받아들이는 조건입니다.”
이재영은 나쁜 조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97년 한메일닷의 매출액이 32억이었고 이메일 서비스를 무료로 시작하면서 사업 투자비를 많이 지출해 현재 운영비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또한, 계속 증가하는 가입자로 인해 서버 증설이 필요한 시점이라 더욱더 운영비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메일닷에 관심을 보인 독일 언론 재벌인 바텔스만에 투자를 받으려고 하는 중이었다.
오션이 한메일닷에 투자하면 굳이 바텔스만에서 투자받을 필요도 없고 오션도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일석이조 같았다.
“한메일닷에 정말 투자하시겠다는 겁니까?”
“네. 우리 오션은 가능성이 보이는 벤처 기업에 적극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한메일닷은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에 투자를 하려는 겁니다.”
“한메일닷을 높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를 투자하실 겁니까?”
“투자 금액이야 서로 적정한 금액으로 합의하면 되지만 문제는 지분일 겁니다.”
“얼마의 지분을 원하시는 겁니까?”
“40%입니다.”
내 말에 두 사람이 미간을 찌푸렸다.
“40%는 너무 높습니다. 40%를 줄 경우 오션이 최대 주주가 됩니다. 그럼 한메일닷은 오션의 소유가 된다는 겁니다.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입니다. 처음 제안대로 사용료를 받으시면 안 되겠습니까?”
“잘 생각해 보십시오. 한메일닷에서 오션을 사용하게 한다는 것은 오션 입장에서는 강력한 경쟁자가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사용료라고 해 봤자 푼돈일 텐데 오션 입장에서는 안 받고 말지 받아서 굳이 경쟁자를 만들 필요는 없을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20%는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입니다.”
“20%도 마찬가지입니다. 20%를 받고 투자할 바에는 차라리 신생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더 이득일 겁니다.”
“꼭 40%이어야만 하는 겁니까? 협상할 여지는 없는 겁니까?”
“우리가 계산한 바로는 40%가 마지막 노선입니다.”
이재영은 40%나 주고 투자를 받아야 하는지 회의적이었다. 지금 당장 결정하기보다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였다.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사실 당황스럽습니다.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시간을 주시면 심사숙고하고 결정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시간을 가지고 현명한 결정을 했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무리한 투자 조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오션 입장에서는 한메일닷이 앞으로 크게 성장할지 안 할지 모르는 겁니다. 그렇기에 위험 부담이 있고 지분 40%가 되어야 우리 오션에서 한메일닷을 밀어줄 명분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 너무 기분 나쁘게만 생각하지 마시고 이런 점이 있으니 이해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처음 만날 때보다 분위가 많이 가라앉았다.
종이컵을 들어 식은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제 용건이 끝났으니 가야겠다. 가겠다고 말하려는데 이재용이 물었다.
“저기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오션에서 가능성이 있는 벤처 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시겠다고 하셨는데 설립된 벤처 기업에만 해당하는 겁니까?”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근데 왜 이런 질문을 하시는 겁니까?”
“그게 저의 이종사촌 형이 있는데 현재 사성 SDS에서 일하고 있지만, 내년에 벤처 기업을 설립하고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할 계획입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투자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겁니다.”
사성 SDS라면 설마 네이브의 이호진을 말하는 건가?
“사촌 형의 이름이 뭔가요?”
“이호진입니다.”
아! 둘이 꽤 친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업적으로 친해진 줄 알았는데 이종사촌지간이었던 거야?
그래서 네이브 초창기에 그렇게 밀어주었던 거였구나. 결국, 밀어준 네이브에 역전까지 당하였고.
“글쎄요? 말로만 듣고 결정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나중에 시간 내서 한번 만나 보고 이야기를 한 후에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한메일닷을 나와 커피숍에 왔다.
“사장님! 어디 갔다 오시는 거예요?”
“응. 커피 한 잔 줄래.”
“네. 잠시만요.”
정미나가 주는 커피를 받아 내 전용석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한메일닷에 갔다가 우연히 한메일닷의 이재영과 네이브의 이호진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이종사촌 둘이서 대한민국 포털 사이트를 나눠 가진 거였네.
어떻게 할까? 지금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내년에 네이브를 설립할 텐데. 네이브의 이호진에게도 투자할까?
이호진은 이전 생에서 서울대학교 컴퓨터 공학 6년 선배였다.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지금 투자하면 지분을 얼마나 확보할 수가 있을까? 초창기라고 하지만 50% 이상은 주지 않을 거 같은데.
순간 드는 생각이 있었다.
한메일닷은 이미 설립되어 자리를 잡았기에 투자를 하는 거지만 네이브는 아직 설립조차 하지 않았고 설립하려면 1년이나 더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럼 굳이 투자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네이브가 급성장하게 된 이유가 지식인 서비스 때문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한메일닷에 밀리고 있었다.
가만! 오션 2중대로 네이브를 대신할 토종 사이트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그런 후에 지식인 서비스를 하면 되는 거고.
나나 오션에서 직접 관여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내세워 법인을 설립하게 하고 운영하면 되는 거잖아.
대신 오션에서 지분을 50% 이상 가지면 되는 거다. 아예 네이브가 탄생하지 못하도록 미리 선점하는 거지.
아니야! 그래도 이호진은 사이트를 설립할 것이다. 그렇다 하여도 한메일닷에서 도와주지 못하도록 하면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다.
원래 네이브 자리를 2중대가 차지하면 되는 것이고.
그럼 나중에 대한민국은 오션과 디음, 2중대가 차지하게 되고 전부 오션의 영향력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럼 누굴 내세워야 하지? HQ 컨설턴트에서 젊은 IT 인재들을 관리한다고 하니 정하나 실장에게 부탁해야 하나?
아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이전 생에서 내가 서울대 컴퓨터 공학을 다녔기에 그때 동기나 후배 중의 한 명을 선택하면 된다.
누가 좋을까? 이전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그래! 신상철이 좋겠다. 신상철은 동기로 성격이 좀 모나서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여 개발자로서는 좋지만, 직장 생활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내가 미국으로 유학 가서 신상철이 졸업하고 어떻게 지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순탄한 사회생활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론 나도 대학 시절 공부만 해서 남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지만 나는 그 당시 내가 놓인 상황 때문에 그랬기에 나와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신상철은 3대 독자라 6개월 방위이기에 아마도 지금쯤은 소집해제 되었을 것이고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사업하기에도 힘들다.
나에게 딱 맞는 인물이었다.
이 친구에게 투자하여 법인을 설립하게 하고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이 친구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하면 된다.
그 친구는 그걸 더 선호할 테니까.
근데 이 친구를 어디 가서 찾지? 집이 봉천동이었다는 것만 아는데. 아! 박도진에게 의뢰하면 되겠다.
핸드폰을 들었다.
(네. 박도진입니다.)
“안녕하세요? 진민재입니다.”
(네. 안녕하십니까? 아직 결과물은 없습니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진성 그룹 때문에 전화한 줄 아나 보네.
“그 일 때문이 아니라 혹시 사람 찾는 일도 하시나요?”
(잘 하지는 않습니다만 진민재 씨 부탁이라면 해 드려야겠죠. 누굴 찾는 겁니까?)
“사업 때문에 그러는데 서울대학교 컴퓨터 공학과 92학번 신상철이라는 자에 대해 알아봐 주세요. 지금 어디에 살고 있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요.”
(그 정도면 되는 겁니까?)
“네.”
(언제까지 조사하면 되는 겁니까?)
“진성보다 이 일을 최우선으로 해 주세요. 언제쯤 끝날까요?”
(알겠습니다. 신분이 확실한 사람 같으니 일주일이면 충분합니다.)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