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안녕하세요? 저는 진민재라고 합니다. HQ 컨설턴트 정하나 실장 소개로 전화 드렸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의뢰하실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저는 의뢰를 직접 만나 뵙고 받습니다. 시간 언제 되십니까?)
굳이 불편하게 직접 볼 필요가 있나?
“전화로 의뢰 내용 말하면 안 되는 겁니까?”
(그래도 되지만 저는 불법적인 의뢰를 받지 않습니다. 직접 만나지 못할 정도라면 뭔가 걸리는 것이 있기에 저는 의뢰를 받지 않습니다. 그 점은 양해 바랍니다.)
내가 알기로 심부름센터는 구린 것이 많다고 하는데 이 사람은 기업과 거래를 해서 그런가? 몸을 사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근데 뭔가를 조사하는 것은 대부분 불법이 아닌가?
“의뢰 내용이 불법적인 것이 아니어도 만나야 하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의뢰 내용이 불법적인 것이 아니어도 의뢰자가 떳떳하지 못한 신분이라면 힘듭니다.)
“알았어요. 만나죠. 제가 지금 분당인데 어디서 만나야 하나요?”
(제가 지금 일이 있어 강남에 있으니 일 끝나면 제가 분당으로 가겠습니다. 계신 곳 주소만 알려 주시면 오후 4시쯤에 찾아뵙겠습니다.)
“좋아요. 주소가…….”
전화를 끊었다.
원칙적인 사람 같지만, 원칙적이기에 더 믿을 만한 것 같았다.
오후 3시가 다 되어 가자 강성중이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성중아!”
“네.”
“요즘 영화 타이타닉이 인기라고 하는데 봤어?”
“아뇨 못 봤습니다.”
“나도 못 봤는데 우리 보러 갈래?”
“네? 둘이서요?”
되물으면서 날 보는 시선이 남자 둘이서 그걸 왜 보러 가냐는 눈빛이었다. 나도 남자랑 둘이 가고 싶지는 않거든.
“우리 커피숍 식구들 회식 한 번도 하지 않았잖아. 회식으로 영화 보러 가자는 거야. 미나도 같이 셋이서 가자고.”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저는 무조건 좋습니다. 근데 커피숍 끝내고 가면 너무 늦지 않습니까?”
“당연히 늦지. 미나가 3시에 오니 4시쯤 시작하는 거로 보자고. 장사도 안 되는데 커피숍은 그냥 문 닫고 가면 되지. 네가 가서 평일로 해서 예매해. 내가 돈 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날 영화 보고 저녁도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알겠습니다.”
4시쯤 되자 한 남자가 들어왔다.
보는 순간 저 남자가 박도진이라고 생각들 정도로 다부진 체격의 남자였다. 나이는 대략 40대 초반으로 보였다.
손을 들었다.
“여기예요.”
날 본 박도진이 다가왔다.
“제가 박도진입니다.”
“반가워요. 앉으세요.”
“네.”
의자에 앉자 정미나를 바라보았다.
어떤 의미인지 아는지 눈빛은 싫다고 강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미나야! 커피 한 잔만.”
날 째려보며 커피를 내리는 미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커피숍을 운영하시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때 정미나가 커피를 가져와 테이블에 내려놓고 갔다.
“드시지요.”
“감사합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내려놓았다.
“커피 맛이 좋습니다.”
내가 봐도 커피 맛은 좋은데 이상하게도 손님은 없다. 맛집인데 말이야.
“좋은 원두를 사용하거든요.”
“그런 것 같습니다. 의뢰하실 내용이 뭡니까?”
“진성 그룹 아시나요?”
“압니다.”
“진성 그룹에 대해 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
“네? 어떤 부분을 알아봐 달라는 겁니까?”
“진성 그룹 계열사의 재정 상태나 매출 등 현재 놓인 상황 전부요.”
“죄송하지만 진성 그룹에 대해 조사하려는 이유가 뭡니까?”
“이유도 말해야 하나요?”
“싫으시면 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유를 안다면 조사하는 데 있어 그 부분에 집중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부이기에 굳이 이유는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당장 급한 것은 아니니까 여유 있게 해 주셔도 돼요. 조사한 내용만 바로 보내주시면 되고요.”
“기간도 길고 전부 조사해야 해서 의뢰 비용이 꽤 들 겁니다.”
비용이 많이 들기는 할 것 같았다.
“얼마 정도 되나요?”
“제가 지금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인건비, 경비 등 여러 가지 계산을 해 봐야 합니다.”
“알았어요. 계산 나오면 알려 주세요.”
뭔가 망설이는 얼굴이었다.
“하실 말씀이 있으세요?”
“네. 이런 말 드려서 죄송하지만 제 일이다 보니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비용이 꽤 많이 나올 텐데 감당하실 수 있습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감당이 안 되면 HQ 컨설턴트 정하나 실장이 소개해 주지 않았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박도진 씨에 대해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경찰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지금도 경찰 쪽에 인맥이 많은가요?”
“그렇습니다. 이런 일이 경찰 쪽에 인맥이 없으며 힘듭니다. 제 자랑은 아니지만, 경찰 시절 꽤 능력 있는 수사관이었습니다. 또한, 동료들과도 관계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근데 왜 경찰을 그만두신 건가요?”
“그건 개인적인 일이라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내 질문에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지는 것을 보니 말 못 할 사연이 있나 보네. 아픈 곳을 찌른 건가?
“알겠습니다. 더는 묻지 않겠습니다.”
“더 하실 말씀이 없으면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네.”
“연락드리겠습니다.”
박도진이 가자 정미나가 도끼 눈을 부릅뜨고 다가왔다.
“사장님! 정말 이럴 거예요?”
“미안. 날 찾아온 손님인데 돈 주고 사 먹으라고 할 수는 없잖아.”
“지금 내 코가 석 자인데 남 걱정해요?”
“알았어. 다음부터는 하지 않을게.”
“정말이죠?”
“그래.”
* * *
디지털 카스트 황정화 사장과 심용철은 사장실 소파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형! 난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아. 분명 박람회에서 우리가 제일 인기가 많았거든. 근데 어떻게 계약하자는 바이어가 한 명도 없을 수가 있어? 가서 얻은 게 하나도 없이 빈손으로 돌아올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 못 했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용철아! 뭐가 문제일까?”
“문제일 게 하나도 없으니 더 답답한 거야. 인기가 없거나 제품에 하자가 있다면 나도 수긍하겠어. 근데 아니잖아?”
“나도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어. 박람회에 갈 때만 해도 수출 계약 많이 해서 금의환향할 줄 알았는데 당혹스러워.”
“형 자금은 얼마나 남은 거야?”
“얼마 남지 않았어.”
“그럼 어떡해?”
“그래도 몇 개월은 견딜 수 있어. 또 3월 1일부터 MP3 플레이어 출시되니까 숨통이 트일 거야.”
“형!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거지만, 난 갑자기 무서워졌어. MP3 플레이어 출시를 했는데 박람회 같은 결과가 나올까 봐.”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미안해. 형! 혹시 모르니까 오션 개발자한테 투자 좀 하라고 하면 안 되나? 보니까 코리아 오션도 설립했고 한국에 있다며. 오션은 미국 나스닥에 상장해서 대박도 맞아 자금 여유가 많을 거야.”
자신이라고 왜 말을 하지 않았겠나? 했지만 거절당했는데.
“지난번에 왔을 때 했어. 지금은 오션도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하네.”
심용철이 잔뜩 인상을 구겼다.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냐? 난 MP3만 개발하면 장밋빛 인생이 내 앞에 쫙 펼쳐질 줄만 알았는데 현실은 시궁창 길만 계속 있으니.”
황정화 사장은 자신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안감이 슬슬 피어 올라오고 있어 자신감을 많이 잃었다.
“아직 희망을 버리기에는 패가 남았잖아. 사람 앞일은 모르는 거야. 우리 MP3 플레이어 대단한 제품이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제품이고. MP3 플레이어 출시하며 우리도 대박 맞을 수 있어. 자신감을 가져. 우리 희망을 버리지 말자.”
“알았어. 형.”
* * *
한 사무실에서 두 남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남자가 손으로 흘러내린 안경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선배! 우리도 사이트를 개편해야 하지 않겠어요?”
“왜?”
“이대로 가다가는 미래가 없을 것 같아서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이재영이었다.
“뭐가 미래가 없어. 우리 한메일닷 얼마나 잘나가고 있는데. 지금까지 유료였던 이메일 서비스를 우리가 작년에 무료로 서비스하여 하루 트래픽이 세계 순위 안에 들 정도인데. 가입자도 어제 자로 70만이 넘었잖아. 이 정도면 성공한 거 아니야?”
“보기에는 그렇죠. 하지만 이메일 서비스를 무료로 하다 보니 서버 운영비가 급격히 늘었잖아요. 지금이야 괜찮지만, 내년에 가면 분명 자금이 부족하게 될 거예요.”
“지금 광고 수익만으로도 충분히 운영 가능한데.”
“이게 양면의 동전 같은 구조예요. 가입자가 늘면 늘수록 우리한테는 좋지만, 한편으로는 운영 부담이 된다는 거예요. 올해와 내년에는 더 많은 가입자가 늘어날 텐데 지금 광고 수익으로는 감당하기가 힘들어질 거예요.”
말을 마친 이택건이 자료를 건넸다.
“이걸 한번 보세요. 제가 가입자 수별로 서버 운영비를 계산한 것이고 광고 수익까지 보기 좋게 정리한 거예요. 이걸 보면 상황을 대충 파악할 수 있어요.”
이재영이 자료를 받아 보면서 점점 심각한 표정으로 변하였다.
“진짜 그러네.”
“그러니까 제가 이러는 거죠.”
“그럼 어떻게 사이트를 개편하자는 거야?”
“우리가 처음에는 예술 사이트로 시작하여 이메일 서비스도 시작하고 영화 웹진 서비스와 여행 정보, 패션에 관한 서비스를 했지만, 이메일 서비스 빼고는 대중적이지는 않아요. 대중적으로 개편하여 방문 수를 더 늘려 광고 단가를 높여야 해요. 선배 얼마 전에 오픈한 또띠앙 사이트 보셨어요?”
“아니. 못 봤는데.”
“제가 보여 드릴 테니 컴퓨터로 가요.”
“그래.”
두 사람은 일어나 컴퓨터로 이동하였고 이택건이 또띠앙 사이트에 접속하자 모니터에 또띠앙의 첫 화면이 나왔다.
“보세요. 사이트에 뉴스부터 시작하여 쇼핑, 문화, 예술, 교육, 학술, 연예, 오락, 스포츠, 경제, 컴퓨터, 인터넷 등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파트가 전부 다 갖추어져 있어요. 심지어 동호회 파트까지 있어요.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개인 홈페이지 계정까지 무료로 제공한다는 점이에요. 얼마 전에 신규로 오픈한 사이트가 이 정도인데 앞으로는 얼마다 더하겠어요? 지금에 만족하고 정체되어 있으면 우리는 얼마 안 가 도태되고 말 거예요. 변하는 인터넷 환경에 우리도 적응해야 해요.”
놀라며 물었다.
“뭐라고? 개인 홈페이지 계정까지 무료로 한다고? 그럼 운영비가 장난이 아닐 텐데.”
“그만큼 인터넷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겠죠.”
심각한 표정으로 잠시 모니터를 바라보던 이재영이 물었다.
“우리도 이렇게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파트를 만들어 사이트에 오래 더 머물게 하자는 거지?”
“네. 맞아요. 앞으로 이것만이 우리가 살길이라는 거죠. 근데 또띠앙은 검색 서비스도 하지만 엔진을 심마니를 사용하여 경쟁력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어요.”
“그렇다고 우리가 검색 엔진을 개발할 수는 없잖아.”
“당연하죠. 개발 기간도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고 개발한다는 확신도 없죠. 그래서 제가 생각한 건데 오션 검색 엔진을 사용하며 어떨까? 해요.”
“우리가 사이트를 개편하면 경쟁 사이트가 될 텐데 오션에서 사용하도록 해 줄까?”
“그건 모르는 거죠. 우리가 사용료를 내면 사용하도록 해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에요. 안 된다고 하면 그땐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죠. 일단은 제안을 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 오션에 연락해 보자.”
“알았어요. 제가 해 볼게요.”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