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서하연 기자는 순간 특종이라는 생각에 눈빛이 반짝거렸다.
MSS 볼 게이트와 소프트 뱅코 손정우 회장은 대통령 당선인의 초대를 받고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첫 행선지가 젊은 25살의 청년을 만나러 분당까지 갔다는 것은 그 청년이 보통 인물이 아닐 가능성이 크거나 아니면 아주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청년이 누굴까? 한국에 두 사람이 달려가 만날 정도의 인물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해도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옆에서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선배를 바라보았다.
“황 선배!”
푹 숙여있던 고개가 옆으로 돌려졌다.
“왜?”
“선배도 MSS 볼 게이트와 소프트 뱅코 손정우 회장 오늘 방한한 거 알지?”
“알지.”
“이 두 사람이 입국하자마자 달려가 만날 정도의 사람이라면 어떤 인물일까?”
“한국에 그럴만한 인물이 있겠어? 내가 보기에는 없을 텐데.”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선배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진짜 누군가를 찾아갔다.
“만약 있다고 가정하면?”
“글쎄? 그 두 사람이 한국 정치권에 눈치 볼 일도 없을 테니 정치권은 아닐 테고 그렇다고 기업인이라고 해도 기업인들이 그 두 사람을 찾아가지 두 사람이 찾아가지는 않을 거야. 만약 있다면 그 두 사람이 뭔가 꽤 아쉽거나 필요했다는 말일 텐데. 그렇다면 IT 사업에 관련된 인물일 것 같아. 두 사람이 달려갈 정도로 탐나는 뭔가를 개발한 사람이 아닐까? 그거 외에는 생각나지 않네. 근데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거야?”
선배 말을 들어본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커피숍 사장이 25살이라고 하니 어떤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두 사람이 달려갈 정도의 프로그램이 뭘까? 그걸 알아내면 이건 분명 특종이었다.
특종의 강한 향기가 풍기자 입맛을 다셨다.
“갑자기 궁금해져서. 하던 일 해.”
“싱겁기는. 넌 기사 다 마감한 거야?”
“응.”
선배가 다시 기사를 작성하자 서하연 기자는 그 글을 쓴 작성자에게 쪽지를 작성하기 시작하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한 일보 서하연 기자입니다. 님이 쓰신 글을 보고 관심이 생겨서 그러니 연락 부탁드립니다.
02 724-XXXX, 015-333-XXXX.)
* * *
강성중은 천리안에 방금 올라온 ‘재벌 3세의 홀로서기’ 소설을 읽고 있는데 쪽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을 받고 클릭하였다.
자신이 쓴 글을 어떤 기자가 읽고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괜히 사장님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락받지 않고 글을 올린 것도 마음에 찔리는데 괜히 연락했다가 커피숍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
이 어려운 IMF 시기에 시급도 많이 주고 점심도 제공해 주고 손님도 없어 한가해 일도 편한데 어디 가서 이런 알바 자리를 절대 구하기 힘들다.
쪽지를 삭제하고 자신이 올린 글도 삭제하였다.
‘이제 문제없겠지?’
* * *
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가게 되어 아침에 두 사람이 묵고 있는 호텔로 향하였다.
혹시나 내 얼굴이 노출될까 봐 모자에 마스크까지 쓰고 로비 안으로 들어가자 역시나 기자들이 몰려 있었다.
잘했네. 로비 안쪽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20분 정도 기다리자 두 사람이 수행원들과 로비로 내려오자 기자들이 그 둘을 둘러쌌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두 분께서 김도중 대통령 당선인의 초대를 받아 오신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볼 게이트 사장님은 어떤 이유로 초대를 받게 된 겁니까?”
“한국은 지금 IMF를 맞아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 힘든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자 하는 대통령 당선인의 의지로 인해 오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 겁니다. 저 또한 한국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계 각국 기업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당선인에게 어떤 말씀을 하실 예정입니까?”
“그건 나중에 알게 될 겁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면 21세기 한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간청드릴 겁니다.”
“한국에서의 일정이 어떻게 됩니까?”
“나중에 발표하겠습니다. 시간 관계상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손정우 회장이 간이 인터뷰를 그만하겠다고 하자 수행원들이 기자들 틈을 파고 들어가 길을 만들었다.
난 옆에서 기회를 보다가 두 사람이 호텔 밖으로 나가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타려고 할 때 앞으로 나갔다.
“손 회장님!”
내가 부르는 소리에 손 회장이 뒤를 돌아 나를 보더니 나를 막는 수행원에게 막지 말라는 손짓을 하였다.
손 회장 앞으로 갔다.
“안 오는 줄 알았잖아. 연락도 없고”
“온다고 약속했잖아요. 기자들과 수행원 때문에 기회를 본 거예요.”
“타지.”
“네.”
두 사람은 뒷좌석에 탔고 난 조수석에 타자 차가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차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는 대한 일보 서하연 기자의 눈이 반짝거렸다.
차에 탈 때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남자가 어제 PC 통신에서 보았던 글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자와 마스크를 써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젊은 청년인 것은 틀림없었다.
두 사람과 같이 차를 타고 가는 것을 보면 오늘 대통령 당선인을 만나는 데 참석한다는 말인가?
누구지? 매우 궁금하였다.
어제 쪽지를 보냈건만 답장도 없고 글도 삭제가 되었다. 삭제할 거면 올리지나 말지? 왜 올려서?
“저 남자 누구지? 왜 같이 차를 타고 가?”
어느새 선배가 다가와 물었다.
“나도 그것이 알고 싶어.”
“우리도 빨리 쫓아가자.”
“그러죠.”
* * *
인수위원회에 도착하여 바로 당선인을 만났다.
당선인을 만날 때는 모자와 마스크를 벗었다. 다행히도 기자는 없었고 통역만 있었다.
당선인이 일어서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서 오세요. 여기까지 오시느라 감사합니다.”
손 회장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앉아서 이야기하시죠.”
모두가 소파에 앉았다.
당선인이 볼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많이 바쁘실 텐데 한국을 위해 먼 길 오셔서 정말 감사할 뿐입니다.”
“한국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합니다.”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좋은 말씀 많이 부탁합니다.”
“물론입니다.”
이번에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대가 오션을 개발한 진민재 군인가요?”
김도중 대통령은 뉴스에서 많이 보았지만, 실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실제 보니 나이가 더 들어 보인다는 것을 빼고는 뉴스에서 보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나 출세했나? 대통령도 직접 만나 보고.
“안녕하세요? 진민재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진민재 군에 대해 조금 알아봤어요. 미국 시민권자라고 해서 매우 아쉽게 생각했었는데 진성 건설 고 진규천 회장님 손자분이시더군요.”
“네. 맞습니다.”
“어떻게 하다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게 된 건가요? 아까운 큰 인재를 놓친 것 같아 무척 안타깝네요.”
“그렇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나라가 잘못한 거죠. 인재들이 마음 편히 개발할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하여 한국을 떠나게 했으니까요. 언제까지 한국에 있을 예정인가요?”
“당분간 있을 겁니다.”
“우리는 나중에 다시 만나 이야기 나누었으면 해요.”
난 정치권과 엮이기 싫은데.
“알겠습니다.”
이 이후로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손 회장과 볼 게이트하고만 한동안 사담을 나누었다.
김도중 당선인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찻잔을 내려놓고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한국은 위기입니다.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있다면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손 회장도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였다.
“제가 생각하기에 방법은 3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브로드밴드, 두 번째도 브로드밴드, 세 번째도 브로드밴드입니다.”
손 회장의 답변을 들은 당선인이 잠시 생각하다가 옆에 앉아 있던 볼 게이트에게 물었다.
“손 회장의 답변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도 손 회장의 말에 100% 찬성입니다.”
이번에는 나에게 물었다.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요?”
여기서 내가 뭐라고 말해? 뻔한 대답을 할 수밖에.
“제가 아직 어려 사회 경험이 없다 보니 뭐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겠지만 그것도 하나의 방법일 겁니다.”
내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손 회장과 볼 게이트가 하라고 하면 반드시 하겠소. 약속합니다. 근데 브로드밴드가 무엇이오?”
손 회장이 대답하였다.
“쉽게 말하면 초고속 인터넷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선인께서도 인터넷은 아실 겁니다.”
“나도 그 정도는 압니다.”
“당선인께서 아시는 인터넷을 고속으로 바꾸는 작업이지만 단순히 속도만 빠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1,000배나 속도를 높이는 것이 브로드밴드입니다.”
“알겠소이다. 내가 그렇게 꼭 하겠소.”
이미 3년 전에 초고속 정보통신기반 구축 종합 계획을 확정 발표했지만, 오늘 만남으로 인해 대통령 취임 이후 IT 기본법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브로드밴드 구축에 박차를 가해 결국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후 손 회장은 일본에서 말했던 대학 입시에 컴퓨터 과목을 필수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당선인과 만남을 끝내고 나왔다.
손 회장은 오늘을 계기로 한국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을 찾아와 성장전략을 제시하였다.
그러고 보면 손 회장은 여러 국가에 아는 사람이 많은 마당발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스스럼없이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성격이 큰 몫을 하였겠지만, 사업하는 것을 보면 집요하고 당장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먼 미래까지도 생각하는 그런 자였다.
상대가 뭐라고 하던 일단 들이대는 성격이었다. 그러니 성공할 수 있겠지. 나보고 그렇게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한다.
난 사업가 체질은 절대 아니다.
호텔로 돌아가는 도중에 난 중간에서 내려 커피숍으로 향하였다.
* * *
대한 일보 서하연 기자는 대통령 인수위원회 대변인의 발표를 듣고 그 젊은 청년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대변인은 오늘 소프트뱅코 손정우 회장과 MSS 볼 게이트, 오션 개발자 진민재를 만나 유익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발표하였다.
오션 개발자 진민재라면 두 사람이 찾아갈 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였지만 뭔가 2% 부족하였다.
오션이 지금 한창 떠오르는 혜성이라고는 하지만 소프트 뱅코나 MSS에 비교할 정도는 아닌데 왜 두 사람이 찾아갔을까?
선배 말처럼 진민재가 두 사람이 오션처럼 혹할 만한 것을 또 개발한 건가? 그게 아니라면 말이 안 되잖아.
그럼 개발한 것이 무엇일까?
또 미국에 있어야 할 오션 개발자 진민재가 한국에 들어왔다고? 언제 들어 온 거야? 근데 커피숍 사장은 또 뭐고?
설마 진민재가 한국에서 작은 커피숍을 운영할 리는 없을 텐데.
의문이 하나 해소되었지만, 또 다른 의문이 계속 생겼다. 머리가 질끈 아팠다.
‘분당에 있는 커피숍을 다 뒤져서라도 내가 꼭 알아내고 말 거야.’
* * *
다음 날 아침에 커피숍에 출근하여 평소와 같이 커피 한잔을 내려 내 전용석에 앉아 코코아 톡 개발을 하기 시작하였다.
알바생 강성중은 집에서 가져온 신문을 보며 놀라고 있었다.
이제야 손 회장과 볼 게이트가 왜 사장을 찾아왔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