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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의 홀로서기-60화 (60/261)

60화

오늘은 손 회장과 볼 케이트가 온다고 하여 평소보다 일찍 커피숍에 나왔다.

막상 나왔지만 할 게 없었다. 청소도 강성중이 나와 다 해 놓았고 원래 매장이 작아 청소할 것도 없었다.

괜히 일찍 나왔나? 프로그램이나 개발하자. 커피 한잔 내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점심을 일찍 먹고 와 다시 프로그램 개발하는 데 집중하였다.

한창 키보드를 두드리는데 등 뒤로 인기척이 느껴 돌아보니 손정우 회장과 볼 게이트가 모니터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프로그램 개발하는 데 한번 집중하면 정말 옆에서 크게 떠들어도 듣지를 못한다.

얼른 일어났다.

“언제 오셨어요?”

“10분 정도 되었나? 근데 무슨 프로그램 개발하는 거야? 사람이 와도 모를 정도로 집중하고.”

뭔가 먹잇감을 발견한 듯 손정우 회장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못 본 척 볼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오션 개발자 진민재입니다.”

“나의 인수 제안을 거절한 괘씸한 장본인을 한번 보고 싶었는데 한국에서 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소. 만나서 반갑소이다.”

“사업은 서로 이익이 맞아야 하는 법입니다. 좋은 제안 주셨는데 제가 꿈이 너무 커서 만족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한참이나 어린데 말 편히 하십시오.”

“초면인데 그래도 되겠소?”

“동양에서는 어른을 공경합니다.”

“내가 갑자기 늙은이가 된 기분이야. 나 아직 40대 초반이야.”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앉아서 이야기하시죠.”

“그러지.”

두 사람이 옆 테이블에 앉았다.

강성중에게 준비한 귤차를 가져오라고 시키려고 쳐다보니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해는 갔다. TV에서나 보던 미국의 거물과 일본의 거물이 분당에 있는 작은 커피숍에 왔으니.

“성중아!”

“네. 사장님!”

“여기 귤차 좀 갖다 줘.”

“네.”

나도 자리에 앉았다.

“여기까지 오실 필요는 없었는데요.”

손 회장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오션의 개발자가 여기서 뭐 하는 건가?”

“은둔이라고 해야 할까요? 가끔 작가들이 시골이나 한적한 곳에 가서 글을 쓰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입니다.”

“아까 개발하던 프로그램을 말하는 건가?”

“그런 셈입니다.”

“무슨 프로그램인가? 어떤 괴물 같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는 거야?”

약시나 손 회장은 내가 개발하는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았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별거 아닙니다.”

“그런 거 같지 않은데. 얼핏 보기는 했지만, 꽤 복잡하던데.”

볼 게이트도 장단을 맞추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랬네. 나도 궁금해. 무슨 프로그램을 개발하는지.”

두 사람 다 왜 그러는데.

“뭔지는 앞으로 3~4년 후에 알게 되실 겁니다.”

“그렇게 오래 걸리는 프로그램인가? 더 궁금해지네. 설마 컴퓨터 OS는 아니겠지?”

“네. 확실히 아닙니다.”

내 말에 볼 게이트가 안심하는 눈치였고 손 회장이 물었다.

“사람 궁금하게 하지 말고 힌트라도 주지.”

“MSN 메신저와 비슷합니다.”

볼 게이트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니, MSN 메신저와 비슷한데 무슨 개발이 3~4년이나 걸려?”

“개발은 1년 정도 걸리지만, 실제 사용을 3~4년 뒤에 한다는 겁니다.”

“왜? 이유가 뭔가?”

스마트폰에서 사용할 거라는 것을 말할 수는 없는데. 사람 곤란하게 왜 자꾸 묻는 건데.

다행히도 이때 강성중이 귤차를 가져와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커피보다는 차가 좋을 것 같아서 준비했습니다. 드시지요.”

두 사람이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맛을 본 볼 게이트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이게 무슨 차인가? 향과 맛이 만다린 오렌지 같은데.”

“맞습니다. 한국에서는 귤이라고 합니다.”

“그런가? 처음 마셔보는 데 좋아.”

“좋다니 다행입니다.”

“미국 돌아갈 때 가져갔으면 하는데 어디서 사는 건가?”

“제가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고맙네.”

다행이다. 혹시 별로일까 봐 걱정했는데 귤차를 준비한 보람이 있네.

손 회장을 바라보았다.

“제 말이 맞죠? 여기까지 오실 필요는 없었는데요.”

“누가 오션의 개발자가 여기 있다고 생각이나 하겠어? 난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았지. 근데 프로그램 개발할 때는 집중이 많이 필요할 텐데 여기서 일하면 집중이 되나?”

“저는 사방이 조용한 것보다 오히려 집중이 더 잘돼요.”

“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힘들어. 그래도 여기 온 보람은 있었어. 그건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지.”

계속 프로그램에 대해 물고 늘어질 심산인가 보내. 골치 아프게 되었네. 모른 척해야지.

볼 게이트가 차를 음미하다가 찻잔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늦었지만 오션 성공적으로 상장한 거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난 처음부터 오션이 크게 성공할 줄 알았어. 그래서 인수 제안을 한 것이고, 대학생이라고 해서 10억 달러를 제안하면 무조건 오케이 할 줄 알았는데 고민도 하지 않고 단숨에 거절했다고 하여 놀랐어. 그때 돈 욕심이 나지 않았나?”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돈 욕심이 하나도 나지 않았어요. 앞으로 더 벌 자신이 있었거든요. 아마 100억 달러를 제안하셨다면 조금 욕심이 났을 거예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자네를 잘못 생각했었네. 고양이인 줄 알았는데 호랑이였어. 이러니 우리 MSN이 오션 때문에 빛을 못 보고 있지. MSN을 개발하느라 몇 명의 개발자가 얼마 동안 노력했는지 자네는 모르지? 그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단 말이야.”

“제가 조언 하나 드리자면 앞으로 더는 검색 프로그램을 개발하시지 마세요. 똑같이 물거품이 될 겁니다.”

“경쟁자를 제거하겠다는 말같이 들리네.”

“이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사장님도 오션의 가치를 알아보셨으니 쉽게 따라잡을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라서 할 말은 없네. 오션을 어떻게 개발한 건가? 우리 MSS 개발자들이 오션을 분석했는데도 도무지 어떤 알고리즘을 사용했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해.”

“윈도우 OS에 대해 알려주시면 저도 오션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두 손을 들었다.

“알겠네. 항복이네.”

손 회장이 물었다.

“자네 내일 오전에 시간 있지?”

“네. 특별한 것은 없어요.”

“내일 10시에 대통령 당선인 만나러 갈 때 같이 가자고.”

“네? 제가 거길 왜 가요?”

“당선인이 자네도 초대했어.”

이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날 어떻게 알고 또 왜 초대해?

“네? 저를 왜요?”

“그거 며칠 전에 당선인과 통화하다가 자네 이야기를 했더니만 자네 같은 인재를 보고 싶다고 같이 오라고 했어.”

아니, 내 이야기는 쓸데없이 왜 한 거야?

“제 이야기를 했다고요?”

“그렇게 됐어. 당선인도 오션을 알더라고. 작년에 나스닥에 상장한 기사를 보았다고. 오션의 개발자가 한국인이라는 것도 아시더라고.”

가고 싶지 않은데. 난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려고 커피숍에 짱 박혀 있는 건데.

“저 안 가면 안 되나요? 제가 갈 자리는 아닌 것 같아요.”

“자네 같은 인재가 아니면 누가 가겠어? 충분히 자격이 있고 정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되지만 당선인이 많이 실망할 거야. 자네 한국에서 사업하려면 정권과 척을 지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잘 알잖아.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같이 가서 앉아 있다가 몇 마디만 하면 되는 거야.”

내가 거기에 가면 한국에 왔다는 것이 언론에 알려질 텐데. 왜 나를 걸고넘어져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안 간다고 해도 특별히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 것 같은데. 고민이네.

“생각해 볼게요. 그리고 손 회장님은 언제 일본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난 온 김에 며칠 있다가 갈 거야. 이 친구는 저녁 비행기로 미국으로 돌아가고.”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심식사는 하셨어요?”

“바로 여기 오느라 못했지.”

“그럼 식사하러 가실래요? 제가 대접할게요.”

“됐어. 볼 게이트가 산다고 했으니 가자고.”

HQ 컨설턴트 정하나 실장에게 전화해 물어본 보람도 없이 손 회장이 아는 곳으로 가서 식사하고 헤어졌다.

손 회장은 며칠 더 있겠다고 했으니 그때 가면 되겠지. 그러고 보니 나도 차를 한 대 사야겠네.

* * *

알바생 강성중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오늘 커피숍에서 있었던 일이 현실이 아닌 꿈만 같았다.

세상에 미국 볼 게이트하고 일본 손정우 회장이 분당에 있는 작은 커피숍에 온 것만 해도 기가 막힐 일인데 두 사람이 사장을 찾아온 거였다.

사장을 처음 봤을 때 돈 많은 집안의 자식으로 부모 도움으로 커피숍을 차린 것으로 생각했었다.

사장은 커피숍에 와서는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프로그램이나 개발하고 있었고 장사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장사가 안 되어도 걱정하지 않고 태평하여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고 생각하였다.

오늘 일을 겪고 나서는 사장의 정체가 뭔지 갑자기 궁금하였다.

왜 세계적인 갑부들이 사장을 보러 왔는지도 궁금하였다. 서로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른다.

사장의 유창한 영어 실력에도 놀랐다.

도대체 사장의 정체가 뭐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다.

오늘 있었던 일을 자신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나 아까워 컴퓨터를 켜고 천리안에 접속하였다.

게시판에다가 오늘 있었던 일을 올렸다.

제목: 알바하는 커피숍에 오늘 볼 게이트와 손정우 회장 깜짝 방문

(나는 분당에 있는 작은 커피숍에서 알바를 하는데 오후 2시쯤에 여기 있어서는 안 될 사람 두 명이 들어와 깜짝 놀랐습니다.

항상 TV 뉴스 속에서만 보던 사람들이었거든요. 바로 MSS 볼 게이트와 소프트 뱅코 손정우 회장이었습니다.

순간 내가 잘못 봤나? 눈을 비비고 다시 봤지만, 분명히 맞았습니다. 더구나 더 황당한 것은 두 사람이 여기 온 이유가 사장을 만나러 온 거라는 겁니다.

사장은 25살이거든요. 이 두 사람이 왜 사장을 만나러 왔을까요? 난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너무 알고 싶어 여기에 글을 올리는 겁니다.)

글이 올라오자 순식간에 조회가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제목에 낚였네.

-주작 좀 작작 하세요. 그럴듯해야 믿지요.

-그 정도로 놀람? 난 어제 우리 집에 미국 대통령이 찾아왔음.

-난 북한 김정일이 찾아왔는데.

-글쓴이 시력이 안 좋거나 망상증이 있는 것 같음. 병원에 가 보심이 좋을 듯.

-뻥이요. 맛있겠다.

강성중은 댓글들을 보며 인상을 썼다.

전부 자신의 말을 믿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신이 이런 글을 봤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 같았다.

신경 끄고 다른 곳을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 * *

대한 일보 서하연 기자는 기사를 마감하고 기삿거리가 없을까? 천리안에 접속하여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눈에 띄는 제목을 보고 얼른 클릭하였다.

내용을 보니 MSS 볼 게이트와 소프트 뱅코 손정우 회장이 분당에 있는 작은 커피숍 사장을 만나러 왔다는 글인데 평소 같았으면 주작이라고 무시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오전에 MSS 볼 게이트와 소프트 뱅코 손정우 회장이 둘이서 한국에 입국했다는 소식을 입수했기에 이 글이 사실일 가능성이 아주 컸다.

자신도 왜 이 두 사람이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거기에 갔는지 매우 궁금하였다. 더구나 커피숍 사장이 25살의 젊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도무지 서로 매치가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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