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오늘은 손병수와 도쿄 중심에서 벗어나 외곽 관광을 마치고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안으로 들어서자 고진욱이 소파에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네.”
“식사는 하셨습니까?”
“네. 먹었습니다.”
“차 한잔하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아무래도 고진욱 표정을 보니 뭔가를 결정한 것 같아 바로 소파로 가서 앉았다. 이틀 시간을 주었는데 하루 만에 결정했나?
사모님이 귤차를 갖다 주었다.
“드세요.”
“감사합니다.”
찻잔을 들어 마셨다. 향도 좋고 맛있었다. 한국에 가서 커피숍 할 때 귤차도 꼭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말없이 찻잔을 들어 마시던 고진욱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비장한 표정이었다.
“저의 인생에 마지막 기회로 알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됐다. 주먹을 꽉 쥐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막상 결정했지만 제가 잘할지 모르겠습니다. 괜히 한다고 해서 민폐를 끼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잘하실 겁니다.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그만큼 더 노력하면 되는 겁니다. 부족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자각했다면 발전 가능성은 있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항상 스스로 저를 뒤돌아보면 부족한 부분이 뭔지 확인하여 더욱 분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됐어요.”
“그럼 제가 앞으로 뭘 하면 되는 겁니까?”
“할 일이 아주 많습니다. 일본 오션 법인도 설립해야 하고 사무실도 알아봐야 하고 직원도 채용하고 그 이후에 광고 영업도 해야 합니다.”
“저 혼자 다 해야 하는 겁니까?”
“미국 본사에서 이사 한 분이 올 겁니다. 그분과 상의해서 일을 진행하겠지만 실제로 대표님이 주도해서 진행해야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분은 언제 오는 겁니까?”
“글쎄요? 제가 본사에 연락하면 그때 스케줄이 잡힐 겁니다. 일정이 확정되면 대표님에게 연락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동안 제가 사무실이며 여러 가지 알아보고 있겠습니다.”
“그게 좋을 겁니다.”
“그리고 직원은 재일 한국을 채용해도 되는 겁니까?”
“유능한 인재라면 재일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상관은 없습니다. 우리가 자선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고 계셨으면 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내 방으로 올라왔다.
시계를 보니 미국은 지금 새벽이라 내일 아침에 전화해야겠다.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들었다.
(에릭 슈밋입니다.)
“안녕하세요? 진민재예요.”
(안녕하십니까? 고문님!)
“별일은 없죠?”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것이 별일입니다.)
“그런 거라면 매일 생겼으면 좋겠네요. 다름이 아니오라 일본 CEO 정했어요.”
(오, 그렇습니까? 어떤 인물입니까?)
“이름은 고진욱이며 일본 MSS와 소프트 뱅코에 근무했던 자로…….”
자세하게 설명을 하였다.
(듣기에는 꽤 유능한 인재 같습니다. 다만 2년 동안 공백이 있는 것이 좀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고문님이 어련히 잘 정했을 테니 잘 알겠습니다.)
“진행을 빨리하려면 일본에 임원을 빨리 보내야 할 거예요.”
(보낼 인원은 이미 정했으니 비자 수속만 진행하면 됩니다.)
“누굴 결정했는데요?”
(잭 필렌스라고 선마이크로시스템에 있던 자입니다. 제가 선마이크로시스템에 있을 때 눈여겨보던 자로 이번에 스카우트했습니다. 능력 있는 친구라 잘할 겁니다.)
“알았어요. 제가 신임 CEO 연락처 알려드릴 테니 진행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한국으로 가시는 겁니까?)
“할 일이 끝났으니 그래야죠.”
(알겠습니다. 나중에 진행 상황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전화를 끊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네.
* * *
한국으로 돌아왔다.
집 소파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헤드헌팅 회사에서 보내준 한국 법인 CEO 후보 3명의 명단을 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능력 있고 탐이 나는 인재들이었다. 일본에서도 느낀 거지만 유능한 인재가 세상에는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이었다. 누굴 뽑아야 하나? 자료 중 하나를 꺼내 자세히 살펴보았다.
44세의 염중섭, 이자는 이전 생에서 야호 코리아 초대 사장이었던 자였다.
후보 명단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자료를 보고 꽤 놀랐다. 인재는 누구나 알아보는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하나? 이자가 마음에 들었지만, 문제는 현재 코리아 소프트 뱅코 총괄 전무로 근무하고 있다는 거다.
비록 손 회장이 소개해 준 거지만 일본에서도 소프트 뱅코에서 근무했던 고진욱을 일본 법인 CEO로 채용했는데 한국에서도 그러면 많이 미안할 것 같았다.
일본을 떠나오기 전에 손 회장에게 감사 인사하려 전화를 했더니만 곧 한국에서 볼 텐데 무슨 감사 인사냐고 호탕하게 웃었던 것이 생각났다.
자기 회사 인재를 빼간다고 손 회장이 화를 내려나?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면 무시하겠지만 도움까지 받았으니 더욱더 난처하였다.
염중섭 이자를 알게 된 것은 이자가 미국에 와서 한국 야호의 설립 과정과 성장에 대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참석해서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염중섭은 코리아 소프트 뱅코 총괄 전무로 근무하고 있을 때 야호 저팬이 설립되는 것을 보고 한국에서도 설립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미국 야호 본사와 소프트 뱅코에 건의하였다.
하지만 제리 앙은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에 집중하고 있었으며 한국에는 관심이 전혀 없어 반대가 심하였다.
그런 것을 어렵게 힘들게 설득하여 겨우 시작하게 되었다.
야호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시작은 참 비참하였다.
서대문에 있는 허름한 빌딩 5층에 세를 얻어 5명이 용산에서 조립한 10대의 서버를 가지고 야호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자신이 개인적으로 사용하던 삼보 컴퓨터보다 더 가격이 쌌다고 할 정도로 서버도 형편이 없었고 책상도 부도난 업체에서 5천 원을 주고 샀다고 하였다.
누가 혜성처럼 화려하게 떠오른 한국 야호가 벤처 기업보다 못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상상이나 할까?
이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도 강연을 듣고 처음 알았고 꽤 놀랐으니까.
그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시작하여 서비스 첫날 5만 페이지 접속 기록을 기록하였고 첫 달부터 흑자를 기록하였다고 하였다.
한마디로 진흙 속에서 피어난 진주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기적적이었다.
당시 일본 야호는 온갖 지원을 받아 서비스를 시작하였고 첫해에 겨우 흑자를 기록했으니 비교 불가였을 것이다.
이런 능력 있는 인재를 놓친다면 나에게나 오션에 아주 큰 손해였다.
이런 검증된 인재를 놓고 다른 인재를 선택하기에는 참 어렵네.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네.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세요? HQ 컨설턴트 정하나 실장이에요.)
실제 듣는 목소리보다 전화 목소리가 더 예쁘네.
“안녕하세요? 실장님!”
(연락이 없어서 보내준 자료는 잘 받았나 해서요.)
“네. 자료는 잘 받았어요. 제가 일본에 갔다가 며칠 전에 돌아와서 그랬어요. 마침 자료를 보고 있었거든요.”
(나름 신경 써서 추천해 드린 분인데 어떻게 마음에 드시는 분이 있어요?)
“세 분 다 마음에 들어서 고민이 많네요.”
(그럴 때는 고민하지 마시고 직접 만나 보고 판단하시는 것이 좋아요.)
“3명 전부 다요?”
(3분 전부 마음에 든다니 그래야겠죠. 중요한 CEO를 채용하는 건데 당연히 만나 보고 신중히 결정해야죠.)
일단 만나 보고 다시 고민해 볼까?
“그럼 제일 먼저 염중섭 전무를 만나 보고 그다음 분을 만날지 말지 결정할게요.”
(편한 대로 하세요. 그럼 제가 염중섭 전무에게 연락해 일정을 잡을게요.)
“네. 알겠습니다. 부탁드려요.”
(아, 그리고 일본에 가신 일이 혹시 일본에도 오션 법인 설립 때문인가요?)
“네. 맞아요.”
(가신 일은 잘된 건가요?)
“네.”
(알겠습니다. 연락 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그래 지금 고민하지 말고 한번 만나 보고 그때 고민하자. 혹시 알아? 마음이 바뀔지? 더 강하게 원할지? 마음 가는 대로 하자.
* * *
오늘은 계약한 커피숍 인수하는 날이라 아침에 커피숍으로 향하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여사장 혼자 있었다.
“안녕하세요?”
내 인사에 여사장도 환하게 미소 지으며 인사하였다.
“안녕하세요? 좋은 꿈 꾸셨어요?”
“네?”
“오늘이 첫날이잖아요. 좋은 꿈 꿔야 대박 나죠.”
난 대박 안 났으면 하는데.
“아뇨. 개꿈도 꾸지 못했어요.”
“오히려 그게 더 좋을 수도 있어요. 흉몽은 아니니까요.”
꿈보다 해몽인가? 나를 안심시키려는 말 같았다.
“그렇네요.”
“제가 커피머신 사용하는 법부터 알려줄게요.”
“네.”
주방으로 들어가 커피머신 사용법과 음료수 제조법 같은 것을 한동안 배웠다.
“처음이라 어색할 수도 있는데 쉬워서 몇 번 하면 금세 익숙해질 거예요.”
“그래야죠.”
“그리고 이건 쿠폰인데 이거 보고 새로 만드세요. 이게 별거 아닐 수도 있는데 쿠폰제를 시행하면 손님이 다른 곳에 가지 않게 하는 효과도 있고 쿠폰 때문에 일부러 오는 손님들도 많아요. 이건 꼭 하세요.”
“네. 그럴게요.”
“그리고 혼자서 운영하실 건가요?”
“아뇨. 저는 따로 할 일이 있어서 아르바이트생을 쓸 거예요.”
“그러면 이익이 많이 남지 않을 텐데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대충 다 끝난 것 같은데 더 궁금하거나 물어볼 거는 없으세요?”
“없어요.”
여사장이 아쉬운 얼굴로 커피숍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자기 손으로 직접 꾸민 커피숍이 이제는 남의 것이 된다고 생각하자 서운하면서 아쉬운 감정이 많이 드나 보다.
그렇다고 계속하기에는 장사가 안되니 마냥 끌고 갈 수는 없고.
“많이 서운하죠?”
“좀 그렇네요. 저는 못했지만, 꼭 대박 나세요.”
“네. 고마워요.”
“그런 저는 가 볼게요.”
여사장이 나가면서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떠날 땐 미련 갖지 말고 떠나는 것이 좋을 텐데.
여사장이 나가자 먼저 음악을 잔잔하게 틀고서는 커피 한잔을 뽑아 창가에 앉았다. 마시면서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였다.
내일은 컴퓨터를 갖다가 놔야겠네. 인터넷도 신청하고. 참 알바 구한다는 종이부터 붙여놔야지.
집에서 프린트해 온 구인 종이를 유리에 붙였다.
역시나 장사가 잘 안 되는 곳이라 그런지 2시간이 지났지만, 손님이 딱 두 명 온 게 전부였다.
문이 열리고 남학생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아르바이트 구한다는 광고 보고 들어왔습니다.”
인상은 평범하였고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저 정도면 괜찮네.
“그러세요? 저쪽에 앉으실래요?”
“네.”
테이블에 앉았다.
“학생인가요?”
“학생은 맞는데 올해 1월에 군대 제대하였고 9월에 복학할 겁니다. 그래서 그동안 알바를 하려고 하는 겁니다.”
군대를 막 제대했으면 책임감 없이 일하지는 않겠네.
“커피숍에서 일한 경험은 있나요?”
“없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이는 몇인가요?”
“24살입니다.”
다행히 나보다 두 살 어리네. 동갑이거나 많으면 내가 불편한데.
“집은 근처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혹시 오전 9시부터 가능한가요?”
“네. 가능합니다.”
“언제부터 일할 수 있나요?”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할래요?”
“네?”
“힘든가요?”
“아닙니다.”
“좋아요. 시급은 1,600원 드릴게요. 괜찮죠?”
1998년 최저 임금이 1,485원이었지만 IMF로 인해 다들 장사가 안되어 최저 임금도 주지 않는 곳도 많다고 여사장이 알려주었다.
그걸 아는지 남학생의 얼굴이 환해졌다.
더 많이 줄 수도 있었지만, 많이 주는 것도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적당히 줘야지.
“좋습니다.”
“이름이 뭔가요?”
“강성중입니다.”
“앞으로 잘 지내요.”
“잘 부탁드립니다.”
“먼저 일부터 알려드릴게요.”
“알겠습니다.”
나도 오늘 아침에 배워 잘 모르는데 두 시간 만에 남에게 알려주네. 어쨌든 간에 알려주기는 했다.
강성중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6시간 일하는 것으로 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강성중이 외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20대 초반의 어여쁜 여성이 들어왔다. 그래서 큰 소리로 인사한 거야?
“사장님 되세요?”
“아닙니다. 사장님은 저쪽에 계십니다.”
“알겠어요.”
여성이 나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알바 구인 광고 보고 들어왔어요.”
“아, 그러세요. 여기 앉으세요.”
“네.”
여성이 앉았다.
수수한 옷차림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미녀였다. 꾸미면 남자들이 꽤 많이 쫓아다니겠네.
나도 맞은편에 앉았다.
“커피숍 경험은 있나요?”
“네. 6개월 정도 알바 한 적이 있어요.”
IMF라 다들 어려운지 구인 알바 광고 붙인 지 5시간 만에 두 명을 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