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96년 4월 할아버지 장례 때문에 방문하고 1년 9개월 만에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핀란드와 미국에서 성공하여 돌아온 화려한 귀환인가? 쓴 미소를 지었다.
출국장 밖으로 나오자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출국장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저들은 가족이나 친지,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저 많은 사람 중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현실에 괜히 외롭고 쓸쓸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화려한 귀환은 개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쓸쓸한 귀환일 뿐이었다.
괜찮아! 언제나 나 혼자였는데 이런 거로 기가 죽으면 안 되지. 지금은 혼자여도 앞으로는 달라질 테니까.
공항에서 나와 먼저 10일간 단기 렌트한 숙소로 향하였다.
작은 원룸이지만 전에 한 달간 지낸 곳이라 반가웠다.
캐리어를 한구석에 놓고 침대에 그대로 누웠다.
이제 한국에서 한동안 살아야 하는데 뭐부터 해야 하지? 제일 먼저 핸드폰 개통하고 내가 살 집을 구해야겠네.
다음 날 아침 핸드폰부터 개통하고 며칠 동안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아빠에게 받은 유산이 그대로 은행에 있기에 집을 구매해도 되지만 IMF 시기라 집값이 계속 하락하고 있어 일단은 전세로 살다가 나중에 집을 구매하기로 하였다.
혼자라 큰 집이 필요 없지만, 핀란드하고 미국에서 작은 집에서만 살았더니 조금 넓게 살고 싶어 32평 정도의 아파트를 알아보고 있었다.
전세는 많았지만 당장 들어갈 수 있는 곳을 구하다 보니 여러 중개소를 돌아다녀 겨우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해 3일 뒤 입주하기로 계약까지 끝내고 중개소를 나왔다.
손에 든 계약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근데 내가 왜 분당에 집을 구했을까?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서울에다가 구해도 되는데. 계약금까지 건네 계약 해지할 수도 없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무 생각 없이 나도 모르게 발길이 이곳으로 향했던 것 같았다. 왜? 엄마 때문인가?
이게 다 아이노 때문이었다.
그전까지 난 엄마에 대한 미련이 별로 없었는데 아이노가 하도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엄마에 감정 이입한 것 같았다.
엄마를 찾아가서 내가 엄마 아들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내가 홍길동도 아닌데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못하다니?
아무려면 어때? 내가 어린아이도 아니고 인생을 두 번이나 살고 있는데 그런 감정에 휘둘릴 나이도 아닌데.
이사는 미국에서 들고 온 캐리어 두 개만으로 간단히 끝났다.
비어 있던 집이라 이미 도배와 장판은 새로 해 주어 깨끗하였다. 가전제품도 사야 하고 살 게 많았다.
한동안 집 꾸미는 데 시간을 보냈다.
* * *
느지막하게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소파에 앉았다.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다가 쓴 미소를 지었다.
국민들의 자발적인 금 모으기 운동에 관한 기사였고 금을 가지고 온 국민들이 줄 서 있는 사진까지 있었다.
내가 정확히 기억은 못 하지만 이때 모은 금이 200톤이 넘었다고 하였다. 엄청난 양이었다.
이런 아름다운 국민들의 자발적인 행동 속에서도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헐값에 수출하고 다시 비싼 값에 수입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아마도 한국이 다시 IMF 위기를 겪는다면 지금과 같이 온 국민들이 합심하여 금 모으기 운동을 다시는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답답하여 더 보기 싫어 신문을 내려놓고 핸드폰을 들었다.
(디지털 카스트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진민재라고 하는데 사장님과 통화할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잠기 기다리자 전화가 연결되었다.
(안녕하십니까? 황정화입니다. 사장님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나 사장이 아니니까 사장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는데도 나한테 항상 사장님이라고 한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네. 그렇습니다. 오션 상장했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한번 들르려고 하는데 오늘 바쁘신가요?”
(한국에 오신 겁니까?)
“네. 며칠 되었어요.”
(오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사장님께 보여 드릴 것이 있습니다. 언제 오시겠습니까?)
“언제가 편하세요?”
(전 상관없습니다.)
“알았어요. 그럼 오후 2시쯤 갈게요.”
(알겠습니다.)
일어나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다.
* * *
“어떻게 오셨습니까?”
“황정화 사장님과 약속이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네.”
여기도 예전에 왔을 때보다 직원도 좀 늘었고 활기차 있었다.
개발에 성공했으니 다들 대박 날 꿈을 꾸고 있겠지.
하필 다들 힘들어하는 외환 위기 시기라 고가의 MP3를 구매할 만한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주력 구매 세대들이 10대 20대일 텐데 그 세대 부모들이 정리해고나 실직을 당해 학원비며 등록금을 걱정하는 판에 사치품인 MP3가 눈에 들어올까?
지독히 운이 나쁜 황정화 사장이었다.
차라리 2년 후에 개발했으면 상황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아졌을 텐데.
“안녕하십니까?”
황정화 사장이 나와 반갑게 인사하였다.
“안녕하세요? 얼굴이 많이 좋아지셨네요.”
멋쩍게 웃었다.
“그때는 워낙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제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요즘은 마음이 아주 편합니다.”
앞으로 스트레스 더 받을 텐데. 걱정되었다.
“마음이 편한 게 제일이죠.”
“들어가시죠.”
“네.”
차를 앞에 두고 마주 보고 앉았다.
한 모금 마신 황 사장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한국에는 왜 오신 겁니까?”
“일 때문에 왔어요. 한동안은 한국에 있을 예정이에요.”
“오션이 한국에서 서비스 시작했던데 그것 때문입니까?”
“그것도 일 중의 하나예요.”
“주변 사람들 말 들어보면 벌써부터 점유율이 장난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들 오션만 사용한다고 합니다. 오션을 사용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번 사용하면 다른 것은 절대 사용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말 들으니 기분이 좋네요.”
“충분히 들을 자격이 있습니다.”
좋은 말도 세 번 들으면 질리기 마련인데 그동안 너무 많이 들었다. 화제를 바꿔야겠다.
“특허 출원한 것은 언제 결과가 나오나요?”
“변리사 말로는 1분기 안에는 나올 거라고 해서 기다리는 중입니다.”
“일본은요?”
“일본은 한국보다 더 오래 걸린다고 하니 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하고 유럽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거기도 마찬가지네요. 특허라는 게 금세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런 거 같습니다. 검증해야 하니 시간이 걸릴 겁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다음 달 2월 16일부터 2월 20일까지 열리는 독일 하노버 정보통신 박람회에 참가할 겁니다. 세계 최초로 개발된 MP3 플레이어라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것도 과거대로 흘러가네.
“MP3 플레이어 샘플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이번 하노버 박람회에서 각국의 바이어와 수출 계약을 많이 할 것으로 예상되어 본격적인 생산 준비까지 이미 다 끝냈습니다. 다음 주부터 생산을 시작할 겁니다. 잠시만요. 제가 샘플 가져오겠습니다.”
샘플을 가져와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초기 디자인이라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이 시대에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었다.
“괜찮네요. 음질은 어떤가요?”
꽤 자신 있는지 힘차게 대답하였다.
“최상입니다. CD 플레이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직접 들어보시겠습니까?”
“그러죠.”
음악을 들었다.
예전에 들었던 MP3와 다를 바 없었다. 같은 원천기술로 만들어진 거니까.
“괜찮네요. 가격은 책정하신 겁니까?”
“네. 판매가를 17만 9천 원으로 책정했습니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초창기에는 이것보다 훨씬 더 비쌌던 것 같은데. 서한 미디어랑 계약하지 않아 바뀐 건가?
그래도 비싸기는 하였다. 이러면 더 사지 않을 텐데. 아이팟처럼 10만 원대가 좋을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에는 좀 비싼 것 같은데요. 가격을 더 낮출 생각은 없나요?”
“사실 가격을 책정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동안 들어간 개발비며 부품 가격들을 생각하면 최소 20만 원이 넘어야 하는 데 힘든 IMF 시기라 가격을 낮춘 겁니다. 더는 낮추기가 힘듭니다.”
난 특허권에만 투자한 거라 내가 더 뭐라고 할 수는 없지.
“그렇군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여기에 저의 모든 것을 걸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어야 합니다.”
비장한 얼굴로 말하는 황 사장을 보면서 아련한 마음이 들었다. 차라리 내가 결과를 몰랐으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황정화 사장 같은 사람이 제대로 보상을 받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으니. 황 사장을 보자니 IMF 시대의 가장들의 슬픈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았다.
황 사장뿐만 아니라 IMF 시대에 수많은 가장들이 직장에서 쫓겨나와 먹고 살기 위해 자영업에 뛰어들지만 성공하는 수는 극소수이고 많은 가장들은 또다시 쓰디쓴 실패를 맛보게 되는 것이 아픈 현실이었다.
모두가 성공하면 얼마나 좋을까? 행복할까?
하지만 세상 이치가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기 마련. 양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 적다는 게 문제다.
황 사장님! 앞으로 마음고생 많이 할 거예요. 그렇다고 내가 지금 디지털 카스트에 투자하여 관여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때를 기다려야겠지.
“정식 출시는 언제 하나요?”
“현재 계획은 3월 1일부터입니다. 하노버 박람회 결과에 따라 바뀔 수도 있을 겁니다.”
황 사장이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 디지털 카스트에 또 투자하실 생각은 없습니까?”
“자금이 모자란가요?”
“사실 그렇습니다. 96년도에 사장님이 투자하신 돈으로 개발비로 사용하고 남은 자금으로 이번에 공장 생산 시설을 확충하느라 거의 다 쓴 상태입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고 알아봤더니 금리가 20%가 넘어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고 요즘 대출도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른 기업에는 알아보셨어요?”
“물론입니다. 다른 기업에 투자를 받으려고 해도 다들 제 코가 석 자라 투자할 여력이 없나 봅니다. 대기업들도 쓰러지는 마당이니 그 밑의 기업들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96년보다 투자할 기업을 찾기가 더 힘듭니다. 서한 미디어에도 찾아갔더니 말도 꺼내지 못하고 죽는소리만 듣고 나왔습니다. 요즘 한국 경제가 심각합니다. 미국은 괜찮지 않습니까?”
황정화 사장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은 투자할 시기가 아니었다. 좀 더 코너에 몰려야 내가 원하는 조건대로 인수할 수가 있으니까.
대신 그때는 내가 충분히 보상해 줄게요. 조금만 더 고생하세요.
“저도 투자하고 싶지만, 데이터 센터도 건설해야 하고 각 나라 오션 법인도 설립해야 해서 돈 쓸 곳이 많아 올해는 여력이 없어요. 투자한다면 내년 하반기에나 투자가 가능할 것 같아요. MP3 플레이어를 출시하여 반응이 좋으면 자금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거예요.”
“저도 그것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헛된 희망인데. 더 있기에는 마음이 불편하여 있을 수가 없었다. 그만 가 봐야겠다.
“저는 또 갈 곳이 있어서 이만 일어나야 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언제든지 놀러 오십시오.”
“네. 그럴게요.”
디지털 카스트에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답답한 마음과는 다르게 맑았다.
어디로 갈까? 또 갈 곳이 없네. 집으로 가야 하나? 집에 가서 뭐하지? 집 말고 내가 있을 아지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가 추웠지만 걷고 싶어 무작정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저 앞에 커피숍이 보이자 따듯한 커피가 생각났다. 커피숍으로 걸음을 부지런히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