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난 진민재야. 이번에 복학했다고 들었어. 환영해.”
“고마워. 난 세르게이 브릭이야.”
“알아.”
어떻게 아느냐는 눈빛으로 물었다.
“래리 페이즈가 말해줬어.”
“래리를 알아?”
“응. 내가 오션의 개발자거든.”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벌떡 일어났다.
“네가 오션 개발자라고?”
“그래.”
“학교에 오면 만날 수 있겠다 싶었는데 너라고? 와! 오션 개발자를 보면 물어보고 싶은 게 아주 많았는데 그걸 어떻게 개발한 거야?
내가 작년에 휴학하고 검색 엔진을 개발했었는데 오션을 알고부터는 아무 의욕도 생기지 않더라.
이건 어느 정도 높이여야지 도전해 넘겠는데 까마득한 장벽을 보는 듯했어.
어떤 알고리즘을 사용했길래 그런 괴물이 탄생한 거야? 내가 2개월 동안 오션을 분석했는데도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하겠어.
강의 끝나고 시간 돼?”
오션 자체를 분석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그걸 2개월 동안 했다고? 대단하네. 이런 집념이 있으니까 이전 생에서 구골이 탄생했겠지.
일반인들이 본다면 오션이나 다른 검색 프로그램이나 다 비슷하게 생각하겠지만 래리 페이즈와 세르게이 브릭 같은 전문가들은 오션의 가치를 알아본다.
짧은 대화였지만 확실히 래리 페이즈와는 다르게 세르게이 브릭은 활동적이고 사람들에게 친화적이었다.
성격이 극과 극인데 어떻게 두 사람이 같이 개발을 했을까?
남녀도 보통은 성격이 정반대로 만난다고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진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
신기하였다.
“좋지.”
“고마워.”
고마울 것은 없지. 너도 내가 스카우트할 생각이니 친하게 지내야겠지.
강의가 끝나고 세르게이랑 같이 나가는데 마크가 달려와 어깨동무를 하였다.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내가 세르게이를 바라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같이 가자.”
셋이서 학교 안에 있는 커피숍으로 왔다.
각자 커피 한잔 씩 들고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세르게이가 입을 열었다.
“내가 친구 복은 있나 봐. 첫날이라 다들 모르기에 어색할 것 같았는데 나를 반겨주는 친구들이 다 있고.”
마크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세르게이는 왜 휴학한 거야?”
마크의 질문에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사실은 동료와 같이 휴학하고 검색 엔진을 개발하고 있었어. 그러다 오션을 알게 되고...... 그래서 다시 복학한 거야.”
“진 때문에 꿈을 포기한 거네.”
“따지고 보면 그렇지. 근데 벽이 높으니까 질투도 나지 않더라. 내 능력이 여기까지밖에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어.
이제는 안 되는 일에 매달리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와! 진이 여러 사람을 좌절하게 만드네.”
“또 누가 나처럼 좌절했어?”
“너 모르나? 우리 학교 전자공학과 학생이 야호를 설립했잖아.
우리 컴퓨터 공학과하고 전자공학과하고 은근히 자존심 대결이 있었는데 우리가 완승했잖아. 지금 야호 죽을 쑤고 있다고 하더라.
오션을 볼 때마다 얼마나 좌절하고 있겠어. 거대한 벽을 보는 듯하겠지.”
긍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세르게이였다.
“그럴 만도 하지. 내가 검색 엔진을 개발한 것은 아니지만 야호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솔직히 야호가 초반에 왜 인기를 끌었는지 모르겠어. 아마도 제대로 된 검색 엔진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아.
이제는 제대로 된 오션이 있으니까 힘을 못 쓰는 거겠지. 내가 보기에 야호는 앞으로 오래 못가.”
말을 하고서는 나를 바라보았다.
“래리는 회사에 잘 적응하고 다녀?”
“그런 것 같더라.”
“그 친구가 성격이 좀 특이해. 직장 생활할 성격이 안 되는데 그나마 개발자라 다행이지.
개발을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난 당연히 복학할 줄 알았는데 오션에 취직한다고 해서 놀랐어.”
“프로그래머는 자기 할 일만 잘하면 되니까. 남들과 커뮤니케이션이 많지 않잖아.”
“그러니까 래리가 개발자를 하려는 거야. 이제 좀 알려줘라. 오션은 어떤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진 거야? 분석하면서 무척 궁금했거든.”
세르게이 말에 마크도 궁금한지 내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궁금해하는데 말을 안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자세히는 아니어도 간단히 개념 정도만 설명해줘야겠다.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고 개념 정도만 말해줄게. 오션은.......... 그런 거야.”
내 말을 듣고 두 사람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설명을 들어도 지금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겠지.
먼저 마크가 입을 열었다.
“난 들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어찌 강의보다 더 어렵냐? 그걸 생각해낸 진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세르게이가 입을 열었다.
“그런 방식으로도 가능하다는 말은 처음 들어.
가만히 생각해보니 가능할 것 같기도 하지만 그걸 구현하기 위해서는 생각해야 할 변수가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 변수들을 다 해결하고 개발했다니 마크처럼 나도 진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드네. 진작 포기하기를 잘한 것 같아.
안 그랬으면 아까운 시간 허비만 할 뻔했네.”
“아니지. 허비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실력을 쌓을 기회일 수도 있어. 그렇다고 계속 개발하라는 말은 아니야.
그거 아니어도 개발할 것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지. 나도 그 생각에 포기한 거니까.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최선이겠지.”
***
오늘은 에릭 슈밋이 오라고 해서 모처럼 만에 사무실로 향하였다.
그새 못 보던 직원이 있는 것을 보아 직원이 더 늘어난 느낌이었다. 직원이 는다는 것은 회사가 잘 된다는 증거라 나쁘지는 않았다.
래리 페이즈는 뭘 하는지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컴퓨터와 씨름하고 있었다. 나 때문에 운명이 바뀌다니?
바뀐 운명에 잘 적응하니 다행이다 싶었다.
대표실 안으로 들어가자 에릭이 일어나며 맞아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셨어요?”
“앉으시죠.”
“네.”
소파에 앉았다.
“학교가 바쁩니까?”
“아뇨.”
“그런데 뜸하십니까?”
“뭐 좀 개발하느라 정신이 없네요.”
에릭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혹시 저번에 말한 핸드폰 OS를 개발하는 겁니까?”
눈치 하나는 빠르네.
“네. 맞아요.”
“저번에 고문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장기적으로는 핸드폰도 컴퓨터식으로 발전할 것 같기는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벌써 개발하신다니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언제까지 이런 핸드폰을 사용할까요?”
“글쎄요? 10년에서 20년까지는 사용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요근래 들어서 컴퓨터와 핸드폰 발전 속도가 더 빨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그렇기는 합니다.”
“올해 초에 출시된 팜 회사의 PDA 파일럿 1000 아시죠?”
“네. 압니다. 요즘 인기가 많지 않습니까? 저도 일정 관리 때문에 하나 구매할까? 생각 중입니다.”
“핸드폰도 그런 식으로 발전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PDA가 발전하여 핸드폰 기능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PDA가 출시되고 지금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잖아요. PDA 기능에다가 전화 통화 기능만 추가하면 그게 핸드폰이겠죠.
파일럿 1000이 나왔으니 몇 년 안에 더 발전된 PDA가 출시될 테고 그게 곧 핸드폰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에요.
파일럿 1000이 Parm OS 1.0을 사용하잖아요. 그렇듯 저도 그런 OS를 미리 개발하는 거고요.”
내 말에 공감하는지 들으면서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습니다. 그럼 PDA가 발전되어 핸드폰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밀히 따지면 PDA와 핸드폰이 합쳐져서 스마트 폰이 된 것이지. 지금은 PDA가 발전되어 핸드폰이 된다고 이해시키는 것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러니까요. 머지않았다는 거죠. 그러니까 미리 준비하는 거예요.
이건 비밀인데 노카아에서 내년에 출시하는 신제품 중에 PDA 기능을 일부 첨가한 핸드폰이 나올 거에요.”
“그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제가 노카아 대주주거든요.”
전혀 의외라는 듯 놀랐다.
“네? 고문님이 노카아 대주주라고요?”
“제가 핀란드에서 대학을 다녔잖아요. 앞으로 발전 가능성도 크고 유망한 것 같아 투자했었거든요.”
“몰랐습니다. 그럼 고문님은 노카아랑 오션의 대주주이시네요. 그래서 노카아에게 주려고 핸드폰 OS를 개발하셨던 거네요.”
오해할 만도 하지.
“그건 아니에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몰라요. 오션에서 직접 핸드폰을 제조할 수도 있거든요.”
“오션에서 말입니까? 우리 오션은 인터넷 기업 아닙니까? 근데 핸드폰을 만든다고요?”
망고사는 컴퓨터 회사인데도 핸드폰을 만들었는데. 오션보다는 비슷한 업종이기는 하지만 우리라고 못 할 것은 없지.
시간은 아직 충분하니 필요한 회사를 인수하면 되는 거니까.
“못할 것도 없죠. 제가 왜 한국에서 MP3 플레이어 개발 회사에 투자했겠어요. 핸드폰을 만들기 전 단계를 준비하는 거거든요.
그렇다고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만 알고 계시면 될 거예요.”
나를 괴물 보듯 바라보았다.
“고문님은 어디까지 생각하고 계시는 겁니까?”
“글쎄요? 저도 잘 몰라요. 어디까지 갈지는 옆에서 지켜보세요.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요?”
에릭 슈밋은 해맑게 웃으며 앉아 있는 고문을 보면서 놀랐다.
천재라서 그런가? 자신과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도 엉뚱하고 더 멀리 내다보고 준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오션에 별 마음이 없었지만, 고문을 만나보고 뛰어난 통찰력과 참신한 사고에 반해 오션에 오기로 결정한 자신이 너무나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고문 옆에 있으면서 어디까지 갈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았다. 그러려면 자신도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먹을 꽉 쥐었다.
“알겠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재미있게 해주십시오.”
“당연하죠. 그리고 혹시라도 기술력은 있지만, 규모가 작은 전자 업체가 있는지 유심히 살펴봤으면 해요.”
“핸드폰을 생산할 업체를 찾으시는 겁니까?”
“그렇기도 하고 샘플 제작도 해야 하고 필요한 기술도 미리 개발해야 하니까요. 규모가 큰 업체는 인수하기가 힘들어서요.”
“알겠습니다. 알아보겠습니다.”
“급한 거는 아니니까 급하게 찾으실 필요는 없고요.”
“알겠습니다.”
에릭 슈밋의 눈이 불타는 것처럼 이글거렸다. 단단히 마음을 먹었나 보네. 의욕이 충만하면 나야 좋지.
“지금까지 엉뚱한 이야기만 했네요. 저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뭐예요?”
“보고 드릴 것이 있어서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책상에서 보고서를 가지고 와서 나에게 건넸다.
“보십시오. 오션 서비스한 국가 목록과 광고 매출 현황입니다.”
자료를 받아 천천히 읽어 보았다.
“1차로 정한 캐나다와 유럽은 다 서비스를 시작했네요.”
“네. 그렇습니다. 이제 유럽 서비스가 다 끝났으니 그다음은 1차로 정한 아시아 국가와 남미국가에 서비스할 계획이며 제일 먼저 일본을 시작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한국은 언제 하나요?”
“지금 아시아 국가는 일본, 홍콩, 대만, 호주, 한국, 싱가포르 순으로 진행할 예정이라 내년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 같기도 합니다.
먼저 진행을 원하시면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