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스티브 애스틴 교수가 말을 하다가 망설였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지?
“괜찮으니 말씀하십시오.”
“알겠네. 내 말 오해하지는 말게. 다만 조언 정도로만 생각하게.
내가 보기에 오션은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아주 커. 지금 이대로 놔두어도 계속 성장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끝이야.
자네 앞으로의 계획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상업적인 측면에서 보면 꽤 먹음직스러운 먹이야.
내가 보기에는 좀 더 상업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여 오션을 더 키우는 것이 어떤가? 해서 하는 말이야.
물론 자네가 잘 알아서 하겠지만.”
당연히 앞으로 상업적으로 나갈 계획이지.
“저도 오션으로 사업을 할 생각입니다, 다만 아직은 유학생이라는 신분 제약 때문에 잠시 신호 대기하고 있는 중입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아네. 뜻이 있다면 길은 얼마든지 있다네.
예를 들면 자네가 직접 법인을 설립하지 않아도 투자자를 물색하여 투자자가 법인을 설립하고 자넨 투자자와 지분을 나누어 가지면 되는 거네.
지분을 나누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네 지분이 많다면 결국 법인은 결국 자네 소유라는 말일세.
조금 전에도 말한 야호도 투자자의 투자를 받아 법인을 설립하고 사업을 시작했다네.
물론 자본 능력이 된다면 혼자 힘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투자를 받으면 그만큼 투자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사업이 훨씬 수월해진다는 장점도 있다네.
어느 정도 지분을 주어야 한다는 단점도 존재하지만, 사업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 움직이는 거네.
장기적으로 보면 투자를 받는 것이 이익이라는 것을 알게 될걸세.”
교수님의 말씀이 맞는다.
미국은 자유의 땅, 기회의 땅, 상식이 있는 공정 사회라고 알고 있지만, 수십 년 동안 미국에서 살다 보니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다 비슷하다.
이곳 미국도 인맥으로 취업하는 경우가 꽤 많다. 아울러 사업도 독불장군식으로 혼자 잘났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견제와 질시 등을 무마할 정도로 아주 월등히 뛰어나다면 상관은 없지만 혼자서는 성공하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야호나 구골의 성공도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이 무슨 돈이 있길래 초창기 적자를 보면 사업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을까?
그건 가능성을 본 투자자들의 투자를 받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였고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날리지 않으려고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기에 신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거였다.
나 또한 지금은 내 자본으로 오션을 이끌고 있고 이끌어 갈 수는 있지만, 언제까지 노카아 주식을 팔면서 유지할 수 있을까?
노카아 주식이 최고점을 찍으려면 아직도 5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지금은 팔면 팔수록 손해이다.
결론은 나도 투자를 받아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고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그럼 얼마만큼의 투자를 받아야 하며 누구에게 받아야 할까? 문득 MSS가 생각났다.
현재 MSS는 세계 IT 시장의 공룡 같은 존재이며 MSS의 투자를 받는다면 커다란 날개를 단 것처럼 하늘 높이 훨훨 날아 올라갈 수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볼 게이트를 믿을 수 있을까? 한때 실리콘밸리의 악동이라 불릴 만큼 악랄한 사업 수단을 자랑하던 그였는데.
아닌가? 투자하면 우호적으로 변할까? 오션에 마음이 있는 것으로 보아 뺏으려고 할 수도 있었다.
골치 아프네.
“저도 교수님과 같이 투자를 받을 생각입니다.”
“혹시나 고집을 부릴까? 걱정했는데 잘 생각했네.
내가 겪어본 천재들은 자신만이 우월하다는 생각에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모습들이 강했어.
물론 천재이기에 능력이 뛰어난 것은 인정해, 하지만 그건 어떤 특정 분야에서만이지 사업 부분에서까지 그런 것은 아니야.
사업 천재라면 예외이겠지만. 자네가 원한다면 내가 투자자들을 알아봐 줄 수는 있네.”
“저를 생각해주시는 교수님 마음 정말 감사합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교수님에게 도움을 청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오늘 자네를 만나 기쁘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수실 밖으로 나왔다.
오늘 오기를 잘했네. 내가 생각해도 투자는 받는 것이 좋지만 너무 많이 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얼마를 받아야 할까? 투자 금액도 중요하지만 넘기는 지분도 중요하기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근데 투자자는 어떻게 알아봐야 할까? 교수님에게 투자자를 알아봐 달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투자 설명회를 열어야 하나?
MSS에 제안해볼까? 밑져야 본전이기는 한데. 아직 급할 것은 없으니까 서둘 필요는 없었다.
천천히 생각해 보자.
학교를 나와 집에 필요한 것들을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대청소하기 시작하였다.
식탁 의자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며 깨끗해진 집을 보며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큰마음 먹고 대청소를 했지만 언제 또 대청소를 할까? 연중행사가 되겠지.
시계를 보니 지금쯤 아이노가 집에 들어왔을 것 같았다. 떠나기 전날 포옹했던 기억과 뭉클했던 감촉이 다시 꿈틀거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내 손이 어느새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다가 맑고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아이노? 나 진이야.)
(진! 미국은 잘 도착한 거야?)
(응. 잘 도착했어. 지금 집 청소하고 캔맥주 마시다가 아이노가 생각나 전화했어.)
(미국은 어때? 스탠퍼드 대학에는 똑똑하고 예쁜 여학생들 많다고 하던데 예뻐?)
절대 아니다. 양쪽을 경험한 바로는 헬싱키 대학 여학생들이 훨씬 예뻤다.
유럽에서는 스페인이 미녀가 제일 많고 그다음이 핀란드라고 보통 말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미녀는 추운 지방 국가에 더 많은 것 같았다.
러시아도 미녀가 많고 핀란드도 그렇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아직 학기 시작 안 해서 몰라. 지나다니는 여자들 보니 뚱뚱한 여자들이 많네.)
(거짓말.)
(진짜야. 너도 와서 보면 내 말이 맞는다는 것을 알 거야.)
(나도 미국 가고 싶다. 스탠퍼드 대학도 구경하고 싶고.)
이 말은 나중에 하려고 했는데 미국 오고 싶다고 하니 미리 말할까?
(아이노!)
(응.)
(내가 머지않아 미국에서 정식으로 오션 사업을 시작할 생각인데 스카우트하면 미국에 올 수 있어?)
(정말 사업할 거야?)
(그래. 그냥 두기에는 아깝잖아.)
(글쎄? 나도 가고 싶지만.......)
(엄마 때문에 그래?)
(그렇지.)
(같이 오면 되지 않아?)
(방문으로밖에 안 되잖아.)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어딨어? 방법이야 찾으면 얼마든지 있다. 법인 설립 후 아이노와 엄마까지 취업 비자를 내주면 된다.
(엄마도 올 수 있으면 올 거야?)
(그럼 가지.)
(알았어. 아직 시간이 있으니 방법을 찾아볼게.)
(그래.)
(다음에 또 전화할게.)
(응. 안녕.)
***
172 키에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듯 짧은 치마에 검은색 구두를 신은 여성이 걸어가며 나는 구둣발 소리가 복도에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뭔가 불만이 많은 듯 잔뜩 인상을 쓴 여성이 어느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노크를 하였다.
‘똑똑똑.’
문을 열고 들어가자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자가 일어서며 미소로 반겼다.
“레베카 어서 와.”
“팀장님! 저 아직 휴가 이틀이나 남았다는 거 모르세요?”
“알지.”
“그러면서 저를 호출했다고요?”
중년 남자가 소파로 걸어가서 앉았다.
“앉아서 이야기하지.”
남자를 노려보던 여성이 할 수 없다는 듯 소파로 가서 앉았다.
“무슨 일인데 휴가 중인 저를 호출한 거예요?”
“며칠 전에 진민재가 미국에 왔어.”
“네? 진민재가 왜요? 관광 온 거예요?”
“아니! 스탠퍼드 대학원에 입학하러.”
레베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대학 아직 1년 남지 않았어요?”
“정상적이면 그렇지. 1년 조기 졸업했어.”
“근데 진민재가 온 거랑 저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휴가 중인 사람을 불러요?”
“레베카가 다시 진민재를 맡아야 할 것 같아.”
“그 일은 이미 끝난 거 아닌가요? 진민재는 연구 자료가 뭔지도 모르고 아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요.
이미 보고 다 드렸잖아요. 시간 낭비예요.”
“무슨 말인지 알아. 하지만 진 박사의 연구 자료가 사라진 만큼 어딘가에는 존재해. 위에서는 아직도 연구 자료에 미련이 남았나 봐.
진민재가 아빠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진 박사가 연구 자료를 진민재에게 맡겼을 가능성이 아주 커.”
“다른 곳에서 가져갔을 수도 있지 않아요? 한국의 안기부나 일본에서도 관심이 많았잖아요. 또 영국도 있고요.”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수집한 정보로는 어느 곳에서도 연구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어. 확보했다면 벌써 10년 다 되어가는 데 어떤 움직임이라도 있었을 거야.
없는 것을 보면 확보하지 못한 거야.”
“진민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맡겼을 가능성은 없나요?”
“우리가 분석한 결과로는 맡길 만한 곳이 없어. 진 박사의 아버지에게 넘겼다면 진성 그룹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거야.
전 부인은 헤어지고 나서 한 번도 연락도 하지 않았고 만난 적도 없어. 완전히 인연을 끊은 거지.
재혼한 전 부인에게 맡기지는 않았을 테고 그 외 믿고 맡길만한 존재가 진 박사 주변에는 없어.
그렇다면 가장 믿을 수 있는 아들밖에 없다는 결론이야.”
“하지만 진민재는 아무것도 모르는데요.”
“우리가 낸 결론은 진민재가 진 박사에게 뭔가를 받았지만 그게 진 박사의 연구 자료라는 것을 모르고 있을 수가 있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기억을 못 할 가능성이 커.”
레베카는 핀란드에서 보았던 진민재를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키 크고 잘생긴 외모도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보다 순수한 마음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자신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진민재에게 접근하였기에 진민재를 볼 때마다 마음에 늘 걸렸다.
자신은 이런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요원이지만 자신의 첫 임무라 경험도 없었고 이상하게도 진민재에게는 떳떳하지 못한 마음이 들어서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진민재 곁에서 빨리 떠날 것일 수도 있었다.
“팀장님! 제가 다시 진민재를 맡는 것보다는 다른 요원이 맡는 것이 더 낫지 않아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요원을 투입하면 진민재가 경계할 수가 있어. 안면이 있는 레베카가 적임자야.”
“인연을 가장하여 자연스럽게 접근하면 되지 않아요?”
“핀란드에 있을 때 같은 상황이라면 가능하지. 근데 변수가 하나 생겼어. 그래서 그러는 거야.”
“변수라뇨?”
“검색 사이트 오션 알아?”
“알아요. 저도 즐겨 사용하고 있어요. 그게 왜요?”
“그 오션 진민재가 개발한 거야.”
꽤 놀랐는지 두 눈이 커졌다.
“정말요?”
“그래. 알아보니 오션의 가치가 꽤 큰가 봐. 요즘 투자자들의 투자하고 싶은 순위 1순위래. 다만 진민재가 핀란드에 있다고 알고 있어서 움직임이 없는 거지.
미국에 입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투자자들이 많이 접근할 거야. 그럼 더 경계할 수 있기에 레베카에게 맡기려는 거야.”
“와우! 진민재가 아빠를 닮아서 천재인가 보네요.
역시 천재는 다르네요. 다시 보자는 말을 했긴 했는데 제가 다시 나타나면 의심하지 않을까요?”
“선택지는 없으니까. 의심해도 어쩔 수 없지. 레베카가 자연스럽게 넘겨야지.”
“알았어요. 준비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