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볼 게이트는 황당하여 말이 안 나왔다.
조금 전에 비서 실장으로부터 10억 달러에도 오션을 매각하지 않겠다는 보고를 받았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오션이 가치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 증명된 것도 아니기에 10억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은 높게 평가하여 10억 달러를 제시했고 당연히 매각하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예상이 산산조각이 났다.
비서 실장 말처럼 괴짜라서 그런가? 괴짜라도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기에 그 힘을 가진 돈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고 무너지게 마련인데.
대학 3학년이라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런 건가? 대학 3학년이면 세상을 알 나이는 충분하였다.
자신이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그게 뭘까? 기대한 만큼 실망감이 컸다. 결국, 오션을 포기해야 하나?
현재 내년에 WINDOW 95 오픈과 동시에 오픈할 목적으로 개발자들이 검색 엔진인 MSN을 개발하고 있지만 오션을 알고 나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오픈을 늦출 수도 없고 비서 실장 말처럼 야호를 인수하기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의 회사는 컴퓨터 OS가 주력이라 최고의 검색 엔진이 필요 없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은데.
괜히 오션을 알게 되어 신경만 쓰고. 포기할 땐 미련 없이 포기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법, 깨끗이 포기하자.
포기하더라도 어떤 놈인지 그 오션 개발자를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미국 스탠퍼드 대학 앞의 한 맥줏집에서 두 남자가 굳은 얼굴을 한 채 말없이 맥주만 마시고 있었다.
한 남자가 반쯤 남은 맥주병을 들어 한입에 다 마시고는 맥주병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제리!”
“왜?”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사업 계속해야 하나?”
“당연하지. 인제 와서 그만둔다고?”
“나도 계속하고 싶지만, 앞이 안 보여. 미래가 어떨지 눈에 선한데 지금이라도 발을 빼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야.”
“지금까지 받은 투자금은 어떻게 하려고?”
“투자금 때문에 계속 걸어나가면 점점 늪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거야. 투자금은 투자자들을 만나 설득하면 돼.
아직은 사업 초기라 투자금을 많이 사용하지도 않았잖아. 그들도 더 손해 보는 것보다는 여기서 끝내는 것이 덜 손해를 볼 거야.”
제리 앙은 동료인 데이비드와 함께 작년에 개발한 검색 엔진을 취미 삼아 인터넷에 올렸다.
자고 나니 스타가 되었다는 말처럼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인기를 누려 1년 만인 올 1월에는 일일 페이지뷰만 90만을 기록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투자하겠다는 제의가 물밀 듯이 들어와 동료 데이비드와 함께 고민 끝에 돈이 되겠다 싶어 여러 곳의 투자를 받아 사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와 다르게 꿈이 가득하고 희망찬 미래는 얼마 가지 않아 점점 멀어져만 갔다.
강력한 경쟁자인 오션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점점 페이지뷰 수가 떨어져 갔고 5월인 지금은 반 이상이나 줄어든 40만 페이지뷰를 겨우 기록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 계속 떨어져 갈 것이라는 거다.
자신도 오션을 사용해보고 높은 벽을 실감하였다. 자신들의 검색 엔진을 아무리 수정한다고 해도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아예 상대조차 안 되었다.
자신도 데이비드 말처럼 여기서 그만두고 싶지만 오기가 생겼다. 이대로 무너지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말이야 1등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야.
미국에 있는 기업들을 봐.
1등 기업이 있고 2등, 3등, 4등 기업들이 아주 많지만, 그 기업들도 공생하며 자리 잡아 문제없이 잘 운영해 나가고 있어.
처음과는 다르게 우리가 1등이 될 수는 없어도 2등은 될 수가 있어.
2등만 되도 솔직히 우리 입장에서는 성공한 것이 아닐까? 꿈을 조금 작게 가지면 그것만 해도 우리는 성공한 거야.”
답답한지 갈증이 나는지 새로운 맥주병을 따서 반이나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인지 나도 잘 알아.
우리가 애초에 사업할 생각으로 시작한 것도 아니고 취미 삼아 시작했기에 2등이라도 성공했다고 볼 수는 있을 거야.
또 회사에 취직해서 다니는 것보다는 더 나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가 언제까지 계속 2등을 유지할 수가 있을까?
1등을 했지만 얼마 안 가 그 자리를 뺏겼고 또 다른 경쟁자가 나타나 2등 자리를 빼앗을 수 있어.
그렇게 밀리다 보면 어느새 맨 밑바닥으로 떨어져 있는 것을 우리를 발견할 거야. 난 그게 두려워.
그렇다고 우리가 다시 1등 자리를 노릴 만큼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잖아. 너도 오션을 봤잖아.
난 오션처럼 개발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해. 그런 괴물 같은 자들이 세상에는 많을 거야. 그들과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없어.”
“스스로 비하하지 마. 우리 둘의 실력도 남들과 비교해서 뛰어나. 우리도 하면 충분히 할 수 있어. 자신감을 가져.”
“난 현실을 이야기하는 거야.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희망은 망상일 뿐이야.
당장 우리 학교만 봐도 학생들이 오션을 더 많이 사용해. 갈수록 더욱 그럴 거야. 난 이미 마음을 정했어.
넌 어떻게 할 거야?”
확고한 동료의 말에 더는 설득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끌고 갈 수도 없고, 가는 길이 다르다면 어쩔 수 없이 길을 따로 갈 수밖에 없다.
“나는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쉽고 아까워. 하는 데까지 해 볼 생각이야.”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 내가 가진 지분 다 넘기고 난 빠질게.”
“알았어. 지분 정리는 나중에 하고 사업 이야기는 그만하고 오늘은 맥주나 실컷 마시자.”
“알았어.”
맥주병을 들어 건배하고 마시는 두 사람이었다.
*
미국의 어느 대학교 강의실에서 수십여 장이 되는 자료를 한동안 유심히 보던 남학생이 앞에 앉아 있는 남학생을 보며 말하였다.
“제임스! 이 자료들 어디서 구한 거야?”
“인터넷에서.”
“인터넷? 나도 자료를 구하려고 인터넷 서핑을 했는데 없던데.”
“없긴 왜 없어? 내가 인터넷에서 자료 출력한 건데.”
“그래? 이상하다. 어느 사이트에서 검색한 거야?”
“오션이야. 알아?”
“거기 속도 느리잖아. 예전에 한 번 사용하다가 속도가 느려 야호로 옮겼는데.”
“뭐가 느려? 야호랑 별반 차이가 나지 않던데.”
“진짜?”
옆에 있던 여학생이 대화에 껴들었다.
“매튜는 몰랐어?”
“뭐가?”
“오션 작년 12월부터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어. 빨라진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몰라? 몇 개월이 지났는데.
예전의 그 느린 오션이 아니야. 나도 오션만 사용하는데.”
“정말?”
“못 믿겠으면 오늘 오션에 들어가 보던가.”
“그랬으면 진작 말해주지.”
“아는 줄 알았지. 다른 학생들도 오션 많이 사용해.”
“나만 바보가 된 것 같네. 하여튼 자료는 이 정도면 충분하니 자료 수집은 그만하고 빨리 조별 과제나 끝내자.”
“알았어.”
***
컴퓨터를 보며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방금 확인한 바로는 OCEAN.COM의 하루 페이지뷰가 50만이나 되었다.
작년 12월에 서버를 미국으로 옮기고 한 달 후인 1995년 1월부터 방문자 수가 급증하기 시작하여 5월인 지금 드디어 일일 50만 페이지뷰를 달성하였다.
내가 이 정도인데 야호는 얼마를 기록했을까? 궁금하였다.
몇 개월 사이에 진짜 급성장하였다. 처음부터 미국에 서버를 두었다면 지금보다 2배는 더 많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이전 생에서 구골 같은 경우 나라별로 서버를 두지 않고 대륙별로 몇 개 국가를 지정하여 그곳에 데이터 센터를 두고 서비스하였다.
그 생각으로 핀란드에 서버를 둔 거였는데 열악한 인터넷 환경으로 인해 속도가 문제가 된 것이었다.
판단오류였다. 그래도 문제를 알고 해결하여 다행이었다.
3년 후인 98년도에 ADSL이 나올 테니 그때가 되면 구골처럼 대륙별로 몇 개 국가에 서버를 두고 관리해도 된다.
그러고 보면 이상하게도 세계 명품 브랜드나 이름 있는 기업들인 망고나 구골이나 여러 기업들이 유독 한국에 대해서는 갑질을 많이들 한다.
한국은 경제 순위가 세계 10위권이라 이들 기업에 무시당하거나 갑질 당할 만한 규모가 절대 아닌데도 당하고 있으니 참 이해하기 힘들었다.
구골은 한국에 서버를 두지 않고 있다가 2020년에 서버를 두기 시작하였다.
그 이전까지는 한국에서 매년 1조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면서도 서버나 데이터 센터가 없다는 이유로 법인세를 전혀 납부하지 않았다.
그 이후 구골 코리아가 있지만, 데이터 센터를 따로 법인 설립하여 구골 코리아와는 별개로 만들어 세금을 회피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구골은 유독 한국에게만 정부가 계속 거절하는데도 5000대 1의 정밀 지도를 번번이 요청하였다.
다른 국가들 대부분에서는 25000대의 1의 지도를 받아 지도 서비스를 제공하고 중국은 더 낮은 50000대의 1을 받아 서비스하고 있는데 말이다.
경제 규모만 봐도 오히려 큰소리쳐야 할 입장인데 왜 그럴까? 나도 모르겠다.
OCEAN.FI도 계속 방문 수가 급증하고 있으며 특히 독일 도메인인 OCEAN.DE는 성장세가 무섭게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독일이 인구가 많기도 하여 인터넷 인구도 많은 이유도 있지만,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변 국가들에서도 방문을 많이 한 결과였다.
이 정도 추세라면 머지않아 OCEAN.COM을 뛰어넘을 것 같기도 하였다.
뛰어넘든 아니든 COM, FI, DE 모두 방문 수가 계속 많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
“강의 끝! 내일부터 여름 방학이 시작되는데 다들 휴가 계획은 세웠어?”
“네.”
“아뇨. 못 세웠어요.”
의견이 반반으로 나누어지자 매키넨 교수가 미소를 지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방학 동안은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많이 경험했으면 해.
계획을 세운 학생들도 있겠지만 아직 계획이 없는 학생들도 무의미하게 아까운 방학을 그냥 낭비하지 않았으면 해.
여행을 갈 수도 있고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고 또 평소에는 해보지 못한 색다른 일을 한다거나 뭔가를 배우거나 여러분들 상황에 맞게 하면 될 거야.
다들 건강히 잘 지내고 9월에 다시 보자.”
“네.”
나가던 교수가 걸음을 멈추었다.
“진은 잠깐 나 좀 보고 가도록.”
“네.”
왜 또 나를 부르는 거야? 이제 졸업이라 그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국은 언제 갈 건가?”
“졸업식 끝나면 바로 갈 생각입니다.”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심 자네가 대학원도 여기서 다녔으면 했는데 제자가 더 나은 길을 떠난다고 하는데 막을 수는 없고 가는 길 축복해주어야겠지.
가서 열심히 해. 자네라면 박사 학위는 어렵지 않을 거야.”
이전 생에서는 석사 학위였는데 진짜 박사 학위를 따 볼까? 지금이면 가능할 것 같은데.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스탠퍼드 대학 가면 스티브 애스틴 교수님이 계실 거야. 내가 미리 연락할 테니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움을 청해.”
스티브 애스틴 교수님을 아신다고? 어떻게?
“스티브 애스틴 교수님을 잘 아시는 겁니까?”
“사실 나도 헬싱키 대학 졸업하고 스탠퍼드 대학원을 갔거든. 내 스승님이셨어. 지금쯤이면 나이가 많이 드셨을 텐데. 한번 찾아가 뵈어야 하는데.”
매키넨 교수님도 스탠퍼드 대학원 출신이었다고? 처음 들었다. 그럼 대학, 대학원 선배잖아?
“교수님이 선배님이시네요.”
“그런 셈이긴 하지. 자네 같은 천재 후배를 두어 기뻐. 자네는 가서도 잘 할 거야.”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정리할 것도 많을 텐데 어서 가봐.”
“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흐뭇한 미소를 짓는 교수님을 뒤로하고 나왔다.
핀란드에서의 추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