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헬싱긴 사노마트 신문사 건물 앞에 오자 처음 턴 사노매트 신문사 갔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겨우 약속을 잡고 이사에게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으며 설득하려고 온 힘을 다 쏟아부었는데 지금은 100% 정반대가 되었다.
먼저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고 사장에다가 설득도 필요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랑 내 위치가 많이 변했네. 1년 후에는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 상상하자 기분이 좋아 흥이 절로 나왔다.
그래! 이렇게 한 단계씩 계단을 올라가는 거지.
가슴을 쫙 펴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장의 첫인상은 별로 나쁘지 않았고 생각보다 젊어 놀랐다. 40대 초반으로 보였다. 젊은 편이라 인터넷에 관심 갖는 거겠지.
“이렇게 오시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예의도 있네. 보통 언론사 사장쯤이면 거들먹거리거나 상대를 깔보는 경향이 있을 텐데 더구나 상대가 어린 대학생이라면 더욱더.
하지만 그런 모습을 엿볼 수가 없었다.
“바쁘신 보다는 한가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현실적이겠죠.”
“바쁘시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건 튕기느라 그런 거고. 사실 한가해요.
“제가 공부하느라 사이트 관리하느라 바쁘기는 하지만 사장님만 하겠습니까? 제가 양해를 모르는 사람은 아닙니다.”
“이해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찻잔을 들어 마시면서 슬쩍 나를 살피고 있었다.
“요즘 핀란드에서 화제가 되는 오션 사이트에 저도 관심이 있어서 조금 알아보았습니다.
헬싱키 대학 컴퓨터 공학과 3학년 재학 중이며 천재라 1년 조기 졸업도 하신다고 대단하십니다.”
“주위 분들이 저를 높게 평가하는 것 같아 부담스럽습니다.”
“오션의 검색 기능을 따라올 만한 검색 엔진이 없다고 매키넨 교수님이 극찬하실 정도의 검색 엔진을 개발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들을 자격이 있습니다.”
매키넨 교수님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사이트를 오픈하고 기자들이 학교에 취재 나왔을 때 침을 튀기며 나를 천재라고 소개하며 검색 엔진에 대해 극찬을 하여 내가 다 민망했었다.
제자가 잘될수록 스승의 행복도 커지고 제자를 띄워 주는 것이 곧 자신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라는 것을 매키넨 교수님은 잘 안다.
가끔 어떤 사람을 보면 상대를 깔아뭉개면 자신의 위상이 올라간다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자신이 존중받으려면 먼저 남을 존중해야 하는데 자격지심에 그릇된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찬이십니다.”
“검색 사이트에 뉴스를 게재할 생각은 어떻게 하신 겁니까? 그걸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세상은 끊임없이 변할 겁니다.
고정된 관념과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벗어나야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
“제가 그 사이트를 보는 순간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앞으로 사람들은 종이 신문을 보지 않고 인터넷으로 신문을 보지 않을까? 그런 시대가 오지 않을까?
제 생각처럼 정말 그런 시대가 오겠습니까?”
와! 대단한데. 그거 하나 보고 거기까지 생각을 하다니. 생각이 깨어 있네.
“그럴 겁니다.”
“그럼 신문사가 전부 다 망한다는 겁니까?”
고개를 저었다.
“제가 확실하게 단언할 수는 없지만, 종이 신문 판매량이 대폭 줄어들어 어려움이 있겠지만 파산하는 경우까지는 가지 않을 겁니다.
다만 변화에 어떻게 순응하느냐에 따라 그 어려움의 강도가 달라질 겁니다.”
“신문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겁니까?”
“글쎄요? 지금 상황에서는 뭐라고 예단하기가 힘듭니다. 다만 변화되는 시장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겁니다.”
‘변화라?’
혼잣말하더니 곧바로 생각에 잠기는 사장이었다. 내가 보기에 영리하게 변화에 잘 대처하며 풀어나갈 것 같았다.
“우리 헬싱긴 사노마트 신문사도 오션 사이트에 뉴스를 올릴 수 있습니까?”
기다리고 있던 바다. 무조건 환영이다.
아마도 헬싱긴 사노마트 신문사가 뉴스를 올리기 시작하면 다른 언론사도 따라 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러면 사람들이 뉴스를 보기 위해 더 많이 오션에 방문하겠지.
“물론입니다.”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나왔다.
지금은 둥지를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날갯짓이 미숙하여 한 걸음씩 목표를 향해 걸어나가고 있지만 머지않아 날갯짓이 익숙해지면 훨훨 날아 올라갈 것을 의심치 않았다.
‘띠리릭 띠리릭’
얼른 핸드폰을 받았다.
(여보세요.)
(진! 나야 요로마.)
(안녕하세요?)
(여행은 잘 갔다 왔어?)
(네. 추천해주신 곳에 갔었는데 너무 아름답더라고요. 다시 가고 싶을 정도예요.)
(좋았다니 다행이네. 학교야? 집이야?)
(헬싱긴 사노마트 신문사 앞이에요.)
(거긴 왜?)
(오션 때문에요.)
(잘됐네. 나도 할 이야기가 있는데 언제 올래?)
(지금 갈까요?)
(나야 좋지. 기다릴게.)
*
“어서 와.”
요로마 울리라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가끔 나에게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지만 항상 유쾌하고 밝아 요로마 울리라를 만날 때마다 나까지 밝아지며 기분이 좋았다.
이래서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생긴 것 같았다.
인상만 쓰고 분위기가 어두운 사람을 보면 나까지 다운되어 기분이 별로였다.
“핀란드에서 저를 제일 반겨주는 사람은 회장님밖에 없네요.”
“누가 우리 대주주님을 홀대하는데? 나한테 말해. 내가 가서 혼내줄 테니까.”
소파에 앉았다.
“저는 왜 보자고 하신 거예요?”
“요즘 오션이 인기라며?”
“그정도 가지고 인기라고 말할 수는 없죠. 아직 멀었어요.”
“OCEAN.FI는 핀란드뿐만 아니라 북유럽 국가들에서도 사용자가 점차 느는 추세라고 하던데.
이 정도 추세라면 전 유럽으로 퍼지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생각이야.”
내 생각에도 그랬다.
처음에는 핀란드에서 주로 방문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북유럽 국가들에서도 방문이 늘었고 요즘은 유럽 다른 국가들에서도 조금씩 방문 수가 증가하고 있었다.
요로마 말처럼 이런 추세라면 전 유럽으로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야호는 미국을 오션은 유럽을 서로 양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아직 미미하기는 하지만 OCEAN.COM도 미국에서 방문 수가 꾸준히 늘고 있으니까 미국도 오션이 먹어야지.
야호는 내 상대가 되지 않는다. 대학생이 국민학생에게 진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아예 불가능한 일이 아니야. 지금 영국이나 독일 등 유럽 여러 국가에 몇 개의 포털 사이트가 있기는 하지만 오션보다 검색 기능이 다들 떨어져.
스웨덴도 있지만 그건 순 엉터리고.”
전적으로 동감이다.
나도 유럽에 있는 포털 사이트를 전부 확인해 보았는데 하나같이 수준 이하였다. 지금 이 시대에서는 최상이겠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는 거다.
“모든 일들은 순리대로 흐르게 마련이에요. 지금은 지켜봐야겠죠.”
“내가 진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네.
진을 만나기 전에 주주명부를 확인하고 철없는 어린 도련님이 돈 자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
하지만 진을 만나고서는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진의 넓은 식견과 지식, 경제를 바라보는 눈에 무척 놀랐고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
역시나 인물은 어디 가나 그 값어치를 하나 봐. 내가 진을 제대로 봤어.”
무슨 말을 꺼내려고 날 비행기 태우는 거야?
“하고 싶은 말이 뭐세요?”
내 질문에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오션을 더 키우고 싶은 생각 없어?”
있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될 텐데. 지금은 내가 제약 때문에 할 수 있는 선택이 거의 없었다.
“거름 주고 물 주면서 기다리면 알아서 클 거예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더 빨리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시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그 방법이 뭔데요?”
“우리 노카아에서 오션에 투자하면 안 될까?”
노카아 투자라?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장단점이 있기는 하였다.
내가 사업을 시작할 수 없기에 노카아의 투자를 받아 노카아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난 지분만 챙겨도 된다.
단점은 내가 사업하는 것보다 지분이 줄어들게 되는 거고 노카아가 과거와는 다르게 다른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 주 사업인 핸드폰 사업과 통신 사업에 소홀할까 봐 걱정되었다.
스마트 폰이 출시되면서 노카아의 핸드폰 신화가 무너졌지만, 아직도 건재한 이유가 통신 부분 사업에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인데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을 못 하겠다.
어쩌면 오션에 투자하여 회사가 더 성장하여 주가가 더 오를 가능성도 있었다. 고민이네.
고민하느라 말이 없자 요로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뭔가 오해하는 것 같은데 난 오션 전부를 원하는 것은 아니야.”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가 독일이야. 무려 무려 8000만이거든. 500만인 우리 핀란드와는 상대가 안 될 정도지.
그다음이 6천5백만의 영국, 6천3백만의 프랑스야. 그 중 한 국가에서만 우리가 시범적으로 투자하여 오션을 서비스했으면 하는 거야.
노카아에서 투자하여 성공한다면 그 파장이 유럽 전체로 퍼져나가 오션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될 거야.
그럼 진에게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잖아.”
오션 전체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유럽 한 국가만의 투자라 무척 솔깃한 제안이었다.
노카아가 한 국가에 오션 서비스를 시작하여 인지도가 높아지면 다른 유럽 국가들도 오션을 사용하게 되어 유럽 전체를 오션이 먹을 수 있게 된다.
추후 내가 유럽 여러 국가 진출에 매우 용이한 상황이 연출된다는 것이다.
야호 저팬이 비슷한 케이스다.
하지만 야호 저팬은 야호에서 지분을 전부 매각하여 장악력이 없지만 난 지분을 매각하지 않고 보유하고 있으면 장악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어 내 소유나 다름없게 된다.
물론 노카아랑 지분 구조를 어떻게 나누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투자하신다면 지분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50%.”
누가 사업가 아니라고 할까 봐 날로 먹으려고 하냐?
그렇다고 화가 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대주주인 나한테도 이러니 다른 사람한테는 더할 테니 사업을 매우 잘하고 있다는 거니까.
요로마 울리라가 사업을 잘해야 나한테 더 많은 이익을 줄 테니까. 잘하고 있어요.
하지만 잘 생각해 보니 급하게 투자받아서 진행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나 혼자 해도 충분한데 굳이 먹거리를 나눌 필요는 없겠지.
미안하지만 거부하자.
그나저나 내 돈이 나가 나중에 서비스하려고 했는데 인구가 많은 독일 한 곳만 먼저 서비스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