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뭘 그리 열심히 봐?”
어느새 아이노가 다가와 내가 보는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경쟁 사이트 보고 있어.”
뭔가 실망한 것 같이 말하였다.
“난 또 넋을 잃고 뚫어지게 보고 있어 이상한 거 보는 줄 알았지.”
사람을 뭐로 보고? 보려면 아무도 없을 때 편하게 보지 미녀를 옆에 두고 보겠어? 근데 실망하는 저 표정은 뭔데? 뭘 기대한 거야?
“설마 내가?”
“그렇지 네가. 근데 이게 경쟁 사이트라고? 내가 보기에는 허접한데.”
당연히 허접하지. 취미로 올린 거랑 나처럼 웹디자이너까지 고용해 상업적으로 준비한 거랑 질적으로 차이가 나지.
우리 오션 사이트 보다가 이걸 보면 애들 장난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봐도 허접해. 근데 이 사이트가 미국에서 인기를 얻어가고 있나 봐.”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정말? 검색 엔진이 좋은가?”
“아니! 내가 개발한 검색 엔진보다 허접해.”
“근데 인기가 있다고? 그게 말이 돼?”
“응. 현존하는 포털 사이트보다는 기능이 뛰어나니까. 그것도 잠시뿐이야. 우리 오션 사이트를 오픈하면 그 자리를 우리가 차지할 거야.”
“내가 디자인 빨리해야겠네.”
“급하게 힐 필요 없다고 했잖아. OCEAN.COM은 디자인이 끝났기에 바로 서비스 시작해도 되거든.”
“그럼 서비스하지? 왜 안 하고 있어?”
“해야지. 그전에 웹사이트 프로그래밍을 해야 하거든. 그동안 다른 일 하느라 정신이 없었어. 오늘부터 프로그래밍할 거야.”
“오늘부터 하면 언제 끝나?”
“웹사이트 프로그램은 간단해서 2~3일이면 충분 돼.”
“3일 후부터는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거야?”
“이것저것 테스트도 해야 하니까 일주일 정도 걸려.”
“와! 기대된다. 내가 디자인한 사이트를 수많은 사람들이 본다고 생각하니 막 떨리네.”
같이 지내면서 본 아이노는 예쁜 만큼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면도 있었다.
예쁘기에 남자들의 대시를 많이 받았을 텐데도 특별히 만나는 남자가 없어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자기 마음에 드는 남자를 아직 못 만나봤고 자기는 디자인하는 것이 재미있고 즐겁다며 디자인과 연애를 즐기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눈이 높은 건지 아니면 일을 좋아하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아이노의 설레는 모습을 보니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렇게 좋아?”
“당연하지. 그동안 내가 디자인한 작품 중에 처음으로 대중에 공개되는 건데. 이런 기분 진은 몰라?”
나도 내가 개발한 프로그램을 세상에 출시를 여러 번 했지만 떨리거나 설레고 한 적은 없었고 반응만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지금도 OCEAN.COM을 서비스하면 반응이 어떨까? 그게 궁금할 뿐이었다.
지금 이 시대는 인터넷 초창기라 환경이 참 열악하였다.
일반인들은 대부분 전화선을 연결해 인터넷에 접속하였고 기업이나 대학 등 공공기관들은 ISDN이나 B-ISDN 망을 사용하였다.
ISDN 망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전화선보다 속도 면에서 빨라고 B-ISDN 망은 초고속으로 대용량 데이터를 전송하기 위해 개발된 디지털 방식으로 된 통신망이다.
헬싱키 대학도 B-ISDN 망을 랜선으로 연결하여 컴퓨터실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인터넷을 사용한다.
사용량에 따라 전화 요금을 지급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외국은 전화 요금이 정액제인 나라가 많아 하루종일 전화선으로 인터넷을 연결해 사용해도 요금은 같다.
핀란드 또한 전화 요금이 정액제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야호가 1년 만에 일일 페이지뷰 1백만 건을 돌파하는 것은 사실 엄청난 성과였다.
그러니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거겠지.
OCEAN.COM은 1년 후에 일일 페이지뷰가 얼마나 될까?
지금쯤 한국은 천리안, 하이텔을 많이들 쓰고 있겠지. 이전 생에서 나도 많이 사용했는데.
그나저나 내년이 되어 window 95가 빨리 나오면 좋겠는데. 3.1은 사용하기가 진짜 별로였다.
“모르겠는데.”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어? 진도 진이 개발한 검색 엔진을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거잖아.
그럼 막 떨리고 설레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아?”
“난 담담한데.”
“재미없어.”
말을 하고서는 자신의 컴퓨터로 가는 아이노였다. 삐졌나? 장단 좀 맞혀줄 걸 그랬나? 아! 몰라.
나는 웹사이트 프로그래밍이나 해야겠다.
***
“오늘 강의는 이것으로 끝. 리포트는 다음 주까지 제출하도록.”
“네.”
교수가 나가자 가방을 싸고 걸쳐 메고 강의실 밖으로 나가지 남학생 한 명과 여학생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진민재 학생 맞나요?”
“네. 맞는데요. 무슨 일이죠?”
“안녕하세요? 우리는 학보사에서 나왔습니다. 진민재 학생과 잠시 인터뷰를 했으면 하는데 시간 괜찮습니까?”
학보사에서 나랑 인터뷰하겠다고? 왜? 내가 조기 졸업 예정자라 그런가? 해도 상관은 없었다.
“무슨 인터뷰를 하겠다는 건가요?”
“소식 듣고 왔어요. 진민재 학생이 검색 엔진을 개발하여 포털 사이트를 오픈한다고 하던데 맞나요?”
그것 때문이었어? 헛다리 짚었네. 컴퓨터 공학과 학생들은 내가 검색 엔진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을 다 안다.
아마도 누군가가 학보사에 제보했나 보네.
“네. 맞아요. 그 소식이 학보사에도 들어갔어요?”
여학생이 피식 웃었다.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소문은 학보사에서 제일 먼저 알아요. 검색 엔진을 개발하는 대단한 일을 하는데 모를 리가 없죠.
그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곧 오픈하시다고 해서 지금 인터뷰하는 거예요.”
“저는 상관없어요. 인터뷰 어디서 하나요?”
“강의도 끝났는데 강의실에서 해요.”
“좋아요. 들어가시죠.”
다시 강의실로 들어와 앉았다.
내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학생이 날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이성적으로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스타를 바라보는 그런 눈빛이었다.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진민재 학생 소문은 진작에 들었어요.
천재에다가 대학도 조기 졸업을 한다고요. 우리 헬싱키 대학에 천재가 입학한 것은 거의 40년 만이라고 해요.
역시 천재답게 그 어려운 검색 엔진을 개발하시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궁금한 게 참 많아요.”
내가 진짜 천재라면 상관없지만, 천재가 아닌데 자꾸 천재라고 하니까 양심에 찔렸다. 그렇다고 아니라고 해도 믿지 않을 테고.
“그 정도는 아니에요.”
“겸손도 하시네요.”
뭔 말을 못 하겠네.
사람이 긍정적으로 보면 한없이 긍정적으로 보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한없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이 이치이다.
이래서 선입견이 무섭다는 거다. 사람을 볼 때는 절대 선입견을 가지고 보면 안 된다. 그 사람의 참된 면을 놓칠 수가 있으니까.
“인터뷰 시작하시죠.”
“네. 검색 엔진에 대해 간단히 설명 좀 해주실래요?”
“제가 개발한 검색 엔진은................ 으로 아마도 세계 최강의 검색 엔진이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지만 세계 최강의 검색 엔진이라는 것은 알아들었어요.
말처럼 검색에 뛰어난 기능을 한다며 정말 대단한 것을 개발하신 거네요. 헬싱키 대학 학생으로서 자부심을 느껴요.
제가 듣기로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여러 개라고 알고 있는데 검색 엔진은 어떤 언어로 개발하신 건가요?”
“주가 C 언어이고 일부는 C++ 언어로 1년 2개월 동안 개발했습니다. C 언어에 관해 설명할까요?”
피식 웃었다.
웃을 때 보조개가 쏙 들어가는 것이 귀여웠다.
“그렇군요. 설명해줘도 잘 몰라요. 검색 엔진 이름이 뭔가요?”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OCEAN으로 정했습니다.”
“이름 좋네요. 외우기도 쉽고 듣는 순간 시원한 느낌도 받고요. 서비스는 언제부터 시작하나요?”
“다음 주 3월 1일 화요일부터 시작해요.”
“제가 듣기로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하는데요.”
“네. 맞아요. OCEAN.COM은 글로벌 대상이고 OCEAN.FI는 핀란드를 대상으로 한 겁니다.
OCEAN.COM이 3월 1일에 서비스 시작하는 거고 OCEAN.FI는 3월 20일쯤에 오픈할 예정입니다.”
“그렇군요. 사실 우리 핀란드에서는 자체 포털 사이트가 없어서 지금까지 스웨덴의 포털 사이트를 많이 이용하고 있었는데 빨리 오픈하여 핀란드의 포털 사이트를 이용했으면 좋겠어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될 겁니다.
그리고 참고로 말씀드리면 OCEAN.FI는 검색 서비스뿐만 아니라 텍스트 형식으로만 된 뉴스 서비스도 제공할 겁니다.”
“네? 뉴스도 제공한다고요?”
그게 놀랄 일인가? 하긴 아직은 인터넷 초창기라 핀란드뿐만 아니라 북유럽 국가 중에서 뉴스를 제공하는 사이트는 없었다.
신문사도 거의 다 자체 사이트가 없으니까.
지금 당장은 아니고 1990년대 말이 되겠지만 이메일, 지도, 카페, 블로그, 게임, 쇼핑, 영상 등도 지원한다고 하면 놀라 자빠지겠네.
“네. 현재 3개의 언론사와 협약 관계를 맺었고 앞으로 협약 관계를 맺는 언론사가 계속 늘어나 더 많은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겁니다.
그 이후 점차적으로 다른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입니다.”
“포털 사이트에 뉴스라니? 신선하네요. 이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은 건가요?”
“제가 하나 묻죠. 이름이 뭔가요?”
“제가 이름도 말하지 않았네요. 호호호. 마리아예요.”
“마리아는 백화점이나 쇼핑센터 자주 가나요?”
“네. 자주 가요.”
“그곳에 왜 가나요?”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에 가면 모든 것이 다 있잖아요. 편하니까요.”
“바로 그거예요. 제가 만든 사이트는 단순히 검색 서비스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트에 방문하면 뉴스도 보고 여러 가지 욕구를 다 해결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예요.
뉴스는 제 사이트에 제일 먼저 입점하는 상점이에요. 점차 입점하는 상점 수를 늘려갈 계획입니다.”
“사이트를 쇼핑센터처럼 만드시겠다니 발상이 참 신선하네요. 검색하러 온 사람들을 보내지 않고 잡아두겠다는 전략 감동이네요.
역시 천재의 사고방식은 일반인의 수준을 뛰어넘네요. 대단해요.”
이 시대에는 내가 말한 사이트가 아직 없으니까. 내가 인터넷 사이트의 선구자 길을 걷는 거네.
옆에서 가만히 있던 남학생도 마리아의 말에 긍정하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근데 왜 여학생만 질문하고 남학생은 가만히 있지? 아! 여학생이 선배인가 보네. 그래서 남학생은 배우는 거고.
“지금부터 감동하지 마시고 지켜보셨으면 하네요. 천천히 감동의 여운을 느끼셨으면 해요.”
“알았어요. 그리고 다음 질문은.........”
한동안 질문과 대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 인터뷰 너무 감사해요.”
“아닙니다.”
“정식으로 서비스하고 나서 다시 인터뷰 요청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언제든지 요청하시면 응하겠습니다.”
“고마워요. 학보는 다음 주 월요일에 나갈 거예요.”
“알았어요.”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 촬영해도 될까요?”
“그럼요.”
남학생이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찍새였나?
인터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자 아이노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왔다.
“일찍 끝났네.”
“응. 인터뷰는 잘했어?”
“그걸 어떻게 알아?”
“학보사에 내 친구가 있거든. 내가 인터뷰하라고 했지.”
학보사에 말한 게 아이노였어? 과 학생이 아니었네.
“마리아가 친구야?”
“응. 고등학교 동창이거든.”
“왜 인터뷰하라고 한 거였어?”
답답하다는 듯 인상을 썼다.
“이럴 땐 머리가 안 돌아가네.
생각해봐. 당장 다음 주 화요일에 오픈하잖아. 아무리 검색 엔진이 뛰어 난다고 해도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는 거잖아.”
그렇기는 하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알아야 사용할 거 아니야? 인터넷을 주로 사용하는 층이 누구야? 대학생이나 젊은 층이잖아.
학보사에 포털 사이트 오픈한다는 기사가 나가면 헬싱키 대학 학생들은 자주 사용할 거고 그 친구들도 사용할 수 있잖아.
그래서 홍보 목적으로 내가 인터뷰하라고 했어. 마리아도 좋은 기사 하나 얻는 거니까 서로 이익이 맞아 떨어진 거지.”
디자인만 잘하는 게 아니라 마케팅도 잘하네. 팔방미인이네. 꼭 스카우트해야지.
근데 오픈하고 따로 또 광고해야 하나? 아니야! 무료 서비스인데 굳이 돈 드려 광고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느리더라도 소문나면 어느 순간에 폭발할 날이 올 테니까. 느긋하게 생각하자.
“잘했네.”
“반응이 왜 별로야?”
“아니야. 진짜 잘했어. 근데 마리아에게 내 개인적인 이야기도 한 거야?”
“조금.”
뭐라고 이야기했길래 마리아가 날 보는 눈이 그랬던 거야?
“신경 써줘서 고마워.”
“고마우면 오늘 저녁 근사하게 내던가?”
“알았어. 가고 싶은 곳 아이노가 정해.”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