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오늘은 핀란드 신문사인 턴 사노매트에 왔다.
포털 사이트를 오픈하면 기본적인 볼거리로 뉴스는 꼭 필요하기에 신문사와 협약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 당시 핀란드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인터넷이 보편화 되지 않아 사용자도 많지 않았고 인터넷에 대해 관심이 적을 때라 신문사와 약속을 잡는데도 꽤 고생했다.
관심이 없다며 거절하는 것을 겨우겨우 사정해서 만남이 성사되었다.
처음부터 요로마 울리라에게 부탁하면 쉽게 약속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하나씩 배워나가는 거지.
다음 언론사부터는 요로마 울리라에게 부탁해야겠다.
이전 생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개발에만 집중하면 되었는데 사업은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할 것도 많아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어? 힘을 내야지. 힘차게 걸어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니이로 얘르비넨 이사입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마른 몸에 깐깐한 인상의 소유자라 설득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론사와의 첫 만남이라 시작이 좋아야 하는데.
“안녕하십니까? 전화 드린 진민재입니다.”
“앉으시죠.”
“네.”
소파에 앉았다.
“제가 곧 회의가 있어서 시간을 많이 내지 못합니다.”
자기들 좋아지라고 하는 건데 그것도 모르고 말도 꺼내기 전에 철벽부터 치냐? 진짜 사업하기 힘드네.
지금이야 언론사가 갑이지만 포털 사이트가 대중화되면 지위가 역전되어 포털 사이트에 종속되는 관계가 된다.
지금은 어쩔 수 없지. 환경이 변하기 전이니까.
준비해온 자료를 꺼내 건넸다.
오늘 만남을 위해 파워포인트 자료까지 정성 들여 만들었다. 그 정성을 조금이라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는데.
“설명해 드리기 전에 이 자료부터 보시는 것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그러죠.”
자료를 받아보는데 자세히 보는 것이 아니라 설렁설렁 넘기며 보고 있었다. 딱 봐도 나 관심 없다는 티를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대충 보고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정성을 알아주기는 개뿔이다.
“자료는 다 봤으니 이제 설명해 주시죠.”
순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요로마 울리라가 생각났다. 이 자는 기존 것만을 고집하려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생각을 쉽게 바꾸려고 하지 않기에 좋게 말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파격적이며 충격을 줘야만 한다.
물론 감정이 상해 화를 자극하여 역효과를 볼 수도 있었지만 모험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은데 어쩔 수 없다.
“이사님은 턴 사노매트 신문사가 만년 이류인 이유를 아십니까?”
도발적인 내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할 말이 많은 것 같았지만 애써 참는 모습이었다. 대신 언성이 약간 높아졌다.
“지금 놀리려고 오신 겁니까?”
“이사님은 헬싱긴 사노마트 신문사를 뛰어넘고 싶지 않습니까?
제가 알기로 턴 사노매트 신문사는 헬싱긴 사노마트를 넘고자 지금까지 여러 노력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헬싱긴 사노마트 신문사의 높은 벽에 번번이 좌절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그 벽을 넘도록 도와주려고 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대놓고 무시하면 제가 도와줄 마음이 있겠습니까? 계속 이류로 남든가? 뛰어넘던가? 결정은 오로지 이사님의 몫입니다.
저의 제안을 거부한다면 전 바로 가겠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화가 난 듯 나를 노려보았지만, 큰소리치거나 화를 내지는 않았다. 대답할 동안 가만히 기다렸다.
“정말 헬싱긴 사노마트의 벽을 넘을 수 있단 말입니까?”
“기존에 했던 방법들이 통하지 않았다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같은 방법으로는 결과는 똑같을 겁니다.
100% 장담은 하지 못하지만 도움은 될 겁니다. 그러려고 제가 온 겁니다.”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테이블에 있는 자료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벽을 넘고자 하면 다시 제대로 신중히 보십시오.”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자료를 들어서 보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건성 건성이 아닌 신중히 자료를 읽었다.
어지간히도 헬싱긴 사노마트의 벽을 넘고 싶었나 보네. 그러니 화를 낼만 한데도 참고 내 말대로 하니.
진작에 그러지. 내가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데 그 값어치는 해야지.
“그러니까 우리 신문사의 기사를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겠다는 말입니까?”
“맞습니다.”
“무료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손해 보는 일이 아닙니까? 인터넷에서 기사를 읽으면 누가 돈을 주고 종이 신문을 사서 보겠습니까?
이건 생각하고 말고도 없이 바보 같은 짓입니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헬싱긴 사노마트의 벽을 넘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런 반응이 나올 것 같아서 첫 상대를 턴 사노매트 신문사로 정한 거였다.
이류 신문사도 이런 데 일류 신문사는 내 말을 아예 거들떠보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컸다. 힘든 상대를 상대하기보다는 쉬운 상대 먼저 공략하는 게 그나마 쉬우니까.
담담히 대답하였다.
“바로 앞을 보지 말고 멀리 보며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자만이 달콤한 열매를 맛볼 수 있는 겁니다.
앞으로 세계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빠르게 변할 겁니다. 그 변화의 시류에 맞게 편승하지 않으면 도태될 겁니다.
언제까지 종이 신문이 주류가 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앞으로 종이 신문 퇴조라는 시대적 흐름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 예로 노카아를 보시면 잘 아실 겁니다. 기존 것만을 고집하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금은 그 잘못을 깨닫고 새로운 변화에 맞게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고 있지 않습니까? 핸드폰 또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지 않았습니까?
그렇듯 변화에 답이 있는 겁니다. 그 변화의 중심이 인터넷과 디지털이라는 겁니다.
100년의 긴 역사를 가진 헬싱긴 사노마트를 종이 신문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인터넷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겁니다.
새로운 변화인 인터넷마저 준비하고 있지 않다가 인터넷에서도 만년 이류로 남을 수 있다는 겁니다.
헬싱긴 사노마트가 준비하고 있지 않을 때 한발 먼저 준비를 하여 일류로 나가야 하는 겁니다.”
내 말을 잠시 곰곰이 되새기다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신문사에서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면 되지 뭐하러 그곳에 우리 기사를 올려야 한다는 겁니까? 안 그렇습니까?”
“물론 턴 사노매트 신문사의 인터넷 사이트도 개설해야만 할 겁니다.
우리 사이트는 포털 사이트로 사람들이 무한한 인터넷 정보의 무한한 바다에서 자신이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검색이 필수입니다.
우리가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또 핀란드가 아닌 다른 국가의 사람들도 우리 사이트에 접속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이때 턴 사노매트 신문사의 기사가 있다면 노출이 그만큼 많이 되어 턴 사노매트 신문사에도 이익된다는 겁니다.”
“좋습니다. 우리 신문사야 그런 유리한 점이 있겠지만 우리 기사를 실어 얻는 것은 무엇입니까?”
“검색을 위해 우리 사이트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겠지만 기사가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의 방문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트래픽 수를 증가하는 것이 목적이며 인지도를 얻게 됩니다. 우리는 그게 이익입니다.
이는 턴 사노매트 신문사와 우리가 서로 이익을 보자는 윈윈 전략입니다.”
“사이트에 우리 신문사의 기사만 올라가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다른 언론사의 기사도 올라갈 겁니다.”
“그럼 우리가 얻는 이익이 줄어드는 것이 아닙니까?”
“한국에 다다익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많을수록 좋다는 뜻입니다.
같은 업종이 한곳에 모여 있으면 얼핏 보기에는 서로 경쟁이 치열해 손해 볼 것 같지만 사실은 더 이익이 된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실제 그렇기도 합니다. 이는 같은 업종이 한곳에 모여 있기에 더 많은 손님들이 몰려오기에 가능한 겁니다.
이렇듯 여러 언론사의 기사가 모여 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사이트를 방문하게 되어 언론사도 이익이 된다는 겁니다.”
표정을 보니 내 말에 조금은 설득이 된 것 같았지만 여지를 남겨놓았다.
“알겠습니다. 이 문제는 저 혼자 결정한 사항은 아니라서 내부 회의를 걸쳐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자료는 놓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부디 긍정적으로 결정해 주시길 바랍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
“저기! 기사를 제공하기로 한 언론사가 있습니까?”
“턴 사노매트 신문사에 처음으로 방문한 겁니다. 그렇기에 기회가 많을 수 있습니다. 좋은 기회가 올 때는 망설이지 말고 잡아야 합니다.
버스 떠난 뒤에 손을 흔들어봤자 그때는 늦은 겁니다.”
“알겠습니다.”
신문사를 나오자 심력을 너무 많이 쏟았는지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이 축 처졌다. 이걸 몇 번이나 더 해야 하나?
불러 모아놓고 한 번에 하면 좋은데 문제는 오라고 하면 오겠냐는 거다. 안 올 거다.
92년도에 노키아에서 출시한 최초 디지털 1011 모델 핸드폰을 들었다. 명색이 노카아의 대주주인데 비싸도 핸드폰 하나는 들고 다녀야지.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 웬일이야?)
(부탁이 하나 있어서요.)
(진의 부탁이라면 무조건 들어줘야지. 뭔데?)
(지금 턴 사노매트 신문사에서 나왔거든요. 뭐냐면..........)
턴 사노매트 신문사와 약속 잡을 때 고생했던 것을 설명하였다.
(그래서 언론사 관계자들 만날 수 있도록 약속 좀 잡아주세요. 제가 약속 잡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렇겠지. 알았어. 내가 약속 잡아줄게. 우리 노카아가 언론사들의 주요 고객이라 어렵지는 않을 거야.
턴 사노매트 신문사에 간 일은 잘 된 거야?)
(공을 넘겼으니 이제는 기다려야죠.)
(약속 잡을 때 내가 잘 설명도 해줄게.)
(고마워요.)
(어디랑 약속 잡으면 되는 거야?)
(파보 라우티오 신문사하고...........)
***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며 꽤 마음에 들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이노가 디자인 센스가 좋네.’
약간 흐릿한 푸른색 바다 배경에 검색창이 중간에 있고 그 위에 OCEAN이 멋들어지게 쓰여 있고 글자 사이에 물결 모양이 겹쳐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기에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