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난 뭐 하고 있었을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1년 넘게 요로마 울리라는 고생도 많이 했고 한 일도 많았다.
그걸 옆에서 똑똑히 본 나는 노카아 신화가 그냥 운 좋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만큼 흘린 땀과 노력이 거름이 되어 긴 겨울이 지나고 따듯한 봄날을 맞이하여 화려하게 꽃을 피운 거였다.
회장이 되고 제일 먼저 진행한 것이 기존에 하던 사업들을 매각하는 일이었는데 이사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대주주인 내가 백기사가 되어 힘을 실어 주어 무사히 매각하는 데 성공하였다.
33%의 지분을 가진 대주주의 힘은 예상보다 강했다.
힘으로 찍어 누르듯 지분으로 반대를 잠재우고 요로마 울리라에게 양 날개를 달아주었다.
매각하는 과정에서도 어느 기업에 매각할지? 매각 대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마음고생도 많이 했었다.
매각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통신 장비 제조와 핸드폰 연구 개발에 착수하였고 작년에 세계 최초로 GSM폰(디지털 기반 핸드폰)을 출시하였다.
노키아는 이 당시 모토로라가 주름잡고 있던 아날로그 핸드폰이 아닌 2세대 이동통신 시장을 먼저 공략했고, 이 모델로 인해 훗날 세계 최고의 핸드폰 제조사로 올라가는 역사적인 기틀을 마련하였다.
캔디바라고 불리는 바 형태의 디자인을 확립한 모델이기도 하다. 그 이후 바 형태의 핸드폰이 한동안 주류를 이루었다.
“핸드폰도 출시했잖아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별로 마음에 안 들어. 디자인도 별로고 뭔가 빠진 것 같이 아쉽단 말이야. 내 꿈은 아주 커. 핀란드 시장에서만 만족할 수는 없어.
마음은 저 넓은 세계 시장을 향해 마음껏 달려나가고 싶은데 두 다리가 도움을 안 주네.
후발주자로서 선발 주자를 따라잡으려면 뭔가 획기적으로 내세울 만한 것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부족해.”
“세계 최초로 디지털 기반 핸드폰을 출시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예요. 그만큼 시장을 앞서나간다는 거죠.”
“그거로 만족할 것 같았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지.”
내 앞에서 밝은 표정을 하고 있지만, 왠지 얼굴이 어두워 보이는 게 연구 개발에 벽을 만나 진척이 없어 마음고생을 하는 것 같았다.
그 마음 나도 잘 안다. 뭔가를 빨리 보여주고 싶은 조급한 마음, 자신을 비난하고 비웃는 자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이것 봐라! 내 선택이 맞았지?’라며 소리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뿐이지 현실은 아득할 것이다. 나도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감정이었다.
동병상련의 마음일까? 힌트를 줄까?
그러면 그만큼 신제품 개발이 앞당겨질 테고 노카아가 세계 제일의 핸드폰 회사로 성장하는 시간도 앞당겨질 것 같았다.
내가 알기로 다음 제품은 2년 후인 1995년도에 출시를 하게 된다.
“제가 조언을 해도 될까요?”
“대주주 말씀인데 당연히 되지. 경청할 테니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말해줘.”
“시작은 아주 좋아요. 기존 1세대 이동통신을 뛰어넘어 세계 최초로 2세대 이동통신의 문을 연 거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거기까지예요. 디지털 핸드폰의 강점이 없다는 게 단점이죠.
사람들은 사용하는 방식이 똑같기에 이 핸드폰이 아날로그 방식인지 디지털 방식인지 잘 몰라요.
그럼 아날로그가 하지 못하는 디지털만의 강점을 내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이 시대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이가 있거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보통 기존 사고방식에 젖어 들어 있어서 새로운 것이나 기존과는 조금만 달라도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요로마 울리라 달랐다.
내가 요로마 울리라를 좋아하고 높게 보는 것이 새로운 것에 대한 것에 거부감이 없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또 직책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걸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새로운 것을 늘 생각하며 갈구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들이 바탕이 되어 노카아의 신화를 만드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지금도 내 말에 흥미가 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하고 있었다.
“당연하지. 사실 그 문제를 가지고 연구원들이 고민을 많이 하고 있거든. 진이 생각하는 디지털만의 강점들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역시나 내 감이 맞았다.
“아무리 디지털이라 해도 현재의 기술로 하나의 핸드폰에 많은 기능을 넣을 수는 없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소프트 키와 스크롤을 적용한다면 편이성이 뛰어날 거예요. 또 발상의 전환을 하자면 핸드폰은 꼭 통화만 하라는 법은 없어요.”
“통화 말고 또 할 게 있어?”
“텍스트를 보내는 기능을 추가하는 거예요. 바쁘고 간단한 내용만을 전할 때 굳이 통화하려면 번거롭잖아요.
더구나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다시 걸어야 하고요. 텍스트 전송기능이 추가된다면 편리할 거예요.
제가 말한 3가지 기능들은 아날로그 핸드폰에서는 구현하지 못하는 가장 강력한 장점이 될 거에요.
이 기능을 추가해서 세계 시장에 출시한다면 핸드폰 시장에서 지각 변동을 일으키게 될 것은 자명하겠죠.
핸드폰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모토로라에 경쟁력이 있을 거예요.”
내 말을 들은 요로마 울리라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생각하도록 조용히 있었다.
실제 이 기능을 탑재한 노카아 핸드폰이 출시 되면서 2세대 이동통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세계 핸드폰 시장에서 노카아가 두각을 나타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생각을 끝낸 요로마 울리라의 표정이 살길을 찾은 듯 기쁨과 환희에 차 있었다.
“진 고마워. 번번이 도움만 받네.”
너무 고마워하니까 괜히 미안해졌다.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과 연구원들 아이디어이니까요. 다만 시간을 조금 앞당긴 것뿐이에요.
“노카아가 잘돼야 제 주식 가치가 오르죠. 그러니 제 일이기도 해요.”
“주주의 재산을 증식시키기 위해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지.”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순리대로 풀어가세요.”
“알았어.”
“그리고 누가 저한테 시민권을 취득하라고 권유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말? 나야 무조건 찬성이지. 사실 나도 진 같은 인재를 다시 한국에 보내기가 아까웠거든.
시민권 취득을 권하고 싶었지만 조심스러웠어. 어떻게 시민권 취득 생각을 한 거야?”
“제가 지금 개발하고 있는 검색 엔진 개발이 거의 끝나가거든요.”
“벌써?”
“네.”
“역시 진은 달라. 나도 분발 좀 해야겠네.”
가끔 보면 날 은근히 경쟁상대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분야도 다르고 난 대주주인데.
현실에 안주하고 나태해지려는 자신을 자극하기 위해서인가? 그럼 나만 한 상대는 없긴 하지.
이해해 줄 테니 열심히 자극받아 회사를 빨리 성장시켜 주세요.
“내년에 서비스하려는데 비자 등 걸리는 것이 많아 애로점이 있더라고요.”
“그럴 거야. 내가 도와주고 싶어도 비자 문제는 해결할 수 없어 안타깝네.
대신 만약 시민권 신청할 거면 내가 추천서는 써줄게. 교수님들에게도 추천서 받아. 그럼 수월하게 취득할 수 있을 거야.”
“생각해 볼게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게?”
노예처럼 열심히 일해서 제 재산을 불려주어야죠. 일할 시간 계속 뺏을 수는 없죠.
“바쁘시잖아요. 저도 할 일도 있고요.”
“알았어. 조만간에 저녁 같이 먹자. 세라가 진을 무척 보고 싶어 해. 그런 거 보면 딸 키워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생각을 해.”
세라는 요로마 울리라의 10살짜리 딸이다. 가끔 요로마 울리라 집에 놀러 가면 날 잘 따른다.
“잘 있죠?”
“그럼. 연락할게.”
“네.”
*
프로그래밍을 열심히 하다가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일어나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하나 꺼내 의자에 앉았다.
맥주를 마시며 내가 할 일들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정리해 보았다.
지금까지는 검색 엔진 개발에만 몰두했지만, 곧 개발이 끝나면 어떤 식으로 운영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잘했다고 소문날까?’
제일 먼저 도메인은 뭐로 정하나? 구골로? 아니야! 남이 했던 걸 따라 할 필요는 없지. 뭔가 한국적인 것으로 정하면 좋을 것 같은데.
아! 고구려(Koguryo)로 할까? 고구려인들의 진취적이고 강인한 기상처럼 세계로 널리 뻗어 나가라는 뜻으로 좋을 것 같은데 고민이네. 뭐가 좋을까?
사이트 구성은 어떻게 해야 할까? 구골처럼 검색창만 있게 하나? 아니다. 난 무료 서비스만 할 생각은 없었다.
구골도 처음에는 적자로 고생했는데 그 절차를 그대로 밟을 필요가 있을까? 처음부터 무료와 수익을 낼 수 있는 두 가지 구조로 운영할 생각이었다.
예를 들어 com은 검색창만 있어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국가별로는 co.kr 또는 com.kr 이런 식으로 도메인 주소를 두고 야호처럼 수익을 내는 방식으로 운영하면 된다.
이는 검색 엔진에 자부심이 있기에 가능한 거였다.
수익을 내려면 볼거리가 많아야 네티즌의 방문 또한 많을 텐데. 볼거리는 뭘 추가해야 할까? 추가하려면 할 게 너무 많았다.
지금은 인터넷이 활성화되지도 않았고 전화선으로 모뎀을 통해 인터넷 연결하는 경우도 많아 아직은 많은 서비스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 처음에는 기본적인 것만 구성해서 오픈하고 차차 늘려나가는 것으로 하자.
그래픽 디자이너도 사이트 관리할 직원도 채용해야 하고 이것저것 신경 쓸 게 은근히 많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