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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의 홀로서기-16화 (16/261)

16화

드디어 끝이 보였다.

지난 일 년 동안 혼자서 고생한 것을 생각하자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은 아니고 해냈다는 성취감에 기분이 좋았다.

그놈의 완벽주의 때문에 사서 고생을 하였다. 조금 쉽게 갔다면 고생하지도 않고 더 빨리 끝났을 텐데.

시간이 흘러 지금은 1993년 11월이며 난 헬싱키 대학 컴퓨터 공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어학원을 몇 개월 다니고 본 시험에서 운이 좋게 합격하여 미국 스탠퍼드 대학과 헬싱키 대학을 놓고 고민한 결과 나에게 어느 대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에 현실적인 선택을 하였다.

학비가 비싼 스탠퍼드 대학보다는 무료인 헬싱키 대학이 더 좋았고 핀란드에 있다 보니 인종 차별도 그나마 덜 받았고 무엇보다 내가 대주주라 노카아를 이용해 내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결정하는데 큰 작용을 하였다.

에밀리는 4개월 정도 어학원을 다니다가 갑자기 미국에 일이 생겼다면 나에게 꼭 다시 보자는 말을 남긴 채 미국으로 돌아갔다.

다시 핀란드로 돌아오겠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나중에 내가 어디 있든 간에 나를 찾아오겠다는 말인지? 헷갈렸다.

하여튼 그건 나중 일이고 일이 생겼다는 것은 변명이고 나에게 알아낼 것이 없다고 판단하여 돌아간 것 같았다.

나에게 궁금증만 남기고 떠나간 수상한 그녀였다.

대학에 입학하고부터 혼자 검색 엔진 개발을 시작하여 1년 2개월 만에 개발 완료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원래는 98년도에 오픈하는 구골을 상대할 생각으로 97년도까지 개발하여 오픈할 계획이었지만 내년 94년도에 미국에서 야호가 오픈하기에 먼저 야호부터 찍어 누를 생각이었다.

내가 개발하는 검색 엔진은 2028년에 내 주도로 개발한 최신의 검색 엔진이기에 최소한 2028년까지는 이보다 더 뛰어난 검색 엔진이 존재하지 못한다.

98년도에 오픈하는 구골의 검색 엔진도 내 검색 엔진에 비교하면 국민학생과 대학생 정도의 차이가 난다.

그렇기에 쉽게 버전이 낮은 검색 엔진을 개발해도 충분한데 성에 차지 않아 최신의 검색 엔진을 개발하게 되었다.

검색 엔진의 승패는 크롤러와 논리적 색인에서 결정된다.

검색 엔진은 사용자가 검색창에 ‘외환위기로 재벌이 되었다.’를 입력하고 검색하면 그때 서야 전 세계에 있는 수백억의 웹페이지를 검색해서 화면에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그렇기에 자체 데이터베이스에 수시로 자동으로 전 세계에 있는 수백억의 웹페이지를 검색하여 논리적 색인을 만들어 저장한다.

이를 크롤러라고 하며 얼마나 논리적으로 색인 처리를 하느냐에 따라 사용자가 검색할 때 빠르게 원하는 정보를 더 많이 보여줄 수 있다.

가끔 검색에는 나왔는데 클릭하면 없는 페이지로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페이지가 삭제된 것이고 크롤러 과정에서 제대로 업데이트가 되지 못한 것이다. 한마디로 오류이다.

이렇듯 내가 개발한 검색 엔진은 크롤러와 색인 처리가 효율적이며 매우 뛰어나 한마디로 세계 최강이라는 것이다.

잘 나가던 야호가 구골에게 밀렸듯이 야호가 오픈해도 나한테 밀리는 것은 당연하고 구골도 상대가 안 되기에 과거처럼 야호나 구골의 신화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나의 신화가 장대하게 시작될 것이다.

“진!”

조금만 더 하면 되는데 나를 부르는 소리에 집중이 깨지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고개를 돌리니 동급생 니로가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웃는 얼굴에 어찌 침을 뱉으랴?

“왜?”

“진은 맨날 무슨 프로그래밍을 열심히 하는 거야? 내가 봐도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어.”

당연히 알 턱이 없지. 검색 엔진이라고 말하면 알려나?

“인터넷 검색 엔진을 개발하고 있거든.”

놀라면서 감탄하는 얼굴을 하고서는 부러운 듯 말하였다.

“와! 진은 천재라 그런지 우리랑은 차원이 다르네. 난 간단한 학점 관리 프로그램도 헤매는데 검색 엔진을 개발하다니? 대단하네.”

“너도 열심히 하면 돼.”

“내가 개발하는 학점 프로그램, 컴파일만 하면 에러가 수십 개가 주르르 떠. 근데 아무리 봐도 어디가 문제인지 모르겠어.

시간 나면 한번 봐 줄래?”

내가 한가하게 그럴 시간이 없단다. 친구야.

“남이 봐 줘서 해결해주면 실력이 절대 안 늘어.

그럴 때는 프로그램을 먼저 보지 말고 플로차트부터 확인하고 이상 없으면 그때 프로그램을 플로차트와 비교하면서 에러를 잡아가면 돼.

그러다 보면 문제점을 발견할 거야. 그러면서 실력이 느는 거지.”

“알았어. 한번 해볼게.”

“그거 물어보려고 온 거야?”

잊었던 것이 생각난 듯 자기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니! 매키넨 교수님이 진을 찾아. 지금 교수실로 오래.”

귀찮게 나를 왜 찾아? 또 뭘 물어보려고?

대학 입학하고 어셈블리, 포트란, 베이직, 코볼, C 등 이미 배웠던 것을 다시 배우다 보니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굳이 4년 동안 시간 낭비하면서 대학을 다닐 필요는 없잖아? 졸업하기만 하면 되기에 조기 졸업을 노려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학기 초부터 교수들도 잘 모르는 문제와 이 시대에는 생각지도 못한 점들을 계속 질문하며 교수들을 괴롭혔다.

나만 보면 피하는 교수들도 있고 강의 시간에 절대 질문을 하지 말라고 하는 교수들도 있었다.

학생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면 교수 체면이 말이 아닐 테니까.

그런 행동과 올 A+의 성적을 받으니 난 교수들 사이에서 천재라 소문이 났고 3학년까지만 마치면 조기 졸업해주기로 이미 결정이 났다.

반년 더 앞당기려고 했더니만 그건 안된다고 하여 3년으로 만족하기로 하였다.

조기 졸업 결정이 나고부터는 감사의 표시로 교수들에게 일체 질문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반대로 교수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면 나에게 물어서 귀찮게 하였다.

인과응보인가? 내가 학비가 무료라서 참았지 학비를 내고 다녔다면 교수들에게 돈을 받았을 것이다.

“알았어.”

하던 것을 정리하고 일어났다.

교수실로 들어가자 매키넨 교수가 책을 보고 있었다.

“부르셨어요? 교수님!”

보던 책을 내려놓았다.

“그래. 앉아.”

“네.”

오늘은 또 뭘 물어볼까? 생각하며 의자에 앉았다.

“개발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잘 되고 있어?”

“네. 거의 끝나가요.”

“대단해. 자네가 처음 검색 엔진을 개발하겠다고 할 때가 생각나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이 난데없이 인터넷 검색 엔진을 개발하겠다고 하니 그때 내가 얼마나 황당해했는지 자넨 모를 거야.

패기가 넘쳤고 말로 한다고 들을 것 같지 않아 직접 부딪히고 현실을 깨닫기를 바라고 잘 해보라고 했지.

그게 기우였다는 것을 얼마 되지 않아 깨달았지. 자네 같은 천재가 우리 학교에 입학한 것이 영광이야.”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고 초반부터 날 비행기를 높이 태우냐? 분명 곤란한 이야기를 꺼낼 것 같은데.

“저도 교수님을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민망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배우긴 뭘 배워? 내가 보니까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오히려 내가 자네한테 많이 배웠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감탄을 많이 했어.”

낯간지러워 더 듣고 있기가 힘들었다. 교수님! 빨리 용건을 말하세요.

“저를 부르신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렇지. 자네가 제출한 리포트를 봤는데 흥미가 있어서 불렀어.

예전부터 2000년이 되면 연도에 문제가 발생할 거라며 문제 해결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들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사람들이 무시하며 지내 왔지.

하지만 7년 후면 곧 닥칠 일인데 아직도 사람들이 무관심해. 나도 자네 리포트를 보기까지 생각도 하지 않고 무관심했으니까.

얼마 전에 단스케 은행에 다니는 친구를 만나 술 한잔하다가 자네 리포트가 생각나 그 이야기를 하면서 2000년이 되면 은행이 가장 큰 문제가 닥칠 텐데 준비를 하고 있냐고 물어봤었어.

그랬더니 그 친구는 지금까지 그 문제를 전혀 생각하지도 안 했는지 내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걱정을 해.

혹시 자네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겠나?”

한 달 전쯤인가? 2000년이 6년 조금 넘게 남았지만, 어디에서도 Y2K에 관한 이야기가 없어서 년도 두 자리 문제인 Y2K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해결할 수 있지.

내가 예전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은행과 보험사, 카드사의 Y2K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라 시간이 걸릴 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은행과 보험사, 카드사와 정부 기관들은 오래전부터 전산화를 하였기에 거의 대부분이 IBM 대형 컴퓨터이며 코볼로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었다.

2020년도에도 미국 뉴저지주에서 코로나로 인해 실업자가 증가하여 실업 급여 신청이 폭증하자 컴퓨터가 이를 감당하기 힘들어 이를 해결하고자 긴급히 코볼 프로그래머를 구한 적이 있었다.

그때까지 코볼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구시대의 유물이라 코볼 프로그래머를 구하기 힘들어 내가 한 달 정도 출장 가서 해결해 준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 자랑은 아니지만 난 신, 구를 통달한 만능 프로그래머이네.

“물론 제가 할 수는 있지만, 은행에 전산실이 있어서 프로그래머들이 있지 않아요?”

“문제는 그 전산실에서는 자네처럼 2000년 문제를 제기하는 자가 아무도 없다는 거지.

또 전산실 직원들은 컴퓨터 관리만 하지 실제 프로그래밍하는 직원은 거의 없다고 해.

프로그래밍은 외부 업체에 외주를 주는가 봐.

자네가 문제를 제기한 만큼 해결책도 알고 있을 거 아니야? 그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해.

조언해줄 것도 있으면 해주고.

프로그램 수정은 외주 업체에서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 친구도 위에 보고해야 하니 문제점이 뭐고 해결방안이 뭔지를 알아야 해서.

자문료도 줄 거야. 내가 그렇게 하라고 했거든.”

“교수님이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고개를 저었다.

“나보다는 자네가 적임자야. 문제 제기도 자네가 한 거잖아.”

나보고 수정해주라는 줄 알고 식겁했네. 조언하는 정도야 충분히 들어줄 수 있지. 자문료도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언제 가면 됩니까?”

“내일 어떤가?”

“알겠습니다.”

다음 날 오전 강의만 있어서 점심을 먹고 단스케 은행으로 향하였다. 내가 자문도 하고 출세했네.

직원 안내를 받아 코스키넨 이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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