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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의 홀로서기-14화 (14/261)

14화

어학원 갈 준비를 다 마치자 시간이 조금 남아 할아버지에게 전화하려고 전화기를 들었다.

서재에 있는 전화로 걸었는데 신호가 여러 번 울려도 받지 않았다.

‘서재에 안 계신가?’

전화를 끊고 집 전화로 걸으려고 하는데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창동이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저 민재예요.)

(그래.)

(건강은 좀 어떠세요?)

(맨날 똑같지. 왜 전화했어?)

좀 다정하게 받아주시면 안 되나? 바라지를 말자.

(아빠에 관해서 물어보고 싶어서요.)

(갑자기 왜?)

(제가 아빠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지금이라도 알고 싶어서요. 아빠는 어디서 일하신 거예요?)

(현산 연구소에서 일했어.)

(현산 연구소는 뭐 하는 곳이에요?)

(나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정부와 일부 대기업이 투자하여 운영하던 연구소라고 알고 있어.)

(아빠는 거기서 무얼 연구하신 거예요?)

(글쎄다. 그건 나도 몰라. 네 아비가 말을 하지 않았거든.)

(그럼 아빠가 남긴 연구 자료 같은 것은 없어요?)

(내가 알기로는 없어. 방에 있는 상자 속에 있는 것이 전부야. 연구 자료는 연구소에 있겠지.)

하긴 뭔지는 모르겠지만 연구소에서 개발했을 테니 연구 자료는 연구소에 있을 것 같았다.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알고 있는데 의문점 같은 것은 없었나요?)

(없었다. 네 아비가 운이 나빴던 거야.)

(정말요?)

(내가 그것도 확인하지 않았을까?)

할아버지가 가장 기대하던 아들이 사고로 죽었는데 그냥 덮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확인했을 테고 의심스러운 점이 없으니 넘어갔을 것이다.

결국, 알아낸 것은 현산 연구소에서 일했다는 것밖에 없네. 그거라도 어디야?

(아빠랑 같이 연구소에서 일했던 동료 중에 아시는 분이 계세요?)

(서울대 화학과 김찬호 교수가 같이 일한다고 들었어. 그 외는 몰라.)

(알았어요.)

(공부는 잘하고 있는 거야?)

(네. 열심히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알았다. 끊자.)

전화가 끊겼다.

해답은 아빠가 연구하던 게 뭔가를 알아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지금 한국 들어갈 수도 없고 결국 대학 마치고 한국에 들어가서 그때 알아내야 하나?

시간이 되어 어학원에 가려고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문 앞에 한 남자가 서 있다가 반갑다는 듯 인사하였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진민재 씨 되십니까?”

“네. 실례지만 누구신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노카아 회장 대행 요로마 울리라입니다.”

저자가 노카아 신화를 만든 요로마 울리라라고? 바로 앞에서 보다니 영광이었다. 직접 보니 더 젊은데.

노카아 이사회에서 저자를 회장으로 선출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 이사들도 대단하네. 젊은 사람을 위기 상황에서 회장으로 선출하다니 신의 한 수였다.

만약 이사들이 요로마 울리라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노카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근데 여기는 왜?

“혹시 저를 여기서 기다리신 건가요?”

“네. 맞습니다.”

“저는 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들어오시지 그랬어요?”

“연락도 하지 않고 아침 일찍 찾아뵙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예의가 있네.

“전화하지 그랬어요?”

“주소만 있고 전화번호가 등록이 안 되어 있었습니다.”

아! 맞다. 전화가 늦게 설치되는 바람에 전화번호를 기재하지 못했다.

“제가 언제 나올 줄 알고요?”

“헬싱키 대학 어학원 다니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 학교 가는 길입니다.”

“같이 가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학교까지 10분, 우연한 기회이지만 10분 만나고 그냥 보내기에는 아까운 인물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자에 대해 알아보고 친분을 쌓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3시에 끝나니 3시 15분에 학교 앞 로만틱카 카페에서 만나죠. 물어볼 말도 있거든요.”

“로만틱카 카페가 아직도 있습니까?”

“아세요?”

“저도 헬싱키 대학 출신입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3시 15분에 뵙죠.”

“네.”

“진!”

에밀리였다. 샤론을 경험한 나로서는 에밀리의 그다음 행동은 계속 내 주변을 맴돌면서 친하게 지내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다 나한테 알아낼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 샤론처럼 연기처럼 내 곁을 떠날 테지.

나한테서 뭘 알아내려는 걸까? 나에게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분명 아빠에게 관심이 있고 나를 통해 뭔가를 알아내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게 뭘까? 아빠가 연구하던 거와 상관이 있을 것 같은데. 아빠가 연구하던 것이 뭘까? 미국에서 탐내는 것을 보면 그만큼 중요한 거겠지.

에밀리의 진짜 정체는 뭘까? 미국 기업과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미국 정부와 관련된 것인지?

왜 내 주변에는 스파이들이 왜 이리도 많냐? 작은 엄마한테 겨우 벗어났다 싶으니까 또 엉뚱한 곳에서 나타나고.

이러면 내가 사람을 만나고 사귈 때 의심부터 하게 되잖아? 인간불신만 자꾸 생기는데.

“왜?”

“애들과 같이 영화 보러 가기로 했는데 같이 안 갈래?”

이것 봐! 자기들끼리 가면 될 텐데 나를 끌어들이려는 것을 보면 내 짐작이 맞았다.

“미안! 나 약속이 있거든.”

“누구? 여자 친구야?”

“아니 남자야. 일 때문에 만나는 거야.”

“진은 왜 애들하고 어울리지 않으려고 해?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인데 친하게 지내면 좋잖아.”

“그러게 말이야. 내가 왜 그럴까?”

에밀 리가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치면서 말했다.

내가 대신 쳐주고 싶네.

“걱정하지 마. 내가 너의 쑥스러워하는 성격을 고쳐줄게. 나랑 한 달만 같이 다니면 돼. 그럼 저절로 없어지는 마법을 볼 거야.”

“생각해 볼게.”

“잘 생각해봐.”

“알았어. 영화 잘 보고 재미있게 놀아.”

“고마워.”

에밀리와 헤어지고 카페 안으로 들어가자 요로마 울리라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일찍 오셨네요?”

“대주주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죠.”

직원이 와서 커피를 주문하였다.

“여기 온 지 17년 만이라 그런지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17년이면 긴 세월이죠. 안 바뀌는 것이 이상할 겁니다.”

“대학 다닐 때가 그립습니다.

그때는 두려울 것도 없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그런 마음들이 줄어갑니다.

이러다가 내가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은 노카아의 신화를 이룬 영웅이니까요.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제가 보기에는 야망도 보이고 자신감도 많은 것 같습니다. 많은 것을 이룩하실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근데 저를 보려고 한 이유가 뭡니까?”

갑자기 정색하며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이유를 말하기 전에 한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진민재 씨는 어떤 이유로 노카아 주식을 대량으로 매수한 겁니까? 현재 노카아가 어떤 상황인지 모르시는 겁니까?”

그거야 나중에 대박을 치니까 미리 선점한 거지.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고.

“제가 노카아 주식을 매수하려고 하니까 주변에서 다들 말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그럼 왜 제가 노카아 주식을 매수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노카아는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저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대로 가면 희망이 안 보이기에 대대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체질 개선이라고 하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노카아의 회장이 될 사람에게 나의 강한 인상을 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내가 필요할 때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 신뢰를 받을 수 있다.

미안하지만 당신에게 잘 보이려고 당신 생각을 스틸 좀 하겠습니다.

“회장 대행님도 잘 아시겠지만 노카아는 문어발처럼 여러 사업을 방만하게 경영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이고 지금의 위기를 오게 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금처럼 모든 사업을 다 끌고 갈 수는 없기에 필요 없고 미래 가치가 없는 사업들은 과감한 매각을 통해 정리해야 노카아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이게 유일한 방법일 겁니다.

그럼 여기서 어떤 사업을 정리하고 어떤 사업이 미래 가치가 있을까? 결정해야만 할 겁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노카아의 사업 중 미래 가치가 있는 사업은 통신 장비와 모바일 사업입니다.

그래서......”

말을 끊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통신 장비와 모바일 사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정리하는 결단을 내린다면 노카아는 예전의 명성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저는 가능성을 보고 노카아 주식을 매수한 겁니다.”

“하지만 그건 진민재 씨의 생각이고 노카아 경영진에서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면 큰 손실을 볼 수도 있습니다.

이는 모험이라기보다는 도박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앞에 노카아는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저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는 경영진들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고 그 방향으로 나갈 거라고 판단한 겁니다.

물론 제 판단이 잘못되었다면 책임은 오로지 제가 지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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